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철학학교] 시즌3 일곱 번째 후기(4장 끝 5장 시작!)

정군
2022-10-14 00:14
357

이제서야 이 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격적이네요.
'드디어 끝이 보입니다'
<차이와 반복>은 꽤 두꺼운 책입니다. 책들을 두께 순서로 정리하면 가장 두꺼운 쪽은 아닐테니만, 그래도 중간은 훌쩍 뛰어넘을 정도는 되죠. 그런 책을 이제 다 읽어갑니다. 이번주 세미나에서 드디어 마지막 장에 해당하는 5장에 진입했으니까요. 이제 계산대로 진행이 된다면, (결론을 제외한) '본문'은 2주 후에 끝이 납니다.(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이 뜻깊었던 건 토용샘이 돌아오셨다는 점이죠! 그런데 어째서 제가 송구스러운 걸까요...이건 마치 살 기회를 포기하고 돌아온 전우를... 크흡)

 

오늘 5장에 발을 들였다는 이야기는 4장에서 빠져나왔다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지금까지 읽은 부분들 중에 4장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2장에서 도달하는 '시간의 텅빈 형식'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러한 '시간성'의 전모가 4장의 '이념'에 관한 이야기와 결합되어야 제 모습을 갖추게 되니까요. 세미나 중에도 말했던 것처럼, '기수적 시간이길 그치고 서수적이 된다'는 말이 이제야 적절하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들뢰즈에게서는 '시간' 마저도 '발생'의 결과(이면서 원인)였던 셈이죠. 그러면 뭐가 '원인'인가, 원인은 오로지 '존재' 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 '존재'란 '차이'이고요. 이렇게 '서론'에서 제기되었던 '들뢰즈에게 존재란 차이인가'라는 의문도 4장에 이르러서 풀리게 됩니다.

이렇게만 놓고 보면 진달래샘께서 제기해 주셨던, 들뢰즈도 뭔가 '근원적인 것'을 계속 전제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읽은 것들을 놓고 생각해 볼 때, 들뢰즈의 구도 역시 '재현적인 것 너머에서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 - 초월론적인 것'을 탐구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들뢰즈가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그러한 '근원'이 (이렇게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근원'이길 끊임없이 포기하는 '근원'이라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왜냐하면 '차이나는 것'은 미분화되면서 동시에 분화되고 다시 미분화되면서 결국엔 그저 '차이나는 것'으로 밖에 말해지니까요(어떻게도 재현이 안 됩니다) 이런 구도가 요요샘께서 질문하셨던 '상관적인 관계', '상보적인 두 길'과 연관지어 생각해 보면, 우리 세계의 곳곳에서 이런 이분화를 볼 수 있습니다. 아렘샘 질문에 들어 있었던 의식-무의식이나, 종과 부분들, 세포와 유기체, 문자와 텍스트, 수와 함수.... 어쩌면 이 구도를 보면서 '아 여기 뭐가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일 겁니다.

 

결국, 들뢰즈는 <순수이성비판>을 새로 쓰는 것이면서 <존재와 시간>에서 제기된 물음에 답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하이데거에 비하자면 훨씬 구체적이고요. 그게 마음을 좀 편하게 해주기도 합니다. 어려운 건 어려운거고, 답이 분명한 건 어려운 거와는 상관없으니까요.

어쨌든, 이렇게 잘 짜여진 존재론'으로부터' 미학, 윤리학, 사회철학 등등이 '나온다'고 하면 안 될 겁니다. 이렇게 잘 짜여진 존재론은 그 안에 이미 '알'처럼 어떤 사유로도 변환될 수 있는 역동성을 담고 있는 것이니까요. 과학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과학, 분석만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미美적인 것, 도덕만으로는 이를 수 없는 윤리까지 그 모든 것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존재론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건 지금까지 제기했던 문제와는 좀 맥락이 다른데요, 들뢰즈 사유의 이념(이건 일반적인 의미의 이념)이 제대로 펼쳐지려면 역설적으로 이게 어떤 '사유' 어떤 '철학'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사유가 있고, 책이 있고, 학설이 있다면, 그것들이 있는 한에서 결국엔 이론-실천, 원본-재현 구도가 유지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철학자는 책을 쓰고, 현자는 말을 하는 것일까요?

 

어쩐지... 저답지 않게 후기를 너무 진지하게 쓰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데, 그건 아마 세션샘께 3주째 뚜들겨맞고 있어서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기분 탓이겠죠. ㅎㅎㅎ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 진짜 가마솥샘, 아 정말 진짜...

댓글 5
  • 2022-10-14 00:42

    그러니까 제가 가마솥님께 미분 관련 발제를 맡기자고 했을 때 인권(결석) 모 그런 거 따지지 말고 맡겼어야죠.. ㅎㅎ(후기 관련 댓글이 아니라 죄송^^)

  • 2022-10-14 11:03

     정군샘의 일부^^ 들뢰즈 회의론(?)을 들으면서 예전엔 생각지못했던 들뢰즈 철학의 일면을 생각해보게 된 것도 사실입니다. 전 차반이 재현의 기전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이 책을 꽤 마음에 들어했었죠.  근데 정군샘 말씀을 듣다보면  그것과는 별도로 기존의 근거가 무너지고 끝없이 매번 새로운 근거를  찾거나 만드는 일이 그리 멋진 일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그정도가 아닐지도 모르죠. 지난번 정군샘이 올리신 댓글에서 푸코나  들뢰즈의 정치적 사건들에 대한 견해들을 보면 새로이 찾은 근거가 오히려 더 끔찍한  결론으로 치달을수도 있다는 우려도 들고요.  옳고도 좋은길을 찿는다는 건  너무 어려워보여서 한편으론 살짝 절망스러운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들뢰즈의 초월적 경험론은 과거 우리가 보지 못했던 무언가를 보여준다는  희망과 기대 역시 '아직은' 버리기 힘듭니다.  그것이 설사  전통 형이상학의 입장에선 뭔가 논리적 오류가 있는것처럼 보이더라도요. 어찌됐건 이미 돌아올 수 없는 먼길을 떠난듯한 느낌입니다. 예술이나 과학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들고요. 정치나 윤리적으론...더 많이 고민해야될 것 같지만요. 튜터샘과 함께 오랜만에 진지했네요 ㅋㅋ

  • 2022-10-14 22:11

    양식 아래에사 차이가 쥐어터지듯이 세션샘한테 쥐어터지다 보면 평탄해지실겁니다. 

  • 2022-10-16 08:40

    4장에서 5장으로 넘어간 것이 저도 무척 감격스럽습니다. 4장을 읽기 시작할 때의 그 황당했던 심정이 생각나서요.^^ '차이의 이념적 종합'이라는 4장의 제목부터 엄청난 장벽으로 느껴졌거든요.

     

    <차이와 반복>은 새로운 장을 읽을 때마다 물음으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 장을 마치면 다시 새로운 물음이 시작됩니다. 4장을 읽기 시작할 때는 '이념이 모야?' 이런 질문으로 시작했는데, 4장을 마치자 제기되는 질문은 '드라마화, 극화는 어떻게 가능한 거야?'니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극화하는 말이 여기서 처음 등장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일찌감치 앞에서부터 잔혹극이니 뭐니 하는 개념을 접해왔고, 대체 잔혹극이 뭐야, 라는 질문을 해 왔었죠. 그런데 그것이 이념의 극화, 드라마화와 관련된 것이라는 걸 4장 말미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좀 더 분명해 지는 것이 이 책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문제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문제들이라는 것이 사실 새롭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읽었던 부분에서 밑밥으로 깔려 있었던 거라는 점에서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것은 사실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꼬리에 꼬리를 문다는 것은 뭐랄까, 선형적 이미지인데.. 문제들은 서로를 전제하며 겹쳐져 있고,  처음에는 희미했는데 점차 선명해져 가면서 반복하며 순환적으로 관계한다고나 할까요. 서로가 서로와 관계하면서 어떨 때는 이것이 주제가 되고, 또 다른 때는 저것이 주제가 되면서 결국 대체 누가 주인공인지 알 수 없게 되는 반복과 회귀, 그런 문제와 물음들로 구성된 책.^^

     

    그러니 저는 이제 이념이 뭔지, 이념적 종합이 뭔지, 차이의 이념적 종합이 뭔지, 답해야겠다는 의지가 약화되는 것 같아요. 5장의 제목이 '감성적인 것의 비대칭적 종합'인데.. 책을 읽고 세미나를 하면서 여러 쌤들의 생각을 듣다 보면 그것이 대충 어떤 건지 알게 될테니까, 그런 답을 찾으면 속이 시원해질 거라는 기대를 버리기로 합니다. 또 새로운 문제를 만나게 될 것이고, 다시 한 번 반복이 시작될 걸 아니까요. ㅎㅎㅎ 이제는  5장을 마치고 결론을 읽을 때 쯤이면 이 책이  발하는 기호들과 그럭저럭 리듬을 맞출 수 있으면 좋겠다 싶네요. 이건 자포자기일까요? 아니면.. 여전히 새로운 배움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붙들고 있는 것일까요?^^ 후자인 걸로 하고.. 또 책을 읽기 시작해야겠습니다.ㅎㅎ

  • 2022-10-16 16:03

    문득,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이 처음 우리가 머리말을 읽을 때 의미했던 것과 지금 다른 의미를 띠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상'이라는 말을 다르게 다시 새겨본다면 공상과학소설이라는 말은, 적어도 이 맥락에서만큼은 SF소설이라는 말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도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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