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매체철학』2회 후기_안더스, 맥루언,키틀러

관리쟈
2023-04-19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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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의 세대를 셋으로 나누면 1세대는 사진과 영화, 2세대는 TV와 라디오, 3세대는 인터넷과 컴퓨터라고 한다. 1세대 이론가로는 지난 시간에 보았던 벤야민과 아도르노를 꼽고, 이번 시간에 본 귄터 안데스와 맥루언은 2세대 이론가로 유명하다. 벤야민과 아도르노까지만 해도 매체의 내용으로서 대중문화와 사회의 영향을 다룬다면, 2세대 이론가들은 매체를 텍스트로 다루어 매체의 형식에 집중한다. 68혁명 이후에 벤야민이 소환되었다면 최근 디지털 매체론에서는 귄터 안더스나 맥루언 소환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귄터 안더스는 종말론적 기술론으로 유명하다. 하이데거의 영향을 크게 받았지만 하이데거보다 더 종말론적이다. 하이데거는 기술 그 자체에는 희망이 있으므로 테크네와 같은 기술의 전환을 요구한다. 반면 안더스는 이미 인간은 기술에 압도되었으며 도구적 인간으로서의 본질상 그만둘 수도 없다고, ‘프로메테우스적 부끄러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고 비관한다. 그의 책 제목이 <인간의 골동품성>인데 기술에 비해 인간은 골동품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런 관점을 갖게 된 건 그의 경험상 부득이한 면이 있다. 유대인이었고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는데, 미국의 역에서 대형 텔레비전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는 걸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마 나치의 연설에 열광하던 자국의 대중을 떠올렸던 것 같다. 8분의 시청으로 100페이지가 넘는 텔레비전 비판론을 썼다고 하니 그의 충격이 짐작간다.

안더스의 텔레비전 비판에서 주요 개념은 팬텀과 매트릭스이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주인공 이름이 팬텀이듯, 안더스의 팬텀은 이런 유령의 존재를 말한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이미 실제 세계가 아닌 유령같은 팬텀 버전의 세계이다. 중요한 건 유령이 도처에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의 이미지는 영화와는 달리 집안으로 들어와 일상을 이룬다. 그리고 일상이다보니 이미지를 실제와 혼동한다. 우리는 이미 편집된 이미지들로 사건을 만나면서 실제의 사건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결정된 것들'을 집으로 퍼나르는 매체로서 텔레비전은 팬텀 버전의 세계를 창출하는데, 또 중요한 것은 복제된 이미지의 유령들이 실제보다 더 영향력이 있다는 것이다. 아마 디지털 매체에 오면서 이런 비판은 중요해지고 가상공간-매트릭스에 대한 안더스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한 듯하다.

맥루언은 앞에서 다룬 사상가들이 독일 출신인 것과 달리 캐나다 토론토 학파의 일원이다. 이 학파는 대체로 매체에 우호적인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나치즘하에서 대중의 문제를 고민하던 독일 학파들과는 다른 경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 맥루한이 영향을 받은 헤롤드 이니스의 경우에 그는 기차역 근처에 살았고, 기차가 실어나르는 수송네트워크에 영감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20세기 초반을 달구었던 전쟁과 자본주의적 생산의 문제계에서 떨어져 있었던 캐나다 지식인들은 생산과 소비가 아닌 운반과 연결의 문제계에 천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배경에서 이니스나 맥루언은 본격적으로 소통, 커뮤니케이션으로서의 매체를 다룬다. 한 문화의 소통방식이 그 문화를 어떻게 유지하고 변형시키는가를 연구하면서 ‘매체는 그 자체 메시지이다’는 관점으로 매체를 도구가 아닌 형식으로 다룬다. 구술의 형식과 문자의 형식, 인쇄의 형식은 각각 고유한 사회 문화의 내용을 낳는다. 또한 이 형식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다른 형식을 낳기도 하는데, 맥루언은 이런 형식의 변화 과정을 핫미디어와 쿨미디어로 개념화한다. ‘매체는 마사지이다’라고 하여 매체의 편향은 감각의 편향과 관련된다는 표현이다. 이처럼 매체는 인간의 확장이므로 매체는 단순한 필요악일 수는 없다. 반대로 인간은 어떤 매체와 어느 정도로 결합했는가로 정의된다.

흥미로운 것은 인쇄문화를 쿠텐베르크 은하계라고 부르며 문자와 책 중심의 문화가 시각 편향의 문화를 낳아서 감각의 상호작용, 공감각적 능력을 퇴화시켰다고 보는 점이다. 이 책은 다음에 읽어보기로 했다.

프리드리히 키틀러는 최근까지 활동하며 다양한 매체적 사유를 내놓았는데 주목할 점은 매체를 기록의 측면에서 분석한 것이다. 매체는 각 시대를 기록하며 그 기록의 기술에 따라 담론, 제도, 학문 등이 연결되는 하나의 기록체계를 형성한다. 1800년대의 문자체계에서는 여성성에 주목한다. 1900년대는 타자기, 축음기, 영화를 주요 기록체계로 보면서, 이 세 매체를 라캉의 상징계, 실재계, 상상계에 대입하여 분석한다. 즉 매체의 정신분석학적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신분석학이 주로 무의식의 문제계를 갖는데 디지털 매체는 컴퓨터와 인공지능에서 보듯 의식의 기억과 관련된다. 기억과 기록이 갖는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를 매체적 접근에서 어떻게 풀어낼 수 있을지도 흥미로운 점이다.

 

텔레비전, 사진, 영화 등의 매체를 일상에서 접하면서도 사유의 측면에서 다양하게 다루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세미나 시간에 던지는 질문이 꽤 많았다. 하지만 익숙한 문제의식은 아니어서 아직은 술술 풀어내지는 못하고 있는데, 다음 시간부터 디지털 매체론으로 들어가면 조금 더 익숙해질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내가 접하며 경험할 수 있고 물질성을 띠어서인지 미디어 세미나는 매우 재미있는 공부가 되고 있다. 이크 스튜디오 멤버들의 첫 세미나인데다가 낮에 하는 세미나는 처음인 무사, 몇 년만에 세미나를 하게 된 꼭지와 같이 공부해서인지 유쾌하기 그지 없다.

 

댓글 1
  • 2023-04-19 20:21

    유쾌한 세미나 맞습니다. ㅋ~ 발을 들여 놓으니 의심과 호기심이 자꾸만 확장되네요.
    다양한 스펙트럼에 의한 매체에 대한 해석들이 모두 지금에도 앞으로도 영향을 줄 것 같아요. 저 역시 문자의 틀에 갖힌 사고에 익숙한 사람이라 이미지를 통한 소통이 참 어렵고, 새로운 매체 자체가 다른 은하계에서 쳐들어온 적 같이 두렵기까지 합니다. 세상에는,나에게는 무슨 일인지? 길을 잘 찾아 보려구요. . .
    제게는 맥루한은 신중함이 쬐끔 부족한 듯 하고, 안더스에겐 두려움이 쬐끔 많은 듯, 키틀러의 세심함은 좀 불편하고... 그러나 이들의 생각에 나는 똑같이 고개를 끄덕이고...
    자누리 선생님의 유쾌하고 편안한 가이드(?), 우현의 진지한 질문들, 고은의 명석한 포착, 동은의 넘나들어 끌어 올리는 훌륭한 연결고리, 무사님의 배경과 맥락에 대한 차분한 서술.
    모두의 도움으로 제 탐색이 순조로울 듯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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