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비딕> 네번째 후기

작은물방울
2020-12-05 22:29
394

 

저번시간의 읽은 부분은 철학자 이슈마엘을 만나는 시간이었다면

이번에는 고래 전문가를 만나는 시간이었다. 고래의 머리(눈, 코, 이마)부터 꼬리까지 그리고 화석고래까지... 소설이 아닌 과학서적에 분류될 만큼(실제로 그랬단다)방대한 지식이었고 너무나 시시콜콜한 것까지 적고 있어 지루한 하다는 평까지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멜빌의 사유와 묘사력에는 감탄을 감출 수 없었다.

 

#74~86

고래의 눈은 인간의 귀의 위치에 붙어있다. 그러니 초점이 한 개로 맞추어져 밝은 곳에서 눈을 뜨면 보이는 자연스런(?) 보기의 행위는 인간에게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당연해보이지만 당연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멜빌은 이마의 긴주름과 넓은 이마를 가진 향유고래를 플라톤주의자로 턱을 감싼 아랫입술을 가진 참고래를 스토아철학자로 묘사했다. 좀 더 자세히 고래의 얼굴을 살펴보자면 향유고래는 (제대로 된)코가 없고 얼굴이 없다. 다만 대초원같은 이마만이 존재한다. 이처럼 창공같은 이마를 가진 고래의 모습은 더더욱 신성함을 드러낸다. 그 이마에 있는 주름은 깊은 상념과 함께 장엄한 칼데아 문자이다. 저번 시간 우리를 감동의 도가니에 빠뜨린 철학자 이슈마엘조차도 이 상형문자를 해독할 수 없다.

 

고래를 잡았다고 해서 모두 기름을 얻을 수는 없다. 불가피하게 이상하게도 이유 없이 향유고래는 가라앉기도 한다.

죽음을 불사하며 사투를 벌인 고래를 잃을 수 있다는 사실. 이러한 진실을 사유하는자들이 바로 고래잡이들이다.

그리하여 고래잡이의 회원 명단에는 명성에 걸맞는 회원 이름들이 있다.

제우스의 아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비슈누(베다경전이 바다 밑에 있었기에 비슈누는 고래가 되어 이 책을 가져왔다), 요나(성경에 나오는)등등.

또한 고래잡이들이 아무리 용감 무쌍하게 작살을 잘 휘두른다해도

고래를 잡을 수 있는 이유는 고래가 호흡을 위해 바다 위로 나오기 때문이다.

인간의 능력 때문이 아닌 고래의 생리 덕분에 어둠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들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멜빌은 고래의 눈부터 시작하여 이마와 코, 꼬리까지 살피지만 실제 고래에 대해 말하자면 모른다라고 이야기한다. 꼬리로 세상과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고, 있지도 않은 얼굴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 인간은 그 어떤 것도 다 알 수 없다.

 

#87~#105

고래 떼를 만난 피쿼트호. 이들에게 고래 두 마리는 작살에 맞은 상황.

고래들은 당황하고 겁에 질린 무리에 둘러싸였음에도 자유롭고 대담하게 온갖 태평스러운 일에 몰두하며 고요함과 잔잔함을 즐겼다. 마음 속에 평화를 간직한 고래들.

요새 심경이 복잡하고 어지러운 요요님은 저번 시간에도 비슷한 구절에 감흥하셨던 같은데...

모쪼록 심신의 평화가 찾아오길 기도드려요.

고래 떼를 만났지만 한 마리밖에 포획하지 못한 피쿼트 호! 이들의 격언은 “고래가 많을수록 수확은 적다” 이다.

 

89장의 제목은 <잡은고래와 놓친 고래>이다. 잡힌 고래를 인간사에 적용하면 노예, 농노, 이자, 노동자들이다. 소유에 대한 법이 전부인 세상에서 힘이 약한 자들은 잡힌 고래이다. 반면 놓친 고래는 인간의 권리와 세계의 자유, 인간의 생각과 사상. 신앙의 원칙, 철학자의 생각, 그리고 지구 자체가 놓친 고래이다. 인간이 놓친 지구!! 우리는 이상(理想)을 잃었다.

 

어떻게 죽은 고래인가?를 기준으로 시든 고래와 마른 고래가 있다.

자연사한 시든 고래보다 위장병 따위로 말라 죽은 마른 고래의 냄새는 더 지독하다.

그러나 이 지독한 냄새를 풍기는 고래엔 보물이 숨겨져있다. 향기로운 용연향이라는 것이 이 지독한 썩은 몸 속에 숨겨져 있다.

 

나는 이 구절에서 예전에 불교 공부를 할 때의 연꽃이 생각났다. 온갖 번뇌의 진흙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

아픔과 고뇌는 향기를 낳는다.

멜빌은 고래의 멸종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늠할 수 없는 바다의 힘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위대하여 인간이 정복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지구의 2/3인 바다에 대해 알아 낸 것은 없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쓰레기로 정복시킬만큼 인간은 많은 것을 써댔고 버려댔다. 인간이 아무리 용써봤자 알 수 없고 정복할 수 없다고 믿었던 150년 전 세상과 지금은 너무나 다르다.그리고 고래는 멸종되었다.

 

동물권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산책님은 고래가 멸종되면 인공수정을 하지 않겠냐며 150년 전에 인간에 대해 시니컬했던 멜빌조차도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이라며 개탄하셨다.

 

요새 공장식 축사에서 구조해낸 돼지 한 마리와 친구가 되고 있는 이야기도 전해주셨다.

 

자연과 생명의 경이로움을 만나지 못하는 세상은 더더욱 야만이 되어가고 있다.

위험함과 야생이라는 공포의 이름이 신비로움을 마주하지 못하게 하고, 인간은 그들 자신조차도 공장식 사육(성냥갑처럼 똑같은 집, 건강하지 못한 사료, 노예적 삶)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지금 모비딕을 읽는 우리는 편안한 육지를 떠나 바다로 한 걸음 옮길 수 있을까?

 

코로나 백신 개발을 명목으로 많은 동물실험들이 강행되고 있다. 고래는 노아의 방주따윈 쳐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노아의 방주에 인간 종(種)을 태워야할 것인가? 불멸의 고래를 생각한다면 답하기가 쉽지 않다.

댓글 2
  • 2020-12-06 17:42

    저도 용연향 읽으면서 연꽃을 떠올렸어요. 혹시 용연향의 연자가 연꽃을 말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과학기술과 자본주의가 짬짜미해서 지구를 너무 빠른 속도로 아작내가고 있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픕니다.

    저는 이번 주에도 고래 잡이 말고 돼지 봉사 갑니다.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것 같아요.
    제가 이 나이에 돼지한테 빠질 줄은ㅋ

    4회차 세미나 때 두고두고 음미할 내용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 후기도 두고두고 꺼내 읽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0-12-06 17:44

    만일 우리가 이슈마엘이 고래를 연구하듯이 무엇인가를 파고 든다면
    그것이 격물치지, 궁리의 자세 아닐까 싶더라고요.
    고래를 통해 철학하는 이슈마엘, 진심으로 감탄스러워 '리스펙!'입니다.
    멜빌이 실제로 포경선에서 일한 경험을 기초로 했다지만
    단지 개인적 경험만으로는 이런 책이 나오기 어려울듯해요.
    멜빌의 탐구와 노고의 산물인 작품 <모비딕>도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네요.
    맛있는 과자 아껴먹듯이 피날레는 아껴가며 한줄한줄 야금야금 읽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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