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이다 10월 상영작 <새벽의 황당한 저주> 후기

스르륵
2022-10-30 10:57
242

 한 달에 한 번 있는 필름이다 상영이 있는 날에는 살짝 고민이 된다. 오전에 세미나가 있기에 마치고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과 아무 생각 없이 영화나 한편 볼까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기 때문이다. 음... 그러나 영화를 보면서 나 혼자 감흥 없이 졸았는데 돌아가며 소감이라도 말해야 한다거나 행여 후기라도 당첨되면 어쩌나 하는 옹졸한 계산 때문에 3초간 머뭇거려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극(?)을 예상 못하고 눈 앞의 빨간 풍선에 마음을 빼앗기며 극장을 들어서는 일이 있다.

 넷플릭스가 날 위해 추천을 여러 번 해준 것이 확실하다. 포스터도 살짝 눈에 익고 제목도 낯설지 않은 걸 보니.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 라... 그러나 나는 외면했을 것이다. 왜냐면 포스터와 제목이 말해주는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뭐 쫌 '황당하게' 웃길 것이며, '좀비'와 함께 피와 살점들이 튈 것이고, 낯설지 않은 저 남자 주인공은 b급 코미디의 그것처럼 종회무진 뛰다가 어차피 끝까지 살아남아 승리할 것이고, 하여 뭐 좀비물 별로 안좋아 하니까 패쑤!  라며...

 

 그러나 다른 인생사 역시 그러하듯,영화 역시 포스터를 보며 예감하는 순간과 막상 영화를 보는 순간, 그리고 다 보고 난 후의 얼굴은 다르다.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아니었으면 살짝 졸 뻔도 했지만, 짧게 끊어지는 장면을 재빠르게 갖다 불이는 특이한 장면 편집이라든가, 일명 '바보 호러물'답게  어설프지만 완벽한 티키타카들, 속시원하고 웃픈  퀸의 ' Don't stop me now', 그리고 자신이 좀비물임을 끝까지 잊지 않고 오장육부를 리얼하게 해체해 주는 성실함까지..  졸지 못했다.

 

 상영 후 토킹 시간은 내가 잘 모르는 영화 이야기들이 넘쳐 난다. 어리둥절하지만, 아 그 장면이 그런 의미였나?, 이 영화가 그렇게 만들어진거야?  추가 정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에드가 라이트'라는 이 영화의 감독이 만든 영화 세 편은 아이스크림 맛으로 분류되며 '코르네토(아이스크림 브랜드) 트릴로지'라 불린단다. 그리고 여기에 두 주연 남자배우들(사이먼 페크, 닉 프로스트)은 이 삼부작에도 함께 출현 했다. 그리고 청샘이 나눠주신 자료에 보면 이 영화는 한국에선 바로 DVD로 직행해버렸단다. 그러나 이 DVD안에는 감독과 주연배우 두사람의 신나는 음성해설과 제작 단계별 부가영상, 사라진 장면, 예고편 모음 등이 영화처럼 익살 맞게 들어 있다고 한다.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좀비물계의 거장들을 오마주했는데, 조지 로메로 감독의 <시체들의 새벽(1978)>을 리메이크한 잭 스나이퍼 감독의 <새벽의 저주>를 에드가 라이트가 <새벽의 황당한 저주(2004)>로 패러디한 것이다. 좀비물의 아버지가 조지 로메로 감독이라는 걸 처음 알았기에 집에 와서 찾아보니 왓챠에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1968)>이 나와 있다. 좀비물의 기원을 탐색하는 호기심으로 보았다. 오 생각보다 재밌다. <새벽의 황당한 저주>가 다시 읽혀지는 느낌이다. 참고로 <새벽의 저주>는 넷플에 있다. 오늘 저녁에 함 봐야겠다.

 

  영화 후기는 처음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래서 <새벽의 황당한 저주>는 어땠냐면...무엇보다 마지막 반전(?)이 참 멋있고 맘에 들었다. '좀비 영화를 본 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이용철 영화평론가)라는 말에 나도 동감이었다. 그러나 나는 어쨋건 그 행복 속에 함꼐 들어있는 레드(blood)의 딸기맛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엄마에게 총을 쏴야 하는 숀, 데이비드가 해체되는 순간을 지켜보는 친구들의 그 '난처함'이 계속 마음에 쫌 남아서 말이다.  (오늘 아침의 갑작스런 뉴스 역시 .ㅜㅜ.)

 

 

 

댓글 2
  • 2022-10-30 11:25

    이런.....이렇게 멋진 후기를 남겨줄거면서
    어제는 왜 그렇게 손사래를 치셨는지......^^

    어제 간만에 재밌는 영화 봐서 진짜 좋았어요.
    관람객이 너무 적어서, 좋은 영화를 소수만 봐서 좀 거시기했어요.

    필름이다, 흥해라!!!!

  • 2022-10-30 13:00

    <새벽의 저주> 보고 멋지다!! 생각했던 적 있는데, 그것도 넘나 오래전 일이고, <새벽의 황당한 저주> 잘 만든 영화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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