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21회] 우연한 선택 / 영화 <페르세폴리스>(2007)
청량리
2022-11-21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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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연한 선택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 감독 마르잔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 96분 |
- 지난 글 보기 : <우연이라는 결과> 링크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삶은 같은 일상을 끝없이 반복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얻게 되는 결과들 혹은 그 결과가 만들어 내는 작은 차이들로 이뤄진다. 마치 버스터 키튼이나 성룡의 아슬아슬하고 아름다운 액션처럼 말이다(영화대로42길, 19회 ‘우연이라는 결과’ 참조). 무한한 시간 속에서 삶의 작은 차이들은 그물망처럼 얽혀 있고 서로 중첩된다. 때문에 살면서 그 차이들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어떤 선택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선택’이란 무엇인가?
어느 방송에서 한 가수가 자신의 ‘번 아웃(burn out)’ 상태를 털어 놓았다. 함께 술 한 잔 하던 동네 지인 정신과의사가 말했다. “번 아웃(감정)을 날씨에 종종 비유하곤 해요. 개입할 수가 없거든요. 날씨처럼 내 기분도 예측이 불가능해요. 하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가 있죠. 내 기분이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우리는 선택할 수 있어요.” 화면 속 작은 술집의 분위기만큼 좋은 표현이다, 싶어 찾아서 메모해 두었다. 개입할 수 없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마르잔의 선택
1979년, ‘이란혁명’은 친미성향의 전근대적 팔라비왕조정권을 무너뜨린 시민혁명이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호메이니’는 율법에 따른 신정국가로 이란을 통치하기 위해 유혈탄압을 서슴지 않았다. ‘검은 차도르’는 이때 확산되고 여성의 지위도 추락한다. 캄보디아의 좌파 ‘크메르루즈’가 벌였던 혁명, 그리고 이후의 탄압으로 이어지는 유혈사태와 흡사하다. 혁명도 중요하지만, 다가올 혁명 이후가 더욱 어려워 보인다.
영화 <페르세폴리스>(2007)는 그 혁명의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이란 출신의 ‘마르잔 사트라피’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그린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란 테헤란의 중산층 집안에서 자란 그녀는 “감자튀김과 케첩을 좋아했고, 이소룡을 동경하고 아디다스를 신었”던 철없던 소녀였다.
아이가 '타도와 투쟁'을 외치는 건 가족과 삼촌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환경은 그녀를 서둘러 철들게 했다. 1980년, 혁명 전후 이란의 혼란한 상황을 노리고 이라크가 기습 침공한다. 8년 동안 두 나라 사이에서 지속됐던 잔인한 전쟁의 시작이었다. 이란은 이를 계기로 더욱 국내 탄압정치를 강화한다. 마르잔이 열 세 살 때였다. “폭격 속의 공포와 정부의 탄압과 이웃 간의 감시로 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혁명가였던 삼촌 아르쉬가 오히려 사형을 당하는 모순적인 사회였고, 엄마에게 차도르를 강요하는 남자는 서슴지 않고 강간으로 위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결국 ‘마르잔’의 부모는 그녀를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 보내기로 한다. 비교적 여유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마르잔은 일찍부터 테헤란의 프랑스학교에 다닐 수 있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고, 마침 부모의 친구가 오스트리아에 살고 있었다. 중산층 가정, 이란혁명, 삼촌의 죽음, 유혈사태, 오스트리아 유학, 그 가운데 마르잔이 있었다.
“살다 보면 별일을 다 겪게 된단다. 혹시 널 해치거든 (그 사람을) 제정신이 아니었을 거라 여기고,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무시해 버려라. 앙심을 품고 복수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나쁘단다.”
난 또 뭐라고. 그깟 이혼 따위로 고민할 필요는 없어. 당당하고 멋진 할머니.
유학을 떠나기 전 할머니는 어린 마르잔에게 ‘지혜’를 선물한다. 할머니는 “앙심을 품고 복수를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마르잔에게 일러준다. 그냥 지나가게 내 버려두라고. 우연으로 가득 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건 가만히 짚어내는 이후의 시간인지도 모른다. 혁명의 순간보다 이후의 시간이 중요하듯이, 그걸 알아차리고 나에게 다가온 것을 톺아보는 순간이 없으면 그저 흩어지며 지나간다.
할머니의 바람과는 다르게 마르잔의 유학생활은 순탄치 못 했다. 가족이 없는 불안정한 주거와 이성관계의 실패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외로움, 결국 그녀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이란으로 겨우, 다시 돌아온다. 자살시도까지 있었으나 조금씩 기운을 차리는 마르잔. 그녀에게 지나온 시간들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실패라고 말하는 건 잔인하다.
우연한 선택
2년 전, 계약서에 도장까지 찍었던 두 건의 프로젝트가 건축주들의 변심으로 결국 계약금도 못 받고 엎어졌다. 무엇을 해야 할까, 황당한 마음 반 기대 반으로 공무원을 선택했다. 10년 만에 꼬박꼬박 받는 월급이 나쁘진 않았다. 건축주였던 ‘김 사장’에게 감사할 노릇이다. 나름 임시방편이라 생각했던 공무원 생활을, ‘2년 만 더 해보자’는 선택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다. 하지만 다시는 설계사무실을 못 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게 다 ‘김 사장’ 때문이다. 앞으로 2년 후, 담당 주무관과 설계사무실 소장 사이에 나는 어디쯤 서 있을까? 알 수 없다.
번 아웃을 고민하는 가수에게 정신과의사가 건넨, ‘더 나은 방향으로 행동을 선택할 수 있다’는 말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적절했다. 다만 그 결과에도 개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덧붙였다면 좋았을 것이다. 우연이라는 결과는 삶 속에서 촘촘히 얽혀있고, 우리들은 그 결과의 인과관계를 알지 못하며, 무한한 시간 속에 삶은 영원히 반복된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하지만, 내가 속해있는 관계의 그물망을 인식한다면 나의 ‘선택’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결국 ‘나의 선택’은 그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표면적으로 있어 보여도 우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건 내가 어찌할 수 없이 무한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나의 선택은 또한 내 것이 아니다. 나의 선택에 고민이 생기는 건, 다가올 미래의 결과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그 결과에 우리가 개입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흘러가게 내 버려두는 수밖에.
마르잔의 꿈은 미래의 예언자다. 삼촌의 죽음으로 하느님에게 '꺼지라고' 했지만, 자살을 선택했을 때 다시 다가온다. '넌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다'
딸을 생각해 오스트리아로 유학을 보냈지만, 부모는 마르잔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려 이란으로 돌아올지는 몰랐다. 이 사람이다 싶어 이른 나이에 결혼했지만, 친구의 죽음 이후 이혼하게 될지는, 다시 이란을 떠나게 될지는 마르잔은 몰랐다.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무시해 버려“ 그저 흘러가게 두라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될 때로 되라는 비관주의나, 어떻게든 될 거라는 낙관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지금 여기에 있기 위해서 과거를 소환할 필요도, 미래를 걱정할 이유도 없다는 말이다. 인간은, 지금 여기의, 선택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끊임없이 과거로 도망치거나 미래를 두려워하게 된다. 그럼에도 분명 이 말은 한계이자 가능성을 뜻한다. 그 선택이 더 나은 방향이라 믿는다면, 그렇게 하면 그뿐이다.
할머니의 죽음을 뒤로 하고 마르잔은 이란을 떠난다.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흑백의 화면은 컬러로 바뀐다. 흑백의 차도르를 벗은 마르잔도 다시 유럽에서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아니, 새로운 관계 속으로 들어간다. 유년시절 떠났던 모습과 달라진 건 그녀의 신체 뿐만은 아니다. 그녀는 파리에서 이란인에 대해, 자신의 삶에 대해 그리기로 한다. 주변의 왜곡된 시선과 자신의 아픈 상처를 마주하기로 한 그녀의 선택에 어떤 결과가 따라올지는 모른다. 지금, 그녀의 이야기는 책으로, 영화로 사람들에게 전해진다. 그녀는, 우연의 구름 속으로 날아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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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무 사랑하는 흑백 투디 에니메이션, <페르세폴리스>^^
잘 읽었습니다~~
이년전 세미나에서 청량리샘이 남발했던 '우연'은.. 쫌 오버아냐? 싶었는데
지금 이 글의 우연과 선택은 설득력 있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란 혁명은 양가감정을 일으킵니다. 친미독재정권 팔레비 왕가의 지배하에서 이란 여성들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혁명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은 히잡을 쓰고 온몸을 감싼 옷을 입고 몸 안에 유인물을 비롯한 저항의 도구들을 운반했습니다. 그녀들에게는 미니스커트냐 히잡이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겠지요. 그런데.. 그렇게 하여 독재를 무너뜨린 이란혁명 이후 여성들에게는 히잡이 강요되었지요. 최근 스물 두살의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 밖으로 머리카락이 빠져 나왔다는 이유로, 히잡을 법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래요. 우리의 기대는 늘 어긋나고, 삶도 역사도 혁명도 예상치 못한 진로를 갑니다. 다른 한편 그런 가운데서 우리 역시 우리 앞에 펼쳐진 시간 앞에서 진로를 계속 바꾸고 무엇인가를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청량리님의 글을 읽으며 그것을 모두 '우연'이라고만 말해도 좋을까? 그런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만.. 여기까지!ㅋ
영화가 궁금해지네요 ..
페르세 폴리스를 이렇게도 읽을수 있군요~ 청량리쌤의 우연은 과연 몇부작일지 앞으로도 기대됩니다 ㅎㅎ
얼마전에 내린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엣원스'를 해석한 듯한, 해석했다고 해도.. 음 그렇구요.
제가 예측하건대 약간의 먼훗날 청량리샘은 이 모든 우연을 필연으로 바꿀지도 모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