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뼘 양생 12회> 감량의 기술, 지각변동이 다가올 때

겸목
2021-11-22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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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올해 초 54에서 53킬로그램 정도 나가던 몸무게가 이제 50에서 49킬로그램 정도이니, 5킬로그램 정도 감량했다. ‘신장병환우회카페’에 올라오는 빠른 회복에 대한 간증들 가운데 빠지지 않는 항목이 체중감량이었다. 하루 2만보에서 3만보쯤 걷고, 하루 두 끼 저염저단백식단을 칼같이 지켰더니 체중이 10킬로그램 이상 빠졌고 콜레스테롤, 혈당, 혈압 등등 모든 수치가 좋아졌다는 내용이었다. 이 간증의 주인공들은 대개 중년 남성들이다(10킬로그램을 감량하고도 괜찮으려면 과체중 상태여야 한다). 불규칙적인 생활과 스트레스, 음주와 흡연으로 이어졌던 중년 남성들에게 질병은 체중감량을 요구했고, 그 결과는 모두 대만족이었다. 몸이 가벼워지고 성인병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이다.

 

 

 

 

  나는 체중감량을 위해 일단 국물을 포기했다. 김치찌개, 된장찌개, 순두부, 미역국, 육개장, 감자탕, 순댓국……이 밥상에서 떠나갔다. 국물 없이 마른 밥을 먹는 일이 뻑뻑하기는 했지만 염분은 확실히 줄여줬다. 염분을 줄이니 몸의 붓기는 저절로 빠졌다. 그 다음 저염저단백 식단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어려웠다. 아예 소금과 단백질을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줄여서’ 먹으라는 것인데 도대체 얼마를 줄여야 할까? 물론 병원에서 나눠준 책자에는 하루 적정 소금의 양을 5그램(티스푼 1개), 단백질의 양을 40그램으로 알려줬지만, 그게 어느 정도의 양인지 실제로 감을 잡기는 어려웠다. 그걸 또 세 끼에 나누어 먹으려면 어느 정도여야 할까? 이제는 안다. 그 소금의 양은 거의 무염에 가깝다. 한 끼에 먹을 수 있는 단백질의 양은 소고기와 돼지고기의 경우 손바닥 하나 정도의 크기이고, 두부는 1/6모, 달걀 1개 정도다. 마지막으로 기호식품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이제 커피와 알코올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는 건 ‘삼다수’(생수)다. 어쩌다 한 번 무알코올맥주를 마시거나 맥주 한 캔 정도 비우는 날이 있지만, 올해는 스무 살 이후로 내가 가장 적은 알코올을 마신 해로 기록될 것이다. 동시에 ‘술친구’와 ‘밤문화’도 사라졌다. 그러니까 몸무게를 줄이는 건 단지 식이요법만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 바뀌는 거대한 지각변동이었다.

 

  줄여야 할 것은 몸무게만이 아니었다. 일도 줄이고 스트레스도 줄여야 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줄여야 할까? 이것도 감이 오지 않았다. 올해 초 계획되었던 세미나 하나를 뺐고, 더 이상 일을 늘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크게 신경 쓸 거 없고 소소한 일이라도 순서 없이 닥쳐오면 몸이 부대꼈다. ‘이러다 신장이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일이 가져다주는 즐거움을 반감시켰다. 걱정의 무게가 일상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올해는 우물쭈물하며 시간을 보냈지만, 내년에는 일을 ‘반으로’ 줄여볼 생각이다. 반으로 줄여든 일은 내가 더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일 것이다. 마음속으로 하기 싫은 일과 할 수 없는 일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줄여야 할 것은 돈 걱정이었다. 사업을 정리한 후 재취업한 남편의 급여는 예전보다 많이 줄었고, 그 사이 부동산은 폭등했다. 하루하루 ‘벼락거지’라는 말을 실감한다. 장바구니 물가도 많이 올라, 매월 생활비도 마이너스다. 내 경제력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얼마 전에 취업 1년차 큰딸에게 이 문제를 의논했다. 딸은 월급을 모아 시드머니를 만들고 그걸로 주식 투자를 하고 부동산 재테크에 들어간다는 동료들의 얘기를 지겨워했다. 그러나 딸도 평생 월급을 모아도 서울 시내에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불안감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이제 막 경제적 독립을 시작한 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의논을 시작했다. 인문약방 사장님과 동료들에게도 내 사정을 알렸다. 가족만큼 내 문제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내 문제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장님이 여윳돈을 변통해주셨고, 친구들과는 일이 줄고 수입이 줄어들 내년을 어떻게 보내는 게 좋을지 스케줄을 조정해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는 그간 돈 문제를 남편에게 일임하고 살아온 시간들이 후회가 됐다. 그 시간으로 되돌아간다고 해도, 내가 경제력 있는 사람이 되거나 재테크에 능한 사람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보다는 ‘돈 무서운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는 무지했고 오만했다. 한마디로 미성숙했다.

 

 

 

  비교의 방식이 들어간 글쓰기 과제에서 한 학생이 ‘일주일간의 럭셔리 패키지여행 vs 두 달 간의 배낭여행’을 써왔다. 글의 끝에서 그 학생은 안정과 편리함보다는 도전과 모험을 선택하겠다고 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학생에게 도전과 모험은 잘 어울려 보인다. 중년의 나에겐 어떨까? 중산층의 생활에서 이탈한 내 앞에 놓인 길도 풍찬노숙의 배낭여행이지 않을까 싶다. 도전과 모험에 가슴 두근거리는 스물 살 청년과 달리, 나는 ‘줄이고, 비워가는’ 배낭여행을 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무엇을 줄여가게 될까? 아마도 욕심? 체중감량보다 더한 지각변동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건투를 빈다.

댓글 5
  • 2021-11-23 08:35

    그럽시다~~ 함께 그 감량의 기술을 익혀갑시다~ 

  • 2021-11-23 08:44

    아침에 주역보다가 기쁨의 평등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서인지, 이 글의 건투가 눈에 들어오네요. 분투성의 상승이라는 스피노자의 기쁨, 절대크기와 무관해서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는 그 증감. 오늘은 어제와 다를 분투성앞에 서있을 겸목과 우리를 위해 건투를 일삼아봅시다. 잘 읽었습니다

  • 2021-11-23 10:42

    체중도 삶도 감량이 필요한 시대!! 모험의 즐거움을 위하여 ^^

  • 2021-11-23 11:44

    제 것과 닮은 여러 고민들이 어떻게 하면 흥미진진 모험이 되고 찰진 경험이 될까요? 겸목샘의 건투, 제게도 중요한 일인거 같아요. 

  • 2021-11-24 16:55

    오늘 고미숙샘 강의에서 ‘노매드랜드’ 얘기가 나오던데 배낭여행을 하는 삶을 노마드적 삶으로 살아봅시다!

    겸목의 지성에 영성이 탑재되는 느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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