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 문명진보서사를 뒤집다

진달래
2023-03-13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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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진보서사를 뒤집다

- 『농경의 배신,』 제임스 C. 스콧

 

 

그게 아닌가요?

 

고전을 읽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느껴지거나 ‘아, 그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꽤 있다. 그런 일이 반복되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가 진짜 그랬을까하는 의문도 생긴다. 아마도 이 책 『농경의 배신』도 그런 의문에서 사 두었던 책이었을 것이다. - 사실 산 지 오래 되어서 왜 샀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누군가의 추천 도서였거나, 혹은 어디 참고도서였을 텐데.

 

인류의 역사에서 흔히 신석기 혁명이라고 불리는 ‘농사짓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내가 아이들과 읽은 어떤 책에는 만약 이 농사짓기가 생겨나지 않았다면 지구에 살고 있는 이 많은 사람들이 무얼 먹고 살았을지 끔찍하다며, ‘농사짓기’가 없었다면 지금의 인류도, 문명도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역사 시대를 열었다고 했다. 이게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 이야기이다. 이렇게 농사를 짓고 정착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모여서 씨족, 부족 사회를 거쳐 나라를 세우고, 도시를 만들고 그렇게 되니까 신분도 나뉘고, 문자도 생기고 등등, 자연스럽게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농경의 배신』은 그게 아니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농사를 지으면서 더 잘살게 된 것도 아니고, 정착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모여서 나라를 만든 것도 아니라고. 오히려 수렵 채집을 하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는 사람들보다 더 풍족하게 먹고 살 수 있었고, 더 건강했다고 한다. 가축을 길들이기 시작하면서 전염병에 걸리는 일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국가를 세우고자 한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억지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은 “길들이기, 정착생활, 국가의 기원에 관한 대항서사”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의 주요 배경은 우리가 문명이 시작된 곳으로 알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지역이다. 하지만 꼭 그 곳에 한정되어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다. 그에 못지않게 오래된 문명으로 알려져 있는 중국의 진(秦), 한(漢) 등도 언급된다. 물론 내가 생각하기에는 좀 더 앞선 시대의 이야기가 더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저자는 중국에서의 국가의 형태는 진(秦)의 통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뭐 이런 저런 아쉬움이 있지만 책 내용 중에 이런 이야기들은 내가 알고 있는 중국 고대의 이야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언 래티모어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중국의 만리장성이 야만인들이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었던 만큼 중국인 납세자들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막으려는 것이었다고 한다.” 『농경의 배신』 p55

 

만리장성을 쌓은 이유가 북쪽 오랑캐를 막는 것뿐만 아니라 중원의 농경민들이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성이라는 게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만큼 나가려는 것도 막아주는 효과가 있겠지만, 이렇게 보면 국가를 울타리 삼아서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세금을 내는 일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며, 그에 덧붙여 우리가 늘 말하던 문화적인 것이 과연 인간을 좀 더 살기 좋게 만든 것일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질서 정연한 세계를 만들다

 

인류가 농경을 하기 시작한 것이 그다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고 하니 갑자기 『사기』의 「오제본기」가 생각이 났다. 『사기』를 지은 사마천은 중원의 역사를 오제(五帝), 즉 고대 중국의 다섯 명의 성군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그 처음으로 언급되는 황제(黃帝)는 중원의 각 민족의 공동 선조였다고 알려져 있다. 태어나면서 영리했던 황제는 그 이전의 신농씨의 세력을 꺾고 여러 제후들을 복종시켰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황제는 “병사를 정비하고 오기(五氣)를 연구하고, 오곡(五穀)을 심어 백성들을 사랑으로 돌보았고, 사방의 토지를 측량, 정리하였다. 또한 여러 맹수들을 훈련시켜서 신농과의 전쟁에 이용했다.(軒轅乃修德振兵,治五氣,藝五種,撫萬民,度四方,教熊羆貔貅貙虎,以與炎帝戰於阪泉之野)”고 했다.

 

대체로 중국 고대의 성군은 무질서한 자연을 정비해서 질서정연하게 만드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다. 따라서 황제가 한 일도 사시(四時)와 연결된 날씨를 연구하고 다섯 가지 곡식을 심어 백성들을 먹고 살 수 있도록 하며 곰이나 범, 살쾡이와 같은 사나운 짐승을 길들이는 것이었다. 황제가 한 일 중에 가장 도드라지는 일은 사실 전쟁이다. 여러 제후로 지칭되는 주변의 부족들을 병합하여 조공을 바치게 하는 것이다. 병합된 제후들을 관리 감독하기 위해서 관직을 만들었다. 전설에 의하면 황제 때 집과 의복을 만들고, 살아 있는 자들을 위해서는 의례를 제정하고 죽은 자를 위해 장례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질서 잡힌 세계를 우리는 ‘문명’ 세계라고 말한다.

 

기원전 만 년 경 인류는 따뜻하고 습한 환경에서 나름 정착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정착민들은 우리가 알고 있듯이 농경을 위해 정착했다고 볼 수 없었다. 이들에게 곡물 재배의 흔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주된 경제 활동은 주로 수렵과 채집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정착생활을 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풍요로운 ‘습지 자원’에 있었다. 기원전 2000년 전의 중국도 현재보다 훨씬 따뜻한 기후였다고 한다. 고대 중국 환경사를 다룬 『코끼리의 후퇴』라는 책을 보면 고대 중국의 기후가 지금과 사뭇 달라서 이 당시에는 중원 지방에서도 코끼리를 볼 수 있었다고 한다. 또 여러 문헌에서 중국의 지형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산택(山澤)이라는 단어를 종종 쓰는데 이 때 택(澤)이 바로 이런 습지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습지는 다양한 식물뿐만 아니라 어류나 조류(오리나 거위와 같은), 또는 다양한 동물들의 서식지였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동물들이 이동하는 길목이었기 때문에 사냥은 이들의 이동 주기를 바탕으로 세심하게 이루어졌다. 이렇게 다양하고 풍족한 먹을거리를 위해 정착을 한 이들에게 굳이 많은 노동력을 들여야만 하는 ‘농사짓기’는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다.

 

다시 「오제본기」를 보자. 전설에 황제 이전에 신농(神農/炎帝)씨는 중국 사람들에게 농사짓는 법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아마도 황제는 처음에는 신농씨의 아래에서 농사짓는 법을 배웠던 것 같아. 그러다 황제가 신농씨에게 복종하지 않는 제후들을 정벌하고 후에 치우(蚩尤)의 난과 신농의 난을 차례로 물리치는 것으로 나온다. 이러한 통치자들의 활동이 『사기』에서는 인류를 문화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이라고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농경의 배신』을 읽고 다시 보니, 오히려 습지에 평화롭게 모여 살던 사람들을 정벌하여 곡물을 재배하는 노예(?)로 만든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농사를 짓지 않는 부족을 병합하는 것뿐 아니라 농경을 통해 세금을 내기 시작한 사람들이 자꾸 통제에서 벗어나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울러 곰이나 범과 같은 맹수를 길들일 수 있었다는 것은 이미 이들이 상당한 수준의 가축을 길들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재앙이 일어나다

 

며칠 전에 『예기(禮記)』를 읽다가 재미있는 문장을 발견했다.

 

“새들은 떨어진다고 말하고 짐승들은 물에 잠긴다고 말한다.(羽鳥曰 降, 四足曰 漬)”

 

굉장히 생뚱맞은 구절이다. 아마도 앞부분에 천자가 죽었을 때는 붕(崩)이라고 하고 제후가 죽었을 때는 훙(薨)이라고 하고, 등등의 문장 뒤에서 ‘새가 죽었을 때는 강(降)이라고 하고 네 발 달린 짐승이 죽었을 때는 지(漬)라고 한다.’ 뭐 이런 뜻인 듯하다. 여기서 지(漬)라는 말은 물에 젖는 것을 말하는데 주석에 의하면 짐승들은 죽을 때 더러운 웅덩이 같은 곳에 죽는데 여러 마리가 죽으면 오염되어 전염병이 된다고 한다. 특히 여기서 사족(四足)을 소나 말의 종류로 보는데 아마도 요즘의 구제역과 같이 가축에게 전염되어 대량으로 죽는, 뭐 그런 종류의 병이 과거에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런 전염병은 사람들에게도 옮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큰 재앙(大災)’로 여겼다.

 

전염병은 ‘모여살기’ 시작하면서 크게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 의하면 특히 신석기 후반 곡물재배로 허약해진 인류에게 치명적인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종류의 동식물들이 모여 살면 그에 따라 다양한 바이러스를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또 이렇게 모인 병원체들은 새로운 숙주에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 이렇게 인수공통의 전염병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역학 질서가 성립되고 있는 것이었다. 『농경의 배신』에서는 후기 신석기 시대에는 농경 생활로 야생에서 얻을 수 있는 음식과 고기가 빠지고 상대적으로 탄수화물 함량이 높아진 단순한 식단에 의지하면서 대부분 사람들이 질병에 더 취약해졌다고 본다. 이러한 사정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가축, 그리고 작물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길러진 가축은 야생에서 잡아들인 동물들에 비해 필수 지방산이 부족해졌고, 작물은 재배되기 시작하면서 유전적 다양성이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또한 질병에 쉽게 노출되었다.

 

사람들이 가축을 기르고 작물을 재배하면서 전체적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의 ‘풍경’이 바뀌어갔다. 가축이나 농작물은 자연적으로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보호하고 보조해 주어야만 유지 될 수 있었다. 이렇게 집중화되고 단일화된 식물종과 동물종들은 유별나게 붕괴되기도 쉬었는데 한 가지의 질병, 한 차례의 가뭄 혹은 폭우, 또는 한 차례의 메뚜기나 쥐, 새의 무리가 휩쓸고 지나가면 전체 체계가 눈 깜짝할 사이에 무너질 수 있었다. 그러니 『춘추』 같은 역사책에서 보이는 “가을에 큰 홍수가 있었다.(秋, 大水)”나 “벼멸구(?)가 나타났다.(螟)”와 같은 말들이 더 무게 있게 보인다.

 

그렇다면 이러한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농경을 주된 삶의 방식으로 삼았을까? 여기에 대해 이 책에서는 인구 재생산율이 현저하게 높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정착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보통 인구 재생산을 의도적으로 제한한다고 한다. 이는 이동 생활 중에 너무 많은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는 것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에 비해 농경생활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부담도 적을 뿐 아니라 자식은 농경에 동원할 수 있는 노동력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출산이 더 장려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질병이나 영양적인 면에서 농경생활은 취약한 점을 드러냈지만 이렇게 기원전 5000년 경 부터는 농경 인구가 수렵·채집민들의 인구보다 월등히 많아졌다.

 

 

문명의 그림자

 

그러나 곡물을 재배하는 것은 일정한 조건을 갖춘 곳에서만 가능했다. 따라서 초기 국가들은 널리 분포된 것이 아니라 경작이 가능한 지역을 중심으로 점점이 존재했다. 농경에 이용된 곡물 중에서는 쌀이나 밀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쌀이나 밀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대량 생산이나 수송, 저장이 용이했다. 이러한 특징은 조세를 용이하게 만들었다. 쌀이나 밀을 키우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한 것도 중요한 이유다. 그러니까 그냥 버려두면 잘 자라는 곡물이 아니라 세심하게 보호하고 보조해 주어야 하는 것, 따라서 곡물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이들을 키우는 사람들을 관리, 통제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그런 종류의 곡물이 선택된 것이다.

 

우리는 대체로 곡물 경작을 통해서 사람들이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국가가 만들어지고 팽창하는 과정에서 문화가 발달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는 이렇게 우리가 경작민으로 살게 된 것을 ‘길들이기’라는 것을 통해 보자고 제안한다. 경작민이나 노예는 길들여진 국민들이었다. 반면에 수렵·채집민이나 유목민은 길들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늘 야만인이나 미개인으로 취급 받았다. 길들지 않은 것은 늘 위험하고 해로운 것으로 취급받았다. 마치 농작물과 잡초와의 관계와 비슷하다. 이 책의 주요한 키워드인 ‘길들이기’는 우리가 흔히 문명화라고 부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환경에 맞추어서 저절로 길들여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국가는 농사짓기를 통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국가를 만든 사람들’에 의해 농경은 더 권장되고 강요되었다. 여기에 이렇게 얻은 권력을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절차와 장치들을 만들어냈고, 사람들은 이를 ‘문화’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를 것이 없는 이야기들인 듯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새로운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 내용이었지만 다 읽고 난 뒤에는 사실 머리가 좀 복잡해 졌다. 특히 요즘 고전공부를 하면서 주의 깊게 보고 있는 것이 예(禮)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사문(斯文)을 보전하고 지켜야할 사명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문(斯文)이 바로 ‘문화/문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난 뒤에 든 생각은 농경을 바탕으로 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문화가 오히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점들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에 취약한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서 자연을 변형하거나 인위적으로 조성된 도시는 주변 산림을 파괴했다. 중원의 문화인들과 변방의 야만인으로 구분하는 사고방식은 ‘차별’을 공고히 했다. 이런 다양한 문제들 사이에서 농경으로 길들여진 우리는 이전에 수렵·채집민들보다 문제 해결하는 능력도 떨어진다. 뭐 이렇게 보니 공자가 보전하려고 했던 ‘사문(斯文)’에 대해 복잡한 마음이 생겼다. 게다가 뭔가 총체적으로 보지 않으면 자꾸 놓치는 것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뭘 어떻게 봐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책을 읽고 난 후에 이렇게 관습화된 상식에서 벗어나서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되어서 좋았다.

댓글 6
  • 2023-03-13 11:18

    요순우탕문무주공과 같은 성인들이 한 역할을 어떻게 봐야할까? 문화/문명에 대한 다른 생각, 이런 생각들이 동양고전을 인류학적 시각으로 읽는 동력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혹시 도가의 문제의식이 바로 공자님의 사문(斯文)에 대한 비판, 문명화에 대한 비판적 접근은 아닐런지요?

    • 2023-03-13 13:58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공부를 고민하게 됩니다.

  • 2023-03-13 16:18

    책을 읽어보지 않아 잘 모르기도 하고, 선뜻 동의가 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럼에도 비틀어보는 재미가 있네요.

  • 2023-03-14 01:24

    농업생산력 덕에 이렇게 인구가 늘어났으니 이제 이런 식의 농업 이외에 다른 체제를 상상하기가 어렵습니다. 어느 모델을 떠올려 봐도 이 인구의 상당수는 굶어죽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식의, 역사에 관한 '대항 서사'가 있기 때문에 그나마라도 다른 세계를 상상할 수 있는 듯 합니다. 유발 하라리가 '우리는 자유로워지려고 역사를 공부한다'는 말을 왜 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 2023-03-14 07:09

    요즘 아침이 바쁩니다. 새벽 5시30분쯤 기상해요. 아침도 챙겨야 하고 정신 못차리고 헤롱이는 두 인간도 깨워야하고.. 그러니 저는 10시면 눈이 감깁니다.. 애는 11시에 오는데. 으음. 샘의 글을 읽으니 이런 모든 게 결코 자연스럽지 않은 리듬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ㅠㅠ

  • 2023-03-15 09:36

    저도 '사문'이 걸렸어요. 이것을 수용하면서 유교를 다시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진달래쌤이 어떻게 이 문제를 소화하실지가 넘 궁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