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철학 시즌1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일곱번째 후기

정군
2022-04-20 00:27
290

아... 그러니까... 저의 원래 계획은 이러했습니다. 낭독철학이 10시에 끝나고, 내일 오전에는 정수기 필터 교체를 해야하니 나갈 수가 없겠군. 내일 오전에는 <차이와 반복> 세미나 준비를 하고... 그래, 그렇다면 낭독철학 세미나가 끝나자마자 야간 라이딩을 나가야겠어! 그랬는데, 시뻘건 미세먼지 수치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밤엔 책 읽고(<사물의 본성에 대하여>와 <차이와 반복>), 내일 오전에 자전거를 타야지. 그랬는데, 오! 후기를 저더러 쓰라시는군요. ㅎㅎㅎ 이번주는 '휴양주간'으로 선포하고 있었는데, 역사는 저에게 휴양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그거 다 하고, 후기는 금요일쯤 쓰면 되잖아?'라고 물으실 수도 있지만, 저의 몇 안 되는 '원칙'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후기'는 되도록 빨리, 가능하다면 당일에 쓰는 것이어서 그럴수는 없었습니다. ㅠㅠ 네, 원칙마저 저의 휴양욕을 가로막습니다.

 

저희 세미나는 세미나이지만, 사실은 세미나가 아닙니다. '낭독'이죠. 몇차례 언급했듯이 그리하여 토론을 하거나, 텍스트의 의미를 추적하거나, 어쨌거나 이해를 도모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그러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미나'의 본성 때문일까요? 튜터로서 저는 매주 솟구쳐오르는 '이해욕'과 대결하는 기분입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조금씩 흐름이 바뀌고 있고요. 점점 예/복습을 해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건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라는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성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복잡한 구문이 쉴새없이 이어지고, 그러다 갑자기 튀어나오는 직관적 명제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뒤를 맞춰보고, 어긋나 있는 주장과 논증의 틈새를 나름의 해석을 매꾸어야 합니다. 다만 소리내어 읽기만 해서는 그게 되지 않으니, 반작용처럼 '이해를 해야 하는데!' 같은 기분이 드는 것입니다. 튜터가 그걸 말끔하게 말해 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러자면 저도 며칠을 달라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미나의 컨셉은 그게 아니라는 이유로 딱히 그러질 않았습니다. 세미나 전에 한번쯤 훑어보는 정도였지요. 앞으로는 좀 더 봐야겠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읽기'가 '이해'로 치환되지 않아도 괜찮는, '읽기'의 다른 의미가 분명히 있다고 믿습니다. 그 방향으로도 좀 더 진전을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주에는 벌써, 무려, 본문의 3권에 진입했습니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1권부터 3권까지 각 권의 내용이 비교적 체계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각 권의 내용을 근대철학적 작명법에 따라 새롭게 이름을 지어보자면, 1권은 '원자론의 일반원칙과 반론에 대한 응답', 2권은 '원자의 속성과 성질', 3권은 '인간을 이루는 것으로서의 원자'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목차를 보니 4권은 '원자론에 따른 인식의 원리' 정도가 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렇게 놓고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전개로 이어지고 있는 듯 보이지만, 내부로 들어오면 그런 식의 '근대적 인식'에 따른 분류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걸 금방 체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두 번 읽으면 틈새가 꽤 잘 매꿔지는 듯 보입니다!

그리고, 오늘 막판에 논란이 되었던 부분에서 루크레티우스는,

"그와 같이 그들은 정신의 감각을 특정 부분에 놓지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이일에서 그들이 아주 멀리 빗나가 방황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자주 확연하게 눈에 보이는 육체가 아픈데도, 그럼에도 다른 숨겨진 부분에서는 우리가 기쁨을 가진다. 또 역으로 순서를 바꿔서 그와는 정반대인 일도 자주 있게 된다. 즉 정신적으로 비참한 상태인데 온몸으로 즐거운 경우가."

그러고는,

"이것으로부터 그대가, 모든 몸체들이 동등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며, 동등하게 건강을 떠받치는 게 아니라, 바람과 뜨거운 열기의 씨앗인 것들이 지체 속에 생명이 머물도록 더 많이 돌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그러므로 우리의 죽어가는 지체들을 버리는 저 열기와 활기 지닌 바람이 바로 몸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여기는 신체가 '부분'으로 이루어진 복합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저런 예를 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환장하겠는 건 불과 50행 뒤에 "정신과 영혼의 본성이 육체적이라는 것을 가르친다"라고 말합니다. 이때 그가 증명하려는 것은 바로 다름 165행 "한 인간 전체를 조종하여 방향 돌리는 것이 관찰되는데, 이것들 중 어떤 것도 접촉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그는, 앞에서는 '부분-전체' 관계를 해명하면서 '육체-정신'이 따로 놀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부분의 복합물'이라고 말하고, 뒤에서는 '정신-영혼이 육체적'이고 그것들은 서로간의 '접촉'을 통해 영향을 주고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 같지 않습니까? '부분'은 '접촉'을 통해서만 영향받는다, 하는 것으로요. 이때 문제가 되는 것은 '육체적'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정신과 영혼은 육체에 의해 영향받는다'라는 말이 아니라, 물질적인 '원자'이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접촉'해야만 영향을 받는다는 말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건 바로 위 158-160행을 보면 좀 더 분명해집니다.
"영혼이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은 정신의 힘에 의해 뒤흔들리면 곧장 육체를 밀치고 때린다는 것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까 "정신과 영혼의 본성이 육체적"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과 동일한 추론이라고 하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멍이 숭숭 뚫려있기는 합니다. 이 말은, 그런 식의 해석에 뭔가를 더해가며 읽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무언가는 아마도 직관, 영감 뭐 그런 것들이겠죠? 그래서, 세미나 때도 말씀드렸지만, 우리는 이 글을 마치 어떤 '산山'과 같은 것으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계절마다 무수히 많은 것들을 생산하는 그런 '산山' 말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그저 등산객에 불과하지만, 어느 계기를 만나면 숙련된 심마니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댓글 4
  • 2022-04-20 17:01

    심마니라... ㅋㅋ 뭘 또 캐내시려고 하시는 군요...

  • 2022-04-20 18:07

    이런 느낌입니다~ 오 읽혀지네 이해됐…….?

    아니 뭔말이지?? 흠 다시 집중!!

    오….그래 이부분은 읽히는구먼 근데 뭘 말하는 거지?  다시 집중!! 

    이렇게 10번정도 하면 세미나가 끝나는 기분~ 

    이해가 아닌 읽기!! 읽기의 새로운 스타일~

  • 2022-04-21 21:57

    '후기는 가능하면 당일에 쓴다는 원칙'
    멋~~~져요. 전 주말까지 쓴다는 원칙이 있는 데, 왠지 따라해 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네요.
    아직 등산로 초입에서 얼쩡대고 있지만,  심마니까지는 아니여도 등산객이라도 되고 싶습니다.

  • 2022-04-26 00:39

    그럼에도...

    가끔은, 조금은 아쉽습니다.

    한 구절이라도 뭔가 낚기는 구절이 있었으면 했는데

    이 책은 도무지...  어려운 단어는 없는데 이해가 안돼요.

    다음 장엔, 다음 장엔, 하면서 읽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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