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완이의 쿠바통신 5] 두 집 사이 - 청소부 A의 이야기

관리자
2021-01-2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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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완 

청소년 때 인문학 지식공동체인 남산강학원에 눌러앉아서 오 년간 읽는 법, 쓰는 법, 질문하는 법을 배웠다. 그 후로 쭉 글쓰기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4년에는 남산강학원과 인문의역학 연구소 감이당이 함께 하는 MVQ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뉴욕에 가서 살짝이나마 세계를 엿보았다.

2017년에는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기 위해 쿠바로 넘어갔다가, 공부의 방향을 의학으로 틀게 되었다.

앞으로 신체와 생활이 결합되는 글쓰기를 해보고 싶다.

저서로는 『다른 십대의 탄생』(2011),『리좀 나의 삶 나의 글』(2013),『돈키호테, 책을 모험하는 책』(2015),  『뉴욕과 지성』(2018)이 있다.

 

 

 

 

숭고한 청소부

 

여자는 A를 숭고한 청소부라고 부른다. A는 자신의 딸 뻘인 여자가 태어났을 때부터 그를 계속 알아왔다. 그 당시에는 여자의 할머니가 이곳에 살았었다. 이제는 여자가 집의 주인이다. A는 여자가 나이를 먹은 햇수만큼 이 집 열쇠를 가지고 살았고,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씩 방문하며, 사람이 있든 없든 집안 구석구석 청소한다. 바닥난 세제를 채우고 오래된 빗자루를 바꿔놓는 것도 A의 몫이다.

 

긴 세월 동안 도난당한 물건은 없다. 집안의 일이 집 밖의 소문이 되어 흘러나간 적도 없다. A의 행실은 몇 십 년째 한결같다. 여자가 그에게 숭고하다는 수식어를 붙이는 이유다.

 

남들이 보기에 A는 말 없는 청소부다. 무뚝뚝하지는 않다. 오랜 이웃들은 A가 청소를 하러 오는 날이면 아는 체를 하고, A는 얼굴에 빙그레 미소를 띠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실제로 그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성격이 그렇다. 아니, 체력을 비축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정부 건물의 카페테리아에서 일을 마치고 온 참이다. 청소가 끝나면 집에 잠깐 들려서 저녁을 먹고, 밤샘 경비를 서러 집 근처 대학교로 향할 것이다. A가 집 침대에 누워서 제대로 잠을 자는 날은 일주일의 절반을 넘지 않는다. 보통은 경비실 의자나 여자네 집 소파에서 쪽잠을 잔다. 불을 켜지 않은 거실, A의 어두운 피부색이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올해 A는 예순 살이 되었다. 그렇지만 누구도 그가 예순밖에 되지 않았다고 짐작하지 못한다. 노동으로 다져진 몸과 날렵한 걸음걸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얼굴은 가늠할 수 없는 긴 세월 속에 풍화된 바위 같다. 소파에서 조용히 잠든 모습은 그곳에 뿌리박힌 나무를 연상케 한다. 노동이 인간을 늙게 만든 것일까? 아니면 존재 전부가 된 것일까?

 

 

동쪽의 기억(반빛, 2021)

 

 

 

두 집 사이

 

A의 일상은 두 집 사이에 있다. 여자의 집과 자신의 집이다. A는 도보로 삼십분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를 항상 걸어 다닌다. 예전에는 이 집 말고도 틈틈이 다른 집으로 청소 일을 하러 갔지만, 이제는 체력이 안 된다. 새벽까지 경비를 서고 오전에 카페테리아에서 일하려면 일주일에 며칠은 낮에 쉬어야 한다. 결국 A는 가장 오랫동안 일한 여자의 집만 남겨두고 청소부 일을 정리했다.

 

여자는 A의 결정을 환영했다. 그는 친이모와 다름없는 A에게 끈질기게 물었다. 자식들도 장성했으니 이제 노동 강도를 줄여도 되지 않는가? 쿠바인답게 쉬엄쉬엄 살 때도 되지 않았나? 여러모로 여자는 A와 반대지점에 있다. 젊고, 말이 많고, 타인의 호감을 사면서 적당히 요령 피우는 법을 안다. 부자 남편과 결혼한 후로는 모든 노동에서 손을 뗐는데, 그가 성실하게 실천하는 일은 헬스장에 가는 것뿐이다. 따라서 순종적인 A는 여자에게 구원과도 같다. A가 사라진다면 집은 엉망진창이 되리라. 청소부를 잘못 들였다가 골치를 앓는 친구들을 보며 여자는 자신의 행운에 감사했고, 종종 선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A는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다. 일에 순종하는 것이지, 삶에 순종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성정은 자신의 집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A는 말 한 마디 없이 가족들 위에 군림한다. 딸은 밥을 차려주고 아들은 빨래를 개며, 또 다른 아들은 침대를 정돈한다. 식탁에 앉아서 숙제를 하는 손녀딸은 할머니의 질문에 꼬박꼬박 답을 한다. 이들의 집은 여자의 집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만큼 깨끗하다.

 

그의 아들딸들은 어렸을 때부터 남녀구별 없이 살림을 도맡았다. 각자가 가정을 이룬 지금도 가깝게 모여 살면서 집안일을 나눈다. 이것은 집밖을 떠돌며 홀몸으로 오남매를 키운 엄마에 대한 존경이자, 가족이 곧 생존공동체라는 암묵적인 동의다. 이 공동체는 A가 있기에 유지될 수 있었다. A가 카페테리아에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고 몇 십 년 째 커피를 내리는 덕분에 지금까지 가족은 정부 임대주택에서 살았다. A가 청소부로서 벌어오는 돈은 오랫동안 가족의 유일한 외화수입이었다. 이제는 상황이 나아졌지만 A는 변함없이 같은 태도로 노동에 임한다. 가족들도 그에게 간섭하지 않는다.

 

요즘 따라 A는 원래 컸던 여자의 집이 더 크게 느껴진다. 여자의 부모와 형제자매로 북적거렸던 집이 텅 비게 되었기 때문이다. 페(FE) 때문이다. 페는 원래 ‘믿음(Fé)’을 뜻하지만 쿠바에서는 외화를 보내주는 ‘외국에 사는 가족(Familia Exterior)’의 줄임말로도 쓰인다. 아바나는 쿠바에서 페가 가장 많은 도시다. 연말연초면 페의 방문으로 공항이 바글거리고, 페가 없는 아바네로들은 어떻게든 가족들의 첫 번째 페가 되기 위해 애를 쓴다. 여자만 해도 최근에 오빠와 부모 모두 미국으로 건너갔다. 언니는 프랑스에 자리 잡은 지 오래되었다. 그들은 여자에게 꼬박꼬박 외화를 보내준다. 그 중 일부가 A의 봉급이 된다.

 

반대로 A의 집은 시간이 갈수록 좁아졌다. 그는 자식들 중 누구도 외국에 보내지 않았다. 집이 바글거릴지언정 옆에 끼고 살았고, 결혼해서 분가한 후에도 모두 도보거리 내에 자리 잡게 했다. 그는 페가 없는 것이 인생 최고의 축복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자식들은 아바네로로 자랐을지 몰라도 A는 아니었다. 그의 마음은 동쪽 끝에, 관타나모에 있었다.

 

 

 

 

 

동쪽의 기억

 

관타나모는 절반이 미국 해군기지로 강탈당한 땅이다. 그렇지만 땅에는 본디 주인이 없고, 주인의 이름이 바뀌어도 변치 않는 것들이 있다. 바위도 녹일 수 있는 태양, 위로 삐죽이 솟은 망고나무, 서쪽 땅에서는 볼 수 없는 산등성이와 비탈길, 가까운 곳에 꼭 붙어서 서로 살을 부대끼며 사는 가족들. 친구들, 주민들, 순박한 사람들.

 

A는 그곳에서 나고 자랐다. 여느 관타나메라처럼 색색의 머리두건을 두르고 살았고, 마음 맞는 동네 청년과 일찍 결혼해서 오남매를 낳았다. 어느 날 남편은 연고 없는 서쪽으로 가자고 말했다. 특별시기 초반이었다. 소련의 시대가 끝났다는 불길한 수군거림이 들려왔을 때만해도 A는 관타나모가 소련에서 멀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졌다. 아바나에는 길고양이를 잡아먹고 산다는 소문이 흉흉했으나, 소문이 진짜 현실이었던 곳은 오히려 동부지역이었다. 텅 빈 곡간의 스산함은 아바나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더해갔다. 뭐라도 해야 했다. A의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 A와 남편은 가난하지만 혁명의 혜택을 받은 농부였다. 이제는 대지도 혁명도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 없었다.

 

A와 가족들은 트럭에 몸을 실었다. 서쪽으로 스무 시간을 달리면 아바나가 나왔다. 당시 아바나는 주소지 없이 떠도는 지방 출신의 불법 체류자들로 드글거렸다. 아바네로들은 불청객들을 땅 없는 자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인’이라고 부르며 경멸했다. 그렇지만 지인의 지인, 그 지인의 또 다른 지인이 마련한 기회가 A의 가족의 것이 되었다. 그들은 일을 찾았고 임대주택을 얻었다.

 

팔레스타인인 딱지를 떼고 일 년도 지나지 않아서 남편이 죽었다. A는 젊은 시신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집에는 먹여야 할 입이 너무나 많았고, 차가 사라진 아바나는 두 발로만 돌아다니기에 너무나 넓었다. 남편은 서쪽에 묻혔다.

 

가족이 지금 같은 형태로 꾸려진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이들은 요리와 빨래와 청소를, 엄마 없이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익혔다. A는 일을 찾아 길거리에서 살았다. 집에 돌아올 때면 먹을거리와 아동용 옷가지, 책가방 따위가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삼십년 간 그는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벌의 옷과 단 한 켤레의 신발도 사지 않았다. 신발 밑창이 닳을 때 즈음이면 누군가가 다른 신발을 얻어다주었다.

 

A가 자신을 위해 유일하게 샀던 것은 빗자루였다. 이 빗자루는 전쟁터 속 총이었고 사냥꾼의 창이었으며 논쟁가의 펜이었다. 그는 청소부가 되었다. 동쪽으로 가는 길은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서쪽의 침묵

 

관타나모에 살 당시 A는 자기 집을 매일 청소했었다. 그는 낡은 집을 정갈함으로 빛내는 일을 좋아했다. 대부분 그렇게 살았다. 청소부를 따로 고용할만한 만한 주머니사정도 안 되었고, 그럴 만큼 집이 크지도 않았다.

 

반면 서쪽에서는 청소가 돈이 되었다. 아바나에는 특별시기라는 혹한기에도 가정부를 고용할 여력이 되는 집들이 있었다. 그때도 고생의 여부를 갈랐던 것은 결국 페였다. A가 식량을 찾아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왔다면, 집주인들의 시선은 안쪽에서 바깥쪽을 향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청소부로 버는 돈이 정부의 한 달 월급보다 많았다. 집들은 겉모습은 허름했으나 속은 값비싼 가구들로 꽉 차 있었다. 시장에서는 구경도 못해본 음식들이 선반에 채워져 있었다.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물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의문은 남았다. 국경은 닫힌 것이나 다름없고, 세관은 수입품에 높은 세금을 매기거나 제제를 가한다고 했다. 외국의 가족들이 도와준다한들 어떻게 물건들을 전부 조달할 수 있었을까? A는 의문을 침묵 속에 남겨두었다. 물건의 출처를 묻지 않았고, 손조차 대지 않았다. 모든 게 비가시적인 투명한 풍경인양 바닥만 보았다. 그의 일은 정직하게 바닥 비질을 하는 것이다. 장소와 상관없이 말이다.

 

A는 이때를 인생 최대의 배움의 시기로 기억한다. 혁명의 해에 태어난 그의 세대는 부모와는 달리 학교에 갈 수 있었다. 농부가 될 예정이었으므로 공부는 중학교 이후로 계속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청소일은 중학교 시절 이후 가장 강렬한 지적 자극이었다. 그는 자신의 집과 청소하는 집 사이에 어떤 거리가 존재하는지 매일 목도했다. 집에서 라디오를 틀면 미국의 경제봉쇄 하에 고통 받는 쿠바인들을 묘사하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은 고통 받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켜면 뉴스 리포터가 아바나에 치즈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집 냉장고에는 치즈가 쌓여 있었다.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연대의식이 필요하다고들 했다. 그는 집주인과 자신을 엮는 끈이 고귀한 연대의식이 아닌 돈과 침묵이라는 것을 알았다.

 

심지어 A는 그들이 불법으로 돈을 모으는 방법까지 알게 되었다. A가 자신들을 고발할 염려가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지자, 집주인들은 그가 있든 말든 마음 놓고 떠들기 시작했다. 입막음 값은 A에게 가끔씩 선물을 안겨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그 후로 A는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떠도는 말들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지 않았다.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경계가 희미해져 있었다. 그는 배우지 못한 사람이지만 두 눈과 두 귀가 멀쩡히 달려 있다. 미국의 횡포가 쿠바에 고통을 안겨주는 것은 쿠바를 사실이겠으나, 그것이 모든 고통의 원인일 수는 없다. 이러한 결론은 의문과 마찬가지로 침묵 속에 남겨졌다. A는 가족들에게도 ‘그 집’에서 일어난 일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비리를 고발하지 않는 것은 비겁함의 발로인가? 아니다. 각자 선 전쟁터가 다를 뿐이다. 그의 전쟁터에서 구해야 할 포로는 정의나 공평이 아닌 배고픔이었다. 어쨌든 그는 빗자루를 지켜야 했다. 그것만은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이었다.

 

 

 

 

 

침묵이 깨질 때

 

사소한 계기가 A의 침묵을 깼다. 그날 여자와 A는 월급을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A는 연말부터 여자가 한 달 월급을 체불했다고 주장했고, 여자는 모든 돈은 매달 꼬박꼬박 지불되었다고 대꾸했다. 사실 이 문제는 두 사람 다 임금이 선불이었는지 아니면 후불이었는지 까먹은 탓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러나 기분이 상한 여자가 A에게 수학도 못하면서 괜히 나서지 말라고 쏘아붙였을 때, 갑자기 대화가 끊겼다. 어색한 침묵 속에서 여자는 자신이 방금 선을 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A의 낯빛이 달라져 있었다. 숨을 조금 깊게 들이쉬는 것 같았다. 여자는 이것이 침묵을 위한 침묵이 아닌, 어려운 말을 꺼내기 위한 숨고르기라는 것을 직감했다. 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화가 났다고 지금 가족의 치부를 폭로하려는 걸까? 정신이 번쩍 들고 온몸이 긴장되었다. A가 말을 하려고 작정했을 때 곤란해질 것들은 수두룩했다. 남편이 최근에 정부 측 관료에게 뒷돈을 주고 새 사업을 따낸 것? 자신이 가족 민박집 회계를 조작해서 탈세를 하고 있는 것? 그도 아니면 먼 옛날, 특별시기 당시 공항 세관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여행객들의 달러를 압수한 후 몰래 집으로 가져왔던 것? 그러나 A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네가 대학원까지 공부했다 해도, 남들에게 대접받으며 선생 소리를 들고 살았어도, 그 사실이 남을 바보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내가 빗자루를 든다고 셈을 못하는 게 아니다, 나는 일한 만큼 번다, 번만큼 일한다, 농부일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다, 그보다 더 떳떳하게 사는 법이 있는가, 너는 과연 떳떳하고 깨끗한 인간인가….

 

여자는 당황했다. A의 갑작스러운 꾸짖음을 이해할 수 없었으나,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의 불가해한 분노와 위엄에 압도당했다. 이제 침묵하는 쪽은 여자였다.

 

한때 여자는 A에게 왜 자식들이 독립한 지금도 일을 쉬지 않느냐고 물었다. A는 침묵과 미소로만 답했다. 그러나 그가 노동을 멈추지 않았던 것은 언젠가 침묵을 깨기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긴 침묵 속에서 그가 준비했던 말은 그들에 대한 폭로가 아닌, 자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표명이었던 것이다.

 

 

 

댓글 3
  • 2021-01-28 18:05

    아름답네요...
    너무나 힘들었겠지만 아름다워요...

  • 2021-01-28 18:27

    톡을 통해 멋지게 소개해주신 문탁샘 글의 '관 타나 메라~' 답게 너무 멋지네욤.... A 의 떳떳한 삶이..
    (근데 해완이의 쿠바 통신은 소설인가요 ??? 이런 질문해도 되는 건가요 ? 좀 뭣도 모르는 소리인가요 ??? ㅜㅜ)

  • 2021-02-01 10:25

    정신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네요
    해완씨 글 늘 재밌게 잘 읽고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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