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세 번째 순자 이야기     성악설이 아니라 욕망론이다     1. 욕망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갖는다. (人生而有欲) 『순자』「예론」   유학자 최초로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 사람은 순자이다. 그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추우면 따뜻하길 바라고 배고프면 배부르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욕망이야말로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산 사람은 욕망할 수밖에 없지만 죽은 사람은 욕망할 수조차 없다. 그는 욕망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늘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겼다.   전국시대는 전쟁으로 점철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제자백가의 학자들은 저마다의 사상을 펼쳤다. 이 가운데 송견(宋銒)은 “사람의 욕망은 적다(欲寡)”고 주장했다. 그의 과욕(寡欲)론은 사람이 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욕망을 부추기는 세태 때문에 세상이 혼탁해진다는 것이다. 순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욕망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눈으로 좋은 것을 보고, 귀로 좋은 소리를 듣고, 코로 좋은 향내를 맡으며, 입으로 맛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것은 누구나 갖는 욕망이다. 송견은 사람이 이 정도를 욕망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순자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기만이 아닌지를 묻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순자에게 욕망은 생존욕구부터 인정욕망까지...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세 번째 순자 이야기     성악설이 아니라 욕망론이다     1. 욕망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갖는다. (人生而有欲) 『순자』「예론」   유학자 최초로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 사람은 순자이다. 그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추우면 따뜻하길 바라고 배고프면 배부르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욕망이야말로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산 사람은 욕망할 수밖에 없지만 죽은 사람은 욕망할 수조차 없다. 그는 욕망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늘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겼다.   전국시대는 전쟁으로 점철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제자백가의 학자들은 저마다의 사상을 펼쳤다. 이 가운데 송견(宋銒)은 “사람의 욕망은 적다(欲寡)”고 주장했다. 그의 과욕(寡欲)론은 사람이 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욕망을 부추기는 세태 때문에 세상이 혼탁해진다는 것이다. 순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욕망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눈으로 좋은 것을 보고, 귀로 좋은 소리를 듣고, 코로 좋은 향내를 맡으며, 입으로 맛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것은 누구나 갖는 욕망이다. 송견은 사람이 이 정도를 욕망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순자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기만이 아닌지를 묻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순자에게 욕망은 생존욕구부터 인정욕망까지...
여울아 2022.10.04 |
조회 851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두 번째 순자 이야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법     누구를 위한 의례인가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북새통이었다. 내가 만삭의 몸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막냇동생분의 아들이 해남 어디선가 개척교회 목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한참을 통성기도 하신 후에야 주위는 조용해졌다. 어느 틈에 도착하셨는지 집안의 먼 친척 비구니 스님이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망자의 한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 아빠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할 기세였다. 그렇게 장지로 떠나기 전 할머니의 천도재(薦度齋)가 결정되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죽어서라도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뼛가루는 산에 들에 뿌리고, 장례도 간소하게 치루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뇌졸중으로 몇 번을 쓰러지시고, 또 그때마다 재활에 성공하셨지만 할머니는 늘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나는 부모님께 왜 할머니의 평소 소원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까지 보태어 부모님을 비난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새벽 할머니가 사라진 후 부모님은 생업을 전폐하고 매주 전국각지 보호소를 찾아 헤맸다. 당시 서울 살던 내게는 주말마다 바쁘다고만 하시고 할머니의 부재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리셨다. 그 몇 달 사이 아버지는 이가 몽땅 빠지고 엄마는 앞머리가 듬성듬성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무원의 실수로 할머니를 행불자로 이미 가매장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공무원을 고발하지 않기로 서약서를 쓴 후에야 할머니는 주검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런...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두 번째 순자 이야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법     누구를 위한 의례인가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북새통이었다. 내가 만삭의 몸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막냇동생분의 아들이 해남 어디선가 개척교회 목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한참을 통성기도 하신 후에야 주위는 조용해졌다. 어느 틈에 도착하셨는지 집안의 먼 친척 비구니 스님이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망자의 한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 아빠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할 기세였다. 그렇게 장지로 떠나기 전 할머니의 천도재(薦度齋)가 결정되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죽어서라도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뼛가루는 산에 들에 뿌리고, 장례도 간소하게 치루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뇌졸중으로 몇 번을 쓰러지시고, 또 그때마다 재활에 성공하셨지만 할머니는 늘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나는 부모님께 왜 할머니의 평소 소원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까지 보태어 부모님을 비난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새벽 할머니가 사라진 후 부모님은 생업을 전폐하고 매주 전국각지 보호소를 찾아 헤맸다. 당시 서울 살던 내게는 주말마다 바쁘다고만 하시고 할머니의 부재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리셨다. 그 몇 달 사이 아버지는 이가 몽땅 빠지고 엄마는 앞머리가 듬성듬성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무원의 실수로 할머니를 행불자로 이미 가매장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공무원을 고발하지 않기로 서약서를 쓴 후에야 할머니는 주검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런...
여울아 2022.05.31 |
조회 450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똑같은 책인데 새로울 게 무어냐고 묻는다. 그렇다. 고전은 어디 가서 아는 척 하기도 어렵다. 웬만하면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읽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 글은 내가 아직 덜 소화시켰더라도 그 낯설음이 내게 주었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다.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자의 이야기이다.   청출어람 구출작전   순자의 청출어람을 아십니까? 작년 제자백가 세미나에서 『순자』를 읽었다. 토용과 함께 진행하려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전학교가 신청이 저조해서 폐강한 직후였다. 세미나를 열고도 전전긍긍했다. 얼마나 사람이 모일까. 아무래도 동양고전은 내리막길인 모양이라고 푸념을 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신청자가 늘어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세미나를 이어가던 어느 여름 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순자의 청출어람을 발견했다. 어라, 청출어람이 순자의 말이었나? 나는 순자를 다시 읽은 지 8년 만에 “왜 사람들은 청출어람을 스승보다 나은 제자라고 풀이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밀(李謐)이라는 제자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스승 공번(孔磻)을 모시고 글을 배웠다. 어느 날 스승 공번은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른 제자에게 “나는 더 이상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이제부터 네가 나의 스승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뒤바뀐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일컬어, 순자의 권학편 문장(靑取之於藍, 而靑於藍)을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똑같은 책인데 새로울 게 무어냐고 묻는다. 그렇다. 고전은 어디 가서 아는 척 하기도 어렵다. 웬만하면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읽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 글은 내가 아직 덜 소화시켰더라도 그 낯설음이 내게 주었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다.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자의 이야기이다.   청출어람 구출작전   순자의 청출어람을 아십니까? 작년 제자백가 세미나에서 『순자』를 읽었다. 토용과 함께 진행하려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전학교가 신청이 저조해서 폐강한 직후였다. 세미나를 열고도 전전긍긍했다. 얼마나 사람이 모일까. 아무래도 동양고전은 내리막길인 모양이라고 푸념을 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신청자가 늘어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세미나를 이어가던 어느 여름 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순자의 청출어람을 발견했다. 어라, 청출어람이 순자의 말이었나? 나는 순자를 다시 읽은 지 8년 만에 “왜 사람들은 청출어람을 스승보다 나은 제자라고 풀이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밀(李謐)이라는 제자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스승 공번(孔磻)을 모시고 글을 배웠다. 어느 날 스승 공번은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른 제자에게 “나는 더 이상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이제부터 네가 나의 스승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뒤바뀐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일컬어, 순자의 권학편 문장(靑取之於藍, 而靑於藍)을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울아 2022.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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