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감정 에세이 발표

겸목
2022-12-12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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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에세이발표와 함께 <아무튼 감정>의 1년이 끝났다. 토요일 오전 10시 문탁 강의실에는 <아무튼 감정>세미나팀의 목소리가 오고갔다. 문탁에서 내내 공부한 사람도 있고, 최근 몇 년간 공부한 사람도 있고, 가을학기에 처음 문탁에 온 사람도 있다. <아무튼 감정>팀은 10명이었지만, 우리의 문탁경험은 각기 달랐다. 문탁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이해나 관심도 달랐고, 각기 공부하고자 하는 이유나 목적도 달랐으리라 본다. 튜터인 나에겐 이 '다름'과 '차이'가 내내 화두로 남아 있다. 달라서, 차이가 나서 좋은 점도 있었고, 달라서, 차이가 나서 어려운 점도 있었다. 에세이발표와 함께 1년 공부도 끝이 났지만, 이 좋음과 불편함이 내내 생각해볼 거리로 남을 것 같다. 이런 생각해볼 거리를 남겨주었다는 점에서, 올해의 <아무튼 감정>은 나에게 공부가 많이 이루어지는 현장이었다. 그럼, 나 이외의 9명에게는 어땠을까?

 

 

나래님은 '왜 수치스러워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글을 썼다. 여성으로 자라고 살아오며 월경과 섹스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여성의 수치심'이 자연적이고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가정, 학교, 사회에서 만들어진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감정임을 드러내는 글쓰기였다. 버스 안에서 은하선의 <이기적인 섹스>를 당당히 펼쳐 들고 읽고 있을 때 '해방감'을 느꼈다는 소감에 에세이를 듣는 사람들 모두 웃었다. 아! 해방감은 그렇게 오는구나~ 하는 아이디어를 얻는 순간이었다. 하현님은 세미나중에 우리 주변에 소수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왔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가 불편했다고 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장애, 성소수자, 알코올중독, 성폭력피해자는 편만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하현님의 에세이는 그런 이야기를 우리가 읽었던 책들과 함께 엮어서 쓰여졌다. 파편적이지만 서로 연결될 수도 있는 이야기들이라 다들 주의 깊게 들었다. 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를 써도 될까, 이렇게 쓰는 것이 당사자에게 무례한 일이 아닐까 곤혹스러운 느낌도 들었지만, 쓰여지는 것이 맞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하현님이 이후로도 더 많은 이야기를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이님은 코로나로 가능해진 재택근무 덕분에 착실히 읽게 된 책들에 대한 정리글을 썼다. 일라이 클레어의 <망명과 자긍심>을 시작으로 김지혜의 <선량한 차별주의자>까지 17권의 참고목록까지 부록으로 첨부했다. 이렇게 꼼꼼히 독서하고 문제의식을 벼린다고 혐오와 차별이 난무하는 현실을 바꿀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고, 혹시 '세련된 포스모더니즘 신유물론적 페미니즘이론'을 통해 비겁하고 안일한 정신 승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유보적인 마무리를 했지만, 도장깨기하듯 성실하게 차근차근 밟아가다 보면 답답한 현실에 짓눌리지 않는 배짱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스르륵은 '가나안 성도'의 딜레마를 어빙 고프먼의 <상호작용의 의례>를 중심으로 풀었다. 교회에는 안 나가지만, 교회처럼 문탁공동체에 나오고 있는 학인으로 공동체적 마주침과 자연인으로 살고 싶은 욕망 사이의 갈등이 드러나는 글이었고, 오래도록 스르륵을 봐왔던 친구들은 아직도 그 문제로 고민하느냐고 한 소리 했지만, 그래도 '진일보'했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내년에 스르륵이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도 궁금하다. 단짠글쓰기에 이어 2년째 문탁에서 공부하는 지연샘은 이번에도 '회사'이야기를 에세이로 썼다. '내 마음속의 빌런들'에 대해 좀 좋게 써보려 하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글을 써보려도 했지만, 빌런은 빌런으로 남겨두기로 했다고 한다. 대신 빌런들도 '밖으로부터 부과된 도덕적 규칙들로 만들어진 일종의 구성물'일 터이니, 이에 대해 탐구해봐야겠다는 생산적인 결론을 내렸다. 심리상담사 언희샘의 에세이에서도 상담사로서의 곤혹스러움이 드러나는 에세이를 썼다. 어빙 고프먼의 '무대' 개념을 수업과 상담에서 그리고 시간강사로서 본인과 본인을 고용하는 대학과의 관계에서, 무대를 만들고, 무대에 오르는 일이 쉽지 않음을 드러내는 글이었다. 무대 위 배우뿐 아니라 무대 아래 관객으로 우리는 서로에게 응원과 지지를 해줄 수도 있을 것이다. 

 

 

프리랜서 편집자인 당최님의 글은 초고가 나왔을 때부터 반응이 뜨거웠다. 소설처럼 읽히는 재미도 있었지만, 여자친구들과의 우정과 상처를 곱씹는 내용이라, 다들 타임슬립해서 각자의 20대 또는 30대의 우정을 되짚어보는 시간이었다. 고프먼의 책을 통해 '상처'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달리 해석해 볼 수 있어 카타르시스가 있었다는 당최님의 소감이 기억에 남는다. 야행성인데 토요일 아침마다 일산에서 분당으로 오느라 많이 힘드셨을 것 같다. 당분간 평온한 토요일 오전 즐기시기 바란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공부 인연도 이어졌으면 좋겠다. 정의와미소님은 2인 기업의 경영인으로서의 어려움을 '순화된' 내용으로 써오셨다. 초고에서는 동업자에 대한 감정이 '매운맛'이었는데, 수정과정에서 정화되었다고 한다. 뭔가 동료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것 같아 그렇게는 못쓰겠다는 정의와미소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불만과 문제점을 어떻게 '뒷담화'가 아닌 방식으로 쓸 수 있을지가,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계속 해봅시다.

 

감정 관련 책들을 공부하며, 감정사회학에 대한 이해도 조금은 넓어졌지만, 무엇보다 우리는 자신의 감정에 대해 조금은 너그러워진 것 같다. 편견, 혐오, 수치심의 작동방식을 조금이라고 규명하려 애쓰는 저자들을 따라, 우리도 우리의 감정을 혹독하게 내몰기보다는, '그래서 그랬구나!'라는 이해 또는 '그럴 수 있어!'라는 관용으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감정사회학은 참 유용한 학문이다. 어빙 고프먼이라는 독특하고 창의적인 사회학자를 알게 된 것도 큰 기쁨이었다. 다음엔 이 괴짜를 어떻게 써먹어볼까 궁리해볼 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함께 지나온 10명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같이 책 읽고, 이야기를 나눠져서 좋은 시간 보냈습니다."

 

 

댓글 3
  • 2022-12-12 21:30

    겸목샘- 막판에 바빠지셔서 에세이는 함께 못쓰셨지만 이렇게 후기로 겸목샘의 글을 읽게 되어 좋아요! 1년- 1학기동안 함께 판 쌤들에게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연말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 2022-12-12 23:02

    와와 겸목쌤 에세이 못 쓰신 아쉬움을 후기에 정성 가득이 담아내신 듯! 올 한해 아무튼 감정 세미나 하면서 함께해서 재미도 의미도 있었습니다.(TVN아님 주의) 모두 고맙습니다.
    연말 몸과 맘 돌보며 충전 가득하시고 내년에 또 반갑게 뵈어요!

  • 2022-12-13 00:16

    잘 읽었습니다~ 겸목샘 에세이를 못 읽어 아쉬웠지만 후기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짚어주시고 한 학기 곱씹어주시니 좋네요. 한 학기 동안 게으른 영혼 이끌어주시고 환대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ㅋㅋㅋ 하아 분당 왜케 먼가요... 평비 듣고 싶은데 오전... 하하하하 ^_ㅠ 아무것도 장담할 순 없지만 내년에 또 뵙길 기원하겠슴다! 연말 따뜻하게 보내세요. 미리 메리크리스마스 &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