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영화인문학 시즌3 에세이발표 후기

청량리
2021-11-29 12:25
1014

<영화인문학 시즌3 에세이발표 후기>

영화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글 : 청량리

 

 

 

 

 

 영화인문학은 각 시즌마다 6편 + 1편(에세이영화)의 영화를 봅니다. 지난 토요일을 끝으로 세 번째 시즌을 마무리했으니, 올해 대략 20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그러니까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영화를 본 셈입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라, 명색이 뒤에 ‘인문학’이 따라 붙었으니 에세이라는 것도 써 봅니다. 흔히 세미나라면 공통의 책을 읽고 각자 주제를 정해서 에세이를 쓰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누군가는 에세이를 세미나의 꽃이라고 했던가요?

 그런데 영화는 주로 각자 좋아하는 걸 본다고 생각합니다. 바야흐로 ‘개취존중시대’, 개인의 취향은 존중받아야 하고 또 남에게도 강요하지 않습니다. 개인적 영화취향과 공통의 에세이, 영화인문학의 고민입니다. 그러나 몇 번의 시즌을 통과하며 여러 실험을 해 본 결과, 영화인문학에서도 개인의 취향 대신 세미나의 꽃을 한 번 피워보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영화로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화를 보는 것과 글을 쓰는 것, 너무 달라 보이는 두 행위에는 사실 엄청난 공통점들이 있습니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영화는 사치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핸드폰과 OTT서비스(넷플릭스, 유튜브 등)를 통해 우리는 언제나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영화를 보는 행위 자체보다 어쩌면 두 시간 남짓 불을 끄고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일탈입니다.

 글을 쓰는 것 비슷합니다. 내 머릿속 같은 빈 페이지 앞에 오랜 시간을 눌러 앉아 있어야 뭐라도 나오겠지요. 바쁘게 돌아다니던 엉덩이를 억지로 의자에 붙잡아 둬야합니다. 집안 일도 잠시 접어두고 술자리도 다음으로 미룹니다. 억지로 뭔가를 써내려가는 그 시간, 일상에서 갖기 어렵죠. 평소에는 접하기 힘든 두 행위의 시간이 영화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뒤섞입니다. 둘 다 올곧이 자신만을 위한 시간입니다. 이건 비빔밥 보다는 볶음밥에 가깝습니다.

 

영화로 글을 쓰며 마주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화는 세상의 단면을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재현의 도구입니다. 아주 강력합니다. 반면에 글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내면을 통과할 수밖에 없지요.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스파크가 일어나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고 흘렸던 눈물을 되새겨 보기도 하고 혹은 뭔가 불편하게 만든 지점을 곱씹어 보기도 합니다. 그건 영화가 재현한 이미지가 어떤 식으로든 건드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영화의 이미지는 책 속의 상상력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다가옵니다.

 매주 토요일 조조영화를 보는 일곱 번 일탈의 시간은 비교적 즐거운 편입니다. 글은 튜터들이 써오기 때문이죠. 허나 마지막 주의 일탈은 다소 무겁게 다가옵니다. 누군가는 평소와는 달리 흰 바탕 위 깜빡이는 커서 앞에서 막막해졌을지도 모르죠. 혹은 불현듯 떠오른 사건에 난감해하며 글 대신 딴짓을 했을 수도 있구요. 뭐 아무렴 어떻습니까. 이미 글은 내 손을 떠나버렸고 이제는 읽는 사람의 것이 되었으니 오히려 맘 편합니다. 창피함과 민망함은 시간이 지나면 뒷꿈치의 굳은 살처럼 자신도 모르게 바뀌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영화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기 당신에게 보여주고 싶은 8편의 짧은 글이 있습니다. <스틸라이프>(2013)를 보고 쓴 영화글입니다. 누구에게나 좋은 건 없습니다. 자신에게 와닿는 좋은 영화가 있을 뿐이죠. <스틸라이프>는 8명 각자에게 어떤 영화였을까요? 첨부파일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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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영화인문학 시즌3 에세이발표자 (발표 순) 

띠우(당신의 공동체는 안전한가요)

"만남과 헤어짐이 거듭되지만, 우연처럼 만나 필연이 되어가는 느낌이랄까. 시작도 좋지만 끝날 때도 좋은 법^^. 죽는 순간, 어랏! 했던 메이의 웃음처럼, 서로의 유머에 뛰어난 리액션을 선물하면서 에세이쓰기의 괴로움도 훌쩍 뛰어넘으며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해본다~"

 

재하(남겨진 것들) 

"어쩌면 메이가 이들을 하나하나, 심지어 이들이 그와 아는 사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으로 대하는 모습은 어쩌면 그들이 살면서도 누군가의 ‘그’ 사람으로 되지 못하고 사회에서 잊힌 이들이 죽어서도 ‘그 누군가’가 되지 못한 것에 슬픔을 느낀 것이 아닐까."

 

유(고독과 허망함)

"존 메이의 부재 속 정물화는 사람들과의 관계 보다는 사물들 혹은 죽은 이들과의 관계 속 정물화였다. 그래서 더 고독감이 느껴졌을까? 나는 어떨까? 내가 없을 때 내 삶의 정물화들은 어떤 그림들로 채워질까? 영화를 통해 느껴지는 내 관념 속 해묵은 외로움과 고독감들이 결국 나를 사랑해주지 못하는 내 삶에 대한 외로움과 허망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참(삶이 그리는 그림)

"죽은 사람에게도 산 사람에게도 내가 본 메이씨는 늘 상냥하고 섬세했으며,

빅브라더를 내장한 듯, 누가 보든 보지 않든 흐트러짐이 없다.

어딘지 모르게 잘 섞이진 못하지만, 자기만의 색을 내는 사람.

흐린 하늘색처럼 옅은 존재감이지만, 묵직하게 공공선을 지켜내는 사람,

 

메이씨가 내게 너무 매력적인 이유를...

메이씨는 내가 닮고 싶은 사람이였나 부다..."

 

느티나무(삶과 죽음, 서로를 향한 응시)

"그리고 길을 가로질러 뛰어가던 그를 갑자기 느닷없이 달려오는 버스와 부딪혀 죽게 한다. 죽는 순간 화면 가득 여전히 미소가 남아있는 그의 얼굴을 크로즈업 한다. 추도사도 조문객도 없이 장례가 치러지고 그는 그동안 그가 묻어주었던 많은 이들의 무덤 옆에 나란히 묻히게 한다. 죽음은 그렇게 삶 속에 숨있어서 언제 다가올지 알 수 없다고..."

 

수수(정지 화면 아님)

"나는 누군가를 보내는 방법을 잘 알지 못했다. 친구가 떠난 뒤 이런 저런 미안한 마음이 계속 올라왔고, 일상 속에서 우울함을 떨칠 수 없었다. 상실감인지 슬픔인지 두려움인지도 모르는 감정과, 삶과 죽음에 대한 불안이 섞여 생활은 안정감이 없었다. 2년 정도 매달렸던 불교 공부도, 그즈음 하고 있던 이반 일리치 세미나에서도 친구의 죽음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지 못했다."

 

토토로(존 메이를 위하여, 그리고 나의 추도문)

"그러니 메이씨! 나의 추도문을 작성할 거라면 나의 스마트 폰과, 온라인의 흔적에 더 주목해주시길. 그리고 바라건 데, 메이씨가 작성할 나의 추도문은 이렇게 시작 되었으면 좋겠다.

“어울려 놀기를 좋아하고, 웃음이 많으며, 마음이 따뜻했던 사람. 때론 서툴고 비틀거렸지만, 자신을 사랑했기에, 오늘보다 내일은 더 나은 어른이 되고자 했으며, 무엇보다 유쾌한 공생자가 되길 바랬던, 000!”

 

청량리(늘 마주하지만 못 보는 것)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반짝거렸고, 그게 무엇인지 확인할 사이도 없이 정확하게 길 한 가운데로 떨어졌다. 쾅!!! 커다란 소리와 함께 가로등이 흔들거릴 정도로 땅이 흔들렸다. 먼지가 가라앉자 도로에 박혀 버린 커다란 금속물체가 드러났다. 둥그런 원통모양에, 위에는 프로펠러 같은 것이 달려있었고 불에 탄 듯 연기가 피어올랐다. 마치 비행기의 엔진 같았다. 진동이 거의 사라질 즈음 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존 메이씨의 가방에서 사과 한 알이 떨어졌다. 마치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처럼 바삐 굴러가고 있었다. 그날 오후, 구청 장례민원과로 존 메이씨의 사망소식이 접수되었다."

 

 

 

 

댓글 10
  • 2021-11-29 13:41

    좋았습니다~!

  • 2021-11-29 15:13

    영화인문학이 없는 일주일~

    다들 어찌 보내셨는지 궁금하네요ㅎㅎ

  • 2021-11-29 15:49

    후기를 읽으니,

    그날의 좀 떨리고 많이 쑥쓰러웠던 기억,

    우리들의 감정이  서로를 스치며 흐르던 기묘한 느낌이 떠올라요…

    영화인문학에 늦게 입문 ㅎㅎ 한것이 아쉬워요.

    담주 금욜을 기다립니다.

  • 2021-11-29 16:15

    나의 추도문.

    마음속에 간직해오던 생각이었는데,(급조한거 아닙니다요ㅎㅎ)

    글로 써놓고 보니, 더 강하게 인생 방향을 제시하네요. 이래서 자꾸 쓰라고 하는건가^^;;;;;

    두분 튜터 고생하셨어요.

    (블루샘~이번 후기 넘넘 좋습니다!!!!)

    새로 합류한 세친구들. 덕분에 더 즐거웠어요~

    또 만나요. 힛~

     

  • 2021-11-29 16:55

    비빔밥과 볶음밥의 차이는 뭘까요?

    불이 개입된다는 것?

    • 2021-11-30 09:10

      저도 이 차이가 궁금했다며…..ㅋㅋㅋㅋ

  • 2021-11-29 17:42

    영화로 글을 쓰면

    영화는 희미해지고

    나만 남는다

     

    참 이상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서 힘들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했습니다

  • 2021-11-29 17:59

    일년간 띠우, 청량리 튜터님들 수고하셨습니다!

    함께 공부하신 세미나회원님들도 시즌3 마무리 축하드려요~~ 

  • 2021-11-30 22:03

    이번 영화인문학은 새로운 분들이 들어와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많이 쑥쓰럽기도, 어색하기도 해서 세미나에서 말수가 적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에세이를 읽으면서 다른 분들의 마음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게된 것 같습니다(아니, '그렇습니다'ㅎㅎ). 그리고 에세이데이 때 다들 제가 왠일로 분량을 줄여서 놀라셨던 것 같은데, 괜찮습니다. 다음 번에는 제가 '양껏' 써오겠습니다ㅎㅎㅎ

  • 2021-12-02 16:08

    그러게요. 죽음이 내 삶의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이번주도 번개불에 볶인 콩마냥 이리저리 튀다가 이제야 댓글을 답니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게 매주 토요일 아침, 영화와 수다를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하고 좋았어요.

    혼자라면 볼 수 없었을 영화들을 만나게 해 준 두 분 튜터께도

    세미나를 함께 하며 울고 웃은 세미나 회원들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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