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시즌2> 1회차 후기

자작나무
2022-09-26 21:14
236

 

<장자 내편>의 강렬함과는 다른 맛을 주는 시간이었다. 이번 시즌에는 외편과 잡편을 읽는데, 흡사 두 사람의 장자를 만나는 것처럼 생경한 느낌을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호기심이 드는 장자와의 만남이었다. 

하나의 바램이 있었다면, 기존 멤버 말고도 새로운 얼굴이 보고싶었다는 것은 안 비밀^^

어쨌든 이번에 읽은 외편의 <변무><마제><거협>은 앞서 내편에서 잠시 하늘에 뿌려놓은 별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듯, 유가가 내세우는 인/의/예가 인간의 본래 자연스로운 모습을 손상한다는 것을,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혜라는 것이 사실은 큰도둑을 위해서 물건을 모으고 지키는 것임을, 너무나도 통렬하게 이런저런 구체적인 장면으로 보여주고 있다.  가령

 

"이제 상자를 열고 주머니를 뒤지며 궤를 뜯어 젖히는 도둑을 막기 위해 반드시 노끈으로 꽁꽁 묶고 자물쇠를 단단히 잠가둔다.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이다. 그러나 큰 도둑이 오면 궤를 등에 지고 상자를 손에 들며 주머니를 걸머맨 체 달려가면서, 다만 노끈이나 자물쇠가 단단치 못한 거나 아닐까를 염려한다. 그러고 보기 앞에서의 지혜란 큰도둑을 위해 오히려 준비해 둔 셈이 되지 않는가!"(<장자, 거협>, 안동림 번역)

 

이런 입장에 서면, 유가에서 존중되는 성인은 물론이고 이른바 지식인의 존재란, 이후에 등장하게 될 큰도둑이 가져가기 쉽게 혹은 독재를 하거나 세상을 훔칠 지혜를 미리 안배하고 잘 다스려지도록 우매하게 만드는 그런 지식을 쌓는 자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유가의 지식을 노자는 얼마나 비판했던가. 이런 비판을 이어받은듯 장자의 비판도 맹렬하다. 그래서 이번에 읽은 <마제>나 <거협>등의 편을 노자가 말한 "절성기지론" 즉 성스러움을 끊고 지식을 버리는 썰을 부연한 편이라고 말하는 자들도 있을 정도다.  여기서 나는 이런 생각을 문득 한다. 지금 우리가 자본주의를 벗어나고 넘어서기 위해서 혹은 다른 이유로 세미나도 하고 지식도 '열심히' 쌓고 있는데, 그게 어쩌면 자본주의라거나 아상이나 아집을 더 공고하게 만드는데 일조하는 게 아닌지, 이런 생각으로까지 나아간다. 그래서 여기서 잠깐, 장자를 공부하는 동안, 나에게 있어서 지식/앎은 어떠한지 혹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시간이기를 바란다. 즉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앎 그 자체를 반성하거나 메타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는 것.  

 

시즌1 <내편>을 읽을 때는 그 끝 간 데 없이 펼쳐지는 우화와 이미지에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외편>은 좀 더 차분히 앞에서 읽은 것들을 되새김질할 수 있게 마음과 정신에 여백을 주는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여백과 여유는, 나의 숙고와 지금은 적은 숫자이지만 세미나원들간에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사이에 채워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댓글 3
  • 2022-09-27 07:06

    뭔가 신발 끈을 고쳐매야 할 것 같은 후기네요. 생각보다 2차 텍스트 읽기의 즐거움이 쏠쏠합니다~

    나카지마, 프랑수와 줄리앙, 후쿠나가... 기대되는 저자들네요.

  • 2022-09-27 15:21

    일상의 안정적인 루틴을 벗어났을때 의지할 수 있고,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세미나인것 같습니다. 

    나카지마 책은 커녕 외편도 아직 못읽은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치없지만 차려주신 밥상에 숟가락 얹으려 갑니다. 

  • 2022-09-27 22:30

    지식이란, 앎이란........다시 돌아 보는 시간!  차분히 곱씹어 보며 읽어야 하는디.....

    그래도 고생하며 한번 지나온 내편이 있어서, 재미가 쏠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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