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철학학교] <차이와 반복> 읽기 시즌 2 다섯번 째 후기

토용
2022-06-19 23:45
388

도망갈 절호의 기회였다.

세미나 시즌 1이 끝난 후 갑작스럽게 알바를 하게 되었다. 원래 주3회를 생각했는데 매일 하게 되었다. 하고 있던 세미나 조정이 필요할 것 같아 고민에 빠졌다. 가장 어렵고 부담스럽고 시간도 많이 잡아먹는 철학학교가 자연스레 퇴출 1순위가 되었다. 어차피 난 ‘추리소설’, ‘공상과학소설’에 흥미도 없고, 자퇴를 생각했다.^^

 

그.런.데. 못하겠다고 말을 해야 하는데 입이 안 떨어졌다. 이유가 뭘까? 아마도 못하겠다고 말을 할 때 예상되는 반응에 주저했을지도.(이것을 과거의 수동적 종합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응시를 통한 나의 자아가 망설임의 수축으로 나타났을지도.(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나?)

 

여울아샘에게 고민을 말했다. 여러 번 읽느라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쩌고저쩌고 그래서 그만 둘까 한다고.

“이 바보야, 여러 번 읽을 필요가 뭐가 있어. 차라리 세미나를 하고 더 읽는게 낫지.”

비록 ‘이 바보야’라는 말은 안했지만 난 분명히 들었다. 아니 들렸다. ㅋㅋ 현행적 현재에 사라진 현재에서 몇 번 들었던 말이 반복되고 있었다. 물론 차이를 가지고서.

 

현행적 현재는 사라진 현재를 재-현하고 자기 자신을 반조한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과거가 저장되어 있는 과거 일반으로서의 순수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순수과거의 바탕 속에 겨냥된(이 말 은근 맘에 든다) 어떤 하나의 특수한 지점인 것 같다. 따라서 현재는 과거의 수축정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고 거기에서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다. 이것이 과거의 능동적 종합인 것 같은데, 이 능동적 종합은 초월론적인 수동적 종합에 근거한다.

그런데 순수과거가 아닌 현행적 현재에 수축되는 과거가 경험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아니면 순수과거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을 말하는 것일까?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

 

이번 요약숙제는 거의 이해를 못하고 올렸다. 세미나를 하고나서도 여전히 알쏭달쏭한 상태다. 그래서 텍스트와 세미나 시간에 오간 내용에 대한 충실한 후기는 불가능하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미나를 한 후에는 책의 다음 페이지를 향해 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점이다. 이것도 세미나를 반복하면서 생기는 수동적 종합에 의한 차이일까?  아니 이건 능동적 종합인가? 정말 생각하면 할수록 헷갈린다.^^

 

어쨌든 들뢰즈가 계속해서 뭐라고 할지 궁금하기도 하고, 비록 거의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전체 그림을 보면 뭔가 남는게 하나라도 있을 것 같다는 희망도 생기고, 세속의 기준으로 보면 무용한 공부이나 나한테는 전혀 무용하지 않은 이 공부를 하자고 알바를 하는 것인데 그만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고. 결론은 도망가지 않길 잘했다.

 

사족) 무용한 공부라는 말을 하다 보니 노자 세미나에서 읽었던 책 중에 나온 말이 재미있어 적어본다. 위・진 시대 장자에 주석을 단 상수와 곽상이라는 사람이 한 말이다.

“국가의 통치와 무관하다면 모두 쓸모없는 논쟁이다. 그러나 젊은 귀족들이 판에 박힌 글에 싫증을 느꼈을 때 이것에 어떤 흥미를 느껴서 능히 변명석리하여 자기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지적 훈련을 한다면, 그래서 다음 세대가 음란하게 됨을 방지할 수 있다면, 이런 종류의 즐김이 장기나 바둑 두는 것보다 낫지 않겠는가.”

 

 

 

 

댓글 6
  • 2022-06-20 10:12

    공부하자고 알바하는 토용샘 짱!!!  ㅋ

    알바하자고 공부그만두지는 맙시다요 ㅎㅎㅎ

    능동적 종합인지 수동적 종합인지

    순수과거가 에피스테메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 경험만은 아니겠지만 경험과 무관하지도 않을것 같은 생각도 드네요

    토용샘 후기보면서 다시 복습하고 싶은 마음이 막 생기는데 애기 때문에 잠못잔 며느리 쉬게 하려면 제가 애기를 봐야하니 ㅠ 책보는것보다 좋긴한데 참 이를 어쩌나!!!  싶은 생각도 들고 ㅎ

    정신없는 아침에 이러고 있네요^^

  • 2022-06-20 22:40

    시간을 많이 잡아 먹는 '철학학교'가 그럭저럭 여기까지 오고 또 앞으로도 그럭저럭 간다면 아마도 토용샘의 '그.런.데.' 덕분이 아닐까합니다. 저도 '내가 왜 이걸 붙잡고 이러고 있을까, 이거 말고 다른거 읽고 싶은데'란 생각에 패를 내려 놓고 싶지만 또 제 나름의 '그.런.데.' 때문에 슬그머니 다시 붙잡고 읽고 있더라구요. 

     

    '그.런.데.요.'

     

    우리가 필시 4학기를 마쳐 우리는 절반 지난 언저리에서 '그.런.데.' 를 외치고 있을 거 같은데...남은 분량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 2022-06-21 23:01

    추리소설적으로다가 보니까, 여울아샘이 여러 번 읽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군요!! ㅎㅎㅎ

    '순수과거'는 '경험'한 모든 사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모든 사건'입니다. 그리고, 사실은 그게 우주 전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현재가 과거의 수축을 통해 태어나고 동시에 그게 다시 과거가 된다는 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경험'을 하든 하지 않든 과거-현재는 계속 생겨나는 것이죠. 물론 거기에 '정신'이라는 항을 넣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기는 합니다. 그러면 이제 '경험'이 중요해 집니다. '순수 과거'가 현행적 현재의 '경험'에 조건이 되니까요. 

    그래서 제 말의 요지는 토용샘을 붙잡아주신 여울아샘 우왕 굳!, 그리고, 세미나 끝나고도 읽으시고, 세미나 전에도 읽으셔요-라는 것입니다. ㅎㅎㅎ

    (그리고, 댓글 쓸 때마다 나오는 '로봇이 아닙니다' 테스트.... 할 때마다 '계속 틀리면 로봇이 되는건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ㅋㅋ)

     

     

  • 2022-06-22 10:26

    "그런데 순수과거가 아닌 현행적 현재에 수축되는 과거가 경험과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아니면 순수과거가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사건들을 말하는 것일까? 수동적이든 능동적이든?"(토용님 후기에서 인용)

     

    토용님의 이 질문을 생각하면서 2절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그렇게 다시 읽다 보니 순수과거란 '결코 현재인 적이 없었던 어떤 과거의 바탕(198)'이라는 점에 새삼 주목하게 됩니다. 순수과거는 '있었다'가 아니라 '있다'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선재의 역설을 완성하는 것이 '순수과거' 아닌가 싶습니다. 

    '있었다'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사라진 현재라고 생각하면 되겠지요. 결국 사라진 현재와 현행적 현재가 우리의 습관 및 경험과 관련된 것이라면, 순수과거는 습관과 경험이 가능한 근거 아닐까요?

    하지만 순수과거는 그 자체로 (권리상) 독립적이지만 사실은 사라진 현재의 재생과 현행적 현재의 반조 속에서만 자신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무한하게 많은 이완과 수축의 수준 속에서 자신과 공존하고 있다는 역설!(이것이 네번째 역설)

     

    들뢰즈는 경험적 특성과 본체적 특성을 구분합니다.(198) 경험적 특성은 우리를 형성하는 현재들 사이의 관계이고, 본체적 특성은 순수과거의 수준들 사이에서 성립하는 잠재적 공존의 관계라고 말하고 있네요. 그리고 사라진 현재든 현행적 현재든 현재는 이들 잠재성을 현실화하거나 재현하는 거라는 이야기인 듯합니다. 아마도 경험적 특성과 본체적 특성은 개념적으로는 엄밀하게 구분되지만, 실제 우리의 삶 속에서는 동시성의 역설, 공존의 역설, 선재성의 역설, 순수과거 자신의 공존의 역설 등과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아렘샘이 건진 문장, '어떤 가사가 붙든지 곡조는 늘 같고, 음고와 음색이 아무리 달라져도 후렴은 늘 같아진다'를 순수과거가 다양한 수준에서 공존한다는 네번째 역설과 관련하여(물론 앞의 세가지 역설도 포함하여) 이해할 수도 있지 않나,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여기서 '같다'라는 것의 의미가 '동일성'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장으로, 잠재성과 변이를 포함하는 것으로 독해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 2022-06-22 23:21

      곡조와 후렴 부분에 쓰인 수사를 가만히 들여다 보면, 요요샘 말씀하신대로 독해를 해야합니다. 읽는 사람이 어느 정도 봐줘야 한다는 소리입니다. 이를 들뢰즈는 몰랐을 리는 없었을거 같아요. 이런 부분들이 푸코나 들뢰즈가 철학을 말장난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받는 부분이기도 한 거 같아서 세미나 시간에 시비를 좀 걸어보았습니다. 

  • 2022-06-23 13:40

    역시 세미나의 완성은 후기와 댓글이로군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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