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 불교산책10회]연기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요요
2022-12-11 13:18
434

연기緣起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연기緣起를 본다

 

세존께서는 ‘연기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고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맛지마니까야』 28 『코끼리 발자취에 비유한 큰 경』)

 

연기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붓다(budha)는 깨달은 자를 뜻하는 보통명사이다. 2,500년전 고타마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이후 붓다(Budha)는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님 그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중생의 한 사람에서 거룩한 존재로 변신하게 한 그 깨달음의 내용은 대체 무엇일까? 바로 연기(緣起)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치열하게 수행한 끝에 마침내 연기를 봄으로써 괴로움의 뿌리를 끊어냈다. 번뇌의 불이 완전히 꺼지는 열반을 성취한 것이다. 그런데 붓다는 비록 잠시지만 자신의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널리 설하는 것을 망설였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탐·진·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중생들이 연기를 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붓다는 넘치는 자비심으로 망설임을 떨쳐내고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혜를 전하기 위해 길 위에 섰다.

 

붓다는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를 찾아갔다. 그들에게 설한 법문이 초전법륜(初轉法輪)이다. 처음으로 법의 바퀴를 굴렸다는 뜻이다. 초전법륜에서는 괴로움, 괴로움의 발생,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실천에 대한 가르침인 사성제(四聖諦)가 설해졌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여러 날에 걸친 대화와 문답 끝에 가장 먼저 꼰단냐에게 지혜의 눈이 열렸다. 꼰단냐는 환희에 차서 외쳤다. “생성한 것은 무엇이든 소멸하게 마련이다!” 꼰단냐를 포함해서 다섯비구가 번뇌에서 완전히 해방된 존재가 되게 한 깨달음 역시 연기에 대한 통찰이었다!

 

 

연기란 무엇일까. 한자어인 연기는 연하여 일어난다, 즉 인연에 의해 생겨난다는 말이다. 연기란 빨리어 빠띳짜 싸무빠다(paticca samuppāda), 산스크리트어 프라티트야 싸무빠다(pratītya samutpāda)를 한자로 옮긴 말이다. 빠띳짜는 ‘의존한다’는 뜻이고, 싸무빠다는 ‘함께 생겨난다’는 뜻이다. 연기는 풀이하자면 의존적 상호 발생, 조건적 발생, 상호의존적 발생의 의미다. 연기적 관점으로 보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 저 홀로 독립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다른 것들에 의존해서 발생하고,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알려준다. 이 모든 과정이 다른 것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다. 너무 쉽고 간단해 보이지만, 연기를 개념으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삶에 적용해 보려 하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는 나를 포함한 만물이 마치 독립적인 개체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반응하고 행동하는 습에 푹 젖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괴로움은 내가 만든 것일까, 남이 만든 것일까

우리는 생각하는 나인 인식주체와 인식 대상을 구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물론 자기 자신을 대상화할 때도 있다. 그때조차도 우리는 대상화된 나를 인식하는 주체가 따로 있다고 가정한다. 그처럼 우리는 나와 대상을 구별하고, 대상을 인식하는 나를 이 세상 무엇과도 다른 특별한 능동적 주체의 위치에 놓는다.  나란 존재는 언제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라고 상정하는 사고방식이다. 설령 일상의 삶에서 내가 갈팡질팡하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더라도 그건 진짜 내가 아니라는 식으로 빠져나갈 출구를 만들어 둔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관습적이고 상투적인 물음은 의문의 여지 없이 그런 진짜 나, 참 자아와 같은 신비화된 주체를 전제한다. 많은 사람들이 불교의 무아론을 접할 때 당황하고 놀라는 것은, 무아론이 그런 신비화되고 초월적인 주체 혹은 자아란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과연 진짜 나의 존재는 우리의 믿음만큼 그렇게 확실한 것일까?

 

붓다는 당대의 지식인과 수행자들과의 대화와 토론을 통해 그런 믿음의 근거를 무너뜨리면서 연기법을 설파했다. 어느 날 깟사빠라는 수행자가 붓다를 찾아와서 물었다. “괴로움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까?” 우리 역시 돈이 없어서, 남의 인정을 못 받아서, 몸이 아파서, 부모님이 늙고 병들어서 등등 수많은 이유로 괴로움을 겪고 있다. 이런 괴로움은 내가 만든 것일까. 아니면 남이 만든 것일까.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방식도 달라지고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질문에 대한 붓다의 답을 듣기 전에 먼저 ‘괴로움은 내가 만드는 것이냐’는 깟사빠의 질문이 감추고 있는 몇 가지 전제를 살펴보자. 어쩌면 우리 역시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전제다. 첫째, 나를 나이게 하는 변치 않는 어떤 본질이 있다. 둘째, 나의 본질은 항상 존재한다. 셋째, 나의 본질은 내 행위의 근거이자 토대이다. 넷째, 괴로움을 겪는 나와 괴로움을 만든 나는 본질에서는 동일하다. 하여 ‘괴로움은 내가 만드는 것입니까’는, 괴로움을 만드는 행위자이자 원인이면서 괴로움이라는 결과를 경험하는 동일한 주체의 연속성을 전제한다. 깟사빠는 붓다에게 자아가 연속한다는 상견(常見)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붓다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괴로움은 남이 만드는 것입니까?” 깟사빠의 두 번째 질문이다. 내가 괴로움의 원인이 아니고 다른 것이 원인이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의 남은 앞선 질문의 나가 실체였던 것과 마찬가지로 실체이다. 그런 점에서 이 질문은 첫번째의 질문의 실체론적 사유와 맥을 같이 한다. 앞선 질문과 다른 점은 원인과 결과가 연속적인 자기 동일적인 실체가 아니라는 데 있다. 남이 괴로움을 만드는 행위자인데 내가 결과를 경험하는 자가 되니 말이다. 하여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면, 원인과 결과 사이에는 동일성과 연속성이 아니라 단절이 있게 된다. 그 점에서 이 질문은 단견(斷見)이 옳으냐고 묻는다. 붓다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괴로움은 원인 없이 우연히 생긴 것일까

세 번째 질문이 이어진다. “괴로움은 내가 만들기도 하고 남이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서로를 배제하는 관계에 있는 상견과 단견이 동시적으로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가당착적 질문이므로 답할 필요조차 없다. 만일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으려면 동일성과 비동일성이, 연속성과 비연속성이, 상견과 단견이 하나의 괴로움에 대해 동시에 성립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붓다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네 번째 질문은 “괴로움은 내가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드는 것도 아닙니까?”다. 내가 만들지도 않고, 남이 만들지도 않았는데, 내가 괴로움을 느낀다면 그 괴로움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온 바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질문은 어떤 원인도 인정하지 않는 무인론(無因論)을 가정하고 있다. 원인 없이 발생한 것을 우리는 우연히 발생했다고 말한다. 왜 그런지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일이 생긴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한다면 이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에 인과관계란 없고 오직 혼돈과 무질서가 있을 뿐이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괴로움은 원인 없이 우연히 발생한 것이냐는 물음에 대해 붓다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깟사빠의 네 가지 질문은 ‘괴로움은 누가 만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때 나올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포함한다. 붓다는 이 모든 질문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상견도 단견도 무인론도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붓다의 관점에서 보면 깟사빠의 질문은 모두 잘못 구성된 질문이다. 생각해 보자. 깟사빠의 ‘괴로움은 누가 만드는가?’라는 문제는 괴로움을 만드는 ‘누구’가 실체가 존재할 것이라고 당연하게 가정하고 있다. 괴로움은 그런 ‘누군가’와 ‘무엇’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괴로움은 어떤 조건 속에서 발생할 뿐이다. 그러므로 붓다는 깟사빠의 네 가지 질문 모두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깟사빠와 붓다의 대화를 보면서 나는 깟사빠에게 오히려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 역시 오래도록 그런 질문을 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내가 내 괴로움을 만든다고 생각할 때는 반성하는 주체였고, 내 괴로움의 원인이 내 바깥에서 온 것이라 생각할 때는 남의 잘못을 심판하고 분노하는 주체였다. 나는 깟사빠의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을 무한 반복하며 괴로움을 실체시하고 나와 남을 실체시하고 있었던 셈이다. 돌이켜보면 이런 반복이 자아의식를 강화하는 순환적 회로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연기는 양극단을 떠난 중도의 가르침이다

붓다의 위대함은 사람들이 당연시하던 전제를 문제 삼고 물음 자체를 바꾼 데 있다. 그는 ‘누가 괴로움을 만드는가’라는 질문이 실체적 관점에 선 질문이라는 것을 통찰했다. 붓다는 ‘괴로움을 누가 만드는가’에서 ‘괴로움은 어떻게 생겨나는가’로 질문을 바꾸었다. 이렇게 물음을 바꿈으로써 붓다는 조건적 상호발생의 원리인 연기를 발견했다. 상견도 단견도 무인론도 괴로움의 발생과 소멸을 설명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상호의존적이고, 모든 발생과 소멸은 조건적이기 때문이다. 상견과 단견을 떠나는 것이 중도이다. 중도란 연기에 다름 아니다.

 

깟싸빠여, 여래는 이러한 양극단[상견과 단견]을 떠나서 중도로 가르침을 설합니다. 무명을 조건으로 형성이 생겨나고, 형성을 조건으로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조건으로 명색이 생겨나고, 명색을 조건으로 여섯 감역이 생겨나고, 여섯 감역을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생겨나고, 갈애를 조건으로 집착이 생겨나고, 집착을 조건으로 존재가 생겨나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이 생겨나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죽음, 늙음, 비탄, 고통, 근심, 절망이 생겨납니다. 이 모든 괴로움의 다발들은 이와 같이 해서 생겨납니다.(『쌍윳따니까야』 12:17 『아쩰라 깟사빠의 경』)

 

무명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발생하고 갈애를 조건으로 괴로움이 발생된다는 연기의 원리를 듣고 붓다의 제자 몰리야 팍구나가 물었다. “누가 의식합니까?”, “누가 접촉합니까?”, “누가 느낍니까”, “누가 집착합니까?”라고. 이쯤되면 우리는 나와 남, 내 것과 남의 것에 대한 분별과 집착을 떠나는 것과 연기를 알고 보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깟사빠와 팍구나가 멍충이여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질문은 그들이 이 세계를 실체적으로 보는지 연기적으로 보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나의 질문도 마찬가지다. 일상에서 어떤 조건 속에서 괴로움이 생겨나고 사라지는지 성찰하는 수행 없이 그저 연기의 개념을 아는 것으로는 나의 물음은 바뀌지 않는다.

 

하나 더 확실히 해 둘 것이 있다. 연기의 설법에 등장하는 무명無明, 형성, 의식, 명색名色, 여섯 감역六入, 접촉, 느낌, 갈애, 집착, 존재, 태어남, 죽음과 늙음, 비탄과 고통, 근심과 절망老死·憂悲惱苦 하나하나를 실체적 개념으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오온도 마찬가지다. 오온도 괴로움도 무상한 변화 속에서 생겨나고 사라지는 흐름으로 있을 뿐이다. 붓다는 발생하고 소멸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 모두 무상한 것이라고, 거기에 변치 않는 자아 따위는 없다고 힘주어 가르친다.

 

수행승들이여, 늙음과 죽음은 무상한 것이고 유위적인 것이고 조건적으로 발생한 것이고 부서지고야 마는 것이며 사라지고야 마는 것이며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태어남, 존재, 집착, 갈애, 느낌, 접촉, 여섯감역, 명색, 의식, 형성, 무명은 무상한 것이고 유위적인 것이고, 조건적으로 발생한 것이고, 부서지고야 마는 것이며 사라지고야 마는 것이며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쌍윳따니까야』 12:20 『조건의 경』)

 

연기적 관점이 대결하는 것은 실체론에 근거한 사유이다. 생성과 소멸의 장 안에서는 그 무엇도 실체라 할 만한 것은 없다. 실체가 없다는 자각은 무아에 대한 철저한 성찰을 요한다. 무아는 내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차라리 우리가 나라고 생각하는 그것 역시 연기적 사태라는 말이다. 무상, 무아, 연기, 중도는 서로에게 의존해 있다. 연기는 마치 베어놓은 볏단이 서로에게 의지해서 서 있는 것처럼 사물이든 개념이든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가르침이다. 붓다가 설한 중도 역시  연기적 사유, 연기적 실천에 다름 아니다.

 

 

연기는 수행적 앎이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쌍윳따니까야』 12:37 『네 것이 아님의 경』)

 

널리 알려진 연기의 정형구이다. 우리는 이제 이 정형구가 말하는 이것과 저것이 불변의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어떤 사태를 지칭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 연기란 다른 여러 조건을 통제한 상태에서 독립된 두 항을 떼어내어 원인과 결과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단순하게 설명해내려는 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연기를 인과법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단서가 필요하다. 원인과 결과를 분리된 두 항으로 실체시하지 않는다는 조건 말이다. 연기의 원리는 실재하지만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주체와 대상을 분리하는 익숙한 고정관념과 습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만이 그것을 볼 수 있다.

 

내가 깨달은 이 진리는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깨닫기 어렵고, 고요하고, 탁월하고, 사유의 영역을 초월하고, 극히 미묘하기 때문에 슬기로운 자들에게만 알려지는 것이다.(『맛지마니까야』 26 『성구경』)

 

연기법을 모른다는 것은 괴로움이 끊이지 않는 윤회적 삶에 속박된 것이고, 연기법을 안다는 것은 괴로움에서 해방된 삶을 사는 것이다. 연기를 아는 것은 연기의 정의나 개념을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연기법은 존재의 변형을 수반하는 앎이다. 연기를 보려면 탐·진·치를 지워내고 있는 그대로를 보기 위한 자기변형의 과정, 수행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연기는 그것을 보면 보기 전의 삶으로 결코 되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수행적 앎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연기를 보는지 보지 못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일상에서 나를 앞세우는 탐욕과 분노가 줄고 내게 닥쳐오는 일들에 대해 평화로운 마음으로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딱 그만큼 나는 연기를 보고, 연기를 산다. 하루하루의 삶을 어떻게 사느냐가 통찰과 수행의 바로미터다.

 

댓글 6
  • 2022-12-12 10:33

    좋은 글 감사합니다!

  • 2022-12-13 06:40

    변화하고 있는 과정의 사태... 존재의 변형을 수반하는 앎...
    들뢰즈가 말하는 '배움'과 매우 유사해 보입니다... 현재 제가 알고 있는 만큼에서요 ㅎㅎ

    *비밀메모가 필터링되었습니다

  • 2022-12-14 16:01

    " 그들의 질문은 그들이 이 세계를 실체적으로 보는지 연기적으로 보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실체적으로 보는 질문과 연기적으로 보는 질문의 차이는 주체와 대상의 문제에서 발생하는걸까요? 주체와 대상이 있다 없다는 이분법에서출발?
    네 번의 질문으로 그걸 이해하기에는 역부족 ㅋ 샘이 세세히 좀 더 알려주세요~~
    여튼 내가 어떻게 질문하고 있는지 따져보기는 해야겠습니다~~

    • 2022-12-17 11:21

      우리가 어떻게 질문하느냐가 우리의 (비연기적이고 실체적인) 사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보지 말아야지라고 결심한다고 해서 그렇게 보지 않게 되는 건 아니겠지요. 오히려 내가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던지느냐를 잘 살펴보면 내가 세계와 어떻게 만나고 있는가가 드러난다고 하는 편이 낫겠네요. 깟사빠의 질문을 가지고 와서 연기에 대해 풀어보려고 시도해본 것은 깟사빠의 질문이 사실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던지는 질문방식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질문을 잘 탐구해 보는 것이 연기를 이해하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지요. 부처님의 답보다 오히려 깟사빠의 질문방식, 거기에서 시작해보자는 것이지요. 아무튼 이번에는 연기에 대해 써보겠어, 라는 결심으로 이 글을 시도했지만 연기에 대해서 쓰는 것은 정말 어렵네요. 그리고 제가 잘 모른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고 질문을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 2022-12-16 09:54

    첫 번째 사진 속 한 비구님은 거북목...?

    몇 년 전에 요요쌤이랑 대중지성에서 불교 공부를 했을 때가 기억나네요. 그때 연기가 너무 어려워서 엄청 고민하다가 손톱만큼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선생님 글을 다시 보니 고 사이에 전부 새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어요ㅋㅋ 연기를 아는 삶을 사는 건 어떤 걸까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최근에 알게된 명상단체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카르마에 엄청 주목하더라고요. 마치 점수를 매기는 것처럼 +, -를 재고 있어서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연기를 제대로 깨우쳤다면 그렇게 이야기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드네요.

  • 2023-03-04 19:38

    연기에 대해서 어렵지만 나의 잘못으로 이런 일이 생겨났다는 자책 그리고 너의 잘못으로 이 일이 생겨났다는 비난. 여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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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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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요요 2023.08.17 |
조회 288
요요와 불교산책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요요 2023.07.20 |
조회 449
요요와 불교산책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요요 2023.06.11 |
조회 354
요요와 불교산책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요요 2023.03.20 |
조회 415
요요와 불교산책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쌍윳따니까야』 15장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쌍윳따』)   수많은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2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 먹고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을 끌어안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뺨에 얼굴을 비벼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진 입관식에서도, 어머니의 몸을 담은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도, 한 줌으로 수습된 유골을 땅에 묻을 때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었다는 회한과 자책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의 경』을 떠올렸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수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대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비탄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쌍윳따니까야』 15장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쌍윳따』)   수많은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2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 먹고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을 끌어안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뺨에 얼굴을 비벼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진 입관식에서도, 어머니의 몸을 담은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도, 한 줌으로 수습된 유골을 땅에 묻을 때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었다는 회한과 자책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의 경』을 떠올렸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수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대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비탄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요요 2023.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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