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발제 (3) 및 세미나 후기

제경
2020-11-17 22:11
527

11/11 여사서 세미나 후기

 

지난 3주간 세미나에서는 여사서와 함께 이반 일리치의 <젠더>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가 말하는 젠더를 통해 역사를 다시 보고, 젠더가 파괴됨으로써 자리 잡은 현대의 산업 사회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그는 남자와 여자 모두젠더를 따라 상호작용하고,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문화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남자의 젠더와 여자의 젠더란 무엇일까? 이반 일리치가 말하는 젠더란 다음과 같다.

 

내가 젠더라는 말을 쓰는 것은 토박이 문화에서 일상적으로 구분되는 행위 상의 특징을 지칭하기 위해서다. 토박이 문화에서는 장소, 시간, , 말투와 몸짓, 감각 등을 남자와 결부시키거나 여자와 결부시켜 구분한다. 이러한 연관성은 때와 장소에 구체적으로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적 젠더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러한 젠더는 근본적이면서도 동시에 어느 곳에서도 동일하지 않은 사회의 양극성, 남녀 이원성을 지칭한다. 이러한 특징에 대해모호한 상보성’, ‘비대칭적 상보성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일리치의 논점은 젠더의 비대칭성이 지니는 차별을 드러내는 있지 않고, 생존을 위해 양손의 상호작용에 의존하듯이 인간의 삶은 남녀 젠더의 비대칭적 상보성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대의 젠더를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성은 획일적으로 남녀를 편가르고 젠더의 특성을 무시한 동일선 상이라는 환상 아래 희소성을 두고 경쟁하게 만드는 현대 산업 사회의 기반이라고 말한다. , 일리치는 젠더를 파괴함으로써 산업사회가 성립했고, 이러한 산업 사회는 필연적으로 성차별적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젠더가 부재한 경제 중심의 사회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환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경제성장과 산업사회가 필연적으로 젠더 파괴적이기 때문에 성차별은 경제의 축소를 통해서만 약화될 있다고 강조한다.

 

뿐만 아니라 젠더를 통해 역사를 다시 읽어내며 일리치는 유럽의 역사를 단계로 구분했다. 젠더가 다스리던 시대(11세기까지), 젠더가 붕괴하여 이행하던 시기(12~18세기), 그리고 지배하는 시기(19세기 이후)이다. 시장관계들의 형성, 자본주의의 침투, 화폐화와 상품의존이 젠더의 폐기를 가속화 시킨 이행의 과정은 12세기 중엽에 준비되었다. 무엇보다도 당시 교회의 역할에 주목한다. 특히 교회가 혼인성사로 부부의 결합을 보증하면서 이전과 달리 부부가 가정의 중심으로 부각되었다. 그리고 의무적인 고백성사를 통해 개인의 양심을 심문하는 목회적 기관으로 거듭나면서 개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는 과정에서  젠더가 붕괴되어 갔다고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이전에 세미나를 하던 , 여성성과 남성성이 화두가 순간이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릿 속에서는  그동안 골머리를 앓아온 시간들이 스쳐지나갔다. 하지만 내가 내뱉은 말은 여성성과 남성성 자체를 부정하고 싶다는 말이었다. 그것들이 어떤 특징일지언정, 심지어는 때에 따라 긍정적인 뜻일지언정 말의 형태만으로 여성은 여성다워야 하고, 남성은 남성다워야 한다는 뜻을 전제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단어가 가져오는 인간 개인에 대한 규정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갈등들이 지겹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일리치는 새로운 시야를 열어주었다. 그것 또한 절대적일 없지만, 상호보완적인 젠더가 뿌리뽑히고 획일적인 성으로 탈바꿈하면서 현대 사회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그의 글은왠지 나의 심통과 지겨움을 달래주는 듯했다.

 

무엇보다 산업주의적 생산으로부터 자급자족으로의 이행, 공유재의 회복이 결국 성차별의 축소에 이르는 길이라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것은 젠더의 회복으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는 주장이 좋았다. 페미니즘에 위로 받고, 기후위기에 분노하며, 시간과 건강을 내주고 돈을 얻고 싶지 않는 나로서는 문제들을 엮어 곱씹고 소화시킬 있는 그의 말이와닿았다. 나의 고민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라고 깨닫고,  이러한 연결성을 어떻게 살면서 실현할 있을지 상상해보게된다.

 

일리치 덕분에 요즈음 이런 것들을 머릿속에 굴리고 있다. 산업사회의 성장 신화에 대해. 자본주의 경제의 이면에 대해. 근대성의 위상에 대해. 이것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이전의 삶은 까마득할 정도로 오래되었지만, 아주 찰나에 이것들이 우리를 집어삼켰다. 혹은 우리가 우리를. 우리가 세상을 아주 빠르게 발전시키고 동시에 파괴하는 것에 비해 너무 낡은 것들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80년대에서 이반 일리치의 글이 급진적으로 느껴지는 걸까. 답답함과 개운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같다. 이반 일리치는 젠더가 파괴된 세상에 대해 특별한 치료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다만 다음과 같이 <젠더> 끝맺었다.

 

수도사와 시인이 죽음을 관조함으로써 현재의 절절한 살아있음에 감사하듯이, 우리도 젠더 상실의 슬픈 현실을 응시해야 한다. 우리가 경제적 중성이라는 이중의 게토에 갇혀 있음을 엄정하고도 냉정한 시선으로 받아들이고 경제적 성이제공하는 안락함을 거부하는 길로 나아가지 않는 , 현대적 삶의 기술은 회복될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삶의 기술에 다가갈 있는 희망은 감상적 태도를 버리고 놀라운 진실들에 마음을 여는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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