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과 절기, 변화의 마디 찾기] 나에게서 벗어나 계절의 변화 바라보기

동은
2022-09-16 0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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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세계를 엿보는 것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또래들과도 한자의 세계를 만나고 싶습니다. 이 시리즈는  '2022 청년 책의 해' 사업의 지원을 받아 한자를 통해 바라보는 계절과 절기의 이야기를 전하는 연재글입니다.

 

 

 

 

 

 

 

 

1. 

     살아가면서 가끔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일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생각보다 등산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에는 도대체 왜 등산을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는데, 등산에 재미를 느끼는 내 모습이 낯설기도 하다. 이렇게 등산을 좋아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산의 풍경 때문이다. 똑같은 산길을 걸어도 계절마다 다른 모습 때문에 지겹지가 않다. 하루가 다르게 새잎이 피어나는 봄, 강렬하게 푸르른 초록색을 느낄 수 있는 여름,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을, 고요한 침묵을 느낄 수 있는 겨울. 계절마다 바뀌는 그 풍경을 거니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하지만 이런 나와는 다르게 등산을 좋아하지도, 산의 풍경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계절의 변화가 일상에 활력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는 거다. 가까운 친구는 날씨와 계절이 일정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그 친구에게 우리나라의 사계절은 그저 사계절의 단점이 모두 모여있는 것으로 보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나는 깜짝 놀랐다. 나만큼 계절의 변화를 재미있게 생각할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그 정도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계절이나 날씨의 변화가 우리 생활에 있어 중요하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농업 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뜨거운 햇볕과 내리는 비가 반가웠을 테지만, 오늘날 출근길의 비는 불편함을 넘어 불쾌할 정도다. 계절과 날씨와 무관하게 살아가니 자연스럽게 계절과 날씨의 변화는 일상에서 부수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제 계절과 날씨는 우리에게 창문 밖의 배경으로 있을 뿐, 우리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 아주 적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가 산의 풍경을 좋아하는 것도 계절에 따른 자연의 모습을 그저 지켜보며 즐기는 대상으로서 여기는 것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현대문명 속에서 사는 나와는 다르게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았던 고대의 시선이 궁금해졌다.

 

 

2.

     아득한 고대를 상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가장 처음 계절의 변화를 맞닥뜨린 사람을 상상해보자. 갑자기 추워지는 날씨를 처음 겪게 되면 크게 당황했을 것 같다. 일교차가 심한 날이 며칠 이어질 때면 언제, 어떤 날씨가 펼쳐질지 몰라 어떻게 더위와 추위를 견딜 수 있을지 걱정 가득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 계절이 변할 때마다 생겨나는 사소한 변화를 발견하고 춥고 더운 것이 일정하게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계절과 날씨가 가진 규칙성을 찾아내기 위해 본격적으로 세상을 탐구하지 않았을까? 식물이 자라나고 시들어가는 땅의 모습, 주기적으로 달라지는 태양과 달의 기울기,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부는 하늘과 땅의 관계.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주역周易>의 계사전에서는 사람들이 계절의 변화에 관해 탐구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주1) <주역>은 64개의 괘 풀이가 담겨있는 주周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점법서다. 주역의 역易은 점법을 의미하기도 하고 한자에 [바뀐다, 변한다]는 의미가 담겨있기도 하다. 이렇게 변화에 대한 책을 만들어낼 정도면 자연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변화]가 자연스럽게 사람들에게 중요한 키워드가 된 것 같다. 고대 사람들은 이 변화易에 대해서 두 측면으로 바라보았는데, 첫째로 세상은 바뀌지만 바뀐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주2)이고, 둘째로는 마냥 무작위로 바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때'에 맞춰 바뀐다는 것(주3이다.

     고대 사람들은 일찍이 세상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고대 사람들에게 계절이나 날씨 같은 자연의 변화를 피하거나 없앤다는 건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었다. 어차피 세상이 변한다면, 그 변화와 함께 사는 것이 바로 '잘 사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세상이 변하는 때를 알고 싶어했다. 이런 고대 사람들에게 1년 동안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는 더없이 좋은 탐구 대상이자 잘 사는 방법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였을 것이다.

 

 

 

절기가 처음 만들어진 화북지방. 이 지역의 계절을 바탕으로 절기가 만들어졌다.

절기가 처음 만들어진 화북지방. 이 지역의 계절을 바탕으로 절기가 만들어졌다.

 

 

 

3. 

     이런 이유 때문인지, 고대 사람들은 계절을 네 개로 나누어 태양의 기울기마다 구분해 24절기를 만들어냈다. 물론 절기가 내가 생각한 이유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제로 절기의 내용을 살펴보면 시기마다 풍경이 어떻게 변하는지 시간의 흐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 시기에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것은 때에 맞춰 살아가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던 고대 사람들이 절기에 일종의 생활 가이드 역할을 부여했다고 볼 수 있다. 절기가 이렇게 다양한 역할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고대가 농경사회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절기는 계절의 시기를 알기 위한 요소일 뿐, 삼복이 절기인 줄 아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절기가 사용되던 시기와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더 계절의 변화에 맞춰 살아가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절기가 가지고 있는 가치가 의미 없어지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고대 사람들이 어떻게 절기의 이름을 지었는지 살펴보면 단순히 더워지고 추워지는 기온의 변화를 기록한 것이 아니라 그 바탕에 고대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인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계절이 시작하는 입(立)절기를 예시로 들어보자. 춘, 하, 추, 동이 시작되는 각 절기에는 입(立)자가 붙는다. 입춘, 입하, 입추, 입동이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설 립(입, 立)자를 흔히 들 입(入)자와 많이 혼동한다. 아마도 입절기가 계절이 시작하는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입학식(入學)과 맞물려 들 입(入)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달력의 입춘 날짜를 보면 2월 초로 아직 겨울이 끝나지 않았을 때다. 고대 사람들은 어떻게 겨울의 한가운데인 2월부터 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일까?

     그 답은 절기節氣의 의미에 있다. 절기의 한자를 풀면 [기운氣의 마디節]다. 입절기의 입立은 [바로 서다, 나타나다, 이루어지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 주체가 기운氣이라고 생각해본다면 입절기에는 바로 사그라들어 있던 다음 계절의 기운이 서서히 깨어나 바로 서기 시작하는 시기를 표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사람들은 봄이 시작되는 것을 따뜻해진 기온과 새싹이 돋는 풍경이 아닌 기운의 변화에서 찾았다. 기온이 아닌 기운으로 계절의 변화를 바라본 것이다. 이건 다른 계절이 시작하는 입하, 입추, 입동도 마찬가지다.

 

 

 

 

4.

     기온이 아닌 기운으로 바라보는 계절의 변화는 어떻게 다를까? 계절의 변화가 싫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절이 '나'에게 끼치는 영향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계절의 변화를 나를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너무 덥고, 모기에 물려서 싫고 땀나는 것이 싫고, 먼지를 마시는 게 싫고, 밟는 눈이 질척여서 계절의 변화가 싫은 것이다. 하지만 고대 사람들에게 계절의 변화에 있어 중요한 것은 자연의 변화와 함께하는 '나'였다. 고대 사람들은 나를 중심으로 주변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변과 맞추어 행동과 태도를 바꾸며 살아갔다.

     고대 사람들이 이런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변화가 계속된다는 걸 당연하게 여겼기 때문이 아닐까? 이것은 계절의 변화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계절이 스스로 변하고 바뀌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무수한 변화들이 찾아온다. 그래도 개인의 문제에 있어서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어째서 계절 앞에서는 나를 중심으로밖에 말할 수 없는 걸까. 개인의 문제를 다양하게 생각하듯이, 계절의 변화도 나로부터 벗어나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나를 힘들게 만드는 문제도 다르게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떤 문제에 있어 다르게 바라보는 일은 쉽지 않다. 주변을 살피지 못하고 자신에게 집중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절기에서 계절을 바라보는 고대 사람들의 시각 찾아낸다면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 나아가 나의 변화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던져줄 수 있을지 모른다. 앞으로 이어지는 글에서는 계절에 따르는 각각 절기와 절기를 구성하고 있는 한자를 통해서 고대 사람들의 시선으로 계절을 바라보려 한다. 고대인의 시선을 빌려 계절의 변화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주1) 在天成象, 在地成形, 變化見矣.

하늘에 있어서는 형상이 이루어지고 땅에 있어서는 형체가 이루어지니 변과 화가 나타난다.

鼓之以雷霆, 潤之以風雨, 日月運行, 一寒一暑

우레와 번개로써 고동하며, 바람과 비로써 적셔주며, 해와 달이 운행하며, 한 번 춥고 한 번 더워….

(계사전 상 1장에서)

(주2) 역이불역易而不易 [역은 바뀌지 않는다]

(주3) 수시변역隨時變易 [때에 따라 바뀐다]

 

 

 

댓글 1
  • 2022-09-30 13:09

    사계절의 변화에 맞춰 음양오행, 즉 음과 양, 목화토금수 라는 자연의 요소로 변화의 추이를 해석하는

    고대인들의 지혜를 현대인들이 전수받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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