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이후에도 삶이 있다
『내가 알던 그 사람』(2018), 웬디 미첼
지난번 1234에서 ‘유쾌한 치매관계를 위한 상상력 한 자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상상력 한 자밤을 얻어 볼까 하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을 골랐다. 저자 웬디 미첼은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년간 근무하던 중이었다. 이혼 후 청소부를 하며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우다가 이직을 하고, 뛰어난 기억력과 일처리 능력 덕분에 간호사의 근무일정을 작성하는 복잡한 업무처리 팀의 노련한 팀장이 되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58세에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웬디.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치매 이전의 자신을 말한다. 85세가 아니고 58세라니! 엄마의 상상의 세계만이 문제가 아닐 듯하다.
감정의 책꽂이를 채우다
웬디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의사가 ‘알츠하이머’와 ‘치매’라는 두 단어를 말하는 순간은 그냥 멍하다. 치매진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아는 인생을 훔쳐갈 단어. 치매는 이렇게 ‘들이닥치고’ 그 이유조차 모른다. ‘거대한 시꺼먼 블랙 홀’, 완전히 백지상태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 자신이 없었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머릿속이 목화솜이 반쯤 차 있는 것처럼 뿌예지고, 조깅을 하다가 이유 없이 넘어지고, 포크를 떨어뜨리고, 생각한 것만큼 말할 수 없고, 밑도 끝도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1년이 넘는 관찰과 검사 끝에 확인된 알츠하이머. ‘마지막 조깅, 마지막으로 구운 케이크, 마지막 운전. 하지만 그때는 마지막일지 몰랐다. 치매는 경고 없이 들이닥치니까.’ 건강한 라이프스타일과 맞바꾼 ‘마지막 담배’와는 달랐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냥 ‘마지막’이 되어버렸다. 이것이 치매환자를 괴롭힌다. 앞에 있다고 믿은 미래를 언제 마지막이 닥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훔쳐가 버린다.
엄마도 가끔 ‘딴 정신’일 때가 있었지만 인지검사 결과는 문제가 없어서 크게 걱정을 안했다. 나이도 있고 파킨슨병도 있으니 서서히 나빠질 거라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갑자기 나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어느 날 갑자기 말을 거의 못하고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니 그야말로 ‘들이닥쳤다’고 밖에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어쩌다 혼잣말처럼 ‘난 이제 끝장났어.’라며 한숨을 쉬는 엄마가 너무 외로워 보인다.
‘치매를 앓는 사람의 기억을 내 키만 한 책꽂이로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대량 생산된 싸구려 조립식 책꽂이입니다.’ 웬디는 자신이 치매 진단을 받은 사실을 팀원들에게 알리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책꽂이는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어렸을 때부터 최근의 기억이 담긴 책들이 꽂혀있다. 이 기억의 책꽂이는 치매가 생기면 마구 흔들린다. 늘 맨 위 칸의 책이 가장 먼저 떨어지고 그러면서 다른 책을 위로 솟게 해서 때로 가장 최근의 기억이 아래쪽에서, 젊은 시절의 칸에서 나온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뇌에는 허술한 첫 번째 책꽂이와 달리 튼튼한 감정의 책꽂이도 있다. 더 튼튼하고 더 유연해서 거기에 꽂힌 책들은 더 오래 더 안전하다. 친지가 최근에 다녀간 일을 잊는다 해도-이건 사실들의 책꽂이에 있다–같이 있을 때 느낀 사랑과 행복과 편안함 같은 감정은 남아있다. 웬디는 말한다. ‘치매환자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아도 방문을 중단하지 말라’고.
‘00가 왔으면 좋겠다. / 보고 싶으세요? 어제 왔었는데요. / 응, 와서 많이 울고 갔어. / 할머니 아프시다고 울었어요? 속상해서 울었나보네요.’ 실제로 손주가 울지는 않았지만 엄마는 그렇게 기억하면서 걱정해주는 손주 마음에서 따스함을 느끼시는 듯하다. ‘00가 오늘은 안 오네. / 지난 주말에 다녀갔잖아요. / 매일 저녁이면 오는데 오늘은 안 오네.’ 보고 싶은 손주가 매일 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매일 온 것으로 상상하게 한다. 엄마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신 것 같다. 가끔은 손주 대신 이미 하늘나라로 간 아들이 등장하기도 한다. 치매환자는 과거 일을 생각하므로 현재로 끌고 오려 들지 말고, 그 경험에 ‘장단을 맞춰주는’게 도움이 된다고 한다. 경험을 존중해주는 것일 뿐 비윤리적인 일도 아니니까. 웬디도 가끔 돌아가신 엄마나 아버지의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 말한다. ‘내가 공상에 빠진들 남에게 뭐가 문제라고?’ 굳이 옆에서 실제 상황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치매 환자에게 그 경험은 우리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것만큼이나 ‘현실적’이니까. 언제나 이성이 이길 필요는 없다. 이따금 치매가 이기게 놔둬도 해될 게 없다.
며칠 전 생일날 아침 미역국을 끓였다. 그냥 엄마를 생각하며 끓였다. 이렇게 더운 날 딸 낳느라 고생하셨다며 드리니 환하게 웃는 엄마. 엄마의 책꽂이에 얇은 책이라도 계속 꽂아드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혼자 살 수 있을까
웬디는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딸들에게 간병을 맡기고 싶지 않다. 그는 혼자 산다. 그러면서 혼자 살아 좋은 점들을 나열한다. 배고프지도 않은데 식사하라고 채근할 사람이 없다. 내 말을 바로잡아주거나, 내가 말끝을 흐리면 마저 말하거나, 내 말을 가로채 미리 얘기해줄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다. 힘든 하루를 보낼 때 옆에서 위로한다고 수선을 떠는 사람이 없어서 좋다. 나의 심신이 너끈히 할 수 있는 작은 일을 못한다고 넘겨짚는 사람도 없다. 내가 엄마에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했던 일들이 여기 다 있다. 엄마도 싫었을 것 같다. 함께 살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배우게 된다.
치매를 겪는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것 중 하나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한다. 어떤 사람은 크리스마스에 가족들이 주방에 못 들어가게 하자 가족들을 설득해서 ‘소스 젓는 일’을 했다. 단지 소스 젓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는 ‘멋진 크리스마스’를 보냈다며 행복해 했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기분이었던 것이다. 엄마가 혼자 움직일 수 있을 때 굳이 자신이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려는 엄마와 자주 실랑이를 했다. 주방에 들어오지 마시라고 했을 때 엄마도 그런 느낌이 드셨을 것 같다. ‘나도 쓸모 있는 사람이야!’ 하고 싶은 엄마에게 나는 무슨 짓을 했던 걸까. 요즘은 조금이라도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컨디션이면 오래 기다리더라도 혼자 하시게 한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웬디는 혼자 생활하지만 치매인 모임에 가면 배우자나 자녀들이 함께 오는 경우가 많다. 아내와 함께 오는 치매 남편은 ‘자신과 치매가 아내를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이라며 죄책감을 갖고 있다. 특히 아내가 자신 때문에 미국에 있는 귀여운 손주들을 보러 못 가서 속상해하는 것 때문에 괴롭단다. 혼자 다녀오라 해도 아내는 남편을 혼자 두고 갈 수 없다고 하고. 며칠 전 엄마가 돌봐주는 고모님께 ‘우리 딸이 고생 많이 한다.’고 하셨다는데, 울 엄마도 혹시 죄책감 같은 걸 느끼시는 건가? 돌보는 입장의 나는 어느 정도 죄책감에서 벗어났는데 돌봄을 받는 엄마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혹시 남편이 치매 진단을 받으면 그때는 다른 상황이 될까? 내가 치매 진단을 받으면 나는 혼자 살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치매는 이웃과 친구들도 멀어지게 한다. 인사하며 잘 지내던 웬디의 이웃이 자기를 피해 건너편 길로 다니고, 친한 친구들이 이메일을 보내도 답을 보내지 않는다. 웬디는 많이 생각한다. 치매의 어떤 점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겁을 줄까? 초점 없는 눈빛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노인을 떠올리면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치매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일 거라 생각하고 자신의 상태를 적극적으로 알리는 웬디. 지속적으로 이메일을 보내고 블로그에 글을 올린다. 친한 친구에게 다시 연락을 받는데 18개월이 걸렸다. 길 건너 피해 다니던 이웃도 다시 예전처럼 인사하고 웬디의 상태를 묻는다. 자신을 버린 친구들이지만 그 사람들을 다시 받아들여야 치매의 진실을 배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꾸준한 노력 끝에 다시 관계를 맺는 웬디. 그들은 웬디를 통해 치매를 제대로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유쾌한 치매관계를 직접 만들어가는 치매인이라니! 치매를 돌보는 입장에서 치매인이 되었을 경우를 더 생각해보게 만든다.
아직 초기라고는 하지만 웬디가 혼자 지낼 수 있는 건 엄청 노력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치매환자가 어떻게 혼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느냐는 의문에 대한 웬디의 답은 ‘어렵사리!’이다. 강연을 하러 가게 되면 가야할 곳의 사진을 모으고, 가는 길을 점검하고, 그날 볼 풍경들을 프린트해서 낯을 익히고, 택시와 기차를 예약하고, 미리 그 길을 가본다. 과정 과정마다 기억을 일깨워줄 포스트잇을 붙여두고 알람을 설정해둔다. 택시가 1분만 늦게 와도 제대로 예약을 안 한 건 아닌지 불안해서 바로 확인전화를 한다. 그렇게 강연장에 들어가면 사람들은 웬디가 거기에 오기까지 어떤 수고를 했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웬디가 이런 일을 감수하는 이유는 자신답게 살고 싶기 때문이다. 치매든 아니든 구석에 쳐박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건 참을 수 없다. 이렇게 강연을 하고 나면 환자들은 ‘이제 두렵지 않다’하고, 그 딸들은 ‘이제 엄마를 더 잘 도울 방법을 알았다’고 한다. 웬디가 바라는 바로 그것이다.
쉼표, 안고 산다
웬디도 처음 치매 진단을 받는 과정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치매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치매에 관한 정보를 찾았고 다행히 유튜브에서 키스 올리버를 만날 수 있었다. 치매 진단을 받은 괜찮아 보이는 외모의 신사. 교장이었던 그도 웬디처럼 이유 없이 넘어지고 피로감과 그저 몸이 안 좋은 기분만 느꼈다고 한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일상적인 일들 즉, 마감 지키기, 정보검색과 암기, 통화, 멀티태스킹 같은 것들을 쉽게 하지 못하고 애써 씨름한다고 했을 때 웬디는 거의 얼어붙었다. 너무나 같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웬디는 안도감을 느꼈다. 올리버는 좋아하는 일에 집중해서 삶을 마음껏 누리기로 작정한 덕분에, 치매 판정을 받은 후에도 양호한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웬디는 올리버를 통해 치매 환자의 외모와 말투에 대한 선입견을 바꿀 수 있었고, 치매 판정 후에도 삶이 있다고 믿게 되었다.
치매에 ‘시달린다’ 대신 치매를 ‘안고 산다’고 말하는 웬디는 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치매인 모임 만들기, 영상촬영과 영화시사회 참여, 임상실험 참여, 강연 등 치매를 제대로 알리는 일과 치매치료제 개발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리고 모든 일을 블로그에 기록한다. 사적인 것을 나누지 않는 편이었지만 이제 공유를 통해 여론을 바꿀 수 있다는 걸, 자신이 실천하거나 참여하는 모든 행위가 변화를 가져온다는 걸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웬디는 아주 작은 것(기록)에서 즐거움을 찾느라 분주하다. 치매 이전의 다람쥐쳇바퀴에서 벗어나게 된 것에 순간적으로 만족감을 느끼기도 한다. 여러 가지 자원모임을 하면서 그 장소까지 잘 찾아가고 또 유용한 제안을 할 때면 두려움을 이겨서 만족스럽다. 카페를 못 찾거나 혼자 걷기 무섭다는 이유로 포기하지 않아서 흡족하다. 자신을 계속 밀고 나갈 힘을 얻는다. 계속 자원봉사를 하고 어떤 일이든 좋다고 수락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 큰 용기를 내면 어떤 좋은 일이 기다릴지 모르니까. 기억을 잃어가더라도 소중한 것들을 간직할 수 있고, 가족이나 주변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갈 수 있다.
치매를 안고도 살 길이 있고, ‘삶이 완전히 멈추는 마침표가 아니라 마지막 부분이 시작되는 쉼표’일 수 있다. 웬디가 보여주는 삶은 치매에게 빼앗기기만 하지 않고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치매인이 부딪친 난관을 부인하거나 축소하는 게 아니다. 당면한 난관을 이겨내려고 매일 안간힘을 쓰는데, 도움을 받으면 그런 안간힘이 자주 승리한다는 것이다. 치매라는 눈사태 속에 파묻혀도, 이 병은 매일 심술궂게 새로운 기회를, 새로운 경험을 열어준다는 것. 그걸 양손으로 꽉 잡으면 된다. 순간을 위해 산다. 알츠하이머가 선물이라도 되는 것 같다. 치매가 인생이 짧다는 사실을 통감하는 선물도 주기 때문이다.
웬디는 치매에 걸렸다고 아슬아슬한 도전 없이 심드렁하게 살라는 법 있냐며 롤러코스터를 타고 글라이더도 탄다. 다음날 다리가 멍투성이인 이유는 모르지만 무척 재미있었다는 기억은 남아있다. ‘지금 생사의 중간 지대에서 산다. 난 아직 그 사람(앞으로의 나)을 모르고, 예전의 나를 잊었다. 지금의 나 역시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지금’이 더 좋다.’
스위스가 아니라면
‘안개가 불쑥 내린다. 어느 순간 고개를 들면 내가 서 있던 곳이 사라져버린다. 모든 것이 낯설다. 공포가 솟구친다. 가슴 밑바닥에서 두려움이 차올라 숨도 쉴 수 없다. 거리 악사의 기타소리가 탕탕 울릴 때마다 머리에서 생각이 떨어져 나간다. 덜컥 겁이 난다. 길을 잃었다.’(176)
진행성질환 환자가 살면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이 통제력 상실이라고 한다. 하루하루를 긍정적으로 안간힘을 쓰며 사는 웬디도 힘들다. 치매를 안고 사는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치매를 안고 죽는 길을 찾을 권리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한다. 치매를 앓으니 뇌가 버티는 한 고통이 계속된다. 무력하다. 무력해서 원하는 삶을 못 사니, 통제력을 최대한 발휘해도 지는 싸움을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파킨슨과 치매라는 진행성질환을 안고 사는 엄마를 보면서 나도 가끔 생각한다. 암으로 돌아가신 아버지가 좀 더 편했을라나...
치매인 모임에서 누군가가 스위스 디그니타스를 예약해두었다고 했다. 치매가 스멀스멀 생각을 파고들어 피하려고 버둥대는 현실을 휙휙 보여줄 때, 웬디도 긍정적으로 볼 수 없고, 스치는 생각마다 상실감이 달려든다. 나 자신, 정신, 장래, 현재를 믿지 못하게 만든다. 그 순간 문득 감당하기 버거운 사실이 떠오른다. 미래는 애매한 개념일 뿐, 확실한 것은 내가 퇴행한다는 사실밖에 없다. 이럴 때 웬디도 스위스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두 딸 생각에 고개를 흔든다.
한동안 나도 스위스를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작별일기』의 저자도 ‘자유 죽음’을 이야기한다. 태어나는 건 내 맘대로 못했지만 죽는 건 자유롭게 해도 되지 않을까? 구체적인 방법은 아직 모르겠지만 아주 공감이 갔다. 작년 다르고 올해 다르고, 지난 달 다르고 이번 달 다른 엄마를 보면서 나도, 스스로 ‘의미 없다’고 느껴지는 어떤 단계에 이르면 ‘죽음을 집어 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제 치매는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너무 오래 살고, 오래 살지 않아도 언제라도 치매가 닥쳐올 수 있다. 치매를 안고 살게 될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훨씬 높다. 엄마가 문제가 아니라 이제 나 자신의 문제다. 태어남과 죽음 사이 어딘가를 살아가고 있는 나는 죽음 뿐 만아니라 치매도 거의 피할 수 없다. 다만 치매는 죽음과 달리 삶이 계속된다. 나의 고민은 이제 한 단계를 넘어섰다. 치매를 겪는 엄마와 어떻게 유쾌한 치매관계를 만들어갈지에서 앞으로 어떻게 치매를 안고 살아갈지, ‘죽음을 집어 들’ 때까지 치매인으로서 어떻게 유쾌한 치매관계를 만들어가며 살아갈지를 진지하게 생각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