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러웨이 다큐 <지구생존가이드> 후기

겸목
2021-03-23 20:09
515

 

3월 20일 토요일 오후 1시 30분 필름이다 공동체상영으로 <해러웨이 다큐 지구생존가이드> 봤어요.

방역지침에 따라 마스크 쓰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 영화를 봤구요, 예전 같았으면 간식과 맥주 한 잔 같이 했을 텐데 밍숭맹숭 영화만 보고 맨입으로 떠드니 좀 아쉽더군요......코로나와 이제 헤어질 때도 됐는데......아직 소식이 없네요. 꽃소식과 함께 이별소식도 고대해봅니다.

 

이날 상영된 해러웨이는 올해 양생프로젝트의 커리에도 있는 페미니스트라, 양생프로젝트 회원들이 많이 영화를 같이 봤습니다. 해러웨이는 좀 생소한 이론가인데, 양생프로젝트에서 1회의 특강을 했었고 2번의 세미나로 1권의 책 <해러웨이선언>을 끝낸 참이라, 이날 상영된 영화는 좀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연실 웃고 있는 해러웨이의 얼굴이 '멋져 보인다!' 그녀가 살고 있는 집이 '좋아 보인다!'와 같은 변죽을 두드리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봤어요. 아마 양생프로젝트 회원들 대부분이 이러지 않았을까요? (저만 그럴 수도......)

 

그래서 영화보다는 상영이 끝난 다음에 진행된 이야기들이 더 재미있었어요. 사실 이 시간이 필름이다 상영회의 '백미'이며 '고갱이'이죠? 어떤 영화든 영화와 상관 없는 무수한 토크가 난무하는 필름이다 상영회의 에티튜드가 있어요!! 

 

장지혜샘은 평소 과학은 유토피아인가 디스토피아인가 의구심을 갖고 있었는데, 해러웨이의 책에서 그런 점을 발견하고 엄첨 반가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영화도 유쾌하게 보셨다구요.

날카로운 지적의 대가 여여샘은 해러웨이가 전 남편이 게이임을 알고도 결혼을 했고, 상대파트너를 질투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동의할 수 없다는 의견 주셨어요. 덧붙여 지금은 그럴 수 있지만, 한창때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고 시기와 질투의 감정에 휩싸였을 거라고......여여샘의 이런 반감에도 불구하고, 문탁샘은 여여샘이야말로 가장 해러웨이에 가깝게 사는 사람이라고 코멘트하셨고, 밭으로 들로 휙휙 다니시는 여여샘의 모습이 무언가에 맺힌 데 없이 깔깔깔 웃으며 살아가는 해러웨이와 가장 닮아 보이기도 했어요.

단풍은 영화 도입부에 해러웨이가 자신의 부정교합과 교정에 대한 스토리텔링으로 시작한 순간부터 재미있었다며 해러웨이를 처음 만나는 사람들의 '정석의 반응'을 보여줬습니다.  영화 중간중간에 들어있는 애니메이션도 재미있고, 마지막의 SF소설 이야기도 새로웠다고 강력한 호감을 피력했어요. 확실히 해러웨이는 새로워요^^

 

 

 

 

 

 

저도 단풍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러웨이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가장 부러웠습니다. <사이보그선언>이나 <반려종선언>을 읽어보면, 그녀의 이론은 현대철학이 지나온 맥락을 모두 밟고 서 있어요. 맑스주의와 페미니즘이 도달해 있는 사유의 끝에서  그 한계를 어떻게 넘어갈까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끙끙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며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깔깔깔 웃으며 유쾌한 이야기를 만들며 넘어서고 있습니다. 우주전사 말고 사이보그가 돼봐!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이보그 말고 평범한 개가 어찌 인간과 지내나 살펴봐~ 가족으로만 모여 사는 거 지겹지 않아? 혈연 말고 다른 친족을 만들어봐~ 해러웨이는 반려견과 어질리티게임을 하며 느끼는 '기쁨'을 진술하며, 다른 종과의 커뮤니케이션에서도 다른 종류의 스토리텔링과 기쁨이 있을 수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해러웨이처럼 신나게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해보려는 야심을 가져보면 될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저는 웃는 해러웨이의 얼굴을 보며 그렇게 밝게 웃어지지가 않더라구요......

아이러니와 유머가 해러웨이 철학의 핵심인데 웃지를 못하는 제 속내가 약간 씁쓸했습니다.

해맑게 웃기에는 현실의 제약들이 더 눈에 밟혀서겠죠? 개와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사람하고는 잘 지낼 수 없을 것 같은 이 막막함을 어떻게 웃음으로 날려버리지? <한사랑산악회>를 더 봐야 하나? 그래 아저씨들과도 잘 지내봐야지!

앞으로 웃는 훈련을 해야겠어요! 

 

 

 

 

 

마지막으로 토용님이 못오셔 <추억의 부스러기> 대충 넘겼어요! 아쉬워요. 토용님 다음에는 꼭 빠지지 마세요!

 

상영회를 마치고 청량리는 이런 소감을 남겼습니다.

 

"소파와 테이블이 놓이니까,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너무 좋은 것 같아요."

 

맞아요! 겨울 내내 파지사유 리모델링공사한 것이 바로 필름이다 상영회를 위해서였던 것처럼

새로 바뀐 파지사유는 영화상영과 후토크에 너무 잘 어울려요!

이렇게 모여 앉아 '콩이야 팥이야' 가열차게 '갑론을박'할 날을 다시 또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필름이다 다음 상영 작품은 뭔가요?

 

 

댓글 1
  • 2021-03-24 08:33

    해러웨이 웃음이 유쾌하지 않았다는 데 한 표^^ ㅋ

    오늘 아침 김수영 시 '웃음' 읽으며 내 멋대로 이유를 찾았다면

    "웃음은 자기 자신이 만드는 것이라면 그것은 얼마나 서러운 것일까"

    ㅋ 뜬금없지만 나에게는 이 의미와 해러웨이의 유쾌함을 실뜨기처럼 연결되는 건 어쩔 수 없음~~ 

    어제 미리 본 뚜버기샘과 대화를 나누면서 해러웨이 영화가 강의 같았다는 말에 동의하면서...

    계속 해러웨이를 읽으면서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까지..

    필름이다의 꼰대특집~ 뭘까~~ 궁금하기도^^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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