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이 돌아왔다 11회] 폭군에 대하여, '안녕 주정뱅이'

새털
2019-06-04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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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돌아왔다 11회]

폭군에 대하여, '안녕 주정뱅이'

-국가』 9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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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음주의 법칙, 쉽게 끝나지 않는다

 

 

잠자코 앉아 있는 규 대신 훈이 소주 한병을 더 시켰다. 소주가 오자 주란이 턱을 받친 손을 내려 소주잔을 집었다. 나도 줘. 훈이 주란의 잔에 소주를 따르고 규와 자기 잔도 채웠다. 셋은 잔을 부딪치고 그대로 비워냈다. 다시 한순배가 돌았다. 이번에는 규가 잔을 채웠다.

눈은 내리고, 술은 들어가고, 이러고 앉아 있으니까 말야, 규가 초조하게 술잔을 빙빙 돌리며 말했다.

우리 다시는 서울로 못 돌아가도 괜찮을 것 같지 않냐?

그들은 말없이 소주잣을 비우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굵어진 눈발이 쉼 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옅은 취기로도 그들은 위태했다.

-권여선, 삼인행, 안녕 주정뱅이, 72~73

 

 

해가 한낮의 쨍한 높이에서 서쪽으로 기우는 속도로 숲은 조금씩 어두워졌다. 그들은 주종을 소주에서 맥주로 바꾸었고 안주로는 에스프레소에 가까운 진한 커피를 음미하듯 입에 물고 있다 마셨다. 아주 가까이에서 새 우는 소리가 들렸다.

(중략) 그가 그녀에게 위스키를 마셔도 좋을 만큼 충분히 어두워진 것 같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는 변압기처럼 아주 적절한 순간에 술의 종류와 도수를 바꾸었고 그녀는 기꺼이 그의 제안에 따랐다.

      -권여선, 역광, 안녕 주정뱅이, 169~171

 

 

권여선의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를 읽으며 나에게 가장 와닿는 장면은 소설 속 인물들이 주종을 바꿔가며 파장에 이른 술자리를 끈질기게 이어가고 있는 순간들이다. 그들은 웬만해서는 술자리를 끝내지 않는다. 나는 이것을 리얼리즘이라고 생각한다. 술자리는 쉽게 끝나지 않는다. 가볍게 혹은 기분 좋게 시작된 술자리가 고성이 오가고 사람이 네 발로 기어 다니고 망각과 해방의 절정까지 치달아 오르려면 무수한 술병들이 쓰러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술꾼들이 해장술을 마시며 헤어지는 건 그러다보니 어느새 해가 떠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해장술이 낮술로 이어지는 무림의 고수들도 허다하다. 그러나 내공이 부족한 범인(凡人)들은 외부원인에 의해 강제적으로 술자리를 종료한다. 나는 강제적으로 종료되지 않으면 도무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게 음주의 법칙이라고 생각한다. 술은 술을 부르고, 술이 사람을 마신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가끔 술꾼들은 끝이 확실히 보이는 술자리를 이어가기 위해 연기를 한다. “! 니가 그러고 가면 내 마음이 편하겠어?”라고 회유책을 펴기도 하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대지 마라!”로 강경책을 구사하기도 하다. 이 정치적 화법들과 제스처들은 어떻게든 술을 더 마시기 위한 . 감성코드를 이용할 수도 있다. ‘비가 오니…… 바람이 부니…… 꽃이 피니…… 꽃이 지니…….’ 나의 연기력은 명배우 수준은 못돼도, 중년에 이르러 주목 받는 조연배우급은 되지 않을까 싶다. 소주병을 기울이는 각도와 술잔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로 모든 상황을 표현하는 생활연기가 묻어나는 배우쯤은 되리라 자부한다. 연기인지 실제인지 모르겠다는 평판이 따라다니는 믿고 보는 음주연기의 리베로’. 그러려면 어떤 계기든 불씨를 잘 살려 술 마실 기회를 만들고 판을 벌이고 선수들을 모으는 기술을 숙련해야 한다. 혹은 이 모든 게 무산되었을 때, 편의점에서 들러 네 개에 만원하는 맥주를 사들고 귀가하는 마음수련또한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고 그날그날의 음주에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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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의 에세이집 오늘 뭐 먹지(한겨레, 2018)는 사실 오늘 안주 뭐 먹지?’이다. 나는 모든 음식을 안주화하는 배포에서 권여선의 작가로서의 진정성을 확인한다. 권여선은 술꾼들의 이야기를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우회하는 수단이나 가공해야 할 재료가 아니라, 삶 그 자체로 다루고 있다. 권여선이야말로 작가인지 술꾼이지 분간이 안가는 홀림의 경지를 보여준다. ‘=소설=인생권여선의 삼위일체는 모든 것이 연기이고 낭비이고 거짓이며 진실인, 하나의 삶의 형식을 뚝심 있게 보여준다. “매초 매초 알코올의 메시아가 들어오는 게 느껴집니다.”(역광)<span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font-family:

댓글 8
  • 2019-06-04 08:56

    음주라는 윤리적 태도 - 공감됩니다 ㅋㅋ 우정과 지성의 공동체 알콜 윤리학을 탐사해보고 싶어지네요

  • 2019-06-04 21:36

    술주정꾼인 폭군에게는 우정도 지성도 자유도 없다고 단언 한 뒤에

    애주의 취향을 빌어 우정과 지성과 자유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그대의 글을 읽다보니

    애주가든 아니든 상관없이 어느 누군들 품격있는 예의를 접하고 싶지 않은 이가 있을까,

    잠시나마 가면을 벗고 서로의 진실을 만나는 틈새를 어디선가 발견하고 싶지 않은 이가 있을까 싶구려.^^

    아무튼 새털의 음주 윤리학, 퍽이나 유쾌하게 읽었소이다. ㅋ

  • 2019-06-06 11:35

    술은 생존의 방편처럼 단련시킨 기만과 결별하는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 사실... 이런 철학으로 그렇게 말술을 마시지는 못했다




    꽉 조였던 나사가 돌돌 풀리면서 유쾌하고 나른한 생명감이 충만해졌다. 


    : 대부분... 이런 기분이 되고 싶어서 벌컥 벌컥 마신 적은 많았다




    그리고.... 새털의 글을 읽었다.

    술... 마시면서 살고 싶어졌다




    이런 글을 쓰는 새털과 술을 마시지 않는다면...



    내 삶은 훨씬 더 강팍할 것이다.



    새털^^ 간이 쫌만 회복되면 또 마십시다~



    혼자 마시면 뭔 재미겠수~ ㅋㅋㅋ

  • 2019-06-06 14:21

    이 글을 읽고 나니 쫌 슬퍼지는 군.

    술의 맛도 모르고, 그래서 술 마시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새털과 기린, 뚜버기가  공감하는 그 세계, 그 묘미  혹은 그 윤리학을 영영 모를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어딘가 모르게 신비스러운 ,스스로 가면을 벗고 진실을 대면하는 그 순간, 그 틈새를 탐사해 보고 싶다면,  

    ..... 이제라도 술을 배워야 할까나?

  • 2019-06-06 21:59

    그냥 술꾼이 아닌...진정한 '술-되기'군요! ^^

    플라톤보다는, '안녕 주정뱅이'가 몹시도 궁금해지네요.

    건강도 잘 챙겨서...계속 즐거운 '술-되기' 철학 지속하시기를 바랍니다!! ㅋㅋ

  • 2019-06-08 17:36

    폭군을 술주정뱅이라고 하는 플라톤을 이용해서 술을 옹호하다니...

    플라톤이 이 글을 읽으면 기가 막힐지도...

    기가 막힌 글솜씨요!!!

    아니 사실 내가 이 글을 읽고 이 글을 쓴 새털에게 '졌다!'를 외치고 싶달까? ㅋㅋㅋ

    그나저나 

    술이 진짜 기만과 결별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소?

    믿음이 안가는구만... .

    나두 기린샘처럼 나사가 돌돌 풀리는 그 기분 땜에 마셨는데...

    참 그리고 숙취는 아직 대사가 되지 않은 알콜 때문이 아니라

    알콜의 대사체인 아세트알데하이드 때문이라오~

  • 2019-06-09 00:19

    저도 ‘안녕 주정뱅이’를 읽고 저의 음주에 대해 어느 정도의 정당성을 찾았는데 새털씨도 마찬가지시네요ㅎㅎ 역시 유전이 이렇게나 무섭습니다~ 앞으로도 아주 즐겁고 가끔은 좀 속상하기도한  윤리적인 술자리 꾸준히 이어나가봅시다~~ 집에 갈 때마다 아주 맛있는 와인을 양 손에 쥐고 가겠소~~ 허허허~~❤️

  • 2019-06-16 13:28

    예전에.... 술을 좋아하는 친구와 밤 늦게 까지 술을 먹고

    다시 아침에 만나 도서관에서 2프로를 마시며 "우린 왜 이럴까?"라고 푸념을 늘어놓다가...

    점심 먹으러 가서 다시 해장술로 시작해서 밤늦도록 들이키고 살던 그 때...

    하루는 그 친구가 물었죠. "야!!! 내가 만약에 알콜 중독이 되어 (손을 벌벌 떨며) 너한테 술 한잔만 사달라고 하면 넌 어떻할래?"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사줘야지!!"라고 대답했죠...

    그렇게 사랑했던 술을...

    이젠 떠나보내야지... 했는데

    글을 읽으면서 꼴깍꼴깍 침이 넘어간다.

    그런생각을 하다니... 미안하다

    정말 난 너를 사랑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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