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9] 마을이 장인을 만들더라

자누리
2020-09-22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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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거대한 전환

 

성격도, 생활도 깔끔한 ‘도라지’라는 친구가 있는데, 일하고 있는 작업장에 와서 불쑥 이런 말을 던졌다. “쌤, 문탁 사람들에게 미백 화장품이 필요해요. 저만 그런 줄 알았더니 많은 분들이 얼굴에 기미가 생겼네요.” 내가 하는 일이 자누리화장품에서 친구들의 화장품과 생활용품을 만드는 일이기에 하는 말이다. 문탁에는 여러 활동 단위가 있는데 자누리화장품은 마을경제의 시작을 함께 했고, 여기서 일하는 나와 뚜버기의 자립을 돕고 있다. 그리고 문탁의 월세도 소소하게 보태고 있다. 미백 기능이 쉽지 않다는 내 말에 도라지는 이렇게 대꾸하곤 웃으며 휑하니 가버렸다. “어려우니까 자누리팀이 해줘야지요~” 도라지의 무한신뢰에서 느낄 수 있듯이, 문탁의 친구들에게 자누리사업단은 장인이다. 과분하고 낯설 때도 있지만 스스로 장인으로 생각하기로 할 때가 더 많다.

 

장인이라 하면 타고난 손재주가 좋고 근면성실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고교 시절 한복 만들기에 실패한 이후 한 번도 손재주가 좋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더구나 ‘귀찮아’를 입에 달고 살았다. 그랬던 내가 자칭 타칭 장인을 입에 올린다면 인생역전임이 분명할 테다. 십여 년의 우정일지, 능력이 일취월장한 것일지, 어쨌든 그 시작은 <마을경제세미나>에서 공부한 칼 폴라니의『거대한 전환』뒷풀이에서 비롯되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는 내 인생에서도 ‘거대한 전환’이 된 셈이다.

 

 

『거대한 전환』은 꽤 두껍다. 거기에다 사람들이 대부분 어려워하는 경제에 관한 책이다. 그런 책을 끝냈으니 친구들의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뒷풀이를 처음으로, 그것도 거하게 하면서, 시장경제를 대신할 ‘마을경제’를, 그리고 생산팀부터 만들자는 작당모의가 이루어졌다. 급기야 내게 천연화장품 만드는 기술이 있으니 그 기술을 써먹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 자리에서는 같이 웃었지만, 며칠 동안 고민스러웠다. 바로 얼마 전에 천연비누 쇼핑몰을 시작한 데다가, 세미나에서 공부한 바로는 뭔가 큰 걸 걸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쇼핑몰과 마을경제, 둘 다 앞날이 불투명하고 막연하긴 마찬가지이지만, 솔직히 마을경제가 더 심해 보였다. 책을 끼고 사는 사람들이 시장경제를 대신하는 무얼 한다니, 이 ‘무얼’이 일단 상상되지 않았다. 더구나 기술자는 달랑 나 한사람이라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인데, 이게 좀 귀찮기도 했다. 그럼에도 한번 해보자고 마음을 굳히게 되었는데, 의미가 좋다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여느 때보다 빠르게 게시판에 올라온 후기 때문이었다. 이미 “사업단을 만들기로 했다”고 쓰여 있었고, 못하겠다고 말하면 다시 공부하러 오기가 겸연쩍을 것 같았다. 자누리화장품을 하게 된 계기가 어쩌다 보니 친구 따라 강남 간 꼴이다. 비주체적인 듯 보이지만 나중에는 그런 점이 오히려 장인이 되는 데 더 유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인은 기술을 가진 자라기보다는 배우는 자이기 때문이다. 배움은 남에게 기대고, 응원을 받고, 실수를 고칠 기회가 주어질 때만 가능하지 않을까?

 

2. 노동에 대한 로망

 

사람은 수동적인 듯 보일 때도 자신의 바램, 계획 등은 있게 마련이다. 끌려가듯 마을경제의 대열에 들어섰지만,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노동’에 대한 로망으로 인해 어느 정도 적극적일 수 있었다. 20대에 ‘노동야학’을 잠깐 한 적이 있는데, 그때『자본론』을 쉽게 풀어 교재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어서 일본어로 된, 그것도 문고판 같은 것으로 공부했으니, 사실 깊이 이해했던 것은 아니다. 어쨌든 내가 만든 교재는 꽤 인기가 있었고 야학의 친구들과 재미있게 공부했다. 내가 특별히 그 일을 기억하는 것은 노동에 대한 관점, 노동의 역할에 대해서이다. 노동이란 자신을 세상에 내놓고 교류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것이며, 인간이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 친구들은 비록 공장에 매어서 일하지만, 노동하는 인간으로 세상의 일부를 담당한다는 사실에 긍지를 가지려 했다. 그 이후 나는 인간성을 노동과 뗄 수 없게 되었다.

 

마을경제에서 작업공간을 만들어 친구들과 일을 하는 것은 저 텍스트적인 노동의 실재를 하나씩 알아 나가는 과정이었다. 상품을 생산하는 소외된 노동이 아니라면, 인간성을 알차게 하는 노동이라면, 도대체 어떤 것일까. 소외된 노동과 구별하려고 ‘일’이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명칭이 바뀐 것은 그 뿐만이 아니다. 일한 댓가를 시간에 따라 주는 ‘임금’을 필요에 따라 가져가는 ‘품삯’으로 바꾸었다. 대표가 따로 없이 사업단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매니저’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런 것들은 ’마을경제‘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논의와 지속적인 공부로 감각을 맞추면서 진행됐으므로, 때로는 얼굴을 붉히고, 때로는 시행착오를 견뎌야 했다. 결과적으로 작업장은 힘들었지만 재밌었고, 의미 있는 공부가 되었다. 그것은 사물과 사람들이 어우러져 세상의 일부가 되는 공부였다.

 

 

 

자기가 쓸 화장품을 자기 손으로 만들어가는 ‘수작(手作) 프로그램’은 좋은 공부가 되는 활동이다. 사실 화장품을 만드는 일은 간단하다. 준비된 재료를 알맞은 양으로 계량하고 잘 혼합하면 된다. 이 간단한 일로도 여럿이 만들고, 지속해서 만들고, 경험을 공유하다 보면 깨닫는 게 적지 않다.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으로 재료를 저울로 계량할 때를 꼽을 수 있다. 저울 숫자의 움직임을 보면서는 누구라 할 것 없이 손을 달달 떤다. 혹시 양이 넘칠까 봐 지켜보는 사람들조차 숨을 죽이고, 마지막 한 방울이 원하는 눈금을 가리킬 때는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달달 떠는 손과 숨죽임, 그 집중의 순간은 작업실 안, 모든 사람의 시공이 멈춘 듯하다. 온 우주를 끌어모은 듯한 그 합일의 순간, 나는 갑자기 사람들의 우정을 믿게 된다. 내가 장인이라고 잠시라도 호언한다면 그 순간들이 쌓여서일 것이다.

 

그렇지만 합일의 순간은 잠깐이고 대부분 시간은 어그러져서 살아간다. 사람들과 우정을 맺는 일은 쉽지 않다. 지향이 비슷해도 실제 행동을 할 때 오만가지 요인들이 들러붙어서 크고 작은 충돌이 일어난다. 보통 사람들의 속도가 달라서라고 말하지만, 작업장의 경험으로는 순서가 달라서라고 이해하는 게 편하다. 재료들을 섞을 때 순서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 순서는 내 의지보다는 재료들의 특성에 따라야 하는데 자기 고집을 세우는 경우 문제가 생긴다. 간혹 창발적인 무엇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그때조차도 그 창발적인 것의 순서를 다시 익혀야 한다. 숙련된 솜씨는 순서를 익히는 것이고, 무언가를 따르고 맞추어주는 자세, 아마 겸손이라 불러도 좋을, 그런 품성을 익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작업의 기술 속에는 이렇듯 우정을 맺는 섬세한 기술이 숨어있어서, 배움도 계속되고 마을경제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3. 황당한 친구들

 

작업장 초기에, 만들 때는 멀쩡했던 로션이 집에서  쓰다 보니 점성이 풀려서 물처럼 되어버린 일이 종종 발생했다. 당연히 긴장했다. 그때는 소비자의 불만에 마음이 편할 리 없는 생산자의 마인드에 가까왔던 것 같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상품에 둘러싸여 살면서 등가교환의 냉정한 관계가 우리 모두의 몸에 배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친구들은 피드백을 줄 뿐이지, 못 믿겠다거나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겠다고 하지는 않았다. 덕분에 재료도 바꾸어 보고, 작업장을 더 청결하게도 해보고, 작업도 더 꼼꼼하게 하면서 로션에 대해서 세심하게 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던 로션이지만 피드백이 거의 없어진 걸 뒤늦게 알아차린 적이 있다. 개선의 결과로 소비자 불만제로가 되었구나 했더니 웬걸, 친구들은 황당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로션이 풀려도 그냥 흔들어 쓰고 있던 것이다. 거듭된 수작을 통해, 로션이란 혼합물이며 점성이 풀린다 해서 성능이 변하진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란다. 그야말로 전문가지성이 아닌 대중지성이었다. 아니, 대중지성이라는 표현으로도 불충분하다.

 

 

‘소비자 불만제로’, 얼마나 멋있는 말인지 모른다. 예사롭지 않은 것은 불만이 제로가 되는 이상으로 소비자가 없어진 것이다. 로션을 사이에 두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나는 내 편견을 수정해야 했다. 시장경제에서 소비적 기호와 욕구에 충실할 것이라는 전제와 달리 친구들은 의외로 좋은 상품에 매달리지 않았다. 오히려 여러 상품 중에 고르는 수고로움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한 편이다. 손익을 따지는데 충실한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자신들이 이해한 일에 대해서는 계산적이기를 오히려 어려워한 편이다. 친구들이 보인 이러한 앎과 행동에 대해 ‘관대한 지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무조건 오냐오냐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차이에 대해 배우고, 오류를 스스로 수정하고, ‘자기 이해 관계’를 덜 내세우는 능력을 키워가는 이러한 앎에 대해 달리 무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예전에는 장인의 능력을 창조성, 새로운 걸 만들어 내는 능력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제는 잘못을 수정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관점이 달라졌다. 지성의 발휘는 어려울 때도 있고, 더디게 이루어질 때도 있다. 샴푸보다는 비누를 쓰는 게 더 좋다고 말해도 잘 안 먹히는 경우를 보면 그러하다. 샴푸에는 점성이나 안정성을 위해 많은 화학첨가제들이 들어간다. 당장은 쓰기 좋아 보여도 환경이나 피부에 무리를 준다고 말해도 쉽게 바꾸지 못한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은 부들부들한 머릿결, 풍성한 거품 등, 익숙한 관성에 빠르게 반응한다. 그러므로 수정하는 능력은 관성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미려한 솜씨를 요구한다. 그런 솜씨가 부족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안 하는 것인가, 못 하는 것인가.

 

4. 신뢰라는 저울추

 

마을경제는 자립을 하나의 방향축으로 가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공유지라 부르는 마을경제의 활동공간을 자립적으로 운영하는데 힘을 기울였다. 여러 사람이 약간의 활동비로 품과 시간을 들여 공유지 전체를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개인이 다른 곳에서 일하지 않고 문탁에서 자립하는 실험을 해보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여러 여건상 마을경제에서 그 실험에 나설 곳은 자누리사업단이었다. 중압감이 밀려왔다. 여러 명이 조금씩 나누던 품삯을 혼자서 훨씬 많이 가져간다는 것은 상당한 신뢰를 요구하는 일이다. 이미 친구들이 보여준 신뢰가 힘이 되었지만, 내게 그 신뢰를 지속할 능력이 있는지 부담이 되었다. 다행인 것은 신뢰를 어떻게 쌓아 나갈 수 있는지 감은 잡았다는 점이다. 많은 친구들에게서 그 감각을 익혔는데, 그 중 두 친구, 주방비누를 인기 아이템으로 만들었던 두 친구를 꼽을 수 있다.

 

 

몇 년간 공부를 계속하면서 ‘좋은 삶’, ‘과하지 않은 삶’을 화두로 삼게 된 문탁의 친구들은 ‘필요’를 조절해나갔다. 그에 맞추어 생산물 중 화장품은 점차 단촐해지고, 대신 생활용품이 늘어났다. 재료에 대해 알게 될수록 물이나 땅을 오염시키는 세제들이 근심스러워 친환경적인 제품에 신경을 쓰게 된 것이다. 대부분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주방비누는 게으르니와 뚜버기라는 두 친구에 의해 여타 세제와는 다른 길을 걸었다.

전혀 게으르지 않은 친구인 ‘게으르니’는 생태문제에 관심이 많다. 자누리사업단에서 일년 정도 일한 적이 있는데, 물을 오염시키지 않는, 자연분해가 잘되는 주방비누를 신제품으로 개발했다. 적어도 문탁 내에서는 그 비누를 쓰게 만들겠다고 결심을 한 모양이었다. 잊지 않고 꾸준하게 문탁의 주방과 카페에서 사용하도록 챙겼는데,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그 효과를 경험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의 꾸준함이 주방비누를 특별하게 만든 셈이다. 한편 우리가 만드는 천연세제는 엄선한 재료, 소량생산의 요인으로 인해 시중세제보다 비쌀 수 밖에 없다. 가격이라는 진입장벽을 해결한 것은 ‘뚜버기’였다. 자누리사업단에서 쭉 같이 일하는 이 친구는 공동체화폐부터 회계 전반을 아우르는, 이른바 문탁의 경제통이다. 그는 주방비누를 사용하려는 사람들의 좋은 뜻을 지속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동안 모아두었던 ‘양생기금’이 있었는데 그 기금으로 지원하는 방식으로 가격을 낮추자는 아이디어를 내었다. 그렇게 해서 주방비누는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찾는 제품이 되었다.

 

게시판에서

 

두 친구들이 움직이는 방식에서 ‘가치 추구’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어떤 일이든 거기에는 특정한 가치들이 붙어서 움직인다. 만일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하고 싶다면, 그것이 실제로 드러나도록 끝까지 집중해야 한다. 주방비누와 친구들의 움직임에 생태적 가치, 공유의 가치 등 얼마나 좋은 가치들이 따라다니는가. 여기서 다 말할 수는 없지만 문탁에서 흘러다니는 선물의 원리, 공동체화폐, 인문학 공부 등도 있다. 이런 가치들을 일부러 찾아가면서 생활 속에 단단하게 뿌리를 박게 할수록 기대한 것 이상으로, 신뢰는 선물처럼 찾아오는 것 같다. 신뢰는 롤러코스터와 같지만, 좋은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현실적 능력만큼 은근하게 스며든다.

 

쇼핑몰 대신 선택한 마을경제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가치를 맛보게 했는데, 그 중 신뢰는 정말 새롭다. 이 혼동의 시대에 친구들과 신뢰를 쌓는 법을 배우는 곳에서 살아간다면 나름 잘 살고 있는 것 아닐까? 앞에서 했던 질문, 안하는 것일까, 못하는 것일까에 대한 답은 아직은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우정의 그늘막 아래에서, 서로-장인-만들기는 계속된다. 혹은 계속되면 좋겠다. 

 

댓글 5
  • 2020-09-23 09:52

    어쩌다보니, 생산 작업 사진들이 파지사유가 아니라 문탁2층의 모습들이네요. ㅎㅎ
    장인이라고 하니 새털샘의 문학처방전도 생각나네요.

    • 2020-09-23 10:10

      네...이런 장인 또 없습니다! 청량리와 새초롬디자인도 장인이 되어가는 중이라고 생걱해요. 더 많은 장인이 필요해요~

      • 2020-09-23 17:08

        2층 사진 덕분에 제가 2층에서 생산하던 일들이 떠오르네요. 세미나 끝나고 우르르 작업을 같이 하면서 즐거웠던 것 같아요^^

  • 2020-09-23 16:22

    주방비누를 기린샘이 개발했군요!!!! ㅋ
    자누리생활건강의 역사가 마을경제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네요~

  • 2020-09-23 19:48

    앗!
    제가 왜 저기서 나오고... ㅎㅎㅎ

    내년 봄에 자누리 미백라인 기대해도 될까요?
    영업부장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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