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매체철학』3회 세미나 후기(2부 디지털 매체, 새로운 존재방식을 열다. 장 보드리야르, 빌렘 플루서)

무사
2023-04-23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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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이후 '좀 다르게' 살아보고 있는데, 매체철학 세미나를 시작한 것도 그 중 하나다. 꽉 짜여진 틀 안에서 살다 나와 빈 공간을 두니, 문탁에 계신 샘들이 이러저러한 권유를 해주신다. 덥석 물었고 잘한 선택이다. 그만큼 이 책은 재밌다.

'아날로그 매체는 대중문화를 열었고, 디지털 매체는 새로운 존재방식을 열었다.' 심혜련 저자의 표현은 적확해 보인다. 지금, 여기, 논란의 중심에 있는 챗GPT는 우리의 사유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저자가 9년째 쓰고 있다는 <21세기의 매체철학>이 내년에 출간된다고 하니, 나오자마자 읽어봐야겠다.

디지털 매체철학이 다루는 주제는 주로 실재와 가상, 시공간의 재편과 그로 인한 존재방식 및 사유방식의 변화이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시뮬라크르, 하이퍼리얼, 실재(장 보드리야르), 탈역사 시대의 기술적 이미지(빌렘 플루서)를 다뤘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 1920∼1991)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가 지배하는 세계에서 실재가 소멸했다고 진단하며, 하이퍼리얼은 실재의 가성성을 은폐하는 전략으로 보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의 세계와 플라톤의 동굴 비유를 그대로 보여주는 영화로 언급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매트릭스>를 본 동은과 우현, 어찌 재밌지 않을 수 있겠는가ㅎㅎ

보드리야르는 '남는 건 시뮬라크르 세상뿐'이라며 극 허무주의에 빠지지만, 이후 실재와 가상에 대한 다양한 논의들이 이어진다. 이 중 빌렘 플루서는 '가상'에 대한 불신의 혐의를 벗겨주고 재평가한다.

플루서는 디지털 매체시대 의사소통 수단으로서의 이미지가 미치는 효과에 주목하면서, 텔레마틱 사회에서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융복합학('코뮤니콜로기') 정립을 시도한다. 한 시대의 지배적인 매체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사유방식도 변화시키기 때문에 매체를 중심으로 알파벳 이전(전통적 이미지 시대), 알파벳 시대(문자 시대), 알파벳 이후(기술적 이미지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사진은 기술적 이미지의 출발이며, 컴퓨터 예술은 기술적 이미지의 완성을 의미한다.'(239) 플루서는 사진을 기술적 이미지가 대중화된 최초의 형태로 보고 있다. '사진 찍기'라는 유희적 행위('호모 루덴스')는 '사진기'라는 장치와 기술적 프로그램에 대한 이해('호모 파베르')를 바탕으로 '사진'(기술적 이미지)을 산출해낸다. 플루서는, 기술적 이미지는 상상력과 기술적 장치가 결합된 결과물이므로 단순히 실재의 가상이 아니라 의미복합체로 재평가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세미나 중에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키오스크는 기술적 이미지일까 아닐까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긍정하는 측에서는,

'플루서의 관점에 따르면, 사진은 기술적 이미지의 출발이고, 컴퓨터 예술은 기술적 이미지의 완성을 의미한다'(239)면 키오스크 인터페이스와 이미지는 사진과 컴퓨터 예술 그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다. 또 '과학적인 알고리즘들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알고리즘 속에서 상상력의 힘을 인식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훈련되지 않은 탓이다.'(<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기술적 장치가 개입된 이미지들이 반드시 예술일 필요는 없다.'(240-241) 라는 책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기획자(생산자)가 의도를 갖고 만든 장치에 프로그램과 알고리즘으로 자동 송출되는 키오스크 이미지는 기술적 이미지라는 입장이었고,

부정하는 측에서는,

키오스크에서 송출되는 이미지는 단지 문서의 문자와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이었다. 키오스크는 단지 상품을 소비하게 하는 '사다리'와 같은 것일뿐이며, 선형적 사유방식을 나타내는 알파벳 시대의 문자와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키오스크라는 장치에서 사진기와 같은 기술적 상상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저자(심혜련 전북대 교수)는 "문자로 표현되는 이모티콘(ㅜㅜ, ;; 등)의 경우도 키오스크와 동일한 논란이 가능한데, 이미지가 여러 성격(도상성, 색인성(정보전달성) 등)을 갖고 있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문자 이모티콘이나 키오스크도 기술적 이미지가 될 수 있겠다. 더불어 알파벳 시대 전후 이미지를 이해하는 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는데, 기술적 이미지의 경우 텍스트적 기능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문자 문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내가 이해한 바에 따르면 플루서는 '무엇은 무엇이다'라고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철학자였다"고 덧붙였다.

'무엇이 이미지인가'에 대한 이번 논쟁은, '여전히 기존의 개념 속에 갇혀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반성적 사유의 계기가 되었다. 이것이 오히려 플루서가 의도했던 것일수도ㅎㅎ

댓글 4
  • 2023-04-26 11:13

    무사의 열정이란 ㅋㅋ
    늦게 레퍼런스들을 살펴봤더니 플루서 논의 틀이 엄청 크구먼유. 이 사람 책도 우리 읽을 책에 추가해야겠어요 ㅎㅎ

  • 2023-04-26 11:16

    무사쌤의 학구열에 깜짝 놀랐어요 ㅎㅎ :]
    후기 감사해요!
    저는 우선 발제부터 올려두고 찬찬히 다시 읽어볼게요 ^^

  • 2023-04-26 22:37

    앗 뜨거!
    분명 문자로 이루어진 이미지인데, 시각적 촉각이 느껴지는 후기입니다ㅎㅎ 분명 무사샘의 학구열이 녹아들어 간 게 분명할테지요~

  • 2023-04-2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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