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영의 물리학 강의> 마지막 후기

곰곰
2022-03-03 21:09
318

최근에 새로 시작한 <기상청 사람들>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세미나에서 잠깐 언급되어 1회만 찾아 봤는데, (적어도 아직까지는) 제목 그대로 기상청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치열하게 일하는 예보관들을 그린다. 그들에 따르면, 날씨란 소수점의 확률로도 급변하고, 꽤나 많은 요인들의 작용은 물론 사소한 신호조차 놓치지 않을 때 비로소 (날씨 중계가 아닌) 날씨 예보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21세기, 슈퍼 컴퓨터도 있고, 과학기술도 어마어마한데, 날씨 쯤은 똑바로 예측할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우리나라만 아직 헤매는 거 아니냐고 질문한다면??

 

1961년 미국의 한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성능이 좋은 컴퓨터로 기상 예측 모델을 시험하고 있었다. 마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지구와 행성의 운동 경로를 예측할 수 있듯이, 정확한 법칙만 발견한다면 날씨를 예측하는 일도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로렌츠는 열심히 미분방정식을 풀고 있었는데, 애초 숫자 0.123456과 같은 소수점 이하 여섯 자리를 0.123처럼 소수점 이하 세 자리만 입력했더니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발견한다. 1000분의 1과 같은 미세한 오차가 다른 오차를 낳고, 새로운 오차가 또 다른 오차를 낳는 식으로 연쇄 효과를 일으켜 큰 오차를 만들기 때문에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일어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카오스(혼돈)' 이론이 탄생하는 순간이었고, 초기의 미세한 변화가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그의 발견은 흔히 '나비 효과’로 불린다.  

 

그러나 유의할 점은, 카오스 이론 그 자체가 미래가 예측 불가능하다는 이론은 아니며 ‘초기 조건을 완벽히 파악할 수 있다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결정론적인 결론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다만 완벽히 같은 초기조건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 골자다. 그런데 초기 조건에 대한 완벽한 파악이라는 건 '기본입자 하나의 정확한 위치'까지 파악하란 얘긴데, 이건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불가능하다. 결국 초기 조건에 대한 완벽한 파악이라는 전제 자체가 충족 불가능하며, 따라서 미래 예측은 불가능하다. 정확한 날씨 예보 역시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서 ‘카오스’와 '복잡계'를 구분할 필요가 있겠다. 카오스는 이중 진자나 그네를 미는 것처럼 비교적 그 구성 요소가 단순한 계에서 일어나는 예측 불가능한, 복잡한 운동을 일컫는다. 반면, 복잡계는 구성 요소, 그러니까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계이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복잡계의 미래를 예측하는 일이 더 불가능해 보인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앤더슨의 표현대로 ‘더 많으면 다르다’. 복잡계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복잡계가 정작 특정한 패턴(짜임새)을 드러내면서 단순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발견한다. 간단한 예로 많은 청중이 모여 박수를 치는 경우만 해도 남녀노소 많은 개인들이 모여 있는 복잡계인데, 처음에는 제가끔 손뼉을 치지만 시간이 지나면 전체적으로 리듬이 생겨난다. 전체를 놓고 보면 마치 하나가 된 것처럼 똑같은 패턴에 따라서 움직이게 되며 이를 집단 때맞음이 떠오른다. 사회 현상 중에도 이런 예가 많다. 교통 흐름, 도시의 자라남, 여론 형성, 주식시장 등에는 일일이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로 많은 변수가 있는데, 정작 결론은 아주 단순한 패턴을 따르기도 한다. 그러니 그런 패턴을 발견하면 특정한 복잡계의 반응을 미리 예측하는 일이 가능해진다. 실제로 복잡계 과학이 하려는 일이 그런 것이다. 

 

그런데 사실 ‘복잡계’, 또는 ‘복잡성’을 엄밀히 정의하기란 어렵다. 다수가 동의하는 적절한 토대가 없다. 책에서는 복잡성을 완전히 질서정연하지도, 완전히 무질서하지도 않은 중간적인 경우를 말하면서 ‘변이성이 크다’고 설명한다. 영어로는 complex로 표현하며 무질서 따위의 ‘단순한’ 복잡함이나 번거로움을 나타내는 complicated와 구분된다. 예컨대 물에서 얼음이 되는 상전이 현상은 구성 분자 하나하나와는 직접 관련이 없고 그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해 전체 집단의 성질이 생겨난다. 이를 떠오름(창발)이라 하며, 전(물)과 후(얼음) 상태가 완전히 달라지고, 질서(얼음)와 무질서(물) 사이, 경계의 특성을 지닌다고 하여 고비성(임계성)이라 부른다. 모래더미에 계속해서 모래를 뿌리면 모래더미의 물매가 커지다가 어느 한계에 이르면 무너져 내리고 더는 커지지 않는 모습에서 모래더미의 무너짐 크기나 시간 따위가 고비성을 지닌 상태라 할 수 있다. 고비성은 공간에서는 ‘스스로 닮음’ 구조인 쪽거리(프랙탈)로 나타나는데, 어느 한 부분을 확대해 보면 전체 모양이 비슷하게 들어 있는 눈금불변성을 지닌다. 예로는 해안선, 구름의 모양, 단백질구조, 신경망 같은 것이 있고, 이러한 복잡한 구조는 많은 정보를 저장하기 위함이다. 시간에 따라 변하는 신호에서도 복잡성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소리의 진동수가 하나(질서)일 때 지겹게 느끼고, 고르게 섞여 있는 경우(무질서)에는 시끄러운 소음으로 느낀다. 대체로 진동수가 낮은 성분이 많고 높은 성분이 적은 1/f 신호일 때, 시간에 대해 눈금불변성을 지니고 적당히 복잡한데, 이러한 소리를 듣기 좋다고 느낀다. 고전음악이 그러한 예로, 이는 자연스러운 우리의 지각 패턴과 잘 맞아서 그렇지 않나 생각된다. 저자 최무영교수는 시공간에서 고비성이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스스로 짜인 고비성’으로 설명한다. 복잡성을 지닌 상태가 끌개가 되어 고비성을 스스로 짜나간다는 생각인데, 처음에는 복잡하지 않은 계도 시간이 지나면서 복잡성을 지닌 상태로 변해나간다는 것이다. 

 

뉴턴역학과 고전물리학의 관점으로는 물체가 하나 또는 둘인 경우와 같이 간단한 계를 다룬다. 그런 것들은 일반적으로 질서를 보이며 결정론에 따라 기술되므로 계산할 수 있고 예측 가능하다. 그러나 물체가 세 개(이상)라면 얘기는 달라지는데, 19세기 푸앙카레는 삼(3)체 문제의 일반해를 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 계가 커지면 풀이법도 길어지게 마련이고, 풀이법이 존재하지 않으므로 푸는데 걸리는 시간은 지수적으로 늘어나 현실적으로 정확하게 풀 수 없다. 이러한 문제는 본질적으로 쩔쩔맴을 지닌 복잡계의 전형으로서 물리학, 특히 통계역학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복잡계의 핵심 방법인 통계물리학은, 전통적으로는 수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기체나 고체에 관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많은 수의 무엇으로 이뤄진 커다란 시스템으로 볼 수 있는 사회, 경제, 그리고 생명 현상 등으로 연구의 관심이 확대되고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만약 날씨가 초기 조건에 지수 함수로 민감하게 반응하는 카오스 현상이라면 예측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미처 고려하지 못한 초기 조건의 작은 오차가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정확한 날씨 예측은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하더라도 불가능한 목표다. 그런데 날씨를 카오스 현상으로 간주하려면 그것과 관계되는 변수가 아주 적음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아직까지 어떤 과학자도 날씨가 단지 두세 개의 변수가 관여하는 아주 단순한 계라는 사실을 증명하지 못했다. 그러니 한쪽에서는 날씨가 변수 몇 개만 관여하는 카오스 현상이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상호 작용하는 복잡계이기 때문에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형편이라 한다. 어쨌든 실제 기상청에서는 복잡계로 계산하고 있다고 한다. 그곳에선 ‘예측 가능성'을 목표로 할테니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최무영의 물리학강의> 마지막 시간으로 세미나에선 많은 이야기가 오갔는데, 카오스와 복잡계, 날씨 예보에 꽂힌 나는 오늘도 그 얘기만 잔뜩 쓰고 말았다. 다른 이야기들은 다른 선생님들께서 덧붙여 풀어주시리라 기대해 본다. 그리고 다음주 세미나에서는 <김상욱의 양자공부> 1부를 읽고 메모, 또는 질문을 올리기로 했다. 참, 잎사귀샘, 윤슬샘, 걷는이샘, 상선약수샘은 이번 시간을 끝으로 과학세미나를 마무리하셨다. 많이 아쉽지만,,, 또 다른 인연이 있겠죠? 4/4일 게릴라 세미나에서 또 뵙는거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댓글 3
  • 2022-03-04 10:33

    곰곰님 후기 덕분에 마구잡이였던 복잡계가 복잡계 쪽으로 살짝 이동~ 고맙습니다. 저도 기상청사람들 보고 싶어졌어요 ㅎㅎ 저는 과학세미나하면서 관계가 만들어내는 에너지에 꽂혔네요. 인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동적 에너지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암튼 즐건시간 참 좋았어요. 또 만나요~~

  • 2022-03-05 13:18

    기상청에서 시작해 여러 개념들에 대해서 정리하는 시간이네요. 덕분에 차분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네요. 여러분들 덕분에 과학에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은 느낌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 2022-03-06 05:54

    카오스와 복잡계에 대해서 개념을 깔끔하게 잘 정리해주셨네요.

    두개는 전혀 다른건데 헷갈리는 이유는 순전히 언어의 문제인듯

    글쓰기 실력에 깜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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