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자기서사> 두번째 후기

조은희(새봄)
2022-03-25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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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수업에 이어 두 번째 수업도 10시 반을 넘어섰다.
떨리는 목소리로 메모를 읽느라, 피곤했음에도 문탁샘이 이제 마친다고 했을 때, 벌써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많은 샘들의 노년에 관한 이야기를 듣지 못한 아쉬움이었다.(아쉬움은 계속되는 수업에서 달래지겠죠)
 올 봄 무슨 바람이 불었는 지 나는 겁 없이 세개의 세미나를 신청했다. 낭독철학, 에코프로젝트 그리고 나이듦과 자기서사까지. 게다가 밥벌이 일은 3월이 마감이다. 새학기 학생처럼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반 기대반으로  수업들은 시작됐고 벌써 2,3번의 수업들이 진행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 수업이 내겐 특별하다. 다들 나처럼 뭔가를 시작하려는 초보샘들이 많은 것 같고 그러다 보니 지난 수업처럼 뭔가 정돈되지 않은  문탁샘 얘기처럼 "발산 세미나"를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다.
 
 수업은 문탁샘의 설명으로 시작했다.
고대철학은 우리가 철학에 대해 갖는 통념과는 다르게 무엇보다 생활양식이고 영성훈련이고 인간에 대한 치료이기 까지 하다. 자기실천과 노후 간에 특권적 관계가 설정되고 노년은 자기 배려의 최고 도달 지점이 된다. 이어지는 스토아철학은 행복의 유일한 조건은 덕성스런 삶을 사는 것이고 덕은 앎에 기초하며 앎과 덕과 행복은 내적 삶과 연관된 것으로서 모든 외적 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이다.

 키케로가 어떤 맥락에서 "노년에 관하여"를 저술했는 지 조금은 짐작이 간다.
아마도 그리스, 로마시대에는 신자유주의시대인 지금과는 다르게 노년을 접근했겠지.
문탁샘이 나이듦 세미나에서 굳이 어려운 철학 개념을 설명하셨는 지도 나름 이해해본다. 
세미나를 하며 낭독철학의 에피쿠로스가 더 잘 읽히는 건 기대하지 않았던 보너스다.

잠깐의 휴식시간을 갖고 이어지는 메모 발표시간.
잎사귀샘의 자연법칙에 집중하신 모습에서 벌써 자기만의 질문을 찾으셨나 하는 느낌과 경희샘의 글에서는 나처럼 아직 노년에 대해서 고민의 시간이 없었구나 하는 동년배의 동질감을 느꼈다.

재숙샘의 원로교사 이야기와 윤경샘의 윤구병선생님 말씀처럼 다같이 농사지으러 갈 수는 없고 여기 이 자리에서 해야 하지 않냐는 말도 공감이 갔다. 초연샘의 각자도생이 아닌 연대의 노년에 대한 이야기도, 정책적인 문제까지는 확장하지 말자는 문탁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곤궁함에 놓이더라도 자존감을 잃지 않는 삶에 대해 이야기 하신 호수샘, 잎사귀샘의 미덕을 쌓아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시간을 두고 깊게 생각해보고 싶다. (후기를 하루, 이틀내에 쓰지 않음 까먹는다는 문탁샘 카톡에 공감백배, 다른 좋은 이야기들은 기억력의 한계네요.)

댓글 29
  • 2022-03-25 16:31

    저는 키케로가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이는 겸허한 노년을 이야기하는 한편, 치열하게, 적극적으로 인간답게 살기 위해 투쟁하는 노년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해하기로 그 ‘투쟁’은 외부 세계와의 투쟁이기 전에, 노년에 쉽게 선택하게 되는 내적 타협을 통해 스며드는, 정신적인 노화나 삶의 태도의 흐트러짐 같은 것에 대한, 일종의 ‘자기와의 싸움’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만약 노년이 스스로를 지켜나간다면, 자신의 권리를 유지해 나간다면,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는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것들을 다스려 나간다면, 노년은 매우 영예로운 인생의 한 시기라네. 노인의 특징이 있는 젊은이를 내가 인정하듯이, 나는 젊은이의 특징이 있는 노인을 인정한다네. (63p)

    그리고 키케로는 그런 자기와의 싸움이 비단 노년에만 있어야할 것이 아니라 젊은 날에도 있어야한다고 말하는 것 같네요. 세미나를 끝내고 나니 문득, 그런 자기와의 싸움이 문탁 샘이 강의를 통해 이야기하신 ‘자기 배려’, 영성적인 수양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런 의미의 자기 배려와 수양, 영성에의 길을 인간이 과연 홀로 시작하고, 또 지속적으로 걸어갈 수 있을까? 특히, 우리가 사는 시대는 키케로가 사는 시대보다 더 복잡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내가 얼마나 즐거운가?’ , ‘내가 얼마나 만족스러운가?’로 행복을 가늠하는 시대인데, 크고 작은 즐거움이나 편안함을 희생하면서 현명해지고 성숙하는 영성의 길을 개인이 얼마나 실제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인간에 대한 저의 불신일까요? 실제로 그럴지도. 이기심이 부추겨지고, 한편으로는 그 이기심에 대해서 비판도 잘 주어지지 않는 환경 속에서 인간이 고결하고 이타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저는 늘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연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문탁 샘께서 정치적인 것까지는 이야기하지 말자고 하셨는데, 제가 말씀 드린 ‘연대’는 정치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넓게는 이 역시도 우리 삶의 ‘정치’겠지만) ‘관계망’으로서의 연대였어요. 개인이 혼자서는 자신 안의 문제들, 그리고 외부 세계가 주는 압력이나 메시지를 극복하면서, ‘살고자 하는 삶’, 어쩌면 인간다운 ‘고결한 삶’. 그런 삶을 나이들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더 지향할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비슷한 철학과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함께 연결되어서 서로 격려하며 함께 걷는 것. 중요하겠다는 생각입니다. <나이듦 수업>의 한 챕터에서 다루었던 내용이기도 한데, 지금부터라도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동반자로 생각하면서 관계를 가꾸는 삶을 절실하게 살아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네요.

    그런데 세미나를 마치고 나서는 이런 종류의 관계망이 내 삶에 없을 때조차, 내가 ‘살고자하는 삶’을 어떻게 지향하고, 실제로 살아낼 수 있을까?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세미나를 마치면서 나이듦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나의 화두, 질문은 뭘까...? 저도 잘 몰랐던 제 마음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보게 되었네요. 전 중년 이후의 삶을 바라보면서, 그간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서 균형 잡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준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그간의 실수'에는 내 자신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도 있고, 환경이 주는 메시지와 제약 속에서 그저 순응하며 살면서 생긴 문제들도 있고, 그저 다 계산하지 못하는 삶의 생로병사, 희노애락 속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는 대로, 믿는 대로 인생을 ‘실제로’ 사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데, '너무 인생을 쉽게 생각했다'는 실존적인 고민도 있습니다. 난 누구이고, 어디에서 한계에 부딪혔고, 어떻게 인생의 후반부를 믿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궁리해봐야겠어요. ^^

    • 2022-03-25 17:17

      와...네...이렇게 정리해나가시면 됩니다.

      일단, 제가 정치사회적인 이야기를 잠시 접어보자, 라고 한 것은.... 저희가 정책 담당자나 ngo담당자가 아니니까 문제를 자꾸 사회문제로만 제기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너무 적어지지 않을까, 그런 맥락이었습니다. 일단 자기 이야기로 시작해보자...이런 뜻이었구요, 자기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기 생각, 자기 느낌, 자기 이미지 등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배치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또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초언님이 이야기하신 '연대', 전적으로 동감이구요,  키케로는 그것을 '우정'이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제가 미니강의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고대에 철학은 개인이 수행하는 게 아니었지요. '학파'에 속하는 것이었어요. 그 이야기는 "함께' 수련했다는 이야기이죠. 

       

      연대든, 우정이든, 공동체든.... 이 개념을 더 파고 드시는 건 좋은 일인 것 같아요^^

    • 2022-03-30 08:34

      초언샘 저도 4년전 공부 초기에는 회의적인  감정이 더 지배적이었어요.

      인간들을  믿지 못했지요.

      그렇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랑 같이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무시한건 아닌가?

      나보다 열등한 사람들이라고 무시하는 오만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스스로 질문을 해봅니다.

      사람들은 다 본인들 나름대로 행복의 길을 찾으러 노력하고 있다 정도가

      지금의 저의 감정의 타협점입니다.

      아직 여전히 사람들을 맏지 못하지만 그러나 노력은 해보려구요.

      다들 스스로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요. 길을 잃고 헤매거나 딴길로 갈 지라도요.

  • 2022-03-25 16:38

    그리고 저의 필명은 '초연'이 아니고 '초언'입니다. *^^*  '풀과 같은 언어'란 뜻이에요. 

    • 2022-03-25 17:09

      아...그렇군요. 풀과 같은 말! 멋져요

    • 2022-03-25 17:31

      앗 초언샘
      필명을 초연으로 잘못 봤네요.
      노안으로 요즘 부쩍 이런 실수를 ㅎㅎ
      관계망으로서의 연대가 없을 때조차 내가 ‘살고자하는 삶’을 어떻게 지향하고, 실제로 살아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 2022-03-25 18:53

    반공부 반토론으로 이루어진 수업, 따라가기 벅차긴 했지만 수업을 들으며 질문들이 해소되기도 하고 토론으로 다른 시선을 접하기도 하니 혼자 책읽을 때보다 입체적으로 생각하게 되네요. 뇌가 과부하를 일으켜 무척 피곤하긴 하지만 자극은 상당한 거 같아요 ㅎㅎ

    바로 무엇을 고민했나 메모 하라는 말씀에 적어놓은 구절들을 보니 저는 카토의 말에 두 가지 반응들이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하나는 카토와 현재 대한민국 노년층의 현실 차이를 바탕으로 하는 고민과 조건의 차이를 떠나 짐이 되지 않는 노년 자체에 집중하는 고민들. 저는 자신의 내부에서 좋은 것을 찾는다라는 문장에 꽂혀서 조건의 차이는 미처 생각지 못했었는데 말씀들을 들으며 다양한 생각들이 들더라고요. 

    어떤 조건이 갖춰지면 행복하다라는 생각은 자본주의가 가장 잘 활용하는 문구가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네요. 여태까지 그런 조건을 맞추기 위해 달려온 삶이었다는 회의는 이제 다른 식의 삶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있어 키케로가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분명치 않은 자연법칙을 잘 찾아가 보고 싶어요.

    새봄님이 이렇듯 후기를 써주시니 한결 마음이 가벼운 주말을 보내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 2022-03-25 21:36

    저는 책을 읽으며, 예나 지금이나 노년에 접어드는 예순 즈음은 삶의 새로운 국면이었고, 그에 대한 막연한 우려와 걱정이 있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한 노년을 맞이한 키케로가 그 시기를 잘 살아내고자 하는 다짐처럼 <노년에 대하여>라는 책을 쓰기에 이르렀던 것이 아닐까? 잠깐 생각했습니다. ‘덕’을 갖춰가는 과정, 연결해 문탁샘 강의에서 언급하신 ‘자기배려’의 과정같기도 했고요. 

    후기에는 어떤 걸 써야 하나? 잠시 우왕좌왕하면서 가장 좋았던 한 문장(또는 구절)을 생각해봤습니다. 구구절절 마음에 새길 내용들이 많았고 우리 시대의 상황과 대비되면서 쓸쓸해지기도 했습니다만, 읽으면서 유쾌했던 기억에 26절(p48~p51) 내용을 골랐습니다.

    / 노년은 부담스러운 것이라기보다는 즐거운 것이네!(p48)… 지나간 시기에 지녔던 그러한 열정이 노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자네들은 알고 있네…. 매일 무엇인가를 더 배우면서 노인이 되었다고 솔론이 시구로 자랑하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지. 나도 그렇게 했다네…. (p51) /

    직장생활을 계속 할 수밖에 없는데도, ‘쉬고싶다’는 생각도 쉬지 않고 했습니다(지금도 현재진행형^^). 막상 쉰다면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는데 그 생각은 왜그리도 끈질긴지... 그러던 어느 날 문제의 시기가 다가왔습니다. 갱년기. 마침 코로나19로 사람도 못 만나고 개인시간이 많아지면서 문득, ‘은퇴 후엔 시간부자가 될 텐데 난 그때 뭐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그 기분은 막막함 같은 것이었어요. 쉬고 싶단 생각은 그냥 변태같은 집착이었나 싶더라고요. 각설하고 결론적으로 저는 은퇴 후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도 간절히 원했던 ‘쉬게 되는’ 시기인 만큼 재밌게 제가 원하는대로 살고 싶고, 그렇게 되도록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이 수업도 그 방법을 찾아가는 여정의 하나이기도 하고요. 노년을 즐겁게 살겠다는 자기 최면같은 다짐을, 키케로께서 그럴 수 있다고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아 저는 저 26절이 맘에 들었습니다(아전인수같은 해석이지만요^^). 욕심과 열정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갖추고, 나이 핑계로 배움을 포기하지 않아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라는 질문이 오면, 더이상 할 말은 없는데, 이제 시작이니까 약간은 가볍고 얕은 저의 수준을 일단 받아주기로 했습니다.^^;;; 

    단톡(카톡)방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이게 무슨 일인가...' 수업 첫 머리에는 좀 헤맸습니다. 문탁샘의 ‘갑분철학강의’와 세 분의 메모, 함께한 토론이 끝날 때 즈음 다행히 형태가 잡혀가는 퍼즐처럼 흩어졌던 단서들이 엮여가며,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도 하게 됐습니다. 무엇보다 문탁샘이 말미에 하신, ‘나의 문제로’ 집중하라는 말씀은 샛길이란 샛길은 모두 헤매고 다니던 저를 탁 낚아채 가야할 방향을 잡아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생각이 십리밖으로 달아나려고 할 때마다 떠올리며 제가 파고들어야 할 문제에 천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2-03-25 22:23
       제가 가진 질문은 '나이들수록 지혜로와 지는가?' 입니다. 이 질문은 저의 희망입니다. 제가 점점 나이가 많아지니 저의 당면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나이 들어가면 저절로 지혜로와지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저의 근거없는 희망사항인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나이드신 어른이 공경의 대상이 되었지만, 요즈음에는 오히려 공동체에 부담이 되어가는 존재, 혐오의 대상이 되어 가는 게 현실입니다. 태극기 부대는 여기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그러면 지혜로운 나이듦.. 어떻게 해야할까요. 저절로 되는 게 아니니.
     
       자신 안에 훌륭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수단을 아무것도 갖지 못한 이들에게는 인생의 모든 시기가 힘겨운 법이지. 
                                                                                                                                                                    (노년에 관하여 제2장)
      키케로는 그러니까 '수단'.. 방법을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훌륭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수단'을..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그 '수단'이 뭘까요? 저는 문탁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건 '아스케시스(askesis)'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스케시스는 수행, 고행, 노력, 실천, 자기 비움 훈련 등, 자기가 자기에게 가하는 수련으로서 고행을 뜻하는 말이랍니다. 하필 그 수단이 고행이라니, 그 방법밖에 없을까요?
       아스케시스, 그 단어는 그리스, 로마시대 헬레니즘 철학) 시대의 단어랍니다. 확실히 당시의 철학은 삶을 위한, 사람을 위한 (관념적이 아닌) 철학인 것 같습니다. 실제적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아닌  실천과 수행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수행적 의미, 노력하는 의미, 훈련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부분은 그것은 '인생의 모든 시기'에 해당된다는 말입니다. 이 글은 키케로가 노인에 관하여 쓴 것인데, 사실 인생의 모든 시기에 해당되는 거 랍니다. 노인이 되어 그때 가서 뭔가 비결이 확 생기는 게 아닌. 비법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니 다시 두가지 질문으로 이어갑니다.
    첫째는 나이들어가면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수단은 무얼까?
    둘째는 그 수단은 나이 든 어른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인생 전반에 해당되는 것인가?
    일단 이번 세미나까지의 생각은 여기까지. 키케로 책을 마저 읽으면서 이 문제를 생각해 보렵니다.

    • 2022-03-26 08:20

      한스님 생각에 크게 공감합니다.   지혜로워지는 방법으로  '아스케시스' 말씀하신 것에도  동의합니다.  '아스케시스' 의 뜻을 수행, 고행, 노력, 실천, 자기 비움 훈련이라 하셨는데 각각의 말이 일맥상통하면서도 다른 것 같아요. 지금 저는 그 중에서  '고행'은 빼고 싶고  '수행'과  '자기 비움'이 다가와요.

    • 2022-03-27 08:34

      아마도 다음 세미나 때는 바로 그 '수단'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하게 될 것 같습니다~~~😊

  • 2022-03-26 01:07

    책을 읽고, 스토아 철학 강의를 듣고, 여러 선생님들의 고민을 듣고 나니 생각이 사방으로 뻗쳐 흩어져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정리가 잘 안되는 것는 내가 노년에 대해, 크게는 삶에 대해 치밀하게 고민하지 않고 살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것 자체가 공부의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걱정보다는 앞으로의 공부에 대한 기대가 더 큽니다.

    처음 읽을 때 내 노년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현실적인 팁이나 가르침이 있을거야 하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내 기대와 다르게 텍스트는 이상적인 노인상에 대한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키케로는 바람직한 노년이란 경험과 지혜에 기반하여 정신적인 능력을 발휘하고,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훈화하여 존경과 사랑을 받는 시기라고 규정합니다. 이러한 노인이 되기 위해 허약함과 싸우고 근면을 발휘하게 되면 일에 있어서는 생산적이고 다른 세대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풍요로운 노년이 따라온다는 것이지요.

    키케로가 본인의 정치적 이상이 좌절되고 아마 정적들에게 위협을 받고 있을 수도 있었던 상황에 쓴 텍스트임을 감안하면, 그가 처한 현실과 텍스트의 내용 사이에 큰 갭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의문이 스토아 철학 강의를 듣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았지만) 조금은 풀렸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난의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가운데 쓴 글에서 평정심이 느껴지고,  노년에 대한, 그리고 삶 전반에 대해 한 긍정이 여기저기서 묻어 나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강의에서 나온대로 키케로는 자신과의 관계를 잘 맺은 상태, 즉 자기배려를 잘 하고 있지 않았을까요? 본인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들과 상관없이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단단한 힘이 있었을 것입니다.

    “진실로 자기 자신 속에서 고결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없는 자들에게는 모든 시기가 부담스럽다네 (pp. 23-24).”

    “그러니 이러한 종류의 모든 불평에 대한 책임은 각자의 성품에 있는 것이지 노년이라는 특정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네 (p. 27)”

    저는 노년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큰 편입니다. 하지만 그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끄집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언어화하지 못하는 것은  위 인용구절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나를 방치해 두었던 게 첫째 원인이란 생각이 듭니다다. 내 노년을 불행하게 할 것 같은 외부적인 요소들은 쉼없이 떠들 수 있지만, 왜 내가 불안한지 그리고 나의 욕구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키케로가 지적한대로 저는 평정심을 갖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없고, 제 불평들은 대부분 나의 “성품” 속에서 나오고 있을 것입니다. 고로 내가 노년에 대해 불안한 것은 현재의 삶이 불안하기 때문이고, 현재의 삶이 불안하고 중심이 없는 것은 자기배려를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키케로는 단순히 노년의 삶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삶 전체를 통찰할 수 있는 능력과 현재의 삶에 명확한 방향이 없으면 노년이 되어도 해결되는 아무 것도 없다고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삶이 불만스러운 사람은 노년의 삶도 불만스러울테고, 현재의 삶이 불안하면 그 또한 노년까지 연장이 되는 거겠죠.  지금 현재 내 불안의 근원을 잘 들여보고 내 언어로 표현하는 게 나에게는 자기배려의 첫걸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 2022-03-27 08:33

      "저는 노년에 대한 불안과 염려가 큰 편입니다. 하지만 그 불안의 근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끄집어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언어화하지 못하는 것은  위 인용구절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나를 방치해 두었던 게 첫째 원인이란 생각이 듭니다다. 내 노년을 불행하게 할 것 같은 외부적인 요소들은 쉼없이 떠들 수 있지만, 왜 내가 불안한지 그리고 나의 욕구들이 그러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키케로가 지적한대로 저는 평정심을 갖고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없고, 제 불평들은 대부분 나의 “성품” 속에서 나오고 있을 것입니다. 고로 내가 노년에 대해 불안한 것은 현재의 삶이 불안하기 때문이고, 현재의 삶이 불안하고 중심이 없는 것은 자기배려를 하지 않고 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훌륭한 리뷰이고 정리입니다. 앞으로도 함께 더 공부하면서 생각을 더 밀고 나가봐요^^

  • 2022-03-26 08:02

    지난 시간에 ‘원로교사’에 대한 말을 하고 나서 왠지 모르게 찝찝한 느낌이 들었다. 내 안에 덮어두었던 감정이 밖으로 드러난 것 같다. 학교에 근무하면서 선배 선생님들에게 갑갑한 느낌을 많이 가진 것 같다. 물론 다 그랬던 건 아니다. 지금도 만나 뵙고 싶은 분들이 있다. 내게 넓은 품이 되어주었던 몇 분 교장 선생님들은 내게 보물 같은 존재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늘 나보다 젊은이들과 어울리곤 했다. 아마도 나이 든 이를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원로교사라는 말을 들었으니 좋을 리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서 나온 것이 내게 돌아와 나를 친 것이다.

    댓글을 보니 하실 말씀이 정말 많았구나 싶어요. 그 자리에서 다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 2022-03-26 17:01

      전 세미나때 선생님말씀에 공감되었어요. 제 경우도 '노년'에 대해 생각할때, 내가 윗세대를 어떻게 바라봤던가, 내 아랫세대들에게 내가 어떻게 비춰질런가, 그런 점들도 많이 고민합니다. 

  • 2022-03-26 08:26

    댓글들을 읽다보니...걍... 너무 좋아요... 헤벌쭉😊

  • 2022-03-26 14:14

    두번째 시간, 문탁샘께서 고대철학을 시작으로 대학 정규과정으로 치면 한 학기 내내 강의를 해도 부족할 듯한 방대한 내용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요약 정리하여 말씀하시는 걸 보고, '이 방대한 양을 짧은 시간내에 요점만 전달하시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셨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전공도 이과였고, 2년 전까지만 해도 인문학에는 관심도 없던 터라(철학은 말할 것도 없고요..ㅠ) 말씀하시는 내용을 쫓아가느라 정신없었네요. 나이듦, 노년에 관한 세미나에서 문탁샘께서 철학의 내용을 왜 전달하셨는지에 대해서도 조금은 그 취지를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수업시간에는 이해를 못하는 내용이 투성이었고, 그 후에 몇번씩 쌤께서 주신 텍스트들을 반복해서 읽어보고나니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라는 책이 이전보다 더 와닿는 느낌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라는 의미가, '너 자신을 돌보아라. 성숙시켜라. 덕을 쌓아라.'라는 의미인 줄은 처음 알았네요^^;)

    저는 이 수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물론 이전에 했던 인문학 세미나와의 흐름을 타고 온 것도 있었지만, '나이듦과 자기서사'라는 타이틀이 그냥 좋았던 것 같습니다. 결국 제가 이전까지 했던 공부, 접하게 되었던 텍스트들이 모두 제가 이전과는 다르게 살고 싶다라는 강한 생각들로 이루어진 것들이어서, '나이든다는 것'은 노년에서의 어떤 시점의 나를 그린다기 보다는, 40대부터는 사고의 전환으로 다른 삶을 살고싶고 내가 나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서 어떠한 마음가짐? 나름의 방향성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세미나를 통해서 이전과는 다른 시선, 다른 생각으로 하루 하루 나이드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실제 노년의 시기에 들어섰을 때 아무런 준비없이 맞닥뜨릴 때보다 저의 삶이 더 풍성하고 만족스럽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고대철학에서의 '자기배려'를 저도 조금씩 실천하고 있는 느낌이랄까요.

    선생님이 주신 텍스트 중에 헬레니즘 철학 내용 중 '악은 사물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사물들에 대해 내리는 가치판단에 있다.'라는 이야기가 물질적인 부분을 얘기할 것일수도 있겠지만, 문득 노년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습니다. '나이드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이듦에 대한 나의 가치판단이 문제이다.'

    철학이 우리의 가치판단을 교정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키케로의 '노년에 관하여'도 우리가 생각하는 노년에 대한 가치판단을 바꿔주기 위한 것 같습니다. 키케로가 얘기하는 내용들이 지금의 현실과는 괴리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 여기에서 제가 어떠한 깨달음이 있는 구절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진실로 자기 자신 속에 고결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한 방법이 없는 자들에게는 모든 시기가 부담스럽다네. 그러나 자신들로부터 모든 좋은 것을 찾는 자들에게는 자연법칙이 가져오는 어떠한 것도 악으로 보일 수가 없지.' (23p)

    '그러니 이러한 종류의 모든 불평에 대한 책임은 각자의 성품에 있는 것이지 노년이라는 특정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네.' (27p)

    저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키케로가 노년에 대한 흔히 갖고 있는 가치판단을 바꾸기 위한 말이었다고 하더라도, 특정 시기가 아닌 인생 전반에 대해 우리가 사유하여야 하는 가치를 얘기한 것 같아 몇번씩 곱씹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연관이 되는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이듧수업>에서 김태형 심리학자가 말한 내용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이제 자기긍정에 들어가야 합니다.” “치유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에 대한 재평가를 올바른 기준에 따라 수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또한 자기를 수용하고 잘난 점이든 못난 점이든 다 자기의 내면을 통합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여기에는 자기반성도 포함됩니다.”  ‘자신들로부터 모든 좋은 것을 찾는 자’가 무조건적인 자기긍정이 아니라, 자신의 이러저러한 모습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거기에서 자기반성을 통한 성숙을 겸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기 자신 속에서 고결하고 행복하게 살기위한 방법을 터득한 것은 아닐지.

    선생님께서 전해준 '서양철학사'에 있는 한 구절도 인상 깊었습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너는 마치 그 일이 네게 일어나기를 바랐던 것처럼 그것을 견뎌야 한다. 왜냐하면 네가 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너는 그것을 의욕했어야 했기 때문이다." 뇌리에는 꽂혔지만,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계속 남습니다. 나에게 오는 외부적인 것들을 자연의 섭리라고 이해하면서, 이런 복잡한 세상 속에서 평정심을 갖는 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 평생에 걸친 자기배려, 영성 훈련이 과정이고, 노년이 자기배려의 최고 도달지점이라고 한다면, '노년'에 대해 지금까지 생각했던 관념들이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직까지는 온갖 텍스트들이 머릿 속을 휘젓고, 연결이 되었다가 흐트러지고 합니다. 노년에 대한 저의 생각도 아직은 발산적인 기운이 강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렴적인 운동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다음 수업에 뵙겠습니다..^^

    • 2022-03-27 08:36

      ㅋㅋ... 어찌 아셨지? 맞아요. 지난 시간 제가 이야기한 부분은 한 학기 분량입니다. 사실 원래 계획은 동아시아 고대의 '노년' 이미지에 대해서도 다루려고 했어요. 그런데 과감히 뺐습니다. 결과적으로 잘한 듯^^

  • 2022-03-26 17:33

    새봄님 후기 잘읽었습니다, 지난 시간에 무엇들을 했었는지 순서대로 재생해볼 수 있었습니다.^^

    댓글들 읽는데 한참 걸렸어요. 나중에 한번 더 보고 키워드정리라도 해야 겠습니다. 모든 글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가장 굵게 떠오르는 건 역시 노년도 '자기'의 모습을 보는 일의 연속인가보다 싶은 느낌입니다. 저는 제가 들어가 있는 관계들, 그러니까, 고령의 부모님, 성년이 된 자녀, 배우자, 많지는 않아도 그간 밀접했던 지인들과 맺었던 관계들도 노년의 문제로 고민합니다. 관계속에서 살아오면서 층층이 쌓인 감정과 흔적들, 연결되는 방식들, 그런 등등의 것의 방향을 바꾸는 일에 도전하면서 나다운 노년으로 들어가고 싶습니다.

    노년이 겨울이고 수렴이라고 세미나에서 들은  것 같은데, '겨울'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단 마음이 막 커지네요.  윤구병선생님께서 겨울이 다투는 계절이라고 하셨다했던가요? 다투지않는 겨울을 살 정도의 평정 수련을  공부목표로 해보렵니다(근데, 목표는 매주 바뀔듯.. ^^;;;;).

    • 2022-03-27 08:40

      '겨울'.... 에 대해 연구한다!! 이거, 멋진 아이디어인데요?

      제가 얼마 전 <어바웃 식물> 세미나에서 읽은 한병철의 <땅의 예찬>에서도, 한병철의 정원은 '겨울'부터 시작해요.

      쉽진 않겠지만, 사주명리와 한병철의 철학등을 엮어서 '겨울'을 키워드로 노년을 탐구하는 것, 언덕님 개인 프로젝트로 추천드려요. 

  • 2022-03-27 14:52

    몇 번을 입안에서만 웅얼거리다가 어제밤 창을 열고 어눌하게 몇 줄을 적어나갔어요. 그나마도 완성하지 못한채 노트북을 덥고 오늘 다시 열었지요. 겨우 짧은 글을 완성하고는 '입력'을 누르니 오류, 오류... 복사해 두고 다시 창을 열었답니다. 우 클릭에도 붙여넣기가 안되네요. ㅠㅠ 후기의 답글도 이리 머뭇거리는데 앞으로의 길이 고난하겠지요? 그래도 설레이는 것은? 

    초언님이 짚어낸 '겸허한 노년과 치열한 노년'을 저 역시도 붙잡고 있었어요. 자연의 섭리에 따르지만 노년에 대항해 싸워야한다고 그리하여 노년의 결점이 근면으로 메꾸어져야 한다는 것. 키케로가 말한 '근면' -또한 흥미도 마찬가지 입니다만- 은 무엇인가? 어떻게 나이들어 갈 것 인가에 대한 제 방향과도 맥락이 닿아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공부해보고 이야기를 풀어봐야겠습니다. 

     

    • 2022-03-28 07:16

      "몇 번을 입안에서만 웅얼거리다가 어제밤 창을 열고 어눌하게 몇 줄을 적어나갔어요."

       

      공자님도 교언巧言보다 눌언訥言을 더 높이 평가하셨어요. 천천히,꾹꾹 눌러서 말하고 쓰는 건, 좋은 일이에요^^ 

      그렇게 오래하면 금방 늘어요.  그 반대의 경우는, 오히려 시간이 가면서 힘들어지기도 해유^^

      (이건 글쓰기 선생의 경험으로 말하는 것임....ㅋㅋㅋㅋ)

  • 2022-03-28 11:20

    “진실로 자기 자신 속에서 고결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없는 자들에게는 모든 시기가 부담스럽다네 (pp. 23-24).”
    “그러니 이러한 종류의 모든 불평에 대한 책임은 각자의 성품에 있는 것이지 노년이라는 특정 시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네 (p. 27)”

     

    해야 님의 발췌를 빌려왔습니다. 저 역시 지난 시간에 이 부분에 가장 주목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노년이라는 시기는 특별하겠지만, 모든 시기가 특별하다는 점에서 어쩌면 갑자기 다른 특별한 무엇을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저는 아마도 수년째 제 생각을 나누게 되는 어느 자리에서나 자꾸 둘째 얘기를 하게 되는데 며칠 전에 오랜만에 둘째와 갈등 상황을 겪으면서 어째서 같은 일이 자꾸만 되풀이되는 것일까, 라는 질문이 떠올랐어요. 문득 지난 세미나 시간을 떠올리며, 내가 노년과 관련해 느끼는 불안이나 문제의식도 '삶의 어려움을 어떻게 만나느냐'의 문제에서 떠나 있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음 시간 아스케시스에 대해 더 많은 얘기를 누고 싶네요.

     

    그 다음, 삶에서 우리는 늘 어려움을 겪지만, 그중에서도 노년이기에 만나는 고민은 무엇일까로 되돌아갔을 때, 제게도 카토가 말한 네 가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어요. 아, 키케로도 이 질문을 떠올리고 답을 찾아보려 한 것이구나. 그렇게 또한번, 이제까지와 조금 다른 방식의 생각을 하게 됐어요. 키케로가 노년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생각한 어떤 순간, 누구의 입을 빌릴까 궁리하다가 아하 카토가 좋겠다(또는 재미있겠다)라고 떠올린 어떤 순간, 우리는 왜 노년을 두려워할까 카토라면 뭐라고 대답할까 궁리해보는 순간... 그렇게 키케로가 키케로의 자리에서 키케로의 생각을 궁글리는 장면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키케로처럼 썩 현란한 표현력을 갖지는 않은 각자의 우리가 품고 있을 생각들을 떠올렸어요. 그렇게 우리가 만난 이유로, 첫시간의 그때로 다시 돌아갔어요. 아마도 제자리 걸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 이제 다시 키케로의 나머지 절반을 읽어보려고 합니다.

    • 2022-03-29 06:45

      호수님 저는 남편과의 갈등이 반복되면서 노년이 아닌 지금 '삶의 어려움을 어떻게 만나느냐' 생각했어요.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지만,  같은 글을 읽으며 각자의 자리에서 고민하는 모습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 2022-03-29 10:22

    후기 댓글에 23개가 달리다니 어마무시한 세미나인데요? 황제내경 세미나팀원들은 어디어디 숨으셨나요~

    멋찐 언니들대화에 귀동냥하고갑니다~~^^

  • 2022-03-29 13:17

    댓글이 궁금해지는 독특한 세미나네요^^ 한 번씩 들어와서 읽어볼게요. 고맙습니다~

  • 2022-03-30 09:01

    가장 늦은 후기 댓들이네요.

    우와 읽는데 한참 걸렸네요. 이렇게 댓글이 긴 세미나는 첨입니다. ㅎㅎ

     

    진실로 농부는 자신이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를 위하여 심느냐고 묻는 자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데 "불사의 신들을 위하여, 신들께서는 내가 이러한 것들을 조상으로부터 

    받기를 바랄 뿐만 아니라 후손에게도 전하기를 바라신다" 47쪽

     

    내가 살아가면서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심을 수 있는 마음을 낼 수 있을까?

    자신에게는 결코 속하지 않을 것들을 위해 열심히 일한다는 마음으로 노년을 살 수 있을까?

    사람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 숙제처럼 다가온 문장이었어요.

    앞으로 남은 세미나에서 여러분들과 그 실마리를 찾고 싶네요.

  • 2022-03-30 15:22

    가장 늦은 후기 보다 더 늦은 후기를 올립니다. 문탁에 발 들인 것도 처음, 세미나도 처음, 이런 공부를 제대로 해보는 것도 처음이라 아직 어리버리한 신입 입니다.  지난 시간 문탁쌤의 강의를 듣고, 도반님들의 메모를 들으면서, 또 이렇게 진지하고 깊은 댓글들을 보면서 저의 시야가 처음 보다 조금은 더 넓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부는 함께 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이입니다. 어찌보면 아직 젊은 나이라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럼에도 저는 '나이 듦'에 관하여 무척 관심이 많았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생각했었는데 키케로의 [노년의 관하여]라는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한 답을 조금 찾은 것 같기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 노년이 된다는 것은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키케로가 말했듯이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은 노년에 겪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비록 젊은이라 하더라도, 저녁에 자신이 살아 있을 것이라고 확신할 정도로 그렇게 어리석은가? 실제로는 젊은 시기가 노년보다 더 많은 죽음의 기회를 갖는 다네. -중략- 죽음을 젊은이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자네들이 알고 있는 마당에, 그것이 노년에 대한 어떤 비난 거리가 되겠는가?  -102 p-

    결국 노년, 나이 듦이란 것은 삶을 살아가는 과정 자체를 의미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저에게 또 다른 의문이 생겼습니다.  결국은 자연스럽게 노년에 이르는 과정이라면 왜 젊었을때 아둥바둥 치열하게 살아가야 하냐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부터 마치 노년에 이른것 처럼 고요히 유유자적하게 살 아갈수는 없는 걸까요? 

    이 수업을 들으면서 저에게 던져진 화두는 '지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와 '자식으로서의 노년의 부모를 대하는 나의 자세와 부모로서의 나의 노년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자세'에 관한 것인 것 같습니다. 

    갈 길이 멀고, 채울 게 많은 그릇을 가지고 있지만 열심히 따라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2022-03-30 23:00

    와우... 댓글이 아니라 모두 뭉클한 서사를 담은 한 편의 '찐'글입니다. 항상 책보다 대화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웁니다. 모든 샘들께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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