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9회] 시작은 어려우니 제후(諸侯)를 세워라

봄날
2023-02-27 13:28
385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제후를 세워라

일의 시작에서 생겨나는 어려움은 우선 ‘판단의 어려움’이다. 자연에서 먹구름 속의 번개와 우레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정해진 길을 따라나서서 한순간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인간은 눈앞의 뽀얀 안개 속에서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럴 때 둔괘의 괘사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로 제후를 세우라는 것이다.

 

“둔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우니, 가는 바를 쓰지 말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

 

어려운 괘라면서 둔괘의 괘사 앞부분은 오히려 ‘크게 형통하다’고 한다. 혼돈의 시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지만 기운만큼은 기어이 어떤 일이 벌어질 정도로 센 상태를 표현하는 구절이다. 그런데 시작 단계에서는 센 기운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쉽다. 그래서 괘사의 뒷부분은 ‘가는 바를 쓰지 말라’고 하고 ‘제후를 세우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가는 바를 쓰지 말라’는 것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럼 ‘제후를 세운다’는 것은? 제후는 고난을 헤쳐 나가게 해주는 존재이다. 이때의 제후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떤 물건일 수도 있다. 망망대해에서 새롭게 뱃길을 잡을 때는 한줄기 바람이나 갈매기의 날갯짓이 제후가 되기도 한다. 인디언 사회에서 사냥을 떠나는 전사가 떼지어 추는 춤도 제후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혼란스런 시작의 단계에서 첫걸음을 떼는데 의지처가 될만한 무엇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에 의지해서 첫걸음을 떼고 두 번째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실행에 신중하라

두 번째, 모든 시작은 판단의 어려움 못지않게 실행의 어려움을 동반한다. 둔괘의 효사 중 육이, 육사, 상육에 잇달아 등장하는 ‘승마반여(乘馬班如)’라는 구절이 그것을 대변한다. ‘말에 올랐다 다시 내린다’는 뜻의 승마반여는 자의든 타의든 원래 정했던 것을 못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육이의 효사는 “어려워하고 머뭇거리며 말을 탔다가 말에서 내려오니, 도적이 아니면 혼인할 자이다. 여자가 정도를 지켜 생육하지 않다가 십년이 되어서야 생육한다.(屯如邅如 乘馬班如 匪寇 婚媾 女子貞 不字 十年 乃字)”이다. 이때의 육이는 자신을 도와줄 구오가 실제로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므로 갈팡질팡한다. 그러니 육이는 판단이 설 때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긴 시간 버텨야 한다.

 

육사의 승마반여는 갈길을 정하고 결단하여 말에서 내린 상황이니, 말에서 내려 원하는 바(구혼자)를 얻는다. 반면 상육의 승마반여는 그에게 주어진 여건이 도저히 말을 타고 나아갈 수 없게 억제된 모습이다. 이처럼 같은 승마반여라고 해도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따라, 혹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결과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승마반여’ 자체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효사의 승마반여는 이미 주어진 값이다. 그러니까 “탔다가 내리느니 아예 안타면 되지”라던가 “내친김에 말을 타고 가지”라던가 하는 의지를 반영할 수 없다. 그러니 던져진 상황에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훨씬 더 잘 살펴서 ‘시작’의 고난을 조금씩 풀어나가 보라는 것이 ‘승마반여’가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십년은 기다려야 어려움이 풀린다

시작의 ‘고난 3종세트’의 마지막은 ‘기다림의 어려움’이다. 앞서 인용했던 육이의 효사에 “여자가 정도를 지켜 생육하지 않다가 십년이 되어서야 생육한다.(女子貞 不字 十年 乃字)”는 구절이 있다. 정(貞)은 ‘바르다’와 ‘오래 한다’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10년은 ‘기약 없는 기다림’의 메타포이다. 기약이 없다는 것은 일정한 시간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정이천은 이 10을 “수(數)의 끝”, 다시 말해서 헤아림의 끝이라고 말한다. 즉 10이라는 숫자는 정량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나기까지 충분히 무르익을 시간을 가리킨다. 고난의 상징을 결혼한 여자에게 10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주역이 생겨난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옛날에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데, 여자의 불임이 오래 가니 그 어려움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임신은 물론이고 결혼도 당연한 것이 아닌 현대에, 이것을 곧이곧대로 여자의 임신에 한정해서 생각하면 넌센스이다. 요컨대 10년은 아보카도의 씨가 벌어져 싹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고,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병증과 싸워 이겨내기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르지 못하는 한 순간을 위해 그 힘을 써야 한다고 둔괘는 말한다.

 

시작은 모든 생명의 필수조건이다

둔괘 전체는 알의 상태와 같다. 알은 언젠가는 깨어져 그 무엇이 될 것이지만, 깨져 나오기 전에는 그 알이 뭐가 될지 모르는 상태이며, 한편으로 깨져 나올 수밖에 없는 시작의 상태를 안고 있다. 뚜렷한 사물로 드러나는 순간과, 그 무엇으로도 될 수 있는 잠재성을 한꺼번에 안고 있는 알의 상태. 세상은 늘 이런 변화의 조짐을 안고 있으며, (깨지는)변화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날마다 변화한다. 나라는 개체도 어제의 나와는 다른 존재이며, 늘 새로운 개체로의 분화가 계속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시작에 있는 셈이다. 갓난 아기, 첫 입학, 신입사원, 신혼부부, 새내기 엄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아니 모든 생명은 늘 시작 앞에 놓인다. 시작은 선택이 아니다. 시작이 어렵다고 ‘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싫어, 그냥 이대로 변하지 않고 있을거야’라고 할 수 없다. 시작하지 않는다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싹을 내지 못하는 아보카도 씨앗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작은 생명의 필수조건이다.

 

나에게 제후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생명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매번 시작의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셈이다. 이럴 때 앞서 말한 것처럼 제후를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만약 제후를 세우는 일이 쉽다면 둔괘를 난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의지가 될만 하다고 해서 아무거나 제후로 삼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제후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둔괘의 말들은 모두 제후를 세우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후를 세우기 위해, 제후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상전에 그 숙제가 주어져 있다.

 

“상전에서 말했다. 구름과 우레가 둔괘이니, 군자가 이것을 보고 천하의 일을 다스려 어려움을 구제한다(象曰 雲雷屯 君子以 經綸)”

 

평범한 이들이 먹구름만을 보고 답답해할 때 군자는 그 속에 우레가 숨어있고, 막힘이 뚫리는 때가 올 것임을 알고 준비한다는 것이다. 경(經)은 씨실, 즉 천을 짤 때 기준이 되는 세로의 실이고, 륜(綸)은 낚싯줄 혹은 현악기의 줄이다. 군자는 씨실에 날실을 넣어 옷감을 짜고, 낚시를 하거나 연주를 한다는 것이니, 막막한 마음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밝아질 날을 대비해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의 말처럼 싹을 틔운 아보카도는 쑥쑥 커서 이제 내 팔길이만큼 자랐고, 손바닥만 한 잎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딱딱한 씨앗을 뚫는 고난을 견디지 못했다면 시작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이다. 비록 아보카도 이파리의 맛에 눈을 뜬 고양이의 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도, 아보카도는 아보카도대로 늘 새로운 삶을 준비할 것이다.

 

올해는 나에게 새로운 갑자(甲子)가 시작되는 해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두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곧 봄이 시작될 것이고, 나의 새로운 공부도 시작될 것이다. 공부의 시작 앞에서 나는 공부의 어려움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나와 함께 기꺼이 고난을 함께 할 제후는 무엇일까? “공부에 적합한 루틴 만들기”가 그것일 것이다.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늘 번다한 일에 치여 ‘남는 시간에 책을 펼치곤 하는’ 태도를 버리기가 어려웠다. 시작단계에서 유난히 미적거리는  습관도 문제다. 이래가지고는 공부의 어려움을 넘지 못한다. 아니 공부를 시작조차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여 나는 ‘공부에 적합한  매일매일의 루틴’을 나의 제후로 삼고, 한해의 공부의 시작을 밀어부치려 한다.  그래야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 8
  • 2023-02-27 14:04

    밀어줄께요~~ ㅎㅎ

    • 2023-03-03 14:51

      감사감사!!ㅎㅎ

  • 2023-03-01 08:34

    시작단계에서 유난히 미적거리는거였구나, 봄날의 여유가...전 좋던대요~ 그게 봄날의 제후일수도 있지않을까요?

    • 2023-03-03 14:53

      그렇게도 보이나요?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 2023-03-02 17:11

    예전에 주역비누에서 '수뢰둔'쾌를 뽑았어요. 뭔지 몰라서 물어봤더니, 어려운 때라는 의미라 하더군요. 어쩜 이리 잘 맞을까 싶었는데, 어느덧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네요. 수뢰둔 힘든 괘이지만 나쁜 괘는 아니군요^^

    • 2023-03-03 14:54

      세상에 나쁜 괘는 없다, 조금 힘든 괘가 있을지는 몰라도...입니다. 겸목샘, 시간이 지나면서 둔의 어려움은 이미 풀리고 있겠지요?

  • 2023-03-03 07:39

    제후를 세우라는 말이 좀 궁금했는데 이런 의미였군요. 참고로 저도 아보카도 알깨우기를 좋아하는 1인으로서 울집 아보카도 이름은 이제 수뢰둔의 두니로 해알듯ᆢ

    • 2023-03-03 14:56

      ㅋㅎㅎㅎㅎ 두니....예쁜 이름을 얻으셨군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청량리 2024.04.14 |
조회 94
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우현 2024.04.09 |
조회 171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조회 160
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조회 168
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조회 152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두 번째 영화는 <도니 다코>(2001)입니다.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받아들이는 것 도니 다코 Donnie Darko | 미스터리/판타지/드라마 | 미국 | 112분 | 2001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오늘도 ‘도니 다코(제이크 질렌할)’는 잠결에 어딘가를 헤매다가 ‘프랭크(제임스 듀발)’를 만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는 “28일 후면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알려준다. 정확히 말하자면, ‘28일6시간48분12초 후’란다. 도니의 왼쪽 팔뚝에도 ”28:06:48:21“이라고 쓰여 있다. ‘네임펜’으로 잠결에 써서 그런지 글씨가 삐뚤빼뚤하다. 불행히도 프랭크를 볼 수 있는 것도, 이 세계가 곧 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도 오직 ‘도니’ 혼자뿐이다. 말한다고 믿어줄 친구도 없다. 그렇게 밤새 헤매다 아침이 되면 도니는 늘 엉뚱한 곳에서 일어난다.   일그러진 얼굴의 토끼가면을 쓴 프랭크. 가면을 쓴 이유는 나중에 밝혀진다.   영화 <도니 다코>(2001)의 카메라의 시선은 심플하게 ‘도니’의 행동을 쫓는다. 영화의 배경도 그의 집, 학교, 좀 더 넓게는 마을이 전부다. 극의 흐름은 단순해 보이지만 이 영화를 명료하게 이해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청량리 2024.03.20 |
조회 19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