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카메오 열전 10회] 계손씨는 뭘 잘못했을까

진달래
2023-02-02 0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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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계씨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기 집 뜰에서 팔일무(천자 앞에서 추는 춤)를 추니 이런 일까지 한다면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孔子謂季氏 八佾舞於庭 是可忍也 孰不可忍也) 「팔일, 1」

 

공자가 살던 당시에 노(魯)나라에는 삼환(三桓)이라고 부르는 세 대부 집안이 국정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들은 노 환공(桓公/前712~前694)의 후손들로 맹손(孟孫), 숙손(叔孫), 계손(季孫)씨 집안을 이른다. 맹(孟), 숙(叔), 계(季)는 형제들의 순서를 말하는 것으로 맹은 맏이, 숙은 둘째, 계는 막내의 뜻이다. 어찌 보면 한 집안 사람들인 이들은 때로는 서로 힘겨루기를 하지만 대부분 서로를 도와가며 노나라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이들의 힘이 얼마나 막강했는지 공자 당대의 군주였던 소공(昭公/前542~前510)은 계씨를 정벌하려다 오히려 삼환에게 쫓겨나기도 했다. 공자는 이러한 상황을 도(道)에 어긋난다고 여겼다. 사람들이 살기 힘들어진 것도 이렇듯 세상의 질서가 무너져서라고 생각했다.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세상, 그래서 공자는 정치는 무릇 정명(正名), 즉 이름을 바로 잡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논어』에 등장하는 삼환은 신하가 신하답지 못한, 세상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대표적인 인물들로 그려진다.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

 

팔일무(八佾舞)는 천자가 연회를 베풀 때 추는 춤이다. 신분제 사회에서는 각 신분에 따라 춤의 종류나 춤을 추는 무희의 수가 정해져 있었다. 흔히 팔일무는 여덟 명씩 여덟 줄을 맞추어 총 64명의 무희가 춤을 추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아래로 무희의 숫자가 줄어드는데 제후는 육일무(六佾舞), 대부는 사일무(四佾舞)를 출 수 있었다. 계씨는 대부이므로 예(禮)에 맞게 하려면 사일무를 추어야 했다. 그런데 대부인 계씨가 자기 집에서 팔일무를 췄다는 것은 당시 그의 권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논어』에는 계씨를 비롯한 삼환이 벌였던 이런 비슷한 일들이 더 등장한다. 자기 집안 제사에 천자의 제사에서나 쓸 수 있는 제사 음악을 연주하고, 천자가 지내는 태산 제사를 계씨가 지내려고 한 일 등이다.

 

군주도 어쩌지 못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던 삼환, 노나라의 군주들은 삼환 세력을 견제하기 위한 일들을 꾸준히 벌였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14년이라는 기간을 떠돌아 다녀야 했던 것도 정공(定公)을 도와 삼환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듯 노나라는 전국시대 초(楚)나라에게 멸망할 때까지 삼환의 세력을 떨쳐내지 못했다.

 

사마천은 「노주공세가」 말미에 노나라의 도가 쇠약해진 원인 중에 하나로 삼환을 들었고, 특히 이들이 신하임에도 소공(昭公)을 공격하여 내쫓은 일을 꼽았다. 소공이 노나라에서 쫓겨난 이 일은 30대의 공자가 쫓겨나는 소공을 따라 제나라에 가서 제 경공을 만난 일로도 유명하다. 이 때 공자는 제 경공을 만나서 그 유명한 정명(正名)을 이야기했다. ‘군주는 군주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君君臣臣父父子子)’ 아마도 이 말은 노나라에서 계씨에 의해 쫓겨난 소공의 일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듯하다.

 

소공이 노나라에서 쫓겨나게 된 일은 사실 ‘대부가 군주를 몰아낸 일’이라고 간단히 보기에는 복잡한 사정이 있다. 이 당시 노나라의 여러 대부들은 너무 막강한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계씨에게 불만이 많았다. 마침 닭싸움을 계기로 계씨와 후씨(后氏)가 다투게 되었고, 싸움이 크게 번지자, 소공은 이를 이용하여 평소에 계씨에게 불만이 많았던 대부들과 함께 계씨를 공격하려고 했다. 막 계씨를 정벌하려고 진격하려하는데 그 사이, 삼환 중 하나인 숙손씨가 “계씨가 있는 것과 없는 것 중에 무엇이 나은가?”라며 맹손씨와 함께 거꾸로 소공을 공격하였다. 이에 놀란 소공은 제나라로 달아났고, 7년 동안 노나라는 군주가 없는 상태로 있었다. 소공은 여러 번 노나라로 돌아오려 했지만 실패하고 결국 국경 근처 제나라 땅에서 죽었다.

 

계손씨를 위한 변명

 

『논어』에는 공자가 직접적으로 삼환이나 계손씨에 대해서 무도(無道)하다는 표현을 쓴 적은 없다. 그렇지만 앞에서 본 대로 공자는 계씨가 예를 어기는 행동을 비판했고, 정공에 의해 대사구에 등용 되었을 때는 세 대부 집안의 성곽을 허물어 그들의 힘을 약화시키려고 했다. 공자의 14년간의 주유는 이를 눈치 챈 계씨에 의해 노나라에서 추방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삼환 중 계씨는 특히 공자와 적대적인 인물로 ‘무도한’ 인물로 평가 받았다.

 

그렇다면 삼환, 그 중에 계손씨는 어떻게 노나라에서 이렇게 큰 세력을 갖게 되었을까? 이는 거슬러 환공의 아들인 장공(莊公) 때로 올라간다. 장공이 죽고, 후계 문제로 동생들인 경보(慶父), 숙아(叔牙), 계우(季友)가 다투게 되었고, 천신만고 끝에 계우가 장공의 아들, 즉 희공(釐公)을 즉위시킴으로써 사건이 종결되게 된다. 희공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삼촌인 계우에게 비 땅을 봉해준다. 이 곳이 바로 『논어』에도 종종 등장하는 계손씨의 근거지인 비(費) 땅이다.

 

그 손자뻘인 계문자(季文子) 때에도 이와 비슷한 후계 문제가 생기게 되는데, 이 때도 계문자가 공을 세웠다. 「노주공세가」에는 계문자가 죽고 그의 집에 비단 옷을 입은 아내가 없었고, 마구간에는 곡식을 먹는 말이 없었으며, 창고에는 금과 구슬이 없었다고 했으며, 이런 그를 사람들은 ‘의리 있는 충신’이라고 칭송했다고 적고 있다. 이렇게 노나라에서 명망까지 얻은 계손씨는 후대로 가면 갈수록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공자가 살던 당대의 계손씨는 어떨까? 이들이 했던 일들도 그 때의 다른 제후국들의 대부들과 비교해서 그렇게 나쁜 일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 공자는 계씨가 천자의 예를 쓴 것을 크게 비난했는데 노나라는 주(周)나라를 대신해서 태산에 제사를 올릴 수 있었기 때문에 당시 군주의 역할을 대신했던 계씨가 이를 주관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또 소공을 쫓아낸 후, 군주가 없는데도 7년 동안 노나라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을 단지 계씨의 권력이 강했기 때문이라고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세가」를 보면 소공에게 공격을 받기 전 계씨는 일이 자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지 않음을 눈치 채고, 이에 소공에게 자기를 비 땅에 감금하거나 망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다. 소공이 청을 받아주지 않자, 신하 중 한 명이 소공에게 이를 받아주라고 조언했다. 너무 강경하게 대처하면 오히려 분노를 사게 되고, 결국 일을 그르치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소공은 이 조언을 무시했다. 이런 소공의 태도를 보고 계씨를 공격하는 것이 오히려 자기들에게 불리함을 깨달은 숙손씨와 맹손씨가 계손씨의 손을 잡고 거꾸로 소공을 공격한 것이다. 이를 보자면 소공은 진중한 성격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는 제나라로 쫓겨난 이후에도 신하들의 간언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그러니까 소공을 쫓아낸 일에 대해서 오로지 계손씨의 잘못이 있었다고만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소공이 쫓겨나 죽기까지 7년여의 시간 동안 노나라에는 군주가 없었다. 그럼에도 노나라에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는데, 이는 계씨의 정치적 역량이 부족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흔히 이렇게 군주가 쫓겨나면 여러 공자들이 후계 다툼을 벌이거나, 나라에 난이 일어나기 일쑤인데 말이다. 소공이 죽고 진(晉)나라 대부인 조간자가 사관(史官)에게 어째서 계씨가 소공을 내쳤는데도 아무 일도 없는지 물었다. 그 때 사관은 이렇게 대답했다.

 

“계우가 노나라에 큰 공을 세워 비 땅을 받고 상경이 되었고 문자, 무자에 이르러 대대로 그 업적이 늘어났습니다. … 계씨가 정군을 잡은 후 지금까지 네 명의 군주가 지나갔습니다. 백성들이 군주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나라를 장악하겠습니까?”「노주공세가」

 

계손씨에게 부족한 한 가지

 

『논어』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단 한 줄의 기록으로 평가되는 일이 허다하다. 그렇게 보자면 계씨의 경우에는 - 물론 한 사람은 아니지만 - 『논어』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들과 공자의 대화를 살펴보면 많은 부분 공자가 노나라 군주와 주고받았던 내용과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는지, 공자의 제자들 중에는 누구에게 정치를 맡기면 잘 할 수 있을지 등등, 계씨는 노나라 안에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던 만큼 정치를 잘 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이들의 이런 노력은 당시 다른 나라들 대부들이 벌이는 일들과 비교해 보면 매우 바람직해 보이기까지 하다.

 

 

 

 

공자가 살던 춘추시대 말기는 가히 ‘대부(大夫)’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나라 천자의 힘이 약해진지는 오래 되었고, 능력 없는 제후를 대신해 부상하는 대부들의 수는 점점 늘었다. 이들의 약진은 대외관계에서도 드러나는 데 국제회담의 중심에도 각 나라의 대부들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앞서 보았던 제나라의 안자, 정나라의 자산 그리고 진나라의 숙향, 조간자 등등, 이들은 군주의 최측근으로 때로는 군주를 넘는 권력을 행사하며 세계의 질서를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대부들이 권력을 잡고, 마음에 들지 않는 군주를 갈아치우는 일도 일어났다. 제나라의 경우 대부가 군주를 시해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결국 군주의 자리는 강(姜)씨에서 전(田)씨로 넘어갔다. 진(晉)나라의 경우에도 나중에 대부 집안들 사이에 싸움으로 나라가 조(趙), 위(魏), 한(韓)의 셋으로 나누어진다.

 

이런 흐름 속에서 보자면 노나라의 계씨 혹은 삼환은 군주를 멋대로 갈아치운 적도 없고, 오히려 제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공자의 제자들을 적극 기용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등. 노나라를 위해 한 일도 꽤 많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계씨가 세계의 질서를 무너뜨린 무도한 자의 대표처럼 된 것은 아마도 일정부분 그가 공자와 같은 나라에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더욱이 그의 행적이 『논어』에 남았고, 공자가 직접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는가’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계씨의 입장에서 보자면 소공을 쫓아낸 것도 그냥 시대에 흐름에 따른 것이고 특별히 더 많이 잘못한 것도 없는데, 팔일무 추고, 태산에 제사를 지내려고 했던 무도(無道)한 모습만 부각되는 것이 좀 억울하게 생각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계강자가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정치는 바로잡는 것입니다. 그대가 바름으로 이끌면, 누가 감히 바르게 하지 않겠습니까?”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안연,17」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묻는(問政) 계씨는 공자의 이런 대답을 듣고 정말 정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 공자가 계씨의 잘못으로 비판했던 일들은 대체로 당시 군주들이나 권력자들이 행했던 일들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이 특별히 더 나쁜 일을 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이지 않았을까?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거나, 그에 따라 사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자가 만났던 권력자들은 거의 모두 정치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나 그들에게 부족했던 것은 ‘정치의 방법(術)’이 아니라 ‘어떤 정치를 하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이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것이 계씨에게 부족했던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댓글 2
  • 2023-02-06 10:59

    주나라 예법은 봉건체제를 공고히 하는 질서이므로 공자는 그 질서가 무너짐을 안타까워했겠지요. 그러나 시대는 이미 대부의 권력이 강해지는 때로 흘러가고 있었으니 어찌 계손을 탓할수 있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 2023-02-06 12:06

    잘 읽었습니다.
    잘 알면 비판도 많이 받지요^^
    오랜시간 권력을 잡았다는 건 뭔가 있었을 것도 같은데...
    대부의 시대라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공자님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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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09 | 조회 20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96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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