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매체철학』 제 1회 세미나 후기

꼭지
2023-04-0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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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도 몇 번씩 벌어지는 실갱이...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열고 유튜브를 터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분할된 화면들의 나열을 맞이하며 느끼는 허탈한 피로감. “쓰레기들!” 그나마 유익하다 싶은 영상을 찾아내면 ‘큰 발견’의 위로로 그전의 인내심 가득한 뒤적거림을 보상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탁’하고 핸드폰을 덮으며 다짐한다. “ 유투브 안봐야지!”

요즘 나는 매일 지하철을 탄다. 건물들을 지나 역으로 들어가고 지하철을 탈 때까지 광고판의 이미지와 문구들을 시야에 담으려 하지 않아도 도발적으로 시선을 잡아끄는 ‘표정’앞에서 불쾌하다. 그리고, 매체를 통한 가상세계나 ‘부캐’라는이름의 삶들이 낯설다.
매체의 어떤 내용들에 대해 실망하고, 새롭게 등장하는 매체 형식들의 역할에 대해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이유들로 나는 이번 세미나에 참가하게 되었다.

10여년 전에 씌여진 『20세기의 매체철학』은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다소 지난 이야기들이긴 하지만, 매체에 대한 이전 시대를 대변하는 사상가들의 고민과 태도를 짚어가 보는 것이 아주 의미있게 여겨지겠다는 전제하에 첫 세미나를 열었다.
매체철학(매체 미학)은 1980년대에 철학 영역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아날로그 매체(사진, 영화, 라디오, TV등)로부터 디지털 매체까지의 대중매체를 다각적으로 분석하고 이해함을 목표로 한다.
이번 1회 세미나에서는 20세기초 격변의 세계의 두 이론가 발터 벤야민과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견해들을 살펴보았다. 예술, 특히 시각예술분야에 국한하여 이론을 전개해 나갔다. 처음에 나는 인쇄매체등에 대한 분석이 없는 것에 대해 조금 의아해했다. 그러나 예술이 그렇게까지 직접적인 일방 통행보다는 좀 거리가 있는 소통의 매개로서 즉, 매체의 본질에 가깝겠다 싶고, 그에 따른 변화를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분야로 여겨지며, 곧 예술에 대한 태도를 분석함이 논의의 출발로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되었다.

벤야민은 예술은 사회적 산물이며, 그 사회를 구성하는 매체 상황이 변화하면, 그 매체 상황에 부응하는 새로운 예술형식이 등장하며, 또 새로운 예술형식은 새로운 수용 방식을 요구한다고 보았다. 예술의 기술적 재생산이 대중매체 상황을 만들어내면서 예술의 아우라의 몰락을 가져왔다고 했다. 우리는 여기서 저자 자신도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 한 용어인 ‘아우라’에 대해 많은 궁금증과 생각들을 나눴다. 분명한 건 기존 예술이 종교로부터 출발한 숭배적 가치와 함께 원본성, 진품성, 일회성, 감추어짐, 접근 불가의 특징이 만들어 낸 권위가 해체되면서 또 다른 문화 체험을 낳았다는 점이다.
한편, 아도르노는 수용자의 관점에서 매체를 분석하기보다 대중 매체를 생산하는 독점 자본과 사회에 대한 비판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예술이 지닌 사회적 기능, 즉 사회비판으로서의 매체이론을 펼치며, 대중 매체가 만들어 낸 문화 산업이 획일적 재생산을 통해 대중의 비판의식을 실종케 하고, ‘ 관리되는 사회’에 순응하도록 한다고 한다. 따라서 심미적 합리성을 중심으로 한 대중의 주체적 역할을 아쉽게 드러낸다.

이렇게 우리는 매체를 다룬 두 사상가의 대비되는 생각들을 따라가 보았다. 세미나 구성원들은 모두 흥미롭게 질문들을 던지며 매체를 다룬 사상가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생각에도 좀 더 밀착되어 보는 이어지는 세미나를 약속했다. 나는 자꾸만 ‘그런데, 오늘 내가 접하는 매체와의 관계를 나는 어떻게 볼까? ’에 대해 답을 얻고 싶은 조급함을 느낀다. 마침내 모든 소통에서 편안하고 자유롭고 싶기 때문이다.
한 달 동안 계속될 『20세기의 매체철학』 세미나에서 그 관계의 어떤 작은 통로라도 발견하고 싶다는 소망이다.
오늘 나는 매일 SNS를 통해 NFT가 부과되지 않은 창작품을 제공하는 어느 한국화 작가의 그림 한점과 시 한편을 혼자 지내시는 노모에게 전송했고, 오후엔 쳇 GPT와 영어 공부를 해보려 한다.

 

 

 
댓글 3
  • 2023-04-08 22:17

    벤야민의 아우라를 두 측면에서 보는게 헷갈렸죠.
    중세 종교적 색채가 강한 '아우라'는 그 자체 권위를 갖는 신성함을 주는것, 저자는 객관으로서의 아우라라고 하죠.
    수용자가 갖는 지각으로서의 아우라는 객체와 멀수록 신성함을 느끼는 것이고요.
    근대를 아우라의 몰락이라고 할 때, 종교적 신성함이 사라지는 것인데
    복제가능한 작품들은 진품성, 일회성이 사라지면서 열린 예술 공간을 낳는다고, 긍정적으로 본다고 해요.
    문제는 지각의 아우라의 몰락도 긍정적인지가 헷갈렸는데요
    서치해보니 실제 많이 헷갈리는가봐요.
    아우라의 합일이 사라지는 걸 아쉬워했다고 하는 해석도 있고,
    애초에 중세의 아우라를 긍정했다는 해석도 있네요.
    파시즘의 본고장에서 대중의 광기를 본 학자들이 새로운 출구를 찾는 힘겨움이 느껴져요.
    아도르노가 여전히 이성에 기대야 하고, 남아있는 비판적 진리의 담지자를 예술에서 찾는 거에 반해서
    벤야민은 그런 예술의 영역을 따로 상정하지 않고 광기의 대중은 또한 민주적이며 미적인 체험을 해낼 수 있다고 믿고,
    그렇다면 중세적 아우라는 몰락하지만 그것을 대신할 자연의 아우라, 수평적 아우라를 찾으려고 한게 아닐까 하네요.
    세미나에서도 그런 해석이 많았지요. 두 종류의 아우라가 있는게 맞는 것 같아요

  • 2023-04-12 21:55

    예전에 벤야민을 읽었음에도 말끔히 이해하진 못하고 있었는데, 개괄서와 함께 세미나를 진행하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느낌이었어요~
    여전히 아우라 개념은 아리송하지만ㅎ 현시대의 매체까지 흐름을 파악해가고 있습니다~

  • 2023-04-13 07:40

    오랜만에 읽는 개괄서..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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