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자기서사 시즌3] 4회차 후기-<병든 의료> 8장~14장

언덕
2022-10-13 23:31
240

가구쇼핑몰에서 본  마호가니 원목 식탁을 자꾸 생각나게 하는 셰이머스 오마호니의 <병든 의료> 후반부를 살펴보며  4회차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오마호니는 ‘치료’와 ‘의학’은 상당히 다른 것이고, 의학의 목표는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하는 일과는 그닥 관련이 없다는 신랄한 고발을 들려주었습니다.  3회차에서 문탁샘의 사전 강의를 통해 일리치와 푸코의 경고-‘생명과 건강’을 둘러싼 학문·사회제도가 선한(?) 외양과는 달리, 사실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길들이는 권력효과를 발휘한다는 경고-를 미리 들어두기는 했습니다만, 저자가 들려준 구체적인 실태들이 그 경고를 피부에 와닿게 해주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의료계 내부자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그들의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인 듯 합니다.  세미나 끝날 무렵에 터져나온 문탁샘의 고백(백신과 마스크와 병원 앞에서 도미노처럼 무너지셨다던...^^)처럼, 우리 일상 속에 깊이 들어와 있는 의료를 돌아보면서 정말 길들여진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우리의 이야기를 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빡빡한 발제로 얘기 나누는 데 썼어야 할 시간을 다 잡아먹은 것 같아 엄청 죄송하네요ㅠ. 

 

  일단은 자세히 들여다보자는 생각으로 발제를 하긴 했는데,  책의 모든 부분이 설득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의산 복합체’가 건강과 생명을 볼모로 우리 생각과 행동을 조종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고 해서, 당장 건강과 생명에 초연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뚜렷한 다른 대안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더라도, 병원과 약물은 물론 ‘표준화된 건강기준’도 진실된 것이 아니라, 의료계 내부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의 산물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 윤경샘이 알려준 대사증후군 진단의  표준지표가 제시되는 5항목은 허리둘레, 중성지방, 고밀도지방, 혈압, 공복혈당 등입니다.  제 경우,  허리둘레/지방/혈압에서 치료가 필요하고 심혈관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4배 높고, 당뇨에 걸릴 확률은 3-5배가 높으며, 지방간, 폐쇄성 수면 무호흡, 암에 의한 사망률 역시 매우 높습니다.  네이버검색창에 대사증후군을 입력하면  대형병원의 질환백과가 검색되고 '현대의학에서 검증을 거친 약물치료가 요구된다'는 내용이 쓰여있습니다. 제가 정말 건강에 민감하다면 지금 한가하게 발제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책에 따르면 현재의 의료시스템은 비용만 크게 끌어올리는  거대기업과 거대과학의 손에 주도권이 넘어갔고,  실제 아픈 사람의 고통을 줄이는 작은 조치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말 그대로 의료자체가 총체적으로 '병든' 상태입니다. 과연 대안이 있는 걸까요? 

마지막 부분에서 저자는 의료에 대한 관점을 바꿀 필요를 제기합니다.  그가  간접적으로  제안한 것은 서양 고대의학에서 발원한 두 갈래의 전통 중 하나인 ‘히기에이아’ 전통을 불러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질병의 '퇴치와 정복'을 지향하는 ‘아스클레피오스’ 전통이 우세했지만, 이와 대조적인 또 다른 전통도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환경에 맞추어 스스로의 적절함을 유지하는 것을 지향하는 ‘히기에이아’ 전통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저자는 르네 뒤보의 『건강 유토피아』를 인용하여, ‘고통도 질병도 없는 건강에 대한 열망’이 근대 의학에 국한된 환상이 아니라, 고대 서사시와 <황제내경>에서도 발견될 만큼 뿌리가 깊다고 말합니다(발제하면서 르네 뒤보를 위보라고 했고, 뒤보가 입장을 바꾸어 두 가지 별개의 책을 쓴 것처럼 요약했습니다. 오타와 오독으로 얼룩진 이 부분.. 죄송죄송 ㅠ . 문탁샘께서 지적해주시지 않았으면 다른 데 가서 '위보의 성찰 이전과 이후' 이런 말까지 할 뻔 했습니다. 휴~, 식은 땀..). 저자는 이런 환상을 버리고 건강에 대한 사고의 방향을 바꾸자고 합니다. 이 대안적 방향은 우리가 배우는 ‘양생’과 가까운 것일까요?

   또 이런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히기에이아’ 전통을 기꺼이 수긍할 수 있는 것은 혹시 ‘노년기’ 시선이라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겁니다. 젊은 사람이라면, 또는 본인이 아닌 사랑하는 타인(자식이든 연인이든 꼭 지켜내고 싶은 사람)의 질병에 직면한 사람이라면, 포기하기 보다는 미미한 가능성이라도 붙들고자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결국  ‘아스클레피오스’를 불러내고 싶은 이들 또한 반드시 있지 않을까요?

 

   ‘병든 의료’의 바깥에서 ‘좋은 의료’가 싹터 주기를 바라지만, 우리가 바라면  이뤄질까, 의사 본인들의 각성과 혁명에 달린 일일까, 역시 모르겠습니다. 대신, 우리가 의사는 아니어도 서로를 돌볼 수는 있다는 지난 시즌2의 논의로 돌아가게 되네요.  

   신혜샘은 지난주에 어머님이 계신 병원에 연명치료에 관한 의사를 전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보호자의 의사표현이 있다고 해서 곧바로 반영되는 것은 아니지만, 신혜샘이 세미나를 통해 여러 생각을 할 기회를 가졌기 때문에 그런 표현이나마 할 수 있었다 말하시는 것을 들으며 뭉클했습니다.  ‘돌봄’은 정말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많은 영역인 것 같습니다. 모든 선생님들께서 한 마디씩 해주셨는데, 제가 후기 안으로 잘 옮기지를 못하겠네요. 지루하고 일방적이었던 발제를 소생시켜주시는 셈 치고 댓글로 한 말씀씩 보태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꾸벅꾸벅.

댓글 5
  • 2022-10-14 10:00

    삶의 방식을 길들이는 권력효과에 저항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셈나였어요.

    언덕쌤의 찰진 발제와 문탁쌤의 명해설로 많은것을 깨달은 세미나로 좀 더 날카로워습니다.ㅅㅇㅅ

    저도 두 쌤들처럼 예리한 문제의식을 가질 날까지 정진하겠습니다. ㅎㅎ 

    요양보호사, 부지런히 따고 내년 사회복지사 까지 도전하여 또다른 노후를 보낼 새로운 시도와 궁리를 해보고 싶어용.

    후기 쓰시느라 고생했어요.

    잘 읽었습니다. ㅅㅇㅅ

  • 2022-10-14 12:14
    • 의료산업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문화산업, 교육산업, 식품산업... 모두가 마찬가지다. 거대 자본가가 주도권을 쥐고 자본의 증식을 목표로 일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잘 짜여진 시스템에 따라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서  '아니라고' 말하는 이가 이상해 보일 정도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그래도  동조자를 얻기가 쉬웠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말이 떠올랐다. 불가능하니 괜한 짓 하지 마라, 너만 손해다. 그만큼 의료산업이 거대해 보인다. 그렇지만 의료산업도 병들었다면 머지않아 죽을 것이다. '건강한 의료'를 기대해 본다.
    • '대사증후군 진단 표준지표'에 대부분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아직은 검사 결과가 정상 범위라서 신경을 안 쓰고 있다.  숫자가 달라진다면? 끌쎄... 어떨까?
    • 쉰 살무렵 소화불량이 심했다. 종합검진을 받아보았더니 쓸개에 용종이 있다고 했다. 서울대학병원을 다니며 6개월에 한번씩 검사하고 의사를 만났다. "네, 황재숙씨, 용종 크기가 그대로 입니다. 피검사 결과도 이상없고요. 6개월 후에 다시 검사 받으세요." 시키는 대로 몇년을 하면서 매번 똑같은 말을 들었다.  그만 둔 지 이제 10년쯤 되었다. 지금도 내 쓸개 안에 용종은 있겠지만, 이제는 관심이 없다. 소화불량은 3개월 동안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해서 고쳤다.

  • 2022-10-15 18:44

    지난주 발제문을 너무 잘 정리해주셔서 진짜 깔끔하게 다시 한번 제 안에서 정리가 될 수있었어요~ 그런데 후기 역시 깔끔하고 완벽한정리네요!^^ 저는 정말 이 세미나가 아니였다면 돌봄과 노년을 생각도 안하고 살다가 어느날 쾅하고 제 앞에 던져졌을 문제들인거 같아요. 병든의료늘 읽으면서 저의 한가지 질문은, 의산복합체의 커다란 음모안에 움직이는 현대의료시대에 나는 과연 내몸을 어느정도 선까지 스스로 케어하고, 어느정도 선이 넘었을때 병원에 가야할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어렵다는 거였어요. 저만의 기준을 세워놓는다면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2022-10-16 21:43

    '믿고 보는' 언덕샘의 발제와 후기. 언덕 샘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 책은 저에게 '의료', '치료', '건강을 지킨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주었습니다. 시스템이 너무 거대하고 견고해 어찌해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는 답답함을 주기도 했지만, 의료의 기본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습니다. 계속 고민해볼 숙제.

    저는 '소비자주의'에 대한 저자의 의견에는 잘 동의가 안 됐습니다. 저자가 지적하는 소비자주의의 과도함은 비단 의료분야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거예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전문가의 성역은 무너지고 있고, 그로부터 크고작은 부작용도 나오고 있지만 긍정적인 면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분야의 특징이 있기에 유독 전문가의 판단이 중요하긴 하겠지만, 저자의 주장은 너무 의사 입장이라 느껴졌어요. 세미나 시간에 문탁샘께서 '소비자주의'와 구분되는 '시민적 권리'라고 말씀해주셔서 약간 정리가 됐습니다. 

    그외에 책읽으면서 들었던 아무 생각을 말해보자면, 

    코로나19 대응에서 영국이 맥없이 무너졌는데, 이런 이유에서였나? 팬데믹 이후 의산복합체 중심의 거대시스템은 더 공고해진 것 같다고 세미나 시간에 의견들을 나눴지만, 그래도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 지 지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국의료체계에 비해 우리의료체계는 어떠한지도 궁금했어요. (웃기는 표현이지만)K방역이 훌륭한 의료체계 덕분은 아닌 것 같아서...

    이국종 교수 생각도 났고요. 강남에 즐비한 성형외과나 피부병을 보는 피부과를 찾기 어려운 현실 등이 떠올라 씁쓸했고요(이미 우리 의료는 망한 것 같아서). 그리고, 책내용은 아닌데, 옮긴이(권호장 교수)를 소개한 글에서 '건강은 지키는 게 아니라 사용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라는 부분이 아주 인상적이었습니다. ^^;;

  • 2022-10-17 14:58

    언덕샘의 발제와 후기 덕분에 풍성해진 이번 세미나였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전 이번 세미나와 책 내용을 통해 잊혀졌던 저의 지난 과거가 생각났었네요. 몇년 전쯤 친정 엄마 추천으로 종합병원에서 모발유전자검사를 했더랬죠. 그 검사를 해야하는 특별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검사결과를 통해서 나에게 맞는, 나의 몸이 필요로 하는 영양제를 처방받아서, 나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가 전부였어요~~ 검사비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었지만, 처방받은 약들은 양부터가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바보같은 짓이었네요..  이번 세미나가 아니었다면 영영 잊혀졌을 기억이지만, 앞으로도 몇번이고 이렇게 저와 제 가족에게 영향을 미치겠죠? 딸의 건강을 위해 친정 엄마는 제게 권유하셨지만, 저는 제 딸에게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안에 숨겨져 있는 거대과학의 시스템을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제 딸은 저처럼 쉽게 결정하진 않을거 같아요.

    '병든의료'라는 책을 통해 의산복합체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된 건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알려준 내용은 우리 사회의 샘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견본품이요.. 분야만 바뀔 뿐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전반적인 시스템과 제도가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됩니다. 교육과 학교에 대해서도 하실 말씀이 많다고 하셨었는데, 시간상 많이 얘기는 못 나눴지만요..

    병들어 있는 의료계만 낫게 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닌 듯 해서 마음이 더 답답한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알게 된 사실들은 표면적인 것일 뿐, 그 실체는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안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린 또 앞으로 얼마나 이런 모순적인 상황들을 마주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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