<曰可曰否 논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디언
2018-10-01 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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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曰可曰否논어>는 '미친 암송단'이 필진으로 연재하는 글쓰기 입니다.




   公山弗擾以費畔召 子欲往 子路不說曰 末之也已 何必公山氏之之也

曰 夫召我者 而豈徒哉 如有用我者 吾其爲東周乎 (양화 5)


       공산불요가 비 땅에서 모반을 일으키고는 공자를 불렀다. 공자가 가려고 하자 자로가 언짢아하며 말했다.       

          갈 수 없습니다. 하필이면 공산씨에게 가려고 하십니까?  공자가 말했다. 나를 공연히 불렀겠느냐?

만일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나라를 동방의 주나라가 되게 할 것인데!




  공산불요는 노나라 제후의 권력을 찬탈한 계손씨의 가신으로, 계손씨가 다스리던 비 땅에서 모반을 일으켰다. 공산불요가 계씨의 대부정치를 끝내고 제후에게 권력을 되돌리려고 했는지, 자신이 권력을 쟁취하여 또 다른 대부정치를 하려고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어쨌거나 그는 자신의 모반을 정당화하기 위해 공자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었고 그래서 공자를 초빙하고자 했다. 공자는 이 때 가려고 했다. 나라에 도(道)가 없으면 정치에 나아가 녹을 먹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공자지만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다.

이미 삼환(계손, 숙손, 맹손씨)이 노나라 제후의 권력을 찬탈하여 무도한 세상인데 그 가신이 다시 대부에게 반란을 일으킨 마당에 그 세력과 손을 잡으려하다니! 자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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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의 마음은 왜 흔들렸을까? 공산불요가 대부정치에 반기를 든 것은 공자로서는 환영할만한 일이다. 물론 그가 다시 계씨를 대신하여 대부정치를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런데 그가 공자를 초빙했다면 아무 생각없이 그냥 불렀을까? 공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지 않을텐데? 그렇다면 자신이 공산불요와 연합하여 대부정치를 끝내게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공산불요는 이런 공자의 기대와는 다른 생각으로 그를 초빙했을 가능성이 크다. 공자를 내세워 자신의 반란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어쩌면 공자도 이런 공산불요의 내심을 모르지 않았을 테지만, 그러나 어차피 세상은 덕있는 정치가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자(隱者)가 되지 않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 사(士)의 의무가 아닌가?

자신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정치를 실현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해봐야 하지 않겠는가. 공자는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기회를 살리고 싶지 않았을까?

  당시 공자 나이 50세. 노나라를 떠나 천하를 주유하기 전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정치를 맡겨준다면 일 년이면 충분히 해낼 수 있고, 삼 년이면 크게 이룰 수 있다’(자로편)고 믿을만큼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던 공자였고, 또 ‘아무리 갈아도 닳지 않고 아무리 물들여도 검게 되지 않을’(양화편)만큼 도덕적 자신감도 있었던 공자라면 자신이 그토록 하고 싶은 정치참여의 기회를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쉬웠을 것이다.   

결국 공자는 공산불요와 손을 잡지 않았고, 오히려 노나라의 대사구(법관)가 되어 공산불요의 반란을 진압하였다고 한다(『춘추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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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라에 도(道)가 있으면 나아가고 도가 없으면 물러난다는 것이 공자의 기본 입장이다. 춘추시대라는, 기본적으로 무도한 세상에서 그렇다면 사(士)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가? 공자는 그럴 수 없었다. 평판이 좋지 않은 위영공의 부인 남자(南子)를 만나기도 하고 반란을 일으킨 공산불요나 필힐 같은 대부들의 초빙에 응하려고도 하였다. 그는 자신의 꿈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무도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했다. 그리하여 공자는 ‘안 될 줄 알면서도 하는 사람(知其不可而爲之者)’(헌문편)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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