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자기서사> 세번째 후기

김미정
2022-03-31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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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만 하나씩 하고 있던 세미나를 평일 하루 쯤이야.. 라고 생각하며 신청했던 가벼운 마음과는 달리, 요즘엔 수요일이 제일 바쁘네요. 퇴근하면 빨라야 7시 집에 도착해서, 휘리릭 청소기 돌리고, 남편과 아이가 먹을 저녁을 준비하고 나면 8시 세미나 시작이 코앞이네요. 도대체 나는 무엇을 서원하기에, 법구경에 양생글쓰기에 이어 아인슈타인까지 신청을 했는지... 아직까지는 인문학 신입생이어서인지 공부와 깨달음이 주는 즐거움(?)이 제일 큰 동기부여인 듯 합니다. 저에게는 지금 현재의 여러가지 쾌락 중 하나이고요.

 

세 번째 시간, 오늘은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 남은 뒷부분 12장에서 23장까지에 대한 내용을 발제하고, '쾌락'과 '죽음'이 큰 키워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권영애 선생님은 쾌락에 대한 키케로의 생각을 수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발제하셨고, '쾌락'에 대한 부분은 2부에서 더 자세하게 다뤄보았습니다. 황재숙 선생님은 '바라지 않는 것이 더 즐거운 것'이라고 했음에도 여전히 우리는 많은 것을 바라고 있다는 것, 이어서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늙고 병드는 것이라며 어떻게 노년을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해 발제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우리는 키케로가 믿고 있는 불사의 영혼의 존재에 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문탁선생님의 걱정(?)대로 갑분철학시간이 될 수 밖에 없었던 흐름이었습니다. 동양철학의 유가부터 인도 5원소설? @@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생각하는 영혼이란...영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사유이며 정신으로, 육체는 늙지만 영혼과 사유는 늙지 않는다..그러니 너의 영혼을 돌보고 배려해라. 스토아적 관점에서 죽음은 하찮고 하나도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 (만약 대학에서 교양과목으로 이 내용을 들었다면 백퍼 졸았을 것 같은데, 지금은 들어도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그냥 재밌습니다..ㅎㅎㅎ)

 

쾌락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쏟아낼 줄 알았는데, 죽음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이 있는 듯 하였어요. 영혼 불멸한 존재라면 우리는 왜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가? 육체를 여인숙에 비유하며 잠시 머무는 곳이라고 했던 키케로의 말을 빌린다면, 왜 우리는 잠시 들른 이 곳에서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가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요. 죽음은 무엇인지, Covid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인지, 안락사 또는 존엄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등..계속되는 물음표. 김윤경 선생님은 키케로의 '인생에 대한 물림'과 장회익 선생님의 '이 정도면 됐다'의 연결됨을 말씀하셨고, 이효진 선생님은 인생이라는 것이 '나의'가 아니라 '우리의'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들... 세미나 시작부터 발제해서 그런지 많은 생각들을 말씀하셨고, 오늘은 문탁 선생님의 강의가 없었음에도 얘기를 주고받는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더라고요. 저도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처음으로 나의 죽음에 대해서 아주 조금 생각해보게 되었는데, 문탁 선생님께서 한 때 하셨던 고민과 생각들을 말씀하신 부분이 저에게 와닿았습니다. '언제 죽는게 문제가 아니라 여한이 없으면 된다. 그리하려면 지금 여한이 없이 살아야 한다.'

 

2부시간에는 키케로가 말한 쾌락에 대해 이야기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에서의 쾌락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았습니다. 노년이 되면 쾌락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는가, 젠더나 개인에 따라 달라지는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쾌락을 부추기는 환경에 배치되어 있기 때문인가...욕망 자체는 적은데 사회적으로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에 대해서도... 한수 선생님이 말씀하신 뇌간이 나이들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이야기, 신혜 선생님의 자신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을 생각하고, 점점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데에 따른 즐거움도 (세미나 당시에는 말씀 못드렸지만) 깊이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2부 끝 마무리를 못 들어서, 어떻게 남은 이야기를 전개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잊어버릴까봐 바로 후기를 작성함에도, 많이 얘기한 것에 비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 같아요. 제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이 많은가 봅니다. 혹시 더 중요한 내용이 있었는데 빠져있다면 댓글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향후 일정들

- 남은 세미나 진행 범위 : <동적평형> - 4주차(1장~4장, 발제인원 2명), 5주차(5장~8장, 발제인원 2명),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는 발제인원 3명

- 10주차 발표 일정 : (오프라인 - 문탁네트워크에서) 2022. 5. 29.(일) 오프라인 참석이 어려운 분들은 줌으로

- 영화는 각자 보되, 영화에 대한 리뷰시간은 2022. 5. 1.(일) 저녁 8시에 하기로 했습니다.

- 시즌 1에 대한 씨앗문장 쓰기 피드백은 2022. 5. 4.(수) 13시 / 16시 / 20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13시(4명 - 잎사귀, 초언, 해성, 언덕) / 16시(6명 - 한수, 영애, 재숙, 윤경, 새봄, 경희) / 20시(6명 - 은실, 효진, 지영, 신혜, 호수, 미정)

 

 

빠짐없이 적는다고 적었는데, 혹시 제가 잘못 기재한 내용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이제 저는 마음 편히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ㅎㅎㅎ

 

댓글 14
  • 2022-03-31 08:02

    호기심과 궁금증으로 시작..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던 세미나였는데.. 매번 많은 생각이 드는  수요일 입니다. 죽음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며 두려움이 아닌 받아들임.. 삶에 대한 능동성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 노년을 겨울이라고 말씀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겨울의 평온함을 좋아하기에 앞으로 맞이 할 그 시기가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

  • 2022-03-31 08:58

    카토의 말을 들으며 현대인의 삶은 감각적 쾌락이 아닌 삶을 풍족하게 해줄 놀이의 경험과 죽음에 대한 고찰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경험이 부족하니 죽음이 두렵고 감각적 쾌락만을 선호하게 되는거 같아요.

    그러면에서 카토가 말하는 덕있는 삶은 정말 평생 가꾸어가야 할 자산 같아요. 카토의 다양한 죽음에 대한 사유와 풍성한 놀이들이 부럽더라고요.

  • 2022-03-31 13:41

    미정쌤이 깔끔하게 정리해주신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수업이었는데 수업이 시작함과 동시에 잘못된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문탁쌤 말씀대로 매일 매일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공부인것 같습니다. 

    어제 수업에서 얘기했던 노년의 쾌락에 대해서, 저는 한스쌤의 말씀에 공감했습니다. 노년의 쾌락중에서도 식욕과 성욕을 들어 비교해 보자면, 많은 사람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성욕은 떨어지는데 식욕은 그에 비례해서 떨어지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식욕과 성욕은 다른 층위가 아닌 같은 층위에 있는 쾌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만 사회적으로 처한 환경의 차이 때문에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우리가 식욕처럼 성욕도  좀 더 개방적으로 사회적 용인이 된 상황이라면 성욕 또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급격히 떨어지지는 않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 수업과 다른 선생님들의 말씀이 또 기대가 됩니다^^ 

  • 2022-03-31 14:25

    정해진 시간보다 늦게 끝났는데도 할 이야기는 각자의 마음속에 더 남아있는 것 같아요.

    다른 zoom 모임에서 전체 모임- 5명 정도의 그룹 모임- 다시 전체 모임으로 진행하는 걸 경험했는데, 그런 방법은 어떨까 싶어요.

     

    어제 말하려다 그만 둔 황재형 선생님의 그림을 간단히 소개해 드릴게요.

    ‘아버지의 자리’는 젊어서 광부 일을 하셨던 분을 모델로 그렸어요. 탄광은 문을 닫은 지 오래 되었고, 이 분은 진폐증을 앓고 계시다고 해요. 주름진 얼굴, 흐린 눈, 꾹 다문 입술에 무한한 삶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듯해요. 저에겐 엄청 충격으로 다가온 그림이에요. 보고 있으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와요. 그분의 삶에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어요.

    ‘존엄의 자리’는 화가의 숙모를 그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아버지의 자리’와는 달리 긴 세월을 달려와 무심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게 맘에 들어요. 주름 주름마다 얼마나 기막힌 이야기들이 스며있을까요. 황재형 화가가 60 즈음에 그린 것으로 추정합니다. 제 기억으로 실제 그림크기는  집에 있는 방 문짝만 해요. 

    김창완이 부른 ‘시간’은 비교적 최근 곡이죠. 60대만이 만들고 부를 수 있는 노래 같아요. 60대에는 60대만이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는 거죠. 틀니 이야기가 나오고, 씁쓸한 분위기가 느껴지지만 그런 아름다움도 있다고 생각해요.

    젊은이가 풍기는 아름다움과 나이 든 사람의 아름다움은 조금 다룰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이의 아름다움이 산뜻하고 싱그러운 것이라면 나이 든 이의 아름다움에는 깊이와 울림 같은 게 있지 않을까요?

  • 2022-03-31 15:16

    새벽 1시에 후기를 쓰고 올리신 미정샘의 열정과 에너지에 고개가 숙여집니다. 

    문탁 선생님이 세미나 시작에 말씀하신 "읽는 다는 것은 각자의 조건에 맞게 읽는다."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함께 하는 세미나의  이유이자 힘인것 같습니다.  서양철학사를 공부하던 대학 초년생때에도 재미없다고 넘겼던 플라톤, 소크라테스, 4원소설, 이후 언급된 수많은 개념들... 이런 공부를 제 발로 찾아 하시는 분들이 다시 보였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자리에 누웠는데 더 공부해야할 목록들이 천정에 대롱대롱했답니다. 

    제가 '키케로의 말에 수긍하는가?'라고 열어 간 것은 이책에서 이야기하는 '쾌락'의 정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이유에 대한 저항이었는데 스토아 철학을 벗어나서 논의하자면 여러가지 이야기가 더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년이 되면 육체적 욕망이 줄어드는가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욕망은 에너지이고 총량은 같다. 욕망이 변형되는 것이다.'에 수긍이 갑니다. 노인은 일반적으로는 젊은이들에 비해 육체적 욕망은 크지 않아 보이지만 젊은이들이 가지지 않은 욕망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갑자기 '훅'하고 들어온 말은 "왜 지금 죽으면 안되는가?"였습니다. 죽기에는 너무 이른 나이라서... 돌볼 가족이 있어서... 하고 싶은 일이 많아서...그러면 언제라면 죽기에 적당한 때일까? 여한이 없이 살면 된다하는데 어느만큼이라야 여한이 없다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제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왔던 '죽음'이라는 화두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다음 세미나가 기다려지네요. 아쉽게도 저는 6일부터 4박5일 '자발적 고립'으로 들어가게 되어 참석이 어려워요...

    • 2022-03-31 16:49

      앗, 궁금하네요. 어떤 '자발적 고립'이실까...

  • 2022-03-31 16:29

    세미나에서 나눠주신 선생님들의 이야기들 한 마디 한 마디가 깊은 울림을 주어서 소화하기가 쉽지가 않네요. ㅎㅎ 

    한 주간 좀더 정리해가야겠어요. ^^ 

    저는 문탁샘이 3차 세미나 공지에서 올려주신 것처럼 '아스케시스'가 금욕이나 고행이 아니라, 충만한 채움이고 완수되고 완결되며 자족적인 "자기 구축"이라면,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은 '제거'되거나, 남아있는데 없는 것처럼 '억제'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 방향이 구부려져 보다 나은 길로 향하고, 자연스러운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의 반복 속에서 (삶에 대한 물림을 경험하며) 소멸을 향해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문화에는 인간의 욕망의 방향을 구부릴 수 있는 다른 메시지들이 너무 없지 않은가... 그래서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수행과 노력과 고민과 공부가 중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제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건대, 적절한 욕망을 느끼는 것은 삶의 에너지와 의지를 갖는 데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태생적으로 삶의 원초적인 욕망이 많이 없어서 어렸을 때, 삶의 어려운 시기마다 쉽게 좌절하고 포기하고 우울해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드니 작은 욕망이라도 끄집어 내서 '삶의 에너지'로 만드는, 다소 작위적인 노력조차 참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어쨌든, 원초적인 욕망이 주는 삶에 대한 의지나 에너지가 없다면 우리가 삶을 건강하게 영위할 수 있을까? 고결한 목표조차도 원초적인 에너지와 힘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는 그런 점에서 한스 선생님께서, 나이가 들어도 뇌간은 별로 퇴화하지 않는다는 말씀을 듣고-

    인간이란 어쩌면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삶에 대한 애착과 의지를 버리지 않도록 창조주께서 계획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원초적인 욕망을 성취하도록 계획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생을 포기하지 않고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아가도록... 어떤 의미에서 삶은 오래 인내하며 살아갈 것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다른 모든 뇌의 부분이 나이들면서 퇴화하는 데 원초적인 필요를 관장하는 부분만이 남아, 어린 시절의 원초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 안타깝고, 내 자신이 그런 시간을 맞을 것도, 사랑하는 가족의 그런 모습을 볼 것도 당황스럽고,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닥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더 생각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어린 아이와 같은 인생의 시절을 맞이하는 것이 인생에서 갖는 의미는? 그런 시기를 대비한다는 건 뭘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더군요.  문득, 황재숙 선생님께서 메모 말미에 올려주신 황재형 씨의 노인 그림들이 생각났어요. 일견 아름답지 않지만, 또 계속 보고 있으면 '아름다움'이란 게 무엇일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그런 인상 깊은 그림이었지요. 

    노년의 아름다움과 가치라는 건 그처럼 단순하지가 않은 것 같네요. ^^;;   

  • 2022-04-01 06:05

    정말 한주 한주 흥미롭고 진지한 세미나 시간입니다. 

    인간은 분명 이런 지적인 작업에 성취감을 느끼면서 진화를 해온게 맞는거 같습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나면 뭔가 벅차오르는 내 삶에 좋은 것을 준것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전 그래서 공부를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세미나 진도에서 전 두 단어에 꽂혔습니다. '물림'과 '육체의 거푸집'입니다.

    "삶에 대한 물림이 죽음의 성숙한 시간을 가져오지"(110쪽)

    "삶이 이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확실히 물림이나 끝을 갖고 있다네"(117쪽)

    전 이말이 장회익 선생님의  "아이고 지금까지 참 의미있게 살기는 했지만,

    이제는 좀 힘들다. 이제는 조용히 쉬고 싶다" 가 생각나게 했어요.

    문탁쌤의 " 언제 죽는게 문제가 아니라 여한이 없으면 된다.

    그리하려면 지금 여한이 없이 살아야 한다."  말씀과 연결이 되더라구요.

    그래 지금, 생명의 에너지를 지구의 한 일원으로서 살아내면 되는 것이다.

    또 다음 "육체의 거푸집"은 제가 건설현장에서 일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었는데요.

    제가 콘크리트 품질관리를 주로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거푸집에 익숙합니다. ㅎㅎㅎㅎ

    지난해 제가 공부한 장자의 한 구절이 떠올랐어요.

    "천지는 나에게 형체를 주어 삶으로써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써 나를 안일하게 하고,

    죽음으로써 나를 안식하게 하네, 그러므로 (도를 얻어) 내가 잘 살아야 마침내 내가 잘 죽어갈 수 있는 것이네.

    [중략] 지금 천지를 큰 용광로로 여기고, 조화옹을 대장장이로 여긴다면, 

    나를 무엇으로 변하게 하여 어디로 보낸들 안 될 것이 없네!

    사람의 형제가 이루어지면 그 안에서 잠을 자다 어느 날 정신이 떠나면 홀연히 깨어난다네."

    미정쌤이 '왜 우리는 잠시 들른 이 곳에서 아등바등 열심히 살아가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 밖에요. '

    라고 하셨는데 전 우린 육체의 거푸집에 부어졌으면 일단 그 안에서 수고롭게 살아야

    늙어 안일하게 되고 죽음으로 안식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ㅎㅎㅎㅎ

    그것이 이 우주의 한 생명체로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죠. 뭐 구지 이유가 있겠습니까 만은.^^

    그래도 덕이 있는 노년이 되도록 남은 시간 아스케시스를 실천하며 살고 싶네요.

  • 2022-04-01 09:16

    이렇게 빠른 후기라니요. 게다가 충실하기까지^^ 
    놀라울 따름입니다. 워킹맘으로 열심히 공부와 일, 육아를 하는 미정샘이 그려지네요. 
    저는 키케로의 노년에 대한 즐거움 중 쾌락과 관련된 내용에는 큰 의문없이 공감했어요. 
    "왜 내가 쾌락에 관해 이리도 많이 이야기했겠는가? 노년이 쾌락을 거의 바라지 않는다는 사실은 노년에 대한 비난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칭찬거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지."p71
    40대 중반을 넘어서니, 식욕과 음주욕이 급격히 줄어들었고(다른 샘들의 얘기를 듣다 보니, 소화 기능이 떨어져 어쩔 수없이 욕망이 줄어든 것 같긴 해요) 갈등 요소였던 성욕도 어느 순간 급격히 떨어져서(문탁샘은 아직 그러기에는 이른다고 하셨지만^^) 나름 욕망에 끄달리지 않고 평온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문탁샘의  3회차 발제에서 추천하신 유투브 영상을 보고 생뚱맞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노년이 되면 젊은 날의 욕망이 줄어든다는 전제에 바로 수긍했던 거겠지요.
    다른 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년의 쾌락과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덮어뒀던 욕망과 같이) 천천히 고민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미나가 끝난 후에 더 생각하게 만드는 훌륭한 세미나네요. 

  • 2022-04-01 09:44

    바쁜 와중에 열심히 공부하시고 또 열심히 생각을 정리하시는 미정샘과 함께 공부해서 기뻐요. 후기 감사합니다. 저는 그날 나눈 여러 갈래의 이야기 중에 황재숙샘의 죽음보다 두려운 것은 늙고 병든다는 것이라는 말씀, 문탁샘이 지난 사스 때 죽음이 두려운 것은 여한없는 삶을 살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씀, 그리고 잎사귀샘이 우리가 정말로 죽음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라는 질문, 그러니까 죽음을 둘러싼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돌아보면 죽음이라는 주제는 어릴 때부터 종종 돌아보던 것인데 이것도 가만 돌아보면 제 태도에 많은 변화가 있었네요. 어릴 때는 전쟁이 일어나면 죽은 척해야지라든가, 내가 일제시대를 살고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을까라든가, 라는 귀여운(?) 생각을 했다면 사춘기를 지나 우울이 길게 연장되었던 20대에는 전원스위치를 꺼버리듯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던 것 같고, 그뒤에도 죽음이라는 생각은 늘 어쩐지 가까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언젠가부터는 죽음 자체에 대한 두려움은 줄어들었던 것 같아요. '탐진치 소멸'을 위해 정진하시는 황재숙샘께서도 여전히 '늙고 병든다는 것'이 더 두렵다고 하시면서, 사실 그 두려움을 자세히 적으셨을 때 육체적 통증보다는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볼 수 없게 되는 정신적 고통에 더 집중하셨어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거 같고 저도 그랬습니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그런 것들이었어요.
    어제 늦은 나이에 이직을 결정하고 첫 출근을 며칠 앞둔 남편과 밤에 맥주잔을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며칠 전에 말한 췌장암으로 투병하는 지인을 그날 만나고 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이가 저와 비슷한 또래 같았는데 여러가지로 안타까운 상황이었어요. 지금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지만 "내가 오늘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며 삶이 더욱 감사해진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어요. 전과 다르게 어제는 어쩐지 이전과는 다른 감정이 들었고 문득 눈앞에 안주로 놓인 포카칩이 평소보다 유난히 노랗게 느껴졌어요. 손과 입에서 부서지는 바삭한 느낌까지 유난히 생생하게요. 그러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느끼는 이 모든 감각과 경험이 지금은 있지만 어느 순간 없는 것이 된다는 것을 떠올렸습니다. 지금은 있지만 어느날은 없는 것이 된다. 그렇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강렬한 살아 있음에 대한 기쁨과 감사와 더불어 모든 살아 있는 것은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이 정당하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길에 난 풀 한 포기도 살아 있음은 그 자체로 정당하니까요. 내가 늙어서, 또는 늙기 전에라도 내 몸을 스스로 돌보지 못해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고 해도 어쩌면 그것은 살아 있음의 사소한 부분일 뿐이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을 정당히 여길 수 있다면 다른 누군가의 살아 있음 역시 정당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거기서 돌봄의 문제도 다른 차원에서 보였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살아 있음을 의식하지 못한 상태가 된다고 해도 내가 없는 상태가 아닐 수도 있듯이 죽음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전에 느껴보지 못한 기분인데 앞으로도 또 천천히 생각을 이어가보고 싶어요.

  • 2022-04-01 11:25

    김미정 샘, 일정예고 까지 기록된 후기 감사합니다. 후기들도 모두 개성적이네요^^

    세 번의 세미나 내내 드는 생각.

      1. 참여하시는 선생님들이 젊으시다...(앗!)   2.공부열기가 대단하다...(우와~)

    세번째 세미나 뒤에 남은 느낌.

    1. 권영애샘 메모에서 눈길이 꽂혀버린 곳: "무력하게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이 안타까우셨다던 곳. 노년의 분명한 일부분, 세상에 대한 관심을 거두게 되면 생기도 사라진다. 지금도 종종 그럴 수 있다.   겨울로 가는 나의 환절기는 관심의 방향을 돌릴 곳들을 찾는 작업 중.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우린 세미나내내 신체적 쇠락과 욕망의 사라지지 않는 부분을 얘기하며 영혼의 건강을 다시금 확인하는 듯 했는데. 정녕  영혼이 그처럼 중요하다면 영적 비아그라라도 사먹고 싶다. 영혼의 실력도 약해질 수 있는 것이기에.

    2. 김지영샘의 추론: 도대체 왜 영혼불멸을 얘기하는지, 세대를 넘어서 전수되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던.  우리는 2000년전의 키케로를 읽고, 우리가 흔적을 남겨 놓은 곳에서 적어도 수백년은 다음 생명들이 태어나 살아갈테니, 잘 사는 일에 관심을 두어야 할 이유 하나는 분명히 나오는 듯. 이유를 떠나 이런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은 마음이 따듯할 것 같다는 느낌. (+ 누군가 플라톤의 에르 신화도 언급했는데, 그분도 따듯한 분..^^)

    3. 키케로의 두 청중: 젊은이들에게는 지금 누리는 것들의 유한함을 알려주어 삶을 긍정하고 잘 살도록 (역시 따듯하게), 노년들에게는 유한함을 받아들이도록. 끝을 직면하도록. 괜찮을 수 있다고 (차가운 것도 차갑지만은 않게).

    4. 황재숙샘 그림과 노래: 노래는 종일 들은 뒤에 자면서도 듣고,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 공유. 아름다운 얼굴그림은 오래 들여다봄(내 주름으로는 아직 멀었구나..).

  • 2022-04-01 23:52

    후기마저 꼼꼼하고 깊이있고... 살짝 주눅든 마음을 달래며 후기를 시작해 봅니다.

    지난 시간 여러 말씀 중에서 ‘인정욕구' ‘존재의 증명'이 저에게는 예사롭지 않게 들렸습니다. 

    ‘인정욕구’ ‘존재의 증명’, 살아있다면 가질 수밖에 없는 욕구이고 자기물음 아닌가? 개인이 그것을 숙고하고 성찰하도록 하는 사회가 아니어서, 결국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행위(기준)에 매달리며 청년, 노인 구분없이 같은 것에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 근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86세대와 청년층(MZ세대)의 갈등도 유사한 것 아닌가? 추하게 늙어가고 싶지 않은데… 젊을 때 추구했던 것을 (키케로의 표현대로라면) 물리지 않았다고 강하게 부인하는 것, 그것이 추한 것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러남이란 무엇인가? 새로 들어설 인생의 장에서는 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하며 살아야하나? 생물학적으로 부닥친 현실이 갱년기라면, 사회적으로 내게 묻는 질문은 그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 고민의 과정에서 저는 수요일 저녁 여덟시 여러분과 만나기에 이르른 것이죠.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행위, 라는 지점에서는 문탁셈이 ‘특히 노인 여성의 성적 쾌락'에 관한 의제를 던진 뜻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닌 것 같지만 어쩔 수 없이 사회가 정한 준거틀에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휘둘리게 마련이고, 인식 또한 문자로 쓰여있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준거에 포함되니까요. 집요하게 묻고묻고 또 묻는 철학, 페미니스트… 너무 거리두지 말자고 반성했습니다. 그러한 태도와 실천이 인류의 존엄을 만들어온 역사이기도 할테니... 

    아래는 그냥 저만의 뒷얘기 

    지난 일요일 <노년에 대하여>를 다 읽고 저는 이런 메모를 남겼습니다. 

    결국 훌륭한(?) 시기로서 노년을 맞이하려면 인생의 전주기를 잘 살아야한다. 이 책을 노인과 청년들의 대화로 구성한 이유도 노년을 맞이한 자신보다는 젊은이들이 어느 시기건 스스로의 인생을 잘 살아가기를 소망한 때문 아니었을까? 미래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현재 나의 문제. 

    이후 수요일까지 아무 생각이 없다가 덜컥 세미나 입장. 세미나 시작하자마자 메모하신 분들의 무게감 있는 말씀들. 스토아철학에서 바라보는 ‘영혼’에 대한 문탁셈 설명을 들으며, 텍스트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탐구하지 않고 내 맘대로 해석하고 넘어가는, 참 엉성한 나란 인간을 반성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죽음으로 인생은 비로소 완성된다’, ‘생이 아름다운 것은 죽음이라는 완전한 소멸이 있기 때문이다’ 등,  어딘가 낭만적 구석이 있는 표현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스토아철학의 ‘영혼'이 분위기 깨고 속편 예고하는 것 같아 한편으로 묘한 반항심이 생겼어요(이게 그럴 일인가 ㅎㅎ). 그러던 차에 절대 잘못된 정보일리 없는 한스셈의 ‘뇌간' 이야기! 저는 무릎을 탁 쳤습니다. ‘거봐 인간도 그냥 생물체의 하나.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건 생명유지를 위한 본능같은 것들이잖아' 개버릇 남 못주고, 제맘대로 생각을 끼워맞추며 세미나를 마치기에 이르렀습니다. 집요함과 지구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저로서는 다음 책이 철학서 아니어서 다행입니다~ 끝.

  • 2022-04-03 10:53

    통찰력 있는 질문들과 대화들 좋았습니다. 그리고 자세한 메모들 덕분에 놓친 부분들을 정리할 수 있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워낙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하고 논의가 복잡해져서 나중엔 따라가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죽음을 두려움으로 인식하는 것 이외에 고민을 깊이있게 하지 못하고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내가 어떤 불안함을 가진 채 죽음을 맞이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이 문제를 더 탐구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제가 책을 읽고 메모했던 내용입니다. 제가 논의를 잘 못따라간 것 같아 독서감상문이라도 올립니다.

    키케로는 노년기를 육체적 쾌락에 대한 열망이 수그러들고 대신 정신적인 가치(“이성” “지혜” “덕” 등)를 삶의 중요한 가치로 삼을 수 있는 가능성이 활짝 열리는 시기라고 한다. 그런 노년의 삶이라면 정말 기대가 된다. 하지만 현재 내 삶을 들여다 보면  다양한 층위의 욕망들 (성욕, 물욕, 인정욕망, 지적 욕구, 영성이나 지혜에 대한 열망)이 때와 조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발현되고 이러한 패턴은 나이가 들더라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런 나의 노년기가  과연 정신적인 것들로 구성될 수 있을까엔 의문이 생긴다. 쾌락이나 감각적 만족에 휘둘리지 않는 삶은 분명 매력적으로 들리고 어찌보면 이상적인 노년의 삶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는 인간의 생존본능과는 동떨어진 이데아적 세계를 말하고 있는 거 아냐하는 의심은 지울 수 없다. 다양한 욕망들이 그대로 내 안에 남아 있고 그것들이 들끓고 있더라도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떻게 하면 휘둘리지 않을 수 있을까를 숙제로 삼는 게 지금의 내 수준이나 처지에서는 더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키케로가 그린 쾌락에서 벗어난 노년의 삶이 매우 추상적으로 느껴져 그가 어떤 구체적인 예시를 들었는지를 살펴 보았다. 책에서 내가 찾을 수 있던 단서는 연회과 농부의 삶에 대한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모여서 대화를 하는 그러한 연회의 즐거움보다 육체적 쾌락이 중심이 된 연회의 즐거움이 더 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네. 선조께서 연회에서 친구들과 함께 눕는 것을 함께 삶이라고 불렀는데 이와 같은 행위가 삶을 결합시켰기 때문이지 (pp. 72-73).”

    “내 견해로는 어떠한 삶도 농부의 삶보다 행복할 수 없다네. 밭을 경작하는 농부의 일만큼 인간에게 유익한 것도 없고, 앞서 언급한 즐거움이라는 측면에서도 그러하며 그리고 인간에게 필요한 식량과 신들을 위해 사용할 제물을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도 그러하지 (P. 89)”

    두 예시만을 놓고 보면 키케로는 우정의 공동체 안에 있는 것, 그리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노년기에 해야 할 또는 즐겨야 할 가치있는 일이라고 본 것 같다. 이 예들을 통해 본다면 내가 어떤 노인이 될지, 어떤 노년의 삶을 살지 고민하는 것은 다른 사람과 어떤 관계를 맺으면서 살지를 고민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키케로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 2022-04-04 19:23
    정리문과 댓들들을 보면서 우리 <나이듦과 자기서사> 멤버들의 열정에 힘과 에너지를 느낍니다.
     
    지난번 세미나에서 노인에서 기력은 소진되어 불이 꺼지는가? (그건 잘 익은 과일이 무르익어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노인은 뇌 기능이 점점 위축되다가 나중에는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생물학적 기능인 욕망만 남는가?
    (그저 그대로 우리가 살면 그렇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 두가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사실 두가지 다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진료실에서 보는 노인들은 정말 다양합니다. 스펙트럼이 넓습니다. 한분한분 케이스 스터디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무어라 노인을 규정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나이든 어르신들은 이렇다..라고 규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몇 살까지 사는 것도 정말 다양하지 않습니까?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살면서 기력을 다 발휘하고 불이 꺼져가듯이 연소되는 것이겠지요. 그러고 생각해보니 불교에서 화장하는 관습이 떠오릅니다. 이걸 상징하는 걸까요?
     
    저는 요즈음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생각체계입니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아름다움과 추함, 아픈 사람과 아프지 않은 사람 등등.
    이 방식은 지난번 배운대로 피타고라스 학파 오르페우스 교에서도 영과 육을 철저히 구분한다고 하였고, 이후 플라톤에게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한편 스토아학파 내에서도 키케로와 에피쿠로스가 다 같이 스토아학파에 있어 생각을 같이 하는 줄 알았는데, 서로 많이 다르다는 걸 지난번 세미나에서 배웠습니다. '고통이 없다는 것'과 '쾌락이 있다는 것'..
    그러니까 이것도 이분법 적인 사고체계인가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살아보니 인생과 삶을 그렇게 양분할 수 없다고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 일이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명확히 구분될까요? 실제로 세상 모든 일을 고통과 쾌락으로 양분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모든)의 일은 그렇게 규정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분법적으로 사고하면 편하긴 합니다. 내편과 네편을 나누고 내편 안에서 살면.. 그것도 사는 방법일 순 있겠지만..
    그렇지만,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면 할 수록 삶은 왜소해지는 것 같습니다. 삶은 초라해지지 않을까요
    다양한 삶, 나의 삶을 생성해가는 삶.. 나이듦은 젊음과 마찬가지로 늘 생성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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