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차 후기] 장애학의 도전 5장~9장

이효진
2023-03-30 20:50
207

온갖 학자들과 이론들이 지뢰밭처럼 펼쳐져 있는 것 같았던 이 어려운 책을 드디어 다 읽었네요!

문탁 샘 께서 이번 시즌 가장 어려운 책이 <장애학의 도전>이었다고 하시니, 우리 큰 산은 넘어 간 걸까요?^^

 

저자는 프레이저의 정의론을 장애학에으로 끌어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에 문탁 샘 께서 '정의의 계보학'에 대해 짧게 강독해 주셨어요. '정의의 계보학'을 보면, 아리스토텔레스를 지나 칸트로 내려옵니다. 칸트는 "계몽은 이성의 공적 사용이다."라고 정의할 만큼 '보편적 이성'을 강조했습니다. 보편적 이성을 사용하면 공동선에 닿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고, 이것이 '정의'라고 보았습니다. 그 계보를 내려오면 공리주의가 있습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은 우생학적 잔재가 남아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비판으로 존 롤스가 <정의론>을 썼습니다. 존 롤스에 의하면, 원자론적 인간의 사회계약에 의해서 정의가 만들어지는데, 즉 재화를 어떻게 정의롭게 분배하는가가 '정의'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의 영향을 받아 마이크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를 저술했습니다. 이것은 공동체주의적 정의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의 핵심인 '분배'보다 '인정'에 더 중점을 둔 학자들이 생겨나는 데, 바로 '차이의 정치학자'들 입니다. 이들은 사회적 억압은 '분배'의 문제 뿐만 아니라 '무시,혐오,배제,문화적 관념'의 문제가 더 크게 작용한다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낸시 프레이저'는 분배의 정의인정의 정의, 그리고 일국가를 넘어선 정의를 모두 포함하는 정의론을 펼쳤습니다. <장애학의 도전>의 저자는 차이의 정치, 다시 말하면 당사자주의를 넘어 횡단의 정치를 제시합니다. 차이의 정치 즉, 정체성의 정치는 집단의 정체성을 물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죠. 횡단의 정치에서는 우선 정체성을 확실히 뿌리내리고, 언제든 옮기기가 가능한 정치를 추구합니다. 

 

문탁 샘의 강독으로 책에 있던 어려운 이론들이 조금은 정리가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톡에서 보니 문탁 샘의 논문과 관련해 또 다른 강독을 기다리는 샘들이 많네요! 저도 기다려집니다.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인간은 왜 존엄한 존재인가?’가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질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떤 관계와 어떤 사회구조 속에 있어야 존엄해 질 수 있을까요?

 

"자립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할 것을 선택할 수 있는 상태'입니다."

의존하면서도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를 의미하는 걸까요?

 

그럼에도 우리에게는 많은 질문과 모호함이 남았던 것 같습니다.

도대체 저자가 말하는 ‘공공시민 노동’이라는 것의 정의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노동’과는 어떻게 다른지,

그것은 복지와 기본 소득과 관련해서 어떤 차이와 관련성이 있는 것인지,

사회 운동에 있어서 당사자주의만이 나아가야 할 방향 이라고 할 수 있는지,

선택할 수 있는 자립과 성년후견인 제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이 생겼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주에 <장애학의 도전>의 저자 김도현 님의 강의를 기대해봅니다.

 

댓글 10
  • 2023-03-31 09:39

    하하... 우리 10시 40분까지 줌으로 무려 2시간 40분 세미나를 해도 모든 분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지 못한 아쉬움이 있죠?

    일단...수욜 세미나에서 다루지 못한 질문 중, 지현샘의 낸시 프레이저의 인정-지위 모델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그녀는 "인정을 다시 생각하기"라는 논문에서 아래와 같은 주장을 폅니다. (이 내용은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에 나와 있습니다)

    낸시 프레이저는 기존의 ‘차이 인정’ 이라는 새로운 정치적 주장이 두 가지 점에서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전세계적으로 경제 불평등이 악화되는데도 불구하고, “인정의 문제는 재분배투쟁을 보완, 복잡화, 풍부화하기 보다는 이를 주변화, 퇴색화,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을 ‘대체’ 문제라고 말합니다. 둘째로는 지구화시대, 다문화적 맥락내에서 상호작용을 촉진시키기 보다는 집단 정체성을 극적으로 단순화하거나 물화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물화’ 문제라고 이름 붙입니다. 그러면서 대체와 물화의 문제를 풀거나 적어도 완화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인정정치를 재고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하여, 낸시 프레이저는 인정을 ‘사회적 지위status’의 문제로 다루자고 제안합니다. 인정되어야 하는 것은 집단 정체성이 아니라 개별 집단 구성원의 지위, 즉 사회적 상호작용의 파트너로서의 지위인 거죠. 다시, 인정을 지위로 보는 것은 제도화된 문화가치패턴들을 검토한다는 것입니다. 즉 문화적이고 심리적인 접근이 아니라 제도화된 접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에요.

    “무시를 저지르는 것은 제도화된 패턴이다. 즉 무시는 동등을 방해하는 문화적 규범에 따라 상호작용을 규제하는 사회적 제도의 작동을 통해 수행된다.”

    예를 드는 것이 혼인법, 인종프로파일링 같은 거에요. 그래서 인정투쟁의 핵심은 법적 변화 혹은 정책 변화, 혹은 관념의 변화를 요구하는 투쟁이 되는 거죠.

  • 2023-03-31 09:40

    그리고 수진샘 (근데 수진샘이 누구세요? ㅋㅋ)의 메모에 적어놓으신

    "또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7장에서 ‘무엇에서 벗어나 자유로우려면 언어가 태생적으로 취할 수 밖에 없는 이분법을 벗어나야 한다’고 언급한 부분입니다. 이 부분은 언어와 상징에 매인 개념적 세계에서 벗어나 쌩-현실을 자각하라는, 불교의 중도 사상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수행이 아닌 공부로도 개념과 이론들을 끝까지 밀고 나가면 탁 트이는 경지가 오기도 하는가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을 못 다룬 것도 아쉬었습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 2023-03-31 12:09

      접니다. 저도 이름 아닌 별명으로 불리고 싶어서요~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3-31 13:08

        ㅋㅋ...수진..이 닉네임? 이제 수진샘이라고 불러드릴게유~~

  • 2023-04-01 19:52

    감솨합니당~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3-04-02 23:29

    너어어어어무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포자기의 마음이 되었습니다. 세미나 시간도 다 듣고 있긴 했는데 '어려움의 연속이구나'라는 생각을 제일 많이 했..... 좀 삐뚤어져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ㅠ
    그래서 뭔가를 정리해 볼 수준은 여전히 안 되고요...
    '연립' '성년후견인제도' '공공시민노동' 등의 개념을 보면서 지난해 '새벽 세 시의 몸들에게'를 읽으며 돌봄을 주제로 논의했을 때 '시민적 돌봄'이란 개념에 환호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엉뚱하게 그 책을 다시 꺼내 해당 부분('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받기', 전희경)을 다시 스윽 읽어봤습니다. 몇 구절 소개합니다.
    "우리의 취약함, 삶의 우연성, 육체의 유한성,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개념은 결국 젊고 건강한 이들만을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개념은 언젠가 젊고 건강한 이들 또한 반드시 배신할 것이다. 다른 사회에 대한 상상력은 무엇보다 인간의 취약함을 사유하는 데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새벽 세 시의 몸들‘ p47, 이하 같은 책)
    "기본적 삶과 존엄을 위한 권리를 '의무와 교환해서 얻는 자원 혹은 보상처럼 이해하는 한, 인간 몸의 취약함을 기본값으로 수용하는 사회는 불가능하다. 다치고, 아프고, 장애가 있고, 늙어가는 사람들이 평범한 시민이 아니라 예외적인 약자로 여겨지고, 취약한 이들에 대한 돌봄이 시혜와 호의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라면 우리는 아프고 늙는 것을 영원히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p62)
    "다치고 아프고 늙고 언젠가는 죽어가는 취약한 존재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참여하고 연루되어 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돌봄관계다. 이 보편성을, 이 불가피성을, 이 공동의 운명을 '시민적 돌봄'이라 이름 붙이면 어떨까?"(p68)

    "시민적 돌봄이 가능하려면 우리 스스로가 이전과는 다른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했는데, '장애학의 도전'에서 다른 ‘시민’이 되는 길을 학술적으로 풀어준 것 같네요. 돌봄사회로 가는 길이, 내 인식체계 바꾸는 일부터도, 쉬운 일이 아니라고 알려주면서…

  • 2023-04-04 20:59

    장애인에게 정의가 무엇인지 말할 때, 올려주신 문장을 곱씹게 되었습니다.'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인간은 존엄해지는가' 인간이 왜 존엄한가를 묻는 것이 아닌 이제는 어떤 사회적 관계와 조건 속에서 동등한 사회적 상호작용이 불가하고, 억압되고, 무시되는 존재들에 대한 인정을 말하는 정의에 대하여, 차이의 정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파트너로서의 지위가 다른 존재들의 위치로 시좌를 옮기는 과정에서 익숙하게 말로 반복했던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할 수 없는', '생산성이 없는 존재'로 배제되는 몸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문탁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셨던 이규식 선생님의 자서전을 1/3가량 읽은 날, 그만큼만 읽고 나서도 거리에서 내 옆을 스쳐지나가는 휠체어를 탄 존재를 다르게 감각하는 저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그들은 어떤 존재로 있었던가. 혜화역을 다시 가는 날에는 그 엘리베이터 앞에 다시 가봐야겠다고 생각하며..
    홍은전 선생님 칼럼에서 소개하는 <어떤 생애의 탄생>을 다시 읽으며, 남들보다 느리게 말하고, 잘 통하게 말하지 않는 이유로 생애 내내 이야기를 억압당한 규식님에게 이야기할 권리를 동등하게 인정해주는 일, 규식의 동료들이 함께했기에 가능하게 했던 그 일, 이야기할 권리를 많은 시간 잃어버렸던 사람에게 그 권리를 찾게 돕는 일이 바로 공공적 시민노동의 예가 되겠구나 다시금 연결할 수 있기도 했습니다. 이야기할 권리를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작은 규모의 관계망 위에 자기 이야기를 말할 조건이 부재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필요로 되는 사람이다, 그 호혜성으로 새로운 관계들이 창출되는 일의 제도화. 공적인 일로의 연결. 이야기도 하나의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명명했던 북아메리카 포타와토미 부족의 세계관도 생각나면서 어느 생애의 탄생, 이야기의 탄생을 생각하게 된 일주일이었습니다. 더불어 이것은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이분법으로 분리되어 영역을 달리하며 서로를 보면서 정의나 권리를 이야기하는 일이 아님을 새깁니다. 관계체적 존재인 인간으로, 취약성을 기본 조건으로 갖고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가는 일에 대한 이야기임.

    (사실 업무가 너무 많아서 이번에는 책을 꼼꼼하게 책을 다 읽고 가지는 못했는데, 학우님들의 정성스런 요약과 예리한 질문들, 문탁선생님의 명료한 강의들로 배움의 즐거움을 찬찬히 이어갑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 2023-04-05 11:21

    저 역시 세미나 시간에 나온 질문들과 책의 내용들이 섞여 새로운 질문이 생겨나고, 덕분에 한 주 내내 여러가지 생각들을 하게 했습니다.
    신자유주의가 부정적인 기능들만 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어쩌면 그 현재를 살고 있는 내가 공부와 세미나를 시작하고, 존재조차 몰랐던 장애학을 알려고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효진쌤의 후기가 짧고 굵어서 좋았다는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책에 담겨진 역사와 이름과 범위가 넓어서 어수선하게 엉켜 있었는데, 요렇게 담담하게 풀어주시니 뭔가 정리가 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후기는 꼭 필요한 과정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23-04-05 16:48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는데 너무 많기도 하고 뒤죽박죽 섞이기도 해서 .......^^;;

    지난 수요일 장애학의 도전은 노동이 상품이 되는 노동 시장을 넘어 지역사회 구성원들에게 물질적. 정신적. 정서적 삶의 기여로서 공공시민 노동을 어떻게 하면 실현할 수 있게 까요? 라는 질문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이론으로,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심각한 정신장애나 인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생존 자체를 노동으로 인정할 수 있는 상상력이 떠오르지 않는 좌절의 공감(?) 현장이었습니다.

    장애가 있는 사람과 장애가 없는 사람을 극명하게 기준을 가른 지점이 산업사회 이후라고 합니다. 그 이후 노동력은 몸으로 상품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4차 산업 시대를 맞은 노동은 또 다른 전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공장 자동화 시스템으로 150명이 일할 수 있는 공장이 2명의 노동자로 가동이 되는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여태껏 지배해 왔던 노동이라는 패러다임을 반전, 전복시켜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동은 선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노동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소유로 전환되지 않는 집학적 자원 즉, 공통자원이라고 하면서요. 노동이 ‘선물이 된다는 것’에 방점을 찍으면 노동에 대한 인식이 크게 확장되는 것 같습니다. 학생들도 학업 노동을 하는 것인데 이 사회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필수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고요. 심각한 정신장애자나 인지장애자는 생존자체를 노동으로 인정해야하는데 사회 구성원들에게 정신적 정서적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하기 때문이랍니다. 생존자체가 선물이 된다는 걸 사회가 어떻게 인정할 수 있느냐 문제는 제도적인 방안도 필요하지만 정서적 공감 가치로 접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체 아동들을 만나는 특수학교 교사들이나 일반 학교에서 특수 아동을 만난 교사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몸을 비틀고 흔들며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지만 수영장 안에서 그들의 자연스러움과 열정이 한 수영 교사의 매너리즘을 일깨우게 했다고 합니다. 비장애로 구분되는 아이들의 자유분방한 태도를 제어하지 못하던 초임 교사로서 움직이지 못하는 한 아이가 자신에게 보내는 집중력으로 1년을 버티게 했다는 교사들의 증언도 있습니다.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살아 소외되고 있지만 제도만 조금 바꿔 주어도 어떤 사람들을 위로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가치를 지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공공시민운동으로서 노동을 담론으로 내세울 때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정당하고도 보편적인 것으로 제시될수록 지배적 이데올로기를 피지배 대중들이 곧이곧대로 믿고 그때 반역과 봉기가 가능하다는 통찰로 이어진다고 합니다. 피지배자들의 반역이 지배적 이데올로기 외부에서 자신들의 특수한 이데올로기를 따로 생산함으로써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배적 이데올로기 자체에 내장되어 있는 '위로부터' 들려오지만 본래는 자기 자신이 보낸 이상적 메시지를 곧이곧대로 지금 이 자리에서 실현하려고 집단적으로 시도함으로써’ 반역과 봉기가 일어나게 된다고 합니다.

    가장 보편적이며 상식적인 헌법 정신에 따라 노동은 교육과 더불어 국민의 4대 의무 중 하나이며 동시에 권리입니다. 또한 ‘노동력’이라는 상품 형태로 존재하는 인간의 ‘노동능력’을 공통자원화가 이루어져야 할 핵심 자원으로 파악하고 ‘선물노동’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은 그 발생부터 '사회적이고 협동적인’것 이라고 하는 정훈교의 제안에서 균열과 반역을 꿈꾸어 봅니다.

    아직 상상력이 닿지 않았을 뿐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가 같은 도반들의 인류애를 믿으며.........

  • 2023-04-06 09:01

    도현샘 강의까지 듣고 나니 이해가 되는 부분이 더 있게 되네요. 책을 읽으며 신자유주의(저는 자본주의) 와 공산주의가 왔다 갔다
    했어요.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했고 자본주의도 실패했다고 보는데(아마도 분배의 실패겠지만) 결국 정반합에 의해 보완이 되면서 나아가겠죠. 사상이나 주의가 인간의 삶을 흔들지 않으려면 인간중심주의 사고 체계에서 나와 우주, 혹은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던때로 회귀한다면 지구와 사람은 회복되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요.

    회귀는 불가능하겠지만~ 그러면 무엇을 할수 있나 없나의 효율이 아닌 모든 존재의 존중으로 넘어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데 학습된 욕망과 내재된 동물성이 상위 포식자의 지위를 놓기 어려울거예요.결국, 생산물을 공정한 방법으로 나누고 , 원하는 만큼 교육을 받고 생산하고 삶의 가치를 인정받고 기여하는것이 불편이 없는 사회가 건강할텐데~~

    투쟁이 아니어도 논의만으로도 필요를 변화시킬 수 있는 사회로 가는 길은, 커다란 어떤것보다 서로에게 묻고 또 물으며, 듣고 들으며
    원하는 사회로 갔으면 좋겠어요.

    장애학이었지만 모든 소수자들의 서러움, 분노를 대변하고 계시것같았어요.
    똑같은 돈을 받더라도 노동을 하고 있다고 가치를 인정받고 받는돈과 그냥 주는거야 하는 돈은 돈의 의미가 다르고, 저런것이 존재의 존중이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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