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회차 후기] <생물과 무생물 사이> 1~8장

김지현
2023-04-14 14:26
202

문탁 쌤은 “의산복합체가 가장 큰 권력을 쥐고 있는 시대에 나이 든다는 건 의산복합체의 호구로 살아간다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며 이 책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얇은 책이지만 저자는 유전공학의 주요 변곡점들을 짚으며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기존에 익숙했던 방식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생명’을 바라보게 되면,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서도 다른 사유를 할 수 있을까요?

 

영선쌤과 은영쌤의 발제를 들으며 중요한 쟁점들을 짚어 나갔습니다.

 

-바이러스는 생물인가 무생물인가. 바이러스는 대사는 안 하지만 자기 복제를 합니다. 그러면 살아있는 걸까요? 이건 생명을 무엇으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저자는 생명은 ‘자기 복제를 하는 DNA, 그 이상의 것’이라고 보지요.

 

-유전자는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담고 있으니까 DNA같은 단순한 물질이 그 본체일 리 없고 대단한 고분자- 아마도 단백질에 그 비밀이 담겨 있을 거라고 과학자들은 추측했어요. 하지만 실상은 네 개의 알파벳을 가진 단순한 구조의 DNA가 유전자의 핵심이었다는 것. 그걸 밝혀낸 에이버리의 꾸준함+α를 저자는 ‘연구의 질감’이라고 표현하네요. (‘질감’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었어요. 저도 제가 하고 있는 일의 ‘질감’을 생각해봤는데 말로 잘 표현이 안 되네요. ‘루틴’이라고 하면 좀 부족하게 느껴지고, 어떤 ‘리듬’이라고 할 수 있을 것도 같기도 하고...)

 

- 이번 파트에서 중요한 부분은 슈뢰딩거의 관점입니다. 슈뢰딩거는 물리학자의 입장에서 유기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살펴봤어요. 브라운 운동같은 불규칙한 운동이 엄청 많으면 그 안에서 평균이라고 할 수 있는 어떤 질서를 발견할 수 있는데요, 그 질서나 패턴을 유지하면서 또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는 것이 생명의 특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원자는 그렇게 작고 우리는 이렇게 커야만 하는 것이지요.) 생명이 갖고 있는 “안정적인 질서는 어떤 견고한 구조가 아니라 끊임없이 기존의 질서가 깨지고 새로운 질서가 창출되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문탁쌤은 덧붙이셨습니다. 

 

저는 세미나 시간 후에 사람을 윤곽선으로 보는 게 아니라 점으로, 그것도 계속해서 사라지면서 또 새롭게 찍히는 수많은 점으로 보게 되었어요. 순간순간 멈춰서 나를, 지나가는 사람을, 우리 집 반려견을 점으로 상상해보는 게 재미있네요.

 

한편으로는 왜 우리는 이런 관점으로 생명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지? 궁금했습니다. 우리는 저자가 서문에서 말한 데카르트의 기계적 생명관에 더 친숙하잖아요. 문탁 쌤은 우리가 모든 것을 ‘요소’로 보도록 교육받는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콜라겐이나 각종 영양제를 섭취해서 어떤 요소를 보충하려고 하지만, 음식을 씹어서 그게 몸 속으로 들어가면 원래 가지고 있던 정보는 해체되고 우리 몸 속에서 새로운 정보로 구성된다고 해요. 그 자체가 생명이라고 하네요. 도담쌤이 하셨다는 말- “우리는 도라지의 요소, 성분을 먹는 게 아니라 도라지의 기운을 먹는다”- 이 말은 정말 서양의학과는 다른 한의학의 관점을 딱 드러내 주는 말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내 몸의 기운과 도라지의 기운이 만나 내 몸 안에서 어떤 새로운 기운이 만들어지는 것이겠죠?

 

저 개인적으로는, 하도 골골대다 보니까 어떤 몸의 증상이 나타나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어서 (그걸 알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내 몸을 뜯어서 낱낱이 들여다보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 적이 있었어요. 뜯고 쪼개서 모든 걸 확실하게 알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신이치는 ‘나누고 쪼개도 세상은 알 수 없다’고 했다네요. 확실히 생명과 몸은 부분의 총합 이상인 것 같습니다. 생명이나 몸 자체가 가진 지성과 지혜가 있는 것 같고요.

 

‘그러면 돌은 생명이 아닌가?’라는 수진쌤의 질문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저도 궁금해지네요. 물이나 흙은 생명이 아닌 건가요?

 

한편으로는 그러면 노화나 죽음은 어떤 현상인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입자는 왜 계속(영원히) 새로운 걸로 교체되지 않는 걸까요? 기존의 입자가 손상되고 산화되는데, 새로운 걸로 재생되는 속도가 그걸 따라잡지 못해서 노화가 일어나는 걸까요? (책의 다음 파트에 나올라나요?)

 

이런 책은 자발적으로는 절대 안 읽을 거라서(과알못이라...) 저는 이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게 참 좋았습니다. 과학이 인문학적 통찰로 이어지는 게 재미있습니다. 다른 학인분들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세미나 시간에 못 다 나눈 이야기들, 댓글로 올려주세요 🙂

댓글 3
  • 2023-04-14 15:49

    🥰좋네요^^

  • 2023-04-14 18:15

    책을 읽고 핵심 파악하면서 질문 정식화하는 걸 저는 참 못해서 때론 괴롭기도 한데, 지현샘은 그걸 잘하시네요!
    사실 저는 작년에 ‘동적평형’ 읽고, 이어서 ‘생물과 무생물사이'도 한번 읽었던 터라, 이번엔 드라마 재방송 보는 것처럼 약간 긴장도(?)가 떨어진 채로 책을 봤습니다. 세미나 시간의 이야기들과 지현샘의 후기를 보니, 중심 잡고 후반부 잘 읽어보자는 마음이 더 생기네요. 신비로운 생명현상과 경이롭게 연결된 세상에 집중해 남은 부분 읽어야겠습니다. 후기에 남겨주신 질문들은 그대로 다음 시간에 함께 논의해 보아도 좋겠어요.
    1-8장 읽으면서 저는 ‘연구의 질감’이라는 저자의 표현을 보면서 그게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습니다. 후기를 보니, 지현샘은 그 질감에 대해 저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셨네요. 저는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 무슨 의미일지 계속 탐구해보고 싶습니다. 신이치는 자신의 경험에만 갇혀 세상을 본다면 ‘보이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고 꾸준히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을 방법, 내 경험이 만든 범위를 뛰어넘어 인식(사고)의 범위를 확장하는 방법이 거기(연구의 질감이 의미하는 무엇)에 있다는 것 같아서요.

  • 2023-04-16 20:51

    정리 정돈이 잘된 방을 둘러보며 묵직한 질문과 마주하는 느낌의 후기를 들려 주신 지현샘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한편으로는 그러면 노화나 죽음은 어떤 현상인 건지 궁금해졌습니다. 인간의 몸을 이루고 있는 입자는 왜 계속(영원히) 새로운 걸로 교체되지 않는 걸까요? 기존의 입자가 손상되고 산화되는데, 새로운 걸로 재생되는 속도가 그걸 따라잡지 못해서 노화가 일어나는 걸까요? "

    이 질문은 생물과 무생물의 사이를 읽으며 개인적으로 자꾸 하게 되는 질문이었습니다. 아직 아 그렇구나 하는 답을 못 찾은 건 과알못 탓인지, 문해력 탓인지^^;;

    이 책은 과학을 문학적 상상력으로 건드리며 차분히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뉴욕과 맨하튼 보스턴 도시를 궁금하게 하고 이름 없는 영웅들에 대한 담백한 시선이 과학적 사실 전개와는 별도로 마음을 끌어당겼습니다. 왓슨과 크릭처럼 화려한 꽃으로 세상에 드러나는 사람과는 대칭 되는 자리에 있는 에이버리나 프랭클린 같은 연구자들에게 마음이 갑니다. 주류와 비주류, 제도권 혹은 비제도권, 정규직 비정규직 같은 다양한 현실의 삶의 자리와 연결되기도 하고요. 그런 삶의 자리는 다양하거나 풍성하게 활용되지 못하고 단절되는 냉혹한 차별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현장의 질감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과정의 공정함으로 대우를 받고 존경 받으면 좋겠는데 말입니다.

    제7장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 에서는 훈련을 쌓은 의사와 일반인들이 엑스선을 보는 차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엑스선을 볼 때 작동하는 차이를 이론의 부화로 설명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나 일견의 무게가 다르다는 것,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는 최종적인 결과는 말로 표현되며 그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이론 부화라는 필터인 것이다.’

    저는 이 부분에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도 엑스선을 바라보는 의사와 일반인들처럼 차이가 있겠지요. 프랭클린이 연구하고 있는 자료를 보고 있던 윌킨스와 한 번 보고 차이를 알아차린 왓슨의 차이를 저자는 인정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그리고 최종적인 의미는 말로 표현되어야 하며 그 말을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이론부화라는 필터라는 말도 사회적 관계 안에서 왜 말을 찾는 배움을 해야 하는지 또 다시 각성^^. 생명과학의 세계, 분자생물학 세계는 뭔 말을 하는지 잘 몰라서 알려고 하지 않은 세계였는데 매우 새로우면서도 다른 이론 필터의 부화를 갖게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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