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듦과 자기서사 S2>2회차 후기 "시민적 돌봄, 정체가 궁금하다"

김지영
2022-07-03 16:02
253

흐릿한 기억을 부여잡고 늦은 후기를 올립니다. 

지난 시간 많은 분들이 관심을 준 개념은 '시민적 돌봄'이었습니다. '돌봄'이라는 문제와 마주할 때의 막막함을 타개할 답인가? 싶은데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된단 말인가?'하는 부분이 없어 답답했다는 대부분의 의견. 문탁샘께서는 '시민'이란 개념이 너무 보편적 형상(추상적, 합리적)이라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언덕샘이 전해주신 ‘돌봄’의 정의와 관련한 최근 여성학계의 논의를 들으면서 약간 개념이 잡힐랑말랑 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 공정론 정의론이 능력주의를 깔고 있고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입각한 정의론이라 지금 여성학계에서는 돌봄 정의론을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 성장하는 인간, 독립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고 소유를 확보한 시민이라는 근대 시민 개념이 잘못됐다는 것. 인간은 원래 독립적인 시기는 짧고, 의존하는 기간이 긴, 즉 의존성이 인간의 더 보편적 본질이라고 보는 것. 돌봄(제공자까지 포함)을 헌법 전문에 넣자고 하는 데까지 논의가 성장하고 있다. (와우! )  

 

돌봄에 대한 사회적 문해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가능해지는가에 대한 얘기도 있었습니다. 돌봄을 제공한 사람들에게는 감정이 켜켜이 쌓여 있어 재구성하는게 힘들기 때문에 공론화가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투병과 간병에 대한 자기 경험들이 많이 나와야 하는데, 하소연에 머물지 않고 공동의 성찰이 될 수 있는 사회적 문해력이 높은 사회로 가기 위한 방법도 앞으로 고민해야 할 과제라는 것. 자녀를 양육하는 이야기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노인(환자)을 돌보는 이야기들이 이제 나오기 시작하고, 우리나라도 최근 한 3~4년 사이에 질병 서사나 돌봄 이야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고 있는 추세라고 세미나 첫머리에 문탁샘께서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사회적 문해력을 높이는 출발을 이미 한 건가 싶기도 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구체적으로 다가가려면 얼마나 걸리고, 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지난 세미나에서 하신 말씀들 간략히 정리해 붙입니다. 많이 생략됐지만, 기억을 되짚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며... 못다한 말씀들 같이 나눠주세요. 출장, 야근 등으로 함께 하지 못한 해성샘과 미정샘도 어떻게 읽으셨는지 의견 나눠주세요. (후기는 개떡같지만 댓글은 흥하길 바라는 욕심ㅎㅎ)

 

윤경쌤은 어머님이 여든 넘으시면서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셔서, ‘돌봄이 이제 남 일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으셨다고 해요. 은평에서 사실 때 1,2장의 저자(전희경)가 주도한 ‘살림’이라는 공동체 활동을 하셨던 경험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한스쌤은 의료 현장에서의 경험에 비추어 ‘돌봄에서 가족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드신다고 했습니다. 환자의 보호자로서 자녀가 오는 경우보다 간병인이 오는 경우가 감정이 섞이지 않아 과하지 않고 담백해 진료도 더 쉽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환자와 보호자(자녀), 보호자 간(자녀들 간)의 의견 충돌이나 견제 등 갈등을 많이 목격하셨다고. 

 

효진쌤은 ‘돌봄’이 당면한 문제가 아니어서 이 전의 책들과는 다르게 이번 교재가 좀 멀게 느껴지셨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독립성이란 환상이 존재한다(p58)’는 문장이 와 닿았다고. 누구한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아직 누구의 도움을 받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은 스스로를 깨닫게 되어 저 문장에 오래 머무르셨다고요. 

 

영애쌤은 시민적 돌봄이 이상적 개념이지만 과연 실현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말씀하셨습니다. (시민적 돌봄의)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지가 잡히지 않아 답답하셨다고요. 또, 어머님과 시어머님의 마지막 모습들을 지켜보며 ‘장애나 질병을 얻었을 때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예전 미국 출장 중에 시카고 공립고등학교 영화수업 참관에서 마주친 장애인에 대한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전자장비로 가득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식물인간에 가까운 중증장애였는데, 활동보조인이 말하길 그 학생이 해당 수업에 들어오면 좋아해서 매주 수업에 데리고 온다고. 당시 영애쌤은 크게 충격을 받으셨다고 해요. ‘들을 수나 있을까? 과연 1시간 영화 수업을 듣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고 부정적이셨다고. 그런데 지금은 ‘그런 학생도 그냥 한 인간이구나. 그야말로 시민이고 존중하는구나’ 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셨다고 합니다. 시민적 돌봄이란 개념을 접하면서 그 당시가 생각나셨다고. 

 

언덕쌤께서는 개인적 경험으로 한스쌤 말씀처럼 가족 돌봄에서 감정이 얹혀지는 게 제일 힘든 것 같다고 하셨어요. 감정을 배제하면 할만한데 묵은 감정이 올라오고 다른 형제들에 대한 생각들을 하면 너무 괴로웠다고. 그리고 우리가 돌봄 정의 개념을 수용하려면 나도 도움을 받을 준비가 돼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지난번 책의 저자 쿠르티브롱도 자신은 ‘죽어도 자기는 요양원까지는 안 간다고 수면제 사놓고 죽음을 준비’했던 구절을 인용하셔서 다들 또 고개를 끄덕. 

 

재숙쌤은 2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님을 돌본 경험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책에서처럼 비혼인 재숙쌤이 자연스럽게 돌보게 되셨다고. 당시는 사회적 제도가 지금보다 더 미비했던 때라 생활이 분주했는데,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으셨다고. 돌봄이 필요한 상황에 대해 재숙쌤의 형제자매들이 보인 제각기 다른 태도와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전적으로 돌보신 재숙쌤이 어머니를 더 그리워하고 더 잘해드릴 걸 하는 감정도 느낀다는 대목에서 저는 약간 찡했습니다. 당시는 가족으로서 당연하게 받아들이셨는데, 지금은 제도적 장치가 더 많아졌지만 아직도 다수가 어려움을 겪고 있고 젊은 사람들은 부모를 돌본다는 의식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상황은 20년 전보다 더 갑갑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셨다고. 

 

신혜쌤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어머님이 쓰러지셔서 오랫동안 ‘보호자’로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텍스트를 읽는 내내 감정적으로 많이 힘드셨다고 했어요. 2-30대를 죄책감과 무기력감, 원망으로 살았고, 스스로 본인을 찾아가기 시작한 건 40대 중반인, 최근이라고 합니다. 당시의 감정 상태를 이제서야 조금씩 깨닫고 알아가는, 힘들지만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님은 지금도 식물인간 상태셔서 여전히 보호자로서의 삶을 살고 계신 신혜쌤에게 저는 감히 ‘위로’라는 말을 꺼낼 수 없겠더라고요. 하시는 말씀 그저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경희쌤은,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건강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어머님께서 결혼할 때부터 당신이 늙고 병들면 경희쌤이 돌봐야 한다고 요구(?)하셨대요.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책을 보면서 ‘며느리가 아니라 시민으로서 돌봐드려야 하나?’라는 생각을 (잠깐)하셨다고 합니다. 경희쌤 말씀을 들으면서 돌봄은 참 다양한 관계와 형태로 우리 곁에 있구나, 저도 잠깐 생각했습니다. 

 

내용 정리는 여기까지 입니다. 다음 세미나 발제는 경희샘과 신혜샘.

댓글 6
  • 2022-07-04 08:30

    늙음(나이듦)과 도저히 떨어뜨릴 수 없는 '돌봄'이라는 이슈를, 시즌2에 들어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가족적 돌봄을 넘어, 동시에 공적 돌봄(국가적 돌봄)을 넘어 새로운 '돌봄'사회를 상상할 수 있느냐, 인데

    이것과 관련하여 늘 '우정', '환대'라는 개념을 동원했던 저로서는 전희경선생의  '시민적 돌봄'이라는 단어가 좀 낯설었습니다. (맥락은 충분히 알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효자가 아니라 시민이다", 이 멘트는 엄청 멋있네요. 하여, 장바구니에서 잠자고 있던 이 책을 결국 구매했다는.... ㅎㅎ

     

     

    그리고 요즘 제가 <나이듦>말고 두 개의 세미나를 더 하는데, 하나는 <어바웃 동물>이고, 또 하나는 <고코분 고이치로 읽기>에요.

    앞에서는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고, 뒤에서는 <중동태의 세계>를 읽는데, 이게 전부 나이듦-돌봄의 문제를 저한테 환기시키네요. 자세한 건 세미나에서 말씀드릴게요. 일단 인용 하나.

     

      "장애는 어떤 사람이 떠안는 정체성이기도 하고, 투쟁의 조건이기도 하고, 해방을 발견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억압하는 데 활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동시에, 장애는 이 모든 것이기도 하다.

       장애가 한 개인의 삶을 구축하는 체험일 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 정치, 그리고 문화가 구축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한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는 것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장애란 단순히 주변부에만 속하는 것도, 의약계만의 사안인 것도, 소수의 특정한 역사적 사건들에 국한되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장애는 성별, 계급, 인종과 같이 도처에 확산되는 방식으로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힘이다. (p60)...

      모든 몸들은 비장애중심주의의 억압에 노출되어 있다. 비장애중심주의는 우리의 무화적 견해와 가치관이 구축되는 데 영향을 끼친다. '자립적'이라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생산성'이나 '효율성'을 어떻게 측정하는지, 무엇이 '정상적'이고 무엇이 '자연스러운지'에 대한 통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짐을 끄는 짐승들>, p67)" 

     

    어떠세요? 여기서 '장애'를 '나이듦'으로 바꿔서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지요? ㅎ

     

    그리고 세미나 중에 제가 말씀드린 <뉴욕열전>( 이와사부로 코소, 갈무리) 미국 뉴욕의 게이-레즈비언 커뮤니티의 정동적 돌봄의 실천 예. 이건 타이핑하기 귀찮으니 그림으로. 여기에서의 돌봄은 '정동의 증여'에요^^

     

  • 2022-07-04 17:36

    찰떡 같은 후기입니다.

    지영샘 글이 점점 더 쏙쏙 잘 읽힙니다. 

    열심히 읽고 불꽃튀게 나누고 후기 읽으며 잘 소화시키는 경험을 합니다. 

    이번주는 내내 '돌봄', '독립', '의존' 이런 알갱이들이 머리 속을 굴러다닙니다. 

    다음 주는 부득이 개인 일정으로 빠지는데요 출발 전에 느낌과 의견을 달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 2022-07-04 20:24

    후기가 엄청 상세하네요. 지영샘 놀라워요!

    끝나고 나서 저는 '돌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엄마와 함께 지낸 건 비혼때문만은 아닌 것 같아요. 제 마음이 그랬어요.

    큰언니, 작은 언니(2002년 그 당시 74세, 69세)도 자식들 출가시킨 다음이라 혼자 지내긴 마찬가지였어요. (큰 형부는 돌아가셨고, 작은 형부는 남남이 된 상태.) 오빠네 부부(59세)도 자식들이 모두 독립한 다음이라 둘이 살고 있었고요. 직장생활은 오빠와 저(46세)만 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왜 제가 엄마를 모셨을까요?" 그건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그리 되었어요. 엄마가 저와 있는 걸 제일 편안해 했기 때문이죠. 저도 그런 엄마 마음을 알고, 엄마가 다른 집에 가 있으면 저도 마음이 편치 않았어요. 

    다행스러운 건 엄마와 제가 비교적 상호작용을 잘 했다는 것. 몸은 좀 고달팠지만 제 마음이 편안했다는 것. 그리고 필요할 때는 대부분 큰언니가 와 준 거. 아주 가끔은 작은 언니도.

    지금 다시 생각하니 언니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많이 들어요. 덕분에 그만큼 제자 자유를 누린 거죠. 그 동안은 언니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어요. 

    요즘 저는 동네 산책을 하다가 '지금 엄마가 계시면 새로 난 이 길도 같이 다녀볼 수 있을텐데...'하고 많이 아쉬워 해요. 쓸데없는 일이지만.

    그리고 아직 체력이 좀 남아있을 때 제가 할 수있는 돌봄활동이 뭐가 있는지 찾아서 해봐야겠어요. 

     

  • 2022-07-05 05:46

    현장에 참여한 듯한 느낌이 나는 상세한 후기를 써주신 지영샘 감사합니다. 아직 정리가 잘 안되고 질문과 고민만 잔뜩 안고 있는 상태에서 단편적인 생각을 적어봅니다.

     

    가족돌봄에 대안으로 제시된 시민적 돌봄이란 개념이 여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우선 가족과 법/제도 사이의 빈공간 메꾸어줄  대안으로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참신하게 다가온다. 가족에게만 특히 한 사람에게 돌봄이 전가되는 것은 부당하고 부정의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민적 돌봄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지는 구체적으로 떠오르지 않는다. 우선 시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밥상 공동체, 생활 공동체 등이 전제가 되고 거기서 돌봄 공동체까지 확장되어야 할 것 같은데 이게 어떤 식으로 이뤄질 수 있을까? 사람들이 과연 가족이라는 틀에서 벗어나려 할까,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질문들이 떠오른다.

     

    나는 시민적 돌봄이 부모와 자녀가 있는 보통의 이성애 가족 내에 속해 있는 사람의 경우보다는 전통적인 가족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있는 소수자들에게 보다 현실적이고 어필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들의 경우 가족들과 소원해진 가운데 혼자 사는 경우가 많고, 보통 자녀도 없기 때문에 사소한 형태로도 가족들로부터는 돌봄을 받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이를 서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친구가 돌봄이 필요해진 상황이 되면 기꺼이 도움을 주려고한다. 하지만 몇사람의 선의로 이를 해결하기는 역부족인 경우가 많다 (개인적 경험으로는). 가족, 가족같은 돌봄이 아닌 하나의 인간으로서 시민으로서 돌보고 보듬어주는 돌봄을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가 누구를 돌봐야 할고 또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 나는 어떤 돌봄을 받고 싶은지 질문하고 또 실제 경험을 쌓으면서 돌봄의 실력이 쌓이고 새로운 돌봄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매우 도전적인 일이지만 소수자 공동체에서 먼저 많은 실험들이 이뤄지고 이게 자원화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개인적으로는 주위에 돌봄을 필요한 사람이 생길 경우 어떤 식으로 참여해야 하나 어떻게 다른 사람과 같이 참여해야 하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 2022-07-05 07:50
    지난번 책 내용에서 저는 이런 내용을 메모했습니다
     
    통증의 한가지 저주는
    -통증이 없는 사람에게 거짓말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137쪽)
     
    노화에 대한 체감을 표현할 때 흔히 쓰는
    "몸이 말을 안 듣는다"는 표현은,
    우리 문화와 우리 자신의 삶 전체가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신화에 기반해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55쪽)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어서 낫기만 하라"는 주문 앞에서,
    삶이 암으로 축소되기도 한다.
    질병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의료적 태도의 경직성은 근본적으로
    『병에 걸리지 않는 사람』을 표준으로 설정하는 사회에서 비롯된다.
     
    그런 사회에서 우리는..
    1. 강박적으로 건강을 추구하고,
    2. 아픈 사람을 『우리』로부터 추방한다.
    바로 우리 자신을 말이다.

  • 2022-07-05 18:25

    후기가 정말 상세히 정리되어서  '다시보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

    시즌1부터 지난주까지 노화, 질병, 고통, 죽음 등등을 계속 붙들고 이야기하다보니, 

    꼭 나의 노화, 나의 죽음이 아니어도 

    나와 연결된 누군가를 통해 어떤 식으로든 겪었으나 말못하고 묻어둔 경험들을 열어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몸의 고통에 대해서는 외과수술 경험이나  짐승으로 전락했던 두 차례의 난산 트라우마가 상기되면서

    아픈 경험이  연대의 정동일 수 있다는 말도 수긍이 가네요.  나이듦 세미나가 감정과 경험에 대한 문해력을 높여주는 것 같네요, 제게는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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