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적산은 천수 시내에서 남동쪽 약 45킬로미터, 서안부터 따라온 진령산맥 서쪽 끝자락의 소농산 한쪽에 홀로 떨어져 있는 높이 142미터의 거대한 암봉이다. 붉은 기운을 띠고 있는 이 암봉은 바윗결이 수평으로 차곡차곡 포개져 있어 마치 보릿단을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하여 보래 맥자, 쌓을 적자 맥적산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절벽의 높이만 80미터에 달하는데 4세기부터 1천 년을 두고 석굴사원이 굴착되어 크고 작은 석굴과 감실이 221개, 암벽에 새긴 마애불과 석굴에 봉안된 불상이 약 7,800상, 벽화가 약 1천 제곱미터 남아 있다. 불교가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으로 전래되면서 석굴사원에 세워져 쿠차의 키질석굴, 투르판의 베제클리크석굴, 돈황의 막고를, 하서주랑을 통과하면서 난주의 병령사 석굴, 천수의 맥적산 석굴로 이어지며 마침내 관중평원을 통과하여 낙양의 용문석굴, 대동의 운강석굴까지 다다르게 된다.
맥적산에 석굴이 조영되기 시작한 것은 중국에 불교가 본격적으로 전파되는 4세기, 오호십육국시대(304 ~ 420)부터이다. 흉노, 선비, 저, 갈, 강의 오호의 16왕조가 태어나고 멸망하였다. 감숙성 쪽에서는 전량, 후량, 남량 등 량자가 들어가는 나라가, 섬서성 쪽에서는 전진, 후진, 서진 등 진자가 들어가는 나라가 명멸했다. 그 시절 천수 지역을 지배한 나라는 저족의 전진이었다. 전진의 강력한 왕 부견은 372년 고구려에 순도라는 스님을 보내 불교를 전파하였던 불교를 열렬히 신봉한 왕이었지만 맥적산에서 전진시대 석굴은 보이지 않는다. 전진이 망한 후 강족의 후진과 선비족의 서진이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 후진 황제 요흥은 서역승 쿠마라지비를 국사로 모시어 산스크리트어로 된 300권의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게 하였다. 맥적산은 요흥의 후진시대에 조영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가 성행하면서 스님들의 수행과 예불 공간으로 굴착된 것이 맥적산 석굴의 기원이다. 제 74굴을 최초의 석굴로 추정하는데 인도식 착의 방식인 편단우견을 하고 있고 이 양식은 제78굴과 같은 북위시대 초기 석굴과 같다.


선비족계의 탁발씨가 세운 북위는 439년에 북부 중국을 통일하여 오호십육국시대를 마감하고 장강 이남으로 내려간 한족의 나라와 대립하면서 남북조시대를 열었다. 이후 150년간 지난 다음에 수나라에 의해 통일이 된다. 북위는 강력한 불교국가로 수많은 불교 유적을 남기며 중국 불교미술의 제1차 전성기를 맞이했다. 운강석굴, 용문석굴이 북위시대에 굴착되기 시작했고, 맥적산에서도 석굴이 대대적으로 조영되어 석굴 반이 북위시대 석굴이다. 특징으로는 서역양식에서 벗어나 중국식 불상으로 토착화된 것이다. 그래서 북위시대 불상은 중국인의 모습으로 인도의 편단우견이 아니라 북부 중국의 기후에 맞는 두툼한 옷을 양 어깨에 통으로 걸치고 있으며 옷자락의 주름이 겹겹이 흘러내린다. 신체는 호리호리한 편이고 목이 굳센 듯 길고 얼굴에는 엷은 미소를 띠고 있다. 이를 수골청상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중국 불교미술의 제2차 전성기인 당나라 시대의 불상이 풍만하고 역강한 육체미를 자랑하는 것과 크게 구별된다. 북위시대 불상은 소박하고 진솔한 고졸미가 있고, 당나라 시대 불상엔 화려하고 역동적인 사실미가 있다. 당나라 시대 불상에는 절대자의 위엄이 강조된 반면 북위시대 불상엔 절대자의 친절성이 나타난다. 맥적산석굴은 북위시대 불상의 보고라고 불린다.
534년 북위가 멸망하면서 동위와 서위로 나누어지는데 서위는 20여년 지속하였고 12개의 석굴을 남겼다. 대표 석굴은 제123굴 동남동녀상, 제127굴 손을 내민 보살상이 있다. 이후 북주가 그 뒤를 이어 약 25년간 지속되었고 44개의 석굴이 조영되었다. 불상 양식은 점점 장대해지는 경향을 보여준다. 부처님의 친절한 미소는 여전한데 목이 굳세고 힘이 들어간다. 뒤이은 수나라시대 불상은 미소가 사라지고 경직될 정도로 완력이 강조된다. 동쪽의 북제도 마찬가지여서 이를 ‘제주 양식’이라고 한다. 수나라 불상은 아주 장대한 거구의 인상을 주며 불상의 배치에서 삼존불이나 오존불 형식을 취한다. 당나라에 들어가서는 훨씬 세련되고 사실적인 모습으로 발전해 간다. 제5굴은 수나라 때부터 개착되어 당나라 때 완성한 것으로 이런 변모를 잘 보여준다.


맥적산에는 당나라 시대 석굴이 거의 없다. 당나라 이후 오대십국 혼란기를 거쳐 송나라 시대로 들어오면서 맥적산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된다. 제165굴의 인간적 매력의 공양인상이 있고, 제133굴의 중후한 인상의 석가여래상과 그의 아들 라훌라가 공손히 합장하고 수기를 받는 모습이다. 송나라 시대는 새로 석굴을 굴착하는 대신 기존 석굴에 새 불상을 모셨다. 이후 명나라 청나라 때도 불상 보수 정도에 그쳤다. 그러다 외세의 침탈과 내전으로 사실상 잊혀지게 되었다. 그런 맥적산석굴을 중국 정부는 1953년에 ‘맥적산 문물보관소’를 설립하고 조사와 복원에 착수하였고 1984년부터 일반인에게 공개하기 시작하였다.




시대별로 친절하게 설명된 맥적산석굴은 다양하고 긴 역사에 얽힌 불상들을 보여주고 있다. 불상에 대한 시대별 특징들도 흥미롭고 현대에 가까운 시대가 오히려 더 볼것이 없다는 점과 옛 시대가 더 풍부하게 감정을 일으키는 점이 놀라웠다. 특히 가장 좋았던 서위와 북위의 석상들은 그 역사와 배경을 더욱 궁금하게 한다. 언젠가는 오호십육국시대를 더 자세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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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자료들이 좋네요. 다른 부분까지 더 읽고 싶다는 생각....같이 공부하니 호기심이, 하구열이 더 생기는듯^^ 화이팅!
이 석굴, 저 석굴 돌아다니다 보니 머리가 어지러웠는데, 원영샘 덕분에 맥적산 석굴은 정리 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