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 이야기 6회] 모든 전쟁은 참혹하다, 사혹여시(師或輿尸)

봄날
2022-05-12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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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정당한 명분은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뉴스가 매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와의 개전선언 이래, 우크라이나, 특히 동남부 돈바스, 마리우폴을 비롯한 각 지역은 포화에 휩싸여있다. 인구가 밀집된 도시지역을 빠르게 점령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던 러시아의 예상은 빗나갔고, 강력한 우크라이나의 저항으로 전쟁은 석달째로 접어들었다. 이 지역의 90%이상의 집들은 파괴됐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길 위에 내던져졌다.

많은 지역에서, 어제는 러시아의 탱크가 도로를 질주했다가 오늘은 우크라이나 군대가 탈환하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은 지옥에 다름없다. 얼마 전, 이 전쟁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아니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알자는 심정으로 <봄날의 살롱>이 열렸다. 속시원한 대답이나 해결책이 있을리 만무였고, 우리는 전쟁이라는 참상 앞에서 무기력한 슬픔을 나눌 뿐이다.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고 그 피해는 오롯이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돌아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이번 전쟁의 원인에 대해 여기저기 말이 많다. 그 원인은 간단하지 않다. 전쟁의 대의는 아주 복잡하고 오래된 역사적 기반으로 세워진 것이기도 하고, 나토-미국의 연합과 러시아-유라시아 진영간의 격돌의 장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어떤 명분을 앞세운다 하더라도 전쟁이 참혹하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명분이건 간에 먼저 전쟁을 도발한 자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국민이라는 이유로, 하릴없이 쏟아지는 포탄 속에서 매일을 견뎌야 하는 운명, 부모가 죽고 자식이 죽고 집을 잃고 굶주림과 공포에 떨어야 하는 운명을 지운 사태에 대해 어떤 명분이 정당한가.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힘,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을 마주하면서 주역에도 물리적 전쟁에 관한 괘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지수사(地水師)괘가 바로 전쟁에 관한 괘다. 흔히 스승의 의미로 알고 있는 사(師)는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무리’, 즉 군대를 가리킨다. 현대의 군사조직에 사단(師團)이라는 단위가 있는데, 5천년 전에 쓰던 군대의 개념이 여전히 담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는 땅이고 아래는 물의 형상을 가진 지수사괘를 왜 군대, 전쟁의 괘라고 말하는 걸까. 땅은 양의 기운을 가진 하늘과 대비시켜 음의 기운을 가지고 있고 그 성질은 온순함, 순종함을 가진다. 물 역시 불(火)과 비교할 때 음의 기운이며, 험난함, 곤란함의 성격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지수사괘는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이고, 능동적이기보다는 수동적인 느낌을 가진다. 큰 힘이 움직이고 다이나믹한 전투가 벌어지는 전쟁과는 별로 맞지 않아 보이는 형상이 왜 전쟁의 괘가 됐을까?

 

옛사람들은 전쟁, 즉 무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 이유가 어떻든 부정적이라고 보았다. 자연, 우주의 운영원리는 생생(生生), 즉 낳고 낳는 것을 최고로 삼는다. 그런데 전쟁은 낳고 낳는 것하고는 반대로 끝없이 생명을 죽이는 방향으로 작동하는 원리이다. 전쟁은 부득이한 것이 아니고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된다. 하지만 인류가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전쟁은 끊임없이, 늘 부득이하게 일어나고 있다. 주역에 지수사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이처럼 불가피한 전쟁이 주역의 시대에도 일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지수사괘는 그런 전쟁의 국면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하면서 현대의 인류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그 메시지는 지수사괘의 괘사에 그대로 드러난다. 사괘의 괘사는 “전쟁은 바른 것이어야 하니, 장인이 하면 길하여 허물이 없다(사 정 장인길 무구, 師 貞 丈人吉 无咎)”이다. 부득이한 전쟁이라면 바른 전쟁을 하라는 것인데, 어떤 것이 바른 전쟁일까? 이천은 “군대를 일으키고 무리를 움직여 전쟁을 하는 것은 천하의 해독을 끼치는 일이므로 전쟁의 도가 바른 것이 아니면 그 해악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풀어 말하자면 ‘바른 전쟁의 도’는 천하의 해로움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장인이다. 결국 이천은 바른 전쟁의 도는 장인(丈人)이어야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장인은 사괘의 두 번째 효인 구이를 가리킨다. 구이는 지수사괘에서 유일한 양효로, 위아래 다섯 음효를 이끌고 전쟁을 벌이는 주체이다. 평시에는 오효의 자리가 군주로서 전체 효를 좌우하곤 한다. 그러나 전쟁이라는, 일상적이지 않은 때를 가리키는 지수사괘에서는 힘센 장수인 구이가 이끌어간다. 장수가 이끄는 것은 군대이다. 이 군대는 다섯 음효이다. 음효는 그 힘이 약하다. 그러나 물방울 하나 하나는 약하지만, 모이면 큰 힘이 된다. 힘을 가진 세력은 군대가 되며, 군대는 전쟁의 필수요소이다.

 

여기서 지수사괘는 우리에게 아주 색다른 방식으로 이기는 전쟁, ‘바른 전쟁’을 이야기한다. 위에서 말한 군대의 힘은 순종하는 힘, 즉 강력한 장수의 명령에 순종하는 힘이다. 이천의 해석을 따르자면, 장수는 바로 이 순종하는 힘을 지키는 것을 전쟁의 도로 삼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길(吉)하고 허물이 없는 전쟁으로 귀결된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병사들 하나하나의 목숨을 지키는 것이 바로 장수의 덕목이다. 결국 지수사괘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아야 하지만, 부득이하게 전쟁이 일어나더라도 전쟁의 해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은 무조건 전쟁을 빨리 끝내어,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미 ‘바른 전쟁’이 아니다. 이 전쟁에서 전쟁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장수는 보이지 않는다. 전쟁을 부추기는 선동(프로파간다)이 난무하면서 전쟁 당사자들은 서로의 전과를 과시하고 있다. 부차에서 학살당한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시체가 줄지어 발견되었고, 우크라이나군대의 개인화기인 ‘재블린’이 러시아군의 탱크를 순식간에 부숴버리는 유투브영상이 올라온다.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지수사괘의 육삼효가 말하는 ‘사혹여시(師或輿尸)’가 바로 이 장면과 오버랩되면서, 나는 말할 수 없는 슬픔에 휩싸인다.

 

전쟁의 참혹함, 경관(京觀)

전쟁을 도발하는 자는 승리를 확신하며 전쟁을 일으킨다. 패할 줄 알면서 나서는 전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 전멸할 것을 알

면서도 마지막 일전에 나서는 숭고하기까지 한 300인의 스파르타 병사를 묘사한 영화 ‘300’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것은 생리적인 죽음보다 명예를 고귀하게 여기는 전사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전쟁에서 스러지는 것은, 죽어서도 이름이 빛나는 명예로운 전사가 아니라, 명분과 상관없이 동원된 양국의 이름없는 병사들이다. 육삼의 효사는 “군대가 수레에 시체를 싣고 오니 흉하다.(사혹여시 흉, 師或輿尸 凶)”이다. 병사들의 시체가 수레에 가득 쌓인 모습을 상상해보라. 그들은 전쟁의 희생양들이다. 이것은 고대 중국에서 전쟁에 이긴 군대가 패전병사들의 시체를 흙과 함께 산처럼 쌓아두고 전공을 과시하는 경관(京觀)이라는 폐습을 떠올리게 한다. 경관에 관한 이야기는 춘추좌전에 보인다. 초나라 장왕이 진나라 군대를 물리치자, 신하가 “무군의 깃발을 세우고 진나라 사람들의 시신을 거두어서 경관을 행해야 한다”고 했다. 이때 장왕은 “그것은 무공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다. 무릇 무(무력)라는 것은 창을 멈추게 하는 것이 무(武)의 진정한 덕목”이라고 대답하며 경관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쓰이는 물리적인 힘, 무력(武力)의 무라는 글자는 의미심장하다. 무(武)라는 글자는 ‘그치다’는 뜻의 지(止)와 창과 같은 무기를 뜻하는 과(戈)를 합한 글자이다. 결국 무력은 싸움을 그치기 위해 써야 하는 힘이다. 초나라 장왕은, 무력이 정당화되는 것은 오직 분쟁을 그치는 것으로서의 무력일 뿐이라고 말한 것이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는 말할 것도 없이 제후들의 끝없는 영토전쟁과 그 전쟁으로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백성들의 고단함 삶이 이어지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무력의 사용에 대해 고민하고 신중했던 군주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주나라를 세운 무왕은, 당시 천자의 나라였던 은나라 주왕의 폭정을 무력으로 무너뜨리면서도 백성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무왕은 전쟁을 벌이는 한편으로 정국을 안정시키고 문화를 발전시키며, 백성들의 삶을 안정되고 풍요롭게 한 왕으로 평가된다. 이때 무왕은 무력의 일곱가지 덕목을 행했다고 한다. 초나라 장왕이 언급한 무왕의 무덕은 “1)폭력을 멈추게 하고(금폭,禁暴) 2)이를 위해 사용했던 무기/무력을 거둬들이며(집병,戢兵) 3)천명을 보전하고(보대,保大) 4)나라를 구하는 공을 세우고(정공,定功) 5)백성들을 안정시키고(안민,安民) 6)여러 제후국 백성들이 화합하게 하고(화중,和眾) 7)재물을 풍부하게 하는 것(풍재,豐財)”이다. 흔히 고대 인류는 야만적이고 후진적이라고 치부하곤 한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이야기에 한정해 보면, 전쟁에 대한 사고방식은 오늘날과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오늘날의 그것이 더 야만적으로 보이는 것은 나 혼자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현대판 사혹여시를 멈춰라

며칠 전, 5월 9일은 러시아 전승기념일이었다. 전승기념일을 앞두고 세계의 매체들은 이날을 기점으로 보일 러시아의 행보에 관심을 집중했다. 일각에서는 이날을 기념해 종전을 선언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 나왔었지만, 푸틴은 전승일 기념사에서, 자국이 도발한 전쟁의 정당함만을 거듭 주장했을 뿐이었다. 나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모스크바 거리에 도열한 탱크와 병사들의 행군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장갑차와 각종 화기들의 행진과 목청껏 구령하는 병사들의 행군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뉴스들.

 

“우크라이나 측은 러시아군이 이번 전쟁에서 점령한 우크라이나 도시들에서도 전승기념일 행사를 열 계획을 세웠다면서 마리우폴에서는 주민들이 동원돼 거리의 시신과 잔해들을 치우고 있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군의 항전 거점인 마리우폴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선 러시아의 대대적 공세가 진행되고 있다.”(5월5일자 경향신문 인터넷 뉴스에서)

 

러시아는 전승절을 기념하는 대대적인 병렬식을 거행하는 그 사이에도, 아조우스탈 제철소에 34차례의 폭격을 쏟아 부었다.(나무위키) 나는 전공(戰功)의 과시, 현대판 사혹여시가 21세기인 현대에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이 사태에 소름이 돋았다. 이것이 3천년 전의 사회를 야만이라고 비웃는, 문명인들의 모습인가. 지금 재현되고 있는 이 사혹여시는 오히려 고대의 그것과 비교할 때, 규모나 성격면에서 훨씬 참혹하고 비극적이다. 심지어 러시아는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핵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는 암시를 숨기지 않는다.

 

미국을 비롯해서 러시아의 도발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뜨겁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 속에는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강도가 숨어있으며, 그 이해관계는 또 다른 전쟁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안다. 무력 전쟁은 정말 불가피한 것일까.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전쟁은 참혹한 것이고, 싸움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전쟁의 도(道)라고 강조하는 지수사괘의 말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댓글 3
  • 2022-05-14 07:33

    경관, 이게 전쟁의 솔직한 모습이겠지요.

    오히려 장왕의 무력이란 싸움을 그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 더 위선적으로 와닿네요 ㅠㅠ

    명분있는 전쟁을 부르짖는건 지금도 마찬가지라..

    하지만 어디선가 본 내용인데, 명분과 전쟁을 연결시키는건 유가의 고민을 반영하는 거라고.

    춘추이전 귀족정치 시절의 무력이란 자연스런 귀족들의 일이었지만

    후대 유가들이 보기엔 문치주의에 반하는 일이라 그 시절 역사를 새롭게 해석해내야했다고..

    그래서 폭정을 그치게 하는 것이란 명분을 역사에 넣었다는 내용이었어요.

    무력을 사용한 역사를 부정할 수는 없지만 무력을 부정하는 정치에 대한 신념이 들어가 있다는 거겠지요.

    그런데 이미 명분을 말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명분 추락의 시대에

    오로지 이해관계 저울질만 있는 시대에,

    앞으로 그 저울질이 더 심해질것을 예고하는 전쟁이 아닐까도 싶고..

    후대에 이 시대의 무력을 뭐라고 고민할까, 야만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해석을 내놓을 수나 있을까..

    착잡한 마음에 이 글을 쓰신 봄날님도 힘드셨을거 같네요. 고생하셨어요

  • 2022-05-14 16:22

    노자에서도 부득이하게  할 수 밖에 없는 전쟁에 대해서 말합니다. 

    전쟁의 비참함을 보고 슬퍼하는 자애의 마음을 가진 자가 전쟁에서 승리하며, 승리하더라도 전승을 과시하지 말고 죽은 자를 애도하는 상례를 치르듯 해야 한다고 하지요. 

    경관이라는 폐습 때문에 노자에서 그렇게 말했나봅니다. 

    오늘 책을 보다가 마침 <손자병법>에 나오는 구절을 읽었어요.

     

    백전백승하는 것만이 최상의 선(善)은 아니다. 싸우지 않고 다른 군사를 굴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선이다. 그러므로 최고의 전쟁방법은 적의 계획을 깨는 것이다. 그 다음 방법은 적의 외교를 깨는 것이다. 맨 마지막 방법이 무기로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용병을 잘하는 자는 남의 군사를 굴복시키되, 싸우지는 않는다.  또 남의 성을 함락시키려 공격하지 않는다.

     

     

  • 2022-05-16 11:03

    전쟁... 예나 지금이나, 명분을 내세우거나 말거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게 현실...

    늘 힘없는 사람들만 죽어나가죠....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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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20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96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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