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자기서사S2> 6회차 후기-"늙어감"의 본색

언덕
2022-07-29 16:40
206

   메모를 맡았으면 후기도 쓰게 된다는 걸 빨리 떠올렸어야 했는데,  내용 쫓아가느라 급급해서 세미나 중에 오간 이야기들을 미처 기록을 못했어요.   어려운 텍스트에 허술한 후기로 설상가상을 펼쳐보겠습니다(용서해주세..지 마시고 악플 달아주세여ㅠㅠ).

   장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저항과 체념 사이에서>는 이번 시즌 마지막 책인데,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도록 문탁샘께서 빅픽쳐를 그리신 것 같습니다.  '키케로가 그립다, 쿠르티브롱이 좋았다, 올리버 색스의 따듯함이 그립다, 우정의 돌봄에 대해 얘기할 때가 좋았다...' 등등의  소리없는 아우성(?)을 눌러가며  아메리의 의도를 이해해보려 애썼던 6회차 세미나였습니다. 

 

  아메리는  '늙음' 이라는 경험의 근본 속성을 끄집어내 보려 한 것 같습니다.  책의 첫 세 챕터는 '늙음'을  '시간'- '몸' - '사회'라는 세 가지 레벨에서 이뤄지는 체험으로 다루었습니다.  세 가지 레벨을 달리 표현하면 (1) '시간'은  '내적 체험'으로, (2) '몸'은 '외양인 신체적 체험'으로, (3) '사회'는 '삶이 담겨있는 환경적 조건의 체험'에 각각 상응될 것 같습니다. 

  첫 챕터를 요약한 언덕은 '본인은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는 나이인지라  책내용이 무척 수긍이 되었음에도,  설명은 잘 못하겠다'며 조리있게 횡설수설 해주었습니다.  그렇지만  문탁샘의 설명을 통해 '시간'이라는 형식으로 체험되는 늙음이란 것이 얼마나 의미심장한지 알게 됩니다.  핵심만 적자면, 늙음은  '켜켜이 쌓인 시간의 탈공간화'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젊은 날에는 늘 '어느 시점'에 '세상의 어디엔가에' 위치해있기 때문에(사무실,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 강의실, 회의, .. 등등) 시간 자체를 체험하기 어렵지만,  더 이상 자리잡을 '세상 어딘가'가 없어지는 시점이 되면 그제서야 지나온 시간, 즉 '살아낸 시간' 자체를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억'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지만, 기억해내지 못할 경우에도 시간의 무게를 '느낄수는 있기' 때문에  '늙음'은 기억과 정동(감정)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여기서 늙은 사람은  "세상에서 들어내어 진 존재"라는 아메리의 말은  너무 잔인한 것 같기도 합니다.  하지만,   늙은 존재는  '세계'에 종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밀도높은 시간'과 더불어 있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추방 당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세계에서 걸어나오는 자아(문탁샘)"가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이 지점은 우리가 여러차례 이야기한 '자아의 소멸'과 만나는 과정은 아닐까요..?

  두번째 챕터를 소개해 주신 한스샘은  책내용처럼 스스로 마주하는 거울 속의 모습이 점점  낯설다고 하셨습니다(영애샘, 문탁샘, 재숙샘도 지금 "내가 늙어버린 여름"을 겪고 계시다며,  잠시 쿠르티브롱 밈 타임).  노화와 함께 신체에 찾아오는 고통 속에서 우리는 몸의 기관들이 곧 자아임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한스샘은 오래된 천식과 새로 생기는 주름이 '나'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임을 근래에 더 많이 깨닫는다고 고백합니다.  젊은 날의 건강함은 우리를 자아의 외부를 향해 나아가는데 몰두하게 한다는 점에서 몸과 직접 마주하기 어렵습니다. '몸'은 늙은 날의 통증과 쇠락을 통해 자신이야말로 자아임을 재발견하게 합니다.  그래서 아메리는 노년이 "자아발견과 자아소외 사이의 묵묵한 대화"가 벌어지는 때라고 말합니다.  '사유실체'와 '연장실체'의 공수교대라고나  할까요.  

  세번째 챕터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제목을 갖고 있습니다. 요약하신 재숙샘은 "사회적 연령"이라는 말이 분명히 와닿기는 하는데, 아메리가 전하는 내용들은 좀 혼란스럽다고 평하셨습니다.  재숙샘은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을 사회가 지정한다는 것(우편배달부를 해왔으니 노력하면 우체국장이 된다던가, 미래의 가능성을 묻는 대신 '이미 할 수 있는 걸 다 하지 않았느냐'는 식의 시선), 그리고 경제력에 따라 판단되는 '사회적 시선'에 대해 인용해주셨습니다.   사회적 시선이나 배치에 대해서는 우리 세미나에서도  종종 이야기했었지만,   아메리는 너무하게도,  거기서 훨씬 더 나아갔습니다.  '늙은 사람'의 경우,  품위있고 젊게 남고자 안간힘을 쓴 들 사회가  받아주는 것이  아니며,  반대로 노후를 잘 준비하여 은둔한다고 해도, 그것 조차 사회가 이미 그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한다고 지적합니다.  앞의 두 챕터에 이어 맞은 자리 또 맞는 기분이지만,  그가 말하려는 것은 분명합니다.  '아무 것도 아님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 누군가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전망이 모두 '사회의 기대'이고,  '타인의 시선'이라면, 그런 시선을 자신 안에 녹여버린 그 자아를 버리라는 것이지요.  그래야 오롯이 '자기 자신'이라고 말합니다. 

 

   6차 세미나는 다소 어리둥절한 채로 마무리 된 듯 합니다.  지영샘과 한스샘은 저자의 지나친 단정들이 선뜻 동의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노년과 직면하는 여러 방식들을 탐색해 온 우리의 노력들과는 온도가 달랐다고나 할까요.  사실 저도 여러가지 반론이 떠오르긴 했어요.  그런데 저는  장 아메리가  수용소 생존자라는 점을 명심하며 읽었습니다.  제가 읽은 다른 생존자의 글(빅터 프랭클)에서, 이런 얘기를 읽었습니다.  생존자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동료인간들 대신 감시자들에게 협조했고, 살기 위해 차마 지켜만 볼 수 없는 것들을 그저 지켜봄으로써 생존할 수 있었다고요,  '좋은 사람'은  안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생존자들은 '좋은 사람'일 수 없었기에 살아남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아메리가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이야기를 써나갔다면 그는 삶을 부정했을 것 같습니다. 잔혹함에 대한 고발과 인간성에 대한 회의로 가득한 이야기였을 지 모릅니다. 자신의 기억밖으로 걸어나와  참된 자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은 그의 성찰이 '노년'을 절대 독립의  타이밍으로 승화시킨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후기분량이 계획보다 두 배 길어졌네요.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감사합니다^^   담주에 뵈어요~~

댓글 8
  • 2022-07-29 18:34

    와!!!!!🤩🥰😍

    • 2022-07-30 11:11

      오.. 이모티콘 고맙습니다. 사랑받은 기분..^^

  • 2022-07-29 19:51

    고품격 후기! 언덕샘 감사합니다. 

    한 가지 정정을 하자면, 저는 책 내용에 선뜻 동의가 안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전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제가 세미나 시간에 한 얘기는 일종의 반발심같은 감정이었습니다. 

    저는 어느날 갑자기 망치로 얻어 맞은 듯 몹시 폭력적으로, 장 아메리가 가차없이 서술한 늙음의 정체를 보게 됐습니다. 그리고 그것(저자가 말하는 늙음의 정체들)만이 앞으로의 나에게 남은 시간!이라고 생각돼 암담했습니다. 덜컥 겁이 났죠. 겨우 정신인지 몸인지 마음인지 그 모두인지.. 그것들을 수습하고 이 세미나까지 오게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시즌2가 시작되기 전 저는 이 책을 먼저 읽었습니다, 앞부분 일부이지만.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여 메모를 하며 '옳거니'를 남발했어요. 그러다 책 순서가 바뀐 것을 알고 도중에 덮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읽는데, 처음 읽을 때의 감정이 많이 식어 있었습니다. 

    저는 늙음의 정체보다는 그래서 시간부자가 될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할지가 궁금합니다. 그런 저에게는 '현실직시'만을 너무 가혹하고 길게 서술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래서요?" 라고 자꾸 묻게 되더라고요. 앞의 교재들을 통해서 일목요연하지는 않지만 늙어가며 내가 생각해야 할 것들에 대해 이런 저런 단서들을 얻었다고 생각했는데, 장 아메리는 그것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려 놓으며 다그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을 더 먼저 읽었다면 제가 좀더 고분고분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ㅎㅎ

    그건 그렇고 ^^;;

    저는 공간화 된 시간의 의미를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똑똑해진 느낌 ㅋ). 여러 철학적 의미를 되새길 수준은 못 됐지만, 오히려 그래서인지 이것저것 밑에 깔린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못하고) 단순하고 깔끔하게 이해를 했습니다. 물론 세미나 시간에 문탁 샘과 언덕 샘이 주고받는 말씀 속에서 '내가 참 얇구나' 하고 또 한번 느꼈지만요. 언덕 샘은 '시간을 경험'한다고 표현하셨는데, 저는 '살아낸 시간'을 경험한다기 보다 비로소 인식하게 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습니다. '경험'이라는 표현을 들으니, 제가 이해한 것과는 다른 의미였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됩니다. 

    그밖에, 요즘 떠오르는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에도 속지 말자는 생각도 했고요. 이 책이 1968년에 쓰여졌던데, 당시 젊은이들에게 너무 치였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지금의 86세대 생각도 들었고요. 내내 '아~ 이분 참..'하며 책을 읽었는데, 저자가 홀로코스트 생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살짝쿵 죄송해지기도 했습니다.

    저 네번째 '더는 알 수 없는 인생' 메모 담당입니다. 반항심 버리고, 잘 읽어보겠습니다. 

    • 2022-07-30 11:22

      맞다..  그렇게 얘기하셨던거 기억나요(넋놓고 들을 게 아니라 적었어야해ㅠㅠ).  앞으로 남은 시간이 이거?? 라는 지영샘의 놀람에 엄청 공감요 ㅎ.

  • 2022-07-30 14:26

    참된자아의 가능성을 포기하지않고 끊임없이 성찰하는 작가라니... 수업에는 참여하지 못했지만 언덕샘 후기를 보니 깊은 사유가 오고갔음이 느껴집니다. 주말동안 녹화본 보며, 책 읽으며 얕지만 열심히 사유해보겠습니다. 

  • 2022-07-30 15:16
    훌륭한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는 사실 제가 맡은 부분을 읽다가 "노화는 불치의 병이다." 이란 표현이 나와
    책을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거든요..
    그래도 늙어감의 진실을 좀더 담담하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특히, 작가에 대해 좀 알고 난 다음에는 느낌이 달라졌습니다..
     
    그동안 몰랐는데. 세미나를 통해 새롭게 생각해 본 것들은,
    -나이들어감에 따라 느껴지는 '공간'과 '시간'의 변화..
    -나이들어감에 따른 '몸'의 발견..

  • 2022-07-30 15:23

    언덕샘 후기는 또하나의 심도있는 메모네요. 지난주 세미나전 메모를 읽고 정말 잘 이해하고 쓰신것 같이 인상적이었어요. 아메리글은 그간 이리저리 공부하면서 읽은 웰에이징(?)의 헛된 희망을 가차없이 차버리라했지요. 그런데 바로 그 시점부터 제대로 나이들어갈 때인것 같아요. 다시 책을 펼쳐서 밁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2022-07-31 09:52

     "세상에서 들어내어 진 존재",    늙은 존재는  '세계'에 종속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밀도높은 시간'과 더불어 있는 존재, 

     '추방 당한'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세계에서 걸어나오는 자아(문탁샘)" 

    '아무 것도 아님을 인정할 때, 비로소 그 누군가이다' 라는 것,  '자아의 소멸'...

    언덕님의 후기를 읽으니 다시 한번 우리가 이루러는 '무아'의 경지는 비로소 노년에 이뤄질 수 도 있겠다 싶네요.

    자신의 켜켜이 쌓인 시간을 바라보며 자신만의 시간의 밀도를 느끼지만 그 덧없음과 세계에서 들어내어지며 걸어나오는 존재,

    노년을 그렇게 정의한다면 이번 세미나의 수확은 꽤 솔솔한것 같아요.

    잃음으로써 얻어지는 것....그것이 노년이라면, 죽음이라면,

    시큼한 열매가 되어 떨어져도 두려워하지 않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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