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8회] 고난을 넘어서는 멈춤의 지혜, 수산건(水山蹇)

봄날
2022-11-10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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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이제는 전세계적인 놀이가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이 문장을 말하고 뒤돌아보는 순간, 사람들은 전력질주 하다가 즉시 멈춰야 한다. 이때 앞으로 나가는 관성을 막지 못하고 움직이면 지게 된다. 움직임과 멈춤 사이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이 놀이의 관건이다. 난괘 중의 난괘로 꼽히는 수산건(水山蹇)괘의 상황이 꼭 이렇다. 마구 앞으로 달려 나가도 안되지만, 그저 멈춰 있기만 해도 패한다. 만약 사업을 하거나, 이성을 만나거나, 어떤 큰 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점을 쳐서 수산건괘를 얻었다면, 당장 그 일을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그만큼 수산건괘는 어떤 일을 강행하는 것이 어려운 때임을 강조한다. 이 어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수산건(水山蹇), 앞으로 가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라

주역에서 ‘물’은 험함, 고난의 상징이다. 그래서 주역의 괘 중에 ‘안좋은 괘’ ‘어려운 괘’라고 불리는 괘에는 항상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들어있다. 수산건괘도 상괘가 감괘이다. 위는 물, 아래는 산이 놓여 있는 형상의 수산건괘는 높은 산을 간신히 넘었는데, 다시 물을 만나는 고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앞은 험한 강이고, 뒤는 내가 넘어온 산이 있으니,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

 

괘의 순서로 볼 때 수산건(水山蹇)괘는 화택규(火澤睽)괘의 다음에 나온다. 주역 64괘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서 해석하는 서괘전은 “규(睽)는 어긋남이니 어긋나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수산건괘(蹇卦)로 받았다”고 말한다. 규는 ‘사팔눈’처럼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반목하는 형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괘이다. 그러니까 수산건괘는 소통하지 못한 결과로 초래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역은 이것을 ‘절름발이’로 표현했다. 수산건괘의 건(蹇)이라는 글자는 ‘추울 한(寒)’과 ‘발 족(足)’이 합해진 것이다. 추위로 동상에 걸려 제대로 걷지 못하는 모양, 즉 다리를 저는 모양이다. 실제로 발이 동상에 걸렸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해나가는 데 있어 큰 어려움이 있다는 표현이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할까. 절뚝거리는 발을 들여다 보며 비관에 젖을 것인가, 이를 악물고 꿋꿋하게 목표를 향해 나아갈 것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주역의 수산건괘는 두 가지 모두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절망 속에 허우적대도 안되지만, 어려움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것도 무모한 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럼 어쩌란 말인가.

 

지금 필요한 것은 멈춤의 지혜

 

“건은 서남(쪽)은 이롭고 동북(쪽)은 불리하며, 대인을 만나봄이 이로우니 바르면 길할 것이다.(蹇 利西南 不利東北 利見大人 貞吉)”

 

수산건괘의 괘사에서 서남과 동북은 언뜻 보면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 여기에서는 각 방위에 배속된 성질을 봐야 한다. 고대 중국사람들은 서남쪽을 평지, 즉 음의 성질로 보았고 동북쪽은 험지, 즉 양의 성질로 간주했다. 그러니까 수산건괘의 때에는 험한 곳이 아닌 평평한 곳을 택해야 이롭다는 것이다. 평지는 음(陰)을 뜻하니까, 음의 기운을 취하면 대인을 만나고 결국 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괘명 자체가 가리키는 상황을 보면 왜 이렇게 말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무리해서 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것은 무모할 뿐 아니라, 더 큰 괴로움을 초래할 수 있다.

 

순리에 따르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양의 발산하는 움직임이나 그 힘에 주목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축구나 농구 같은 운동경기를 생각해보자. 우리의 눈은 주로 화려한 스킬의 공격수를 따라다닌다. 반면 상대팀의 공격의 허리를 끊고 우리팀의 공격기회를 만들어내는 수비수에 눈길을 주는 사람은 많지 않다. 스포츠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 곳곳에서 양의 활약상은 분명히 인식하지만 음의 움직임은 잘 포착하지 못한다. 주역은 바로 이러한 우리의 인식습관이 수산건괘의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할 뿐 아니라, 주어진 어려움이 어떤 것인지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그러므로 수산건괘의 어려움을 헤쳐 나가려면 먼저 그 ‘어려움’이 무엇 때문인지 판단해야 한다. 수산건괘의 어려움은 지금 자신이 절름발이어서 오는 어려움이다. 그러니 자신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한다면, 앞으로 달리거나 험지를 오르지 않고 지금 여기에 멈추는 것이 당연하다. 정확한 현실인식의 바탕 위에 ‘가는 힘(양의 힘)’이 아니라 ‘그치는 힘(음의 힘)’을 쓰는 것. 양에만 주목했던 우리의 습관으로 인해 우리는 음의 움직임도, 음을 쓰는 방법도 새롭게 발견해야 한다. 이렇듯 멈춰야 할 시점(時)을 알고, 자신의 힘을 그치는 데 쓸 줄 아는(用) 사람, 그만한 지혜를 갖춘 사람만이 수산건괘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앞에서 던졌던 질문, 즉 좌절하거나 이를 악물고 험지로 나아가는 양자택일이 아닌 방법에 대해, 주역은 수산건괘를 통해 제3의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그것은 바로 ‘가지 않는 것’, 즉 ‘멈춰서 새로운 음의 힘을 도모하는 것’이다.

 

가면 어렵고, 그치면 ~하다

문제는 멈춤의 역량, 멈춤의 지혜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럼 어떻게 그 멈춤의 역량과 지혜를 키울 수 있을까. 수산건괘의 효사에 힌트가 있다. 수산건괘의 모든 효사에는 건(蹇)자가 들어있다. 특히 초육, 구삼, 육사, 상육 네 개의 효사에는 모두 가고 옴, 즉 왕래(往來)가 등장한다. 네 개의 효사에 나오는 왕래는 “가면 어렵고, 오면 ~하다”처럼 (if)조건문의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오다’의 래(來)자는 산을 뜻하는 간(艮)괘의 성질인 ‘멈추다’ ‘그치다’로 해석한다.

 

初六 往蹇 來譽(초육은 가면 어렵고, 그치면 명예롭다)

六二 王臣蹇蹇 匪躬之故(육이는 왕의 신하가 어렵고 어려우니, (어려움이)자신의 탓은 아니다)
九三 往蹇 來反(구삼은 가면 어렵고 그치면 자신을 돌아본다)

六四 往蹇 來連(육사는 가면 어렵고 그치면 연대한다)

九五 大蹇 明來(구오는 크게 어려움에 벗이 올 것이다)

上六 往蹇 來碩 吉 利見大人(상육은 가면 어렵고 그치면 여유로워 길하리니, 대인을 봄이 이롭다)

 

네 개의 효사가 “가면 어렵다”고 말하고 있고, 나머지 효사에도 ‘어려움’이 있으니까, 기본적으로 주어진 상황이 어렵다는 것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바꿀 수 있는 것은 각 효사의 뒷부분, ‘그치면 ~하다’이다. 수산건괘처럼 어떤 선택을 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극단적으로 달라지는 예는 다른 괘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니 뒷부분을 잘 살펴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수산건괘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열쇠가 된다. 바로 이 부분에서 멈춤의 지혜가 발휘된다.

 

초육을 제외한 모든 효가 바른 자리(正位)에 있다는 것 또한 수산건괘의 효에서 주목할 점이다. 각 효에는 각각 배정된 힘이 있는데, 1,3,5효의 자리에는 양이, 2,4,6효의 자리에는 음이 미리 할당되어 있다. 수산건괘에서 발휘되어야 하는 것이 음의 힘인데, 효의 배치상 그 역량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초육도 바른 자리는 아니지만 양의 자리에 음이 왔고, 수산건괘의 때에 음의 힘을 써서 멈추니 오히려 좋은 결과(명예롭다)가 나온다.

 

구오의 효사는 수산건괘에서 맞닥뜨린 어려움이 보통의 어려움이 아니라 큰 어려움(大蹇)인 것을 짐작하게 한다. 나라나 공동체의 존망을 가르는 위기상황에서, 육이같은 유약한 음효(蹇蹇)는 구오의 큰 어려움을 함께 이겨나갈 힘이 없다. 그저 간신히 나가지 않는 것으로 역할을 다한다. 한편 구삼은 ‘가면 어렵다’는 것을 아는 존재로서, 가는 것을 멈추고 하괘의 다른 효들과 편안하게 머문다. 이것이 ‘돌아본다(反)’는 의미이다.

 

내가 의미있게 본 효는 육사이다. 육사야말로 어려운 상황에서 나아가는 힘으로 위기를 돌파하는 양의 힘이 아니라, 멈추는 지혜를 펴는 주인공이다. 육사는 바로 위의 구오와 친한 관계이므로 어려움에 처한 구오를 보필하는 것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효사는 (가지 말고)멈추라고, 멈춰서 연대하라(來連)고 한다. 육사는 음의 성질을 가지고 있으니 힘이 미약하여 혼자의 힘으로 (왕에게)가는 것은 그 자신에게나 왕에게나 이롭지 않다. 대신 멈춰서 연대해야 한다. 이때 함께 연대할 대상은 구삼과 육이이다. 스스로 멈추고 돌아볼 줄 아닌 구삼과, 자신의 역량과 상관없이 주어진 어려움을 감내하는 육이와 함께 구오를 찾아나설 때 비로소 군주에게 어려움을 뚫고 나갈 든든한 힘이 된다.

 

멈추고 해야 할 일, 지혜롭게 연대하기

얼마 전, 문탁네트워크의 <봄날의 살롱>에서 ‘기후위기’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어릴 때부터 들어왔던 ‘자연보호’나 ‘환경보호’는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개념이며, 상황은 전지구적인 ‘기후위기’사태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종말로 가는줄 알면서도 여전히 탄소 발자국을 생산하는 작금의 세계야말로 수산건괘가 가리키는 ‘고난의 시대’와 다르지 않았다. 절뚝거리는 지구를 보지 못하고 여전히 경제발전에 대한 맹신, 발산하는 양에만 환호하는 이 상황을 뚫고 나가는 데는 바로 수산건괘의 ‘멈춤의 지혜’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를 주제로 해서 세계 각국의 기후위기 운동을 다룬 한 TV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는 그 지혜가 어떤 방식으로 발휘되는지 보았다. 오스트리아의 시민들이 주인공이었다. 당시 새로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을 막기 위해 시민들이 연대했지만, 결과는 실패였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의 한가운데에서 새로운 지혜를 길어올렸다. 시민들은 새로 건설한 원전의 가동여부를 묻는 투표에 반대표를 던졌다. 새로운 원전은 한번도 가동되지 않았고,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알리는 생생한 교육현장이 됐다. 우리에게도 이런 경험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숙의민주주의 통해 원전건설을 공론화 과정에 부쳤지만, 결론은 원전건설을 진행하는 것으로 나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좌절하고, 찬성표를 던진 사람들을 원망하고 한심스러워했다. 그 때 우리가 발휘해야 했던 ‘멈추는 지혜’는 무엇이었을까. 이미 지난 일을 돌이켜 한숨지을 필요는 없다. 음의 힘을 발견해내고, 그 힘들을 써보는 것, 성장담론에 쐐기를 박는 음들의 단결이 우리에게 앞으로 던져진 과제이다.

 

경제발전의 쳇바퀴로부터 내려와서 우리가 한 일은 삼삼오오 모여서 ‘기휘위기’를 경고하는 손팻말을 만드는 것이었다. 만든 손팻말을 가지고 우리는 광화문에 모였다. ‘924기후행진’에 모인 많은 사람들을 보며 나는 수산건괘의 육사효가 떠올랐다. 멈추고 서서 연대하는 사람들. 기후위기를 막는데 우리의 온갖 노력이 너무 미약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멈춰서 지혜를 경험하고 계속 배워나갈 따름이다. 더구나 광화문에 모인 많은 젊은이들은 ‘음의 움직임이 이렇게 밝고 즐겁고 활기찰 수도 있구나’하는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는 지금 부드러운 음의 역량을 보고 있고, 멈추는 지혜의 현장을 겪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내 주위의 친구들과 어깨동무하고 멈춰서 “기후위기 멈춰!”를 외치는, 우리는 수산건괘의 육사들이다.

댓글 5
  • 2022-11-14 09:11

    멈추는게 아무것도 안하는게 아니라는걸 또 깨닫게 해주는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 2022-11-14 11:14

    멈춤의 미학이라니! 이 글을 읽고 멈춰 있는 이 순간이 사랑스럽게 보이기 시작했어요^^

  • 2022-11-16 02:34

    수산건! 이젠 만나도 쫌 덜 두려울듯합니다~~~^^

  • 2022-12-02 00:28

    수산건괘에 대한 저의 해석은 조금 다릅니다.

    큼큼...

    초육은 사춘기 시작이니 어렵고, 놔두면 명예롭다.

    육이는 십이라, 시비걸기 어렵고 어려우니 그건 니 탓이 아니다.

    구삼은 이십칠이라 그치면 삼십 전에 자신을 돌아본다.

    육사는 이십사니 반올리기 어렵고 내리기를 고대한다.

    구오는 사십오라 어려보여도 반백이 올 것이다.

    상(삼)육은 십팔이라 말하기 어렵고 그치면 여유가 생기리니, 대화함에 이롭다.

    ---
    더 나가면 안 되겠지요? 멈춤의 지혜를 얻어갑니다.
    잘 읽었어요~~ㅎㅎ

    • 2022-12-02 15:27

      청량리! 너무 우껴요..ㅋ 그래도 라임 들어간 랩 쏟아내는 가운데에서도 정신을 잃지 않고 지혜를 얻어 간다니 기쁘군요.^^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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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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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세 번째 영화는 <아들>(2002)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차례 아들 Le Fils | 드라마/미스터리 | 벨기에, 프랑스 | 102분 | 2002       ※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의 시작인 ‘인트로’는 그 영화의 첫인상이자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2002)은 음악도 없이 흔들리는 어떤 ‘형상’을 보여줄 뿐이다. 그 위로 건조하게 제작자, 주연배우, 감독의 이름 등이 보였다 사라진다. 마치 <히로시마 내 사랑>(1959)이 생각나는 ‘인트로’를 보고 있으니 ‘아, 이번 영화도 뭔가 쉽지는 않겠구나’는 느낌이 팍팍 든다. 다르덴 형제의 이름과 영화의 원어제목 ‘Le Fils’이 사라지면, 카메라는 천천히 움직이며 그 흔들리는 ‘형상’이 바로 ‘올리비에’(올리비에 구르메, 배우의 이름을 그대로 등장인물 이름으로 사용했다)의 ‘등’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 ‘인트로’처럼 영화는 대부분 올리비에의 ‘등과 뒷모습’을 시종일관 따라다닐 거라고 미리 알려주고 있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다르덴 형제는 혹독한 수준의 리허설로 유명하다. 이유는 영화가 배우들의 ‘몸’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동선을 구성해보고, 몇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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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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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의 독서가 테크트리
    바닷가를 향하며 – 지그문트 바우만, 『사회학의 쓸모』 리뷰     사회학자-테크트리?  올해 내가 참여하는 세미나 중 하나로 사회학 세미나가 꾸려졌다. 이 세미나는 나를 장래의 ‘사회학 세미나의 튜터’로 키우겠다는 정군샘의 포부와 함께 만들어졌다. “사회학?” 정군샘은 평소 나의 글을 보며 사회학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하셨지만, 난 사실 ‘사회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낯설다. 내가 평소에 사회 문제나 이슈를 다룬 글들을 좋아하고, 그런 글을 쓰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게 ‘사회학’이라는 학문으로 연결되는지는 확신이 없었다. 애초에 ‘사회학’이라는 말의 범주는 너무 넓은 게 아닐까? 하물며 ‘사회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전공을 ‘사회학’으로 삼을만한 동기나 마음이 나에게 있을까? 이런 나의 상태를 간파했다는 듯이, 정군샘은 독서가 테크트리의 다음 책으로 『사회학의 쓸모』를 추천했다. 저명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의 대담을 편찬한 책이다. 바우만은 나에게 사회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을까?   사회학이 뭔데?  ‘사회학’이 뭘까? 바우만은 서론에서부터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정의되기 힘든 점을 짚어주고 있는데, “사회학은 그 자체로 사회학의 연구 대상인 ‘사회세계’social world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14) 다른 대부분의 학문은 학문과 연구의 대상을 분리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화학을 연구하는 건 ‘화학의 세계’에 들어가서 전문 지식을 발휘해야만 한다. 일반인들은 ‘화학의 세계’를 살아갈 일이 많지 않으며, 그 세계는 전문 학자들의 영역으로 남는다. 반면 ‘사회세계’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살아가는 공간이고, 딱히 사회학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살아가는 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사회학은 ‘과학’과 같은 지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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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현 2024.04.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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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파괴가 곧 창조다 리처드 켈리의 <도니 다코 Donnie Darko/2001>     중2는 미국에도 있더라   영화는 해가 뜰 무렵, 어스름한 산길 위에 누워있던 도니 다코(제이크 질헨할)가 잠에서 깨면서 시작되었다. 일어나 자신이 있는 곳을 확인한 도니의 입가에 비치는 사악한(?) 미소의 의미는 후반부에 가면 알게 된다. 경쾌한 음악에 맞춰 자전거로 아침 햇살을 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도니, 냉장고 앞에는 ‘Where is Donnie?’란 메모판이 붙어 있다. 아, 이렇게 도니가 아침에 나타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나 또 살았구나~   영화는 계속해서 현재의 시간을 환기한다. 우선 1988년 10월 2일이다. 역사적으로 1988년 11월 8일은 미국 대선 날이다. 공화당의 조지 부시와 민주당 마이클 듀카키스가 맞붙었고, 보수주의가 득세하던 시기였다. 도니의 가족들도 대선에 관심이 많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의 대화를 통해 이 가족의 분위기는 어느 정도 파악이 된다. 부모 세대는 은연중에 부시를, 큰딸 엘리자베스는 공개적으로 듀카키스를 지지한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가치관 차이는 당연지사. 부모와 아이들의 관계는 수평적으로 보이는데, 중2병에 걸린 자식은 여기도 있다. 도니는 매사 부모, 누나, 동생, 선생, 친구 모두와 부딪힌다.   10대 청소년인 도니가 정신병원에서...
띠우 2024.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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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이예술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하나의 귀와 두 개의 입 한자가 보여주는 듣기의 방법론   동은     1. 실용實用적인 한자   책을 읽다보면 모르는 단어가 등장할 때가 있다. 그러면 눈을 부릅뜨고 앞뒤의 맥락을 살펴 단어의 의미를 짐작하곤 한다. 하지만 그 단어가 짐작만으로는 넘기기 어려운 위치에 있거나 도무지 감도 오지 않는 경우에는 사전에서 찾아봐야 한다. 그런데 사전에는 같은 발음을 가진 다른 의미의 단어들이 여러게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하나하나 문장 속 단어에 의미를 적용시키며 여러 개의 단어 중에서 무엇인지를 찾아야 한다. 한자를 많이 알면 이 과정이 상당히 빨라진다. 단어의 상당수가 한자어에서 유래한 우리말의 특성상, 한자를 많이 알수록 이렇게 문해력과 어휘력이 좋아진다. 그런 점에서 한자는 분명 살아가는데 실용적이다. 실용實用적이라는 건 실제로 쓰일만한 가치가 있다는 뜻인데, 이런 문해력과 어휘력 외에도 한자의 실용성이 발휘되는 부분이 있다.     한글과 다르게 한자는 문자 하나에 ‘의미’가 담겨있다. 당연하게도 ‘의미’가 문자에 담기기까지는 여러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 과정은 때로 우연히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상당한 고심을 거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문자 하나가 가지고 있는 의미의 맥락이 경우에 따라서는 대단히 복잡해지기도 한다. 이건 문자 하나일 뿐일지라도 거기에 담긴 ‘이야기’는 여러가지 일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중층적으로 구성된 이야기들은 문자가 사용되는 오늘날과도 긴밀하게 연관된다. 처음 문자가 만들어진 시기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갑골문에 대한 해석은 오늘날에도 고정되어 있지...
동은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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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미의 알지만 모르는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한비자의 법.술.세. 탐구 첫 번째 이야기 법은 왜 존재할까?   17년간 버스 기사로 일한 A씨는 2010년 10월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그가 요금 6천400원 중 6천원만 회사에 납부하고 잔돈 400원을 두 차례 챙겨 총 800원을 횡령했다는 이유였다. <2022년 8월 3일 연합뉴스 일부 발췌>   이 뉴스는 한동안 떠들썩했던 “800원 횡령 버스기사 해고” 사건이다. 내가 이 사건에 주목한 이유는 법의 형평성과 공정성이 의심받을 만한 판결이기 때문이다. 사측은 버스기사가 잔돈 400원으로 두 번 자판기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CCTV로 낱낱이 찾아냈다. 사측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얼까? 그 버스기사가 당시 노조활동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800원 횡령죄라니... 이게 법이야?”라고 내가 푸념하자 사람들은 말했다. “법은 원래 그런 거야.” 법은 정말 원래 그런 걸까? 법의 존재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내가 『한비자』를 다시 읽은 이유이다.     1. 자산의 성문법 – 귀족의 전횡을 막다   춘추시대는 법이 아니라 예(禮)로 다스려지는 시대였다. 그렇다고 법이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법은 백성에게만 적용되었다. 다시 말해 백성이 죄를 지으면 처벌을 받지만, 귀족(대부 이상)은 열외였다. 귀족은 형벌의 규제를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기들 입맛대로 법을 적용하고 해석해서 백성을 처벌하기까지 했다. 이 당시 법은 공개되지 않고 전적으로 특권층의 재량에 맡겨졌다. 법가는 주나라 말기 심해지는 귀족의 횡포를 막기 위해 법을 성문화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오늘날 우리가 법이라고 말하면 이런 성문법을 의미한다.   출처 :...
두루미 2024.03.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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