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누리 주역강의 5월 후기] 주역, 감응-전염에 대한 솔루션

고은
2022-06-14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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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밝히려다 심연으로 떨어지다

 

   상상가능한 영역에서 주역을 보기 위해 예시 기사를 2가지 가지고 오셨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하늘과 땅 또한 인간에게 침범을 받고 있구나, 하늘과 땅도 우리의 형제이구나, 우리의 시야를 하늘과 땅까지 넓힐 수 있겠구나 하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어요. 하루하루,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에 둘러쌓여 있다보면 하늘,땅과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을 자꾸 잊어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시야 밖에 있다고 함께 살고 있지 않은 게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데 자누리쌤은 시야 밖에 있는 곳까지 침해를 받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시야 밖에 있는 어두운 영역은 사실 밝음의 바탕입니다. 그런데 근대 문명은 자꾸 어두운 영역을 밝혀버리니, 어둠이 없어짐으로써 바탕없는 심연으로 떨어진다고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해서, 혹은 다 알려고 해서 오히려 기반을 잃고 혼란에 빠져버릴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정말 그런 것 같아요.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심연으로 떨어진다는 말씀이 굉장히 와닿았습니다.

 

   그렇다면 동아시아 사유에서는 자연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실제로 동아시아 텍스트에서 ‘자연’은 그다지 등장하지 않습니다. ‘천지’가 오히려 더 많이 등장하는데, 천지가 부모로 만물이 그 자식으로 표현됩니다. 이는 자연에 위계와 근원의 위치를 부여해주는 말이 아니고, 오히려 만물이 모두 천지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말입니다.(본성론) 만물이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만물이 살아갈 때 어떻게 천지를 활용할까에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지요.

 

이분법 대신 감응과 전염

 

   인간의 몸 또한 천지로부터 나온, 기의 흐름인 자연인 셈입니다. 내가 다른 자연인 타자를 병들게 할 수도 있고 활기찬 생명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에, 자연인 내 몸이 다른 자연인 타자와 형제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자연과 내가 어떻게 만나지? 어떻게 실천하지?’ 이것을 ‘감응’이라고 표현합니다. 감응력이 커지는지 작아지는지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내 몸뿐입니다. 내 몸이 바로 기의 흐름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삶은 감응력과 다름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아시아의 사유에서 처세론이 발달하게 되는 겁니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고, 상황과 상대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기의 또다른 특성은 전염력에 있습니다. 전염은 동아시아 교육의 근간이 됩니다.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전파시키고, 그것이 몸에 제대로 적용되었는지 확인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할 수 있는 좋은 기운을 가진 사람이 바로 선생이 되는 것이지요. 얼마 전 등산을 가는 날, <한문이예술>에서 “선생님은 산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데 선생님이에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다음에 또 그런 말을 들으면 이 이야기를 해주면서 대답해야겠습니다. “응~ 선생님은 너희들과 좋은 기운으로 감응하거든!”(잠깐, 정말 그런가?)

 

   여하간에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자연과 인간의 이분법이 생길 틈이 없습니다. 그 자리에 대신 감응와 전염이 자리하는 것 같습니다. 기운의 흐름 속에서 타자와 감응하고, 또 전염시키고 될 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쓰다보니 감응과 전염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헷갈립니다. 나의 내부에서 보자면 감응, 외부에서 보자면 전염일까요?) 감응과 전염은 어떤 측면에서 보이지 않는 것, 어둠-언더랜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저에 두는 것과, 그렇지 않고 그것을 ‘과학’과 같은 이름으로 해집는 것은 전혀 다른 삶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산수몽, 수천수, 천수송, 자수사, 수지비

 

   이번 시간에는 먼저 몽괘를 살펴보았어요. 위에가 산, 아래가 수여서 장벽에 가로막혀 답답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몽’, 현재 상황에 의해서 어둡다 혹은 어리석다는 것입니다. 거꾸로 보면 이를 타개했을 때 성숙해질 수 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괘사에 몽괘가 형통할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어떻게 하면 형통할 수 있을까요? 내가 동몽을 찾는 게 아니라 동몽이 나를 찾아와야 한다고 합니다. 떠먹여주는 것이 아니라 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답답한 사람이 절실할 경우에는 나를 찾아올 것이란 말입니다. 몽괘는 절실함이 키워드인 것 같이 들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수괘를 보았습니다. 위에가 수, 아래가 천이어서 하늘이 진출해야 하는데 험함이 있어서 발이 묶이는 상황입니다. 괘사에서는 새가 알이 깨지리라는 믿음으로 기다리고 품는 것처럼, 수괘는 그런 믿음과 기대가 있는 기다림이라고 말합니다. 즉 기다린다면 빛나게 형통할 것이라는, 곧아서 길할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그러므로 조급하게 기다릴 필요가 없지요. 먹을 거 먹고, 마실 거 마시고, 편안하게 즐기면서 기다립니다. 이런 기다림이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 같네요!

 

   세 번째는 송괘입니다. 위가 천, 아래가 수여서 하늘은 위로 가고 물은 아래로 가서 만날 일이 없으니, 다툼이 일어나고 그 해결을 제 3자가 하게 됩니다(송사). 괘사를 살펴보면 주관이 뚜렷하여 송사가 있는데, 그 마음은 막혀서 두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간에 그만두면 길하고 끝까지 가면 흉합니다. 헉! 생명력을 갉아먹는 일을 하고 있으니 가급적 하지말고, 하고 있다면 중간에 그만두라는 말입니다. 생각만해도 갑갑하고 슬픈 일입니다. 중간에 그만둘 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늘 끝까지 다 해보고 나서야 그만뒀어야 하는 일인 줄 알게 되는데 말입니다.

 

   네 번째는 사괘입니다. 위가 지, 아래가 수입니다. 이 괘는 보통 군대, 전쟁의 괘로 보는데 오늘날 가지고 오면 비상 상황을 해결하는 무리, 전쟁기계(경계를 허무는 이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괘사에서는 바르게 하면 허물이 없다고 합니다. 전쟁에는, 비상상황에는, 경계가 무너지는 상황에는 사실 엄정함이 요구됩니다. 명분이 있고 정의로워야 허물이 없게 됩니다.

 

   다섯 번째는 비괘입니다. 위가 수, 아래가 지입니다. 위에 물이 있고 아래에 땅이 있어 친하고 가깝습니다. 어떤 사이가 친한 사이일까요? 도와줄 수 있는 사이가 친한 사이입니다. 괘사에는 비괘가 전체적으로 길하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무구할 수도 있고 흉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무구할까요? 근원을 헤아리고 짐작하면 허물이 없습니다. 낌새를 가지고 보이지 않는 것까지 생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편안하지 못한 때가 언젠가 올텐데 그럴 때 친한 사람과 함께 하지 않고, 즉 그럴 때 도움을 받지 않으면 흉하게 됩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감응하고 전염시킬 수 있을까?

 

   이렇게 녹화 강의는 끝이 났는데요. 앞선 발제와 괘를 함께 살피면 어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둠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어둠이 있어야 밝음도 있고, 그래야 심연으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몽괘와 연결시킬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몽괘는 괘 자체로 보았을 때 굉장히 막막하고 어두운 괘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형통할 수 있습니다. 어두움, 막막함이 오히려 나에게 절실함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감응과 전염 역시 그렇지 않나요? 언제쯤 싸운 누군가와 감응할 수 있게 되는지, 어떤 것이 전염되고 있는지 알 수 없어 막막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나, 알 수 없기 때문에 절실해지고, 절실해지기 때문에 거꾸로 감응과 전염이 일어나고 찾아오게(찾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보면 모든 괘가 감응과 전염의 괘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그러니까 주역이 감응과 전염에 대한 해결책(솔루션)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경우에, 어떤 상황에, 어떤 감응과 전염이 발생할 수 있을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가령 비괘는 아주 친한 사이에서 감응과 전염이 일어나는 경우(=무구=상대의 낌새를 눈치채고 그것으로 미루어 짐작하기)와 감응과 전염이 일어나지 않는 경우(=흉=도움이 필요한데도 상대에게 요청하지 않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또 흥미로운 것이 감응과 전염이 일어나는 경우가 ‘미루어 짐작할 때’인데요, 이것이 마치 발제에서 말씀하신 ‘언더랜드’를 헤집는 대신 ‘언더랜드’와 함께 살아가는 형상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번 강의에서 특히 재미있게 들었던 괘는 사괘인데요. 작년인지 제작년인지에 사괘를 한 번 뽑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 ‘비상조직’이라는 풀이를 듣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 감응과 전염의 맥락에서 사괘를 다시 보니 좀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았어요. 기존의 체계를 뒤엎고 새로운 체계를 잠시 새워야 하는 비상상황이야말로 어떻게 주위와 감응하고 전염시킬 수 있을지를 가장 열심히 고민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어요. 왜냐하면, 비상상황이 가져다주는 특수권력이 죽음으로까지 곧장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지요. 가령 어떤 조직에 문제제기를 하는 상황도 이러한 비상상황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조직에 문제를 제기할 경우, 그만큼 시선이 쏠리고 파격적인 힘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과 상황을 감응시키고 전염시키지 못한다면 조직에서 쫓겨날 뿐 아니라, 그 여파가 스스로를 침몰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바름’이라는 것이지요.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늦게 후기를 올리게 되었네요. 지금 마치 서당개가 된 기분입니다. 주역의 괘를 제대로 공부한 적은 없는데, <계사전>을 읽고 <주역강의>를 들으며 괘에 대해서는 계속 주워듣고 있거든요. 5월 강의에서 들은 몇몇 괘들이 낯선 듯~ 익숙한 듯~ 낯설고 익숙하네요(?). 이렇게 듣다보면 언젠가 감이 조금 잡히겠죠? 사실 지금도 감이 조금 생긴 것 같습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괘 이름의 원리를 하나 알게 되었는데,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 부끄러워 밝히지는 못하겠습니다. 전 원래 이런 기본들을 아주 천천히, 드문드문 익히곤 하거든요. 여하튼 6월 강의에서도 낯선 듯 익숙하게, 익숙한 듯 낯설게 괘와 주역을 만나게 되리라 기대하며 이만 말을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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