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예술2회]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 : 한자의 색色에서 몸짓祭까지

동은
2023-05-24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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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떤 표현을 할 것인가? : 한자의 색色에서 몸짓祭까지

 

 

동은

 

 

  1. 어떻게 수업할 것인가

  <한문이 예술>은 한문으로 예술藝術을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름에서부터 벌써 미술 활동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그런데 정작 수업을 여는 나는 미술, 예술과 아주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다. 한자도 주입식으로 암기해왔던 내가 어쩌다가 초등한자-미술수업이라는 퓨전수업을 만들어 냈던 것일까? 그 배경에는 한자를 보며 막연히 갖고 있던 상상을 시각화 한 <천자 중에 한자> 작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천자문>의 원문을 읽다가 비슷한 시기에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천자 중에 한자>를 기획하게 되었고 모두 합쳐 7개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천자 중에 한자> 작업은 그야말로 ‘재미’있었다. 내 눈에 보이는 한자를 하고 싶은 대로 옮겨서 그걸 실현하는 과정 자체가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들을 청聽은 한자를 악보기호로 대치하고 인연 연緣은 부수로 사용된 실 사糸를 살려 실로 마구 엮어 형태를 만들고, 즐거울 락樂은 의미를 살리기 위해 춤추듯이 썼다. 이 과정 자체가 너무 즐거웠고, 긍정적인 반응을 수업까지 옮겨보려고 했지만, <한문이 예술> 수업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첫 수업시연날, 자신감에 차서 친구들 앞에서 시연을 했지만 유치하고(헉!) 내용이 빈약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강의 내용과 활동이 연계되는 과정에 설득력이 부족했고 맥락을 찾기가 힘들다는 거였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2. 보이는 게 전부가 아냐

  문제에 부닥치니 '미술수업'이라고 생각했던 수업의 컨셉 자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술수업도, 한자수업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서 차라리 급수 한자 암기가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문제는 한자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한자와 다른 문자의 가장 큰 차이는 한자가 소리의 표현이 아니라 의미의 표현이다. 형태와 의미, 그리고 그걸 읽는 방법 모두 문자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 중에서 단순히 표면적인 것-형태-만 다룬다면 그 내용은 빈약하게 느껴질 수밖에. <천자 중에 한자>는 내가 본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보이는 것’에 치중된 작업이었지만 <한문이 예술>에서는 아이들에게 활동뿐만 아니라 한자의 의미를 전달해야 한다는 중요한 점을 잊고 있었다.

  한자의 변형 과정을 살펴보면 고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느낄 수 있었다. 한자의 가장 초기 형태를 가진 갑골문부터 주나라 시기에 사용된 전서, 진나라에 사용된 예서, 그리고 오늘날 가장 많이 쓰이는 해서체의 변화를 보면 때로는 그대로 모습을 본뜨고, 때로는 문자와 문자를 합쳐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때로는 일부를 탈락시켜 다른 의미를 돋보이게 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한자는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6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어떻게 사용되었는지에 따라서 그 의미와 형태가 계속 바뀌었다. 예를 들면 꿈 몽夢의 갑골문은 눈을 뜨고 누워있는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고대 사람들에게 꿈은 눈을 감고 있음에도 마치 뜬 것 같은 경험을 눈을 뜨고 잠들어 있는 사람으로 표현했다는 걸 알 수 있었고, 성인 성聖은 무언가를 보는 것보다도 다른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듣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성인에 가까운 사람이라는 고대 사람들의 가치판단이 담겨있었다.

  처음부터 완성된 형태의 한자는 없었다는 것, 그리고 한자의 형태에 고대 사람들의 시선이 담겨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아이들과 한자의 표현력을 드러낼 수 있는 활동이 떠올랐다. 한자의 형성 과정을 상상의 영역으로 만들어내는 것처럼, 한자를 통한 새로운 표현활동 또한 실험적인 면이 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 실험에 아이들이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도록, 그 배경지식과 고대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일이었다.

 

 

3. ① 색으로 표현하는 한자: 탄생生과 죽음死의 색

  하루는 날 생生과 죽을 사死를 배우는 날이었다. 이런, 탄생과 죽음에 대한 얘기는 평소에도 하기 어려운데… 아이들에게 어떻게 그 무거운 주제에 대해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 끝에 아이들에게 낯익은 고인돌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고인돌은 고대의 대표적인 장례문화다. 고인돌 뿐만 아니라 다양한 유물을 통해 고대의 장례문화를 알 수 있다. 사체를 불에 태우거나, 혹은 그 사람이 아끼는 물건과 함께 묻거나… 그런데 이보다도 훨씬 이전의 죽음의 모습은 어땠을까?

  죽을 사死에는 아주 원초적인 죽음이 담겨있는데 들판에 사람이 쪼그려 널부러져 있는 뼈조각을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이다. 이처럼 죽음의 모습은 들판에서 풍화되어 사라져가는 뼛조각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켜보고 있는 사람은 그 뼈조각이 누구인지 알고 있을까? 사실 그 뼈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의 뼈조각을 통해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 것 자체가 고대사람들이 바라보는 죽음이었기 때문이다. 死를 통해서, 우리는 이후에 생긴 다양한 장례의식 속에는 그 형식보다 죽은 이를 떠올리는 일이 가장 우선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볼 수 있다.

  죽음에 대한 설명을 끝낸 나는 아이들에게 탄생에는 무엇이 떠오르는지 물어보았다. 눈을 굴리던 아이들이 대답한다. “아기요.” “새끼강아지요!” 동물을 좋아하는 민지가 덧붙힌다. 아이들에게 생명을 의미하는 한자인 날 생生을 보여주니 한자에 조금 더 익숙한 아이가 땅 위에 서있는 소가 아니냐고 했다. 바닥인 一위에 소 우牛가 서있는 모습이라는 거다. 맞는 해석은 아니지만 땅과 연결지은 점은 훌륭했다 왜냐하면 生은 지표면을 뚫고 새싹을 틔운 풀잎에서 만들어진 한자이기 때문이다. 고대 사람들은 일찍이 동물만 살아있는 것을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 같다.

 

아이들이 찾아낸 죽음과 탄생의 색

 

  누군지도 알수 없는 뼈조각이 죽음이라는 글자가 되고, 푸릇한 싹이 생명을 의미하게 되었다. 아직 아이들이 죽음과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워서 대신 색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과 생명은 아이들이 고민하게에는 어려운 주제였기에 아이들이 생각하는 죽음과 생명의 상징색을 찾아보기로 했다. 한자가 의미의 상징으로 사용된다면 색으로도 자신만의 상징을 만들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아이들은 여러 색을 통해 자기가 생각하는 생명의 색과 죽음의 색을 골랐다. 재미있던 것은 같은 색이더라도 누군가에게는 생명으로,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색으로 골랐던 점이다. 여러 색을 고른 아이들은 마치 葬에서 죽음과 생명이 함께 있는 것처럼 수채기법으로 색을 섞기도 했다. 각자가 생각하는 生의 색과 死의 색으로 생명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4. ② 몸짓으로 표현하는 한자: 우리만의 제례祭을 만들자

  <한문이 예술>은 1년에 크게 네 시즌으로 운영되었는데 방학 때마다 짧게 특강을 진행했다. 특강은 2주동안 짧고 굵게 운영되었기 때문에 임팩트있는 수업을 할 수 있었다. 한자를 가르치다보면, 필수적으로 중국의 고대 사유나 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많은데, 한자를 통해 중국의 제의적인 문화를 경험하는 데엔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번 특강은 함께 제사를 구성해 지내는 프로젝트형 수업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제사를 준비하며 만들었던 그릇들

 

  방학특강은 6차시였지만 한자는 단 세 자밖에 배우지 않았다. 그릇 정鼎과 거짓 가假, 그리고 제사 제祭. 이 세 한자 모두 고대의 제의적 생활과 연관되어 있다. 보통 그릇이라고 한다면 그릇 기器를 떠올린다. 그러나 이 鼎은 제사에서만 쓰이는 제사용 그릇(祭器)을 가리킨다. 고대사람들에게 제사는 무척이나 상서롭고 신중한 의식이었기 때문에 제사 전용 그릇을 만들거나 술잔을 만드는 방식으로 정성을 쏟았다. 거짓 가假는 거짓, 가짜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한자에 사용된 叚는 빌리다라는 의미다. 이것이 사람亻과 합쳐져 원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물건을 빌려주던 모습이었는데 어떤 사람이 남의 물건을 자기것이라 거짓말을 쳤는지 그 이후로 의미가 확대되어 거짓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이들과 이 한자를 배운 이유는 제사를 지낼 때 제사장이 사용했던 가면假面 때문이다. 제사장은 제사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제사에 더욱 몰입하고 정성을 쏟으며 일시적으로 신이나 조상의 힘을 빌려올 수 있도록 가면을 쓰곤 했다.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제사 제祭였다. 다양한 종류의 그릇도, 가면도 모두 제사를 위한 집념과 정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을 살아가는 나로서는 그들이 왜 그렇게 제사를 지내며 살아갔는지 그 근간을 알기 힘들었다. 다만 우리가 알 수 있는 건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왕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제사를 올리는 일이며, 1년 내내 시기에 맞는 제사를 치뤘다는 점으로 보아 그들의 삶에서 제사를 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우리는 고대의 진실을 파헤치기보다 오늘날 우리들이 제사를 올리는 이유를 찾기로 했다. 우리는 직접 제사를 위한 그릇과 가면을 만들고 우리가 지낼 제사를 직접 구성했다. 제사를 지낼 때는 경건함에 집중하고, 상을 당해서는 애도를 다한다. 그러면 선비라고 할 만하다.(祭思敬, 喪思哀, 其可已矣.)라는 말을 되새기며, 그리고 세상에 감사를 올리는 인디언 연맹의 연설을 읽으면서. 고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상다리가 부러지는 음식을 준비하지는 못했지만 한자원문을 발문으로 노래를 부르거나 율동을 하거나 북을 치는 등 우리만의 자그마한 제사를 치뤘다. 나는 우리가 어떤 대상에게 제사를 지내는지보다도 제사를 치루는 우리들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고 싶었다.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주위의 얼굴들을 둘러보며 생명의 순환이 계속됨을 봅니다. 우리는 서로와, 또한 뭇 생명과 더불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의무를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인사와 감사를 건넵시다. 이제 우리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위대한 정령인 조물주께 생각을 돌려 창조의 모든 선물에 인사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좋은 삶을 사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이곳 어머니 대지님에게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 곁에 있는 모든 사랑에 대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인사와 감사의 가장 좋은 말을 조물주께 드립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은 하나입니다. - 하우데노사우니 인디언 연맹의 감사연설 중

 

인디언의 연설과 우리가 지냈던 제사는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5. 이것은 한자 수업일까? 예술 수업일까?

  <한문이 예술>은 분명 한자수업인데 한자에 대한 설명보다 활동에 더 많은 시간을 들인다. 물론 그렇다고 한자에 대한 내용을 느슨하게 할 수도 없다. 어떤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대한 이해가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용에 따라서 활동의 형태가 달라졌고 <한문이 예술>은 매 시즌마다 실험에 임하는 자세로 임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떤 것을 배울 수 있을까?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자신의 표현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 그 과정을 함께하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한자는 정말 수업에 큰 주축이 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옆으로 살짝 빗겨나 생각의 물꼬를 터주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런 면에서 <한문이 예술>은 한자 수업이 되기도, 그리고 예술 수업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한자가 하나의 기호로 사람들에게 수많은 의미로 확장되었던 것처럼, 아이들의 생각을 다른 형태로 표현하고 전달할 수 있는 과정을 계속해서 찾아나갈 수 있는, 그런 수업을 계속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 3
  • 2023-05-28 15:15

    글자 하나로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내는 수업이라니. 준비하는 사람은 힘들겠지만 꾸준히 이런 수업이 있었으면 좋겠다.^^

  • 2023-05-29 09:22

    이건 한자수업일까, 예술수업일까?
    한자수업이기도 하고 예술수업이기도 한 무엇, 한자수업도 아니고 예술수업도 아닌 그 무엇, 그게 뭘까요?
    그걸 찾아가는 바로 그 과정이 좋습니다. 동은이의 발견의 과정을 응원합니다.^^

  • 2023-06-06 10:48

    대상에 대한 이해와 표현이라니!!!!
    그래서 저는 동선생님의 수업은 예술수업에 더 가까운 거 같아요.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 그냥 그런 느낌이 그냥 들어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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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조회 118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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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조회 18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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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4.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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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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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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