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자기서사>시즌1 '씨앗문장 쓰기' 발표 후기

김지영
2023-05-22 01:02
358

 

<나이듦과 자기서사> 시즌1을 마무리하는 '씨앗문장 쓰기' 발표회가 오늘(이제 어제가 됨) 열렸습니다. 참여자들의 여러 사정으로 아쉽게도 온라인에서 열렸지만, 열기만큼은 오프라인으로 진행했던 지난 시즌들과 차이가 없었습니다. 오전 10시라는 시간대 때문인지, 세미나 때와 같은 줌 화면인데 모두들 얼굴이 더 또렷하고 생기있어 보였습니다(기분 탓인가). 문탁 회원들께서도 갤러리로 참석해주셨습니다. 

 

총 3개 섹션으로 나눠 진행된 발표의 첫 팀은 해성샘, 노을샘, 저, 위정샘이었습니다.

 

해성샘은 제대로 된 애도가 무엇인지 탐구했습니다. <아주 편안한 죽음>에서 보여주는 엄마에 대한 보부아르의 애도를 통해 취약성과 상호의존성을 읽어내고, 그것이 버틀러가 제안한 '윤리적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할수 있는 방식의 애도'를 가능하게 하는 출발점이라고 보았습니다.

 

노을샘은 사회가 정한 무연고와 연고의 기준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서사적 삶'에 주목했습니다. '내 가족은 누구일까?'를 넘어 '나는 누구의 가족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저도 품고 있어야 할 물음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위정샘의 발표는 마치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국판 리메이크 작 '나, 김위정'을 보는 듯했습니다. 어머님을 거쳐 본인으로 이어지는 이야기 뒤에 당당하게 사회를 향해 시민으로서 요구한 권리에 저는 박수쳤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콧물이 주책맞게 자꾸 흘렀는데, 저만 그랬던 건 아니더라고요. 

 

첫 섹션은 무거움 강도 최고 수준. 문탁샘께서는 다시 '노인운동'을 해야 하나 고민이 된다는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과연 '답이 없다'고 생각되는 주제들인만큼 다들 쉽게 말을 꺼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윤리적 책무' '윤리를 정치와 연결하는 지점' '나와 내가 관계맺은 존재들과 함께 노력해 볼 현장' 등 함께 고민하고 서로 위로할 말들을 주고 받았습니다. 

 

 

 

 

2섹션은 영선샘, 여백샘, 정은샘이 발표했습니다. 

 

영선샘은 아버님과 어머님의 수술 사례를 통해 생애 말기에 '수술을 할 것인가'의 문제를 다루었고, 여백샘은 새로운 모델의 노인요양원을 상상하며, 곧 실행에 옮길 듯한 포부가 느껴지는 글을 쓰셨습니다.

 

정은샘은 가부정적 질서가 당연시된 시대를 살아오신 시어른들과 동료시민이 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셨습니다. '시어른을 동료시민으로 보고 연결감을 느끼며 힘을 얻을 수 있는 날이 올까'라고 썼지만 실제로는 (끝을 올리며) '의문형'으로 읽어, 머리로는 되는데 마음(현실)으로는 안 될 것 같은 양가의 감정이 잘 드러났습니다. 

 

두번째 섹션에서는 'no시니어존', 'no키즈존' 등 특정 세대 배제에 대한 논의가 (사소한데, 사소하지만은 않은 문제여서)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사회가 일상의 작은 의제조차도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하지 않고 있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새삼 느껴지는 게 많았습니다. 저는 '함께 어울려 살기 위한' 생애주기별 에티켓 교육이라도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번째 섹션은 지현샘, 은영샘, 미정샘이 발표했습니다. 

 

지현샘은 몇 해전 앓게 된 피부병과 그 치료를 위해 애썼던 경험과 '동적 평형'을 연결해 몸을 부속품들의 조합으로 사고했던 당시를 반추했습니다. 은영샘도 같은 책 <생물과 무생물 사이>의 동적 평형 부분을 갱년기로 인해 변화를 겪는 몸과 연결해 씨앗문장 쓰기를 완성했습니다. 마라톤을 하고 철인3종에 도전하려던 체력이었는데 갱년기를 맞으며 몸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대목에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서 서글프기도 했습니다. 

 

미정샘은 보부아르에게서 힌트를 얻어 엄마와 화해했습니다. 가족을 돌보느라 자신을 드러내지 못했던 엄마의 지난 삶을 애도했다는 표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얼떨결에 쓰는 후기라 많이 부족합니다. 마지막까지 댓글로 다 채워주시리라 믿으며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누군가 말씀해주셨는데, 글을 쓸 때는 '내가 왜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 싶고, 씨앗문장 고른 교재는 너무 읽어 지긋지긋하다고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발표까지 마친 지금 돌아보면 첫 줄을 쓸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는 '나'를 발견합니다. 덫에 걸린 것처럼 붙잡혀 있던 생각에서도 어느 순간 빠져나와 있더라고요. 나를 구원한 건 다름 아닌 그 시간 속에서 머리를 쥐어짠 '나'이겠죠?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고 무사히 스스로를 구원하는데 꼭 필요했던 말씀 해주신 튜터 문탁샘께 감사드립니다. 한 시즌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 8시에 함께 공부하고, 글을 통해 본인의 고유한 삶을 나눠주신 도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날씨가 몹시도 좋은 5월 휴일에 컴퓨터 화면 앞에 앉아 함께 얘기 나눠주신 갤러리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시즌2에서 만나요. 커밍 쑨~

 

 

 

댓글 10
  • 2023-05-22 09:06

    와우 후기 잘 읽었습니다^^ 대단하셔요. 어제 발표의 압축파일을 풀어보는 느낌입니다.
    텍스트를 자기서사와 엮어서 섬세하게 풀어내는 샘들의 글들에서 감탄이 나왔습니다. (아, 저렇게 하는구나!)
    (샘들 글발표를 들으며) 엉클어진 마음이 좀 해소되고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반발 진전되고, 글을 쓰는건 그런시간이었던것 같네요. 그래서 미정샘이 구원이라고 하셨겠죠.
    조별발표를 같이 했었던 위정샘의 글은 개인적으로 강렬했어요. 당장 노인운동의 현장으로 막 달려가야될것 같았어요.
    샘들 글에 등장한 이야기들이 남의 얘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여러 샘들 감사합니다. 다시 만나요~

  • 2023-05-22 09:39

    부지런한 지영쌤, 대단하셔요! 개인적인 일로 늦게 참석해서 1, 2섹션에 어떤 말씀이 오고갔는지는 몰랐는데, 생생한 후기를 들으니 조금 알것 같아요..^^
    글쓰기 할 때는 정말.... 참 괴로운데요... 한 줄 한 줄 쓸 때마다, 그 한 줄을 쓰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책을 마주하고, 또 고민하고, 이런 과정이 저를 성장하게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문탁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바쁘셨을텐데, 피드백도 꼼꼼히 해주시고..감동입니다. ㅠㅠ 부족한 글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즌2에는 더 성실하게 텍스트를 읽어오겠습니다!(다짐은 늘 열심) 시즌1에서 함께 했던 도반님들도 계속 뵈었으면 좋겠어요! ^^

  • 2023-05-22 10:11

    사실 아직까지 어제의 여운이 가시지 않아 조금 흥분 상태였거든요. 그런데 지영샘 후기를 보니 동학들의 문제의식과 발표 자리에서 나왔던 얘기들을 차분~하게 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분 한 분의 텍스트 해석과 통찰이 개성있게, 또 진정성 있게 다가왔고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제 안에 새겨 넣고 싶어졌어요.
    무엇보다 놀라웠던 건 '앗 어떻게 저 초안에서 이 완성본이 나왔지?' 하는 것입니다!!! (제 글 포함 ㅎㅎ) 초안이 완성본이 될 때까지, 지영샘 말처럼 "머리를 쥐어 짜며" 고민한 각자의 시간과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문탁샘의 '되게 만드는 힘'에 감탄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글을 한꺼번에 핸들링하시면서 기어이 완성본을 이끌어 내시는지... 와~ 그 내공이 놀랍더라고요.

    '나이듦'과 관련한 쟁점들을 짚으며 텍스트와 제대로 만나는 법, 문제 의식을 정식화, 개념화하는 법. 이제 걸음마를 뗀 것 같아요. 다음 시즌에도 계속 이어가고 싶습니다 🙂

  • 2023-05-22 10:13

    후기 고맙습니다.
    각자의 서사와 텍스트를 엮어 발표하는 글이어서 서로에게 울림이 되었네요.~~
    화해의 시작이 된 미정샘의 글도 반가웠고, 시아버지도 동료시민이 될 수 있을까?의 물음을
    가진 정은샘의 글 제목이 새로웠습니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 신선하게 사고를 할 수 있구나'를 경험했습니다.
    지금의 사고방식으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해결할 수 없고 새로운 상상력을 더 해볼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정치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데 그것을 구체화 할 수 있는 방법에서는 막히는 안타까움도 있네요.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를 부르짓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그리고 문탁 선생님, 책을 읽고 쓰고 나누면 열정이 식지 않는 것인가요? ㅎ
    선생님의 열정에 감탄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서로의 교과서가 된 샘들께도 감사함을 전합니다.

  • 2023-05-22 10:48

    이번 세미나에 참여하지 못해 못내 아쉬웠는데 지영샘 후기를 읽어보니 그간의 생생함이 전해집니다.
    줌 화면으로 반가운 분, 새로 만나는 분들도 계시네요. 씨앗문장 그 자체가 화두를 던져주고 생각할 시간을 남기네요.
    어찌보면 노느라 (지금 안 놀면 언제 노니? 라는 자기 변명으로) 올해는 읽기를 소홀히 해서 뭔가 헛헛합니다.
    글쓰기 발표날 가리라 마음먹고 소식을 기다리다 깜박했는데 줌으로 진행했군요.
    다음 시즌 세미나 발표날에는 참여할 수 있어요. 소식 기다리며 인문약방 누리집을 방문할께요.

    • 2023-05-22 14:11

      오왕 영애샘~ 반갑습니다~~ ^^ 다음 시즌 발표회 때 꼬옥 뵈어요. 신나게 노신 이야기 궁금함다!

  • 2023-05-22 15:59

    수요일 마지막 피드백부터 일요일 발표까지의 시간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머리 속에 계속 남아 있었습니다.
    오늘 오전까지 그 여운이 남아 있어 약간 몽롱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지영쌤 후기를 읽고 나니 거기서 빠져나오는 기분이 듭니다.
    이래서 후기가 필요한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 2023-05-22 16:00

    재숙샘은 어제 직접 오셨대요. 줌이었는데.....그래서 바로 뒤돌아 가셨대요.. ㅠㅠㅠ....
    제가 영애샘과 재숙샘한테 따로 톡 드릴까 하다가 꾹 참았더니 이런 불상사가.... 영애샘도 겁나 보고 싶습니다. ㅎㅎㅎㅎ

    • 2023-05-26 04:44

      겁나 보고 싶다는 말이 참 좋네요~~ 여기저기 유랑하며 잘 놀고 있어요. 2시즌 발표날 봐어요.

  • 2023-05-22 21:05

    생생한 후기 감사합니다, 지영샘. 전 끝까지 참여를 못해 다시보기를 했습니다. 샘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고민, 그리고 이어진 토론이 정말 좋았습니다. 텍스트와 자기서사가 만나는 지점들에 감탄했습니다. 난 글쓰는 데 집중은 했는데 내 서사를 제대로 풀어냈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샘들의 자기서사에 내가 하지 못한 경험과 생각들이 녹아 있어 많이 배운 시간이었습니다.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119
2023년 마지막 에세이 데이 후기 (7)
김혜근 | 2023.11.30 | 조회 341
김혜근 2023.11.30 341
118
[초대] <나이듦과 자기서사> 2023년 마지막 에세이 데이 (11/26일)에 와주세요 (12)
문탁 | 2023.11.21 | 조회 400
문탁 2023.11.21 400
117
<가을시즌10주차 공지> - 에세이쓰기 3차 피드백 - 수정안- 1122 (12)
문탁 | 2023.11.16 | 조회 283
문탁 2023.11.16 283
116
<가을시즌 9주차 공지> - 에세이쓰기 2차 피드백 - 초안- 1115 (9)
문탁 | 2023.11.12 | 조회 218
문탁 2023.11.12 218
115
<가을시즌 8주차 공지> - 에세이쓰기 1차 피드백 - 초초안- 1108 (10)
문탁 | 2023.11.06 | 조회 235
문탁 2023.11.06 235
114
[s3-7주차 후기] <‘나’의 죽음 이야기 > (2)
평강 | 2023.11.04 | 조회 193
평강 2023.11.04 193
113
[s3-6주차 후기] 대세는 SF! (6)
혜근 | 2023.10.30 | 조회 253
혜근 2023.10.30 253
112
[s3-7주차 공지] <숨결이 바람될 때 > - 10월 마지막 날에 '죽음'을 생각합니다 (12)
문탁 | 2023.10.30 | 조회 317
문탁 2023.10.30 317
111
[s3-6주차 공지]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2- 낯설고 또 고전적인 테드 창의 sf (4)
문탁 | 2023.10.24 | 조회 264
문탁 2023.10.24 264
110
[s3-5주차 후기]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알 수 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하다는 거지? (4)
바람 | 2023.10.23 | 조회 231
바람 2023.10.23 231
109
[S3- 4회차 후기] 커다란 연관과 중심 질서에 대하여 (3)
김은영 | 2023.10.16 | 조회 174
김은영 2023.10.16 174
108
[s3-5주차 공지] - <당신 인생의 이야기 > #1- 드디어 테드 창의 SF를 읽습니다 (6)
문탁 | 2023.10.15 | 조회 210
문탁 2023.10.15 210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