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 불교산책 8회] 자아는 없다, 무아의 가르침

요요
2022-09-13 09:14
508

자아는 없다, 무아의 가르침

 

수행승들이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쌍윳따니까야』, 22:59 『무아의 특징경』)

 

이십여 년 전쯤 명상 수행에 입문했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위기가 닥친 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의 반항과 일탈이 시작되었다. 남편과 아이로 인해 마주하게 된 두 가지 사태 모두 내가 논리적으로 이해하거나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감당하기 버거운 상황 앞에서 마음은 온통 원망, 자책, 분노, 부끄러움, 모욕감으로 가득찼다. 자의식 과잉은 몸과 마음을 다치게 했다.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명상을 배우러 갔다. 명상을 지도하는 스님은 가만히 들숨과 날숨을 지켜 보라고 했다.

 

네 마음을 가져와라

달마는 멀리 인도에서 중국으로 법을 전하러 온 스님이었다. 눈이 온천지를 새하얗게 뒤덮은 겨울, 혜가(慧可, 487년~593년)가 찾아왔다. 혜가는 가르침을 청했으나 달마는 묵묵부답이었다. 혜가는 자신의 팔을 잘랐다. 그제서야 달마는 혜가를 제자로 받아들였다. 달마를 찾아오기 전부터 혜가가 외팔이였다는 이야기도 있는 만큼 혜가의 배움에 대한 의지가 그 정도로 결연했다는 메타포로 이해하고 싶다. 거기에 더하여 팔 하나쯤은 가볍게 여기는 선가(禪家)의 공부 가풍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라는 생각도 든다. 제자가 된 혜가가 달마에게 말했다.

 

“스승님, 제 마음이 불안합니다. 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십시오.”

 

달마와 혜가의 대화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한다. 명상을 배우러 달려갈 때의 내 마음과 스승에게 불안을 토로하는 혜가의 마음이 다르지 않을 거라고. 우리는 누구나 불안과 괴로움을 겪고 거기에서 벗어나려 애쓴다. 오늘날 교회나 절이, 수많은 심리치료 프로그램과 힐링 상품 등이 우리의 불안을 겨냥한다. 불안에 잠식될 때 우리는 매우 수동적이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절대적인 힘에 의존하고 싶어진다. 다른 한편 방향을 바꾸어 불안을 인간 존재의 근본적 문제로 성찰할 때 우리는 자기 삶의 탐구자로 변신할 수도 있다.

 

“네 마음을 가져와라. 내가 너를 편안하게 해 주겠다.”

 

달마의 대답이었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마음을 가져오라니? 일상에서 표상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접근하는 달마의 말! 그것은 상식적인 관념과 습관화된 인식패턴 밖으로 혜가를 끌어내는 말이었다. 달마의 한마디가 불안을 대하는 혜가의 관점과 태도를 바꾸었다. 혜가는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자신의 마음을 살필 수 있었다. 그러자 그토록 생생했던 불안의 감정도, 불안이 터 잡고 있다고 믿었던 마음의 존재도 생각만큼 확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여 혜가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제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명상을 배우면서 내가 알게 된 것도 다르지 않았다. 들숨 날숨을 관찰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정신 차려 보면 마음은 엉뚱한 곳을 헤매곤 했다. 집중[止]도 관찰[觀]도 쉽지 않았다. 나는 명상을 하면서 비로소 마음이 얼마나 변화무쌍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마음이란 온갖 감정과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흐름일 뿐이었다. 나의 자책과 불안과 두려움도 바람이 불면 일어나고 바람이 멈추면 사라지는 파도처럼 조건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고정된 ‘나’도 없고, ‘나의 불안’도 없었다. 명상은 내면의 마음과 외부의 세계 모두 무상한 변화 속에 있고, 고정된 실체라 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을 지식이 아니라 체감의 영역으로 데려왔다. 직관적으로 안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인가 싶기도 하다. 나의 경우 아직도 명상 방석에 앉아 있는 동안에만 잠시 잠깐 겨우 실감하는 그것을 혜가는 스승 달마와의 문답을 통해 단박에 깨우쳤다. “제 마음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는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 말에 스승 달마는 이렇게 화답했다.

 

“내가 네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셋슈우 토오요오, 혜가단비도(慧可斷臂圖)

 

진정한 자아, 아트만은 없다

달마와 혜가의 대화는 선가의 주요한 화두 중 하나가 되었고 안심법문(安心法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화두는 생각하지도 말고 머리를 굴리지도 말고 의심 덩어리를 직시하면서 단도직입으로 뚫어내야 하는 것이라지만, 나는 안심법문을 붓다가 설한 제법 무아(諸法無我)의 다른 버전이라고 이해한다. 제법무아, 풀어서 말하자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아가 없다는 가르침이다. 불교는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아를 찾는 종교라고 생각해 온 사람들은 붓다가 무아를 설했다는 것을 알면 놀라고 당황한다. 바로 여기에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내가 있는데, 어떻게 무아라고 할 수 있느냐, 무아야말로 궤변이 아닌가 의심한다.

 

붓다의 무아는 어떤 맥락으로부터 나온 것일까? 무아는 ‘자아가 없다’라는 말인 만큼 먼저 부정되는 대상인 자아의 정체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2,500년전 붓다의 시대, 베다 경전 『우파니샤드』는 개아(個我)의 본질을 불생불멸의 아트만(atman)이라고 주장했다. 아트만은 마치 소금물에 녹아 있는 소금처럼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는 생명의 핵심이다. 감각기관이나 의식으로 포착할 수는 없지만 실재하는, 우리 존재의 에센스인 영혼이자 진짜 자아인 바로 그것이었다. 아트만이야말로 변화하는 몸과 마음 너머에 있으면서 변화하는 몸과 마음을 주재하는 우리 자신, 영원하고, 변하지 않고, 나의 자기 동일성을 보증하는 무엇의 이름이었다. 붓다의 무아는 그런 본질이자 실체로서의 아트만, 나, 자아가 없다는 이야기였다.

 

고대 인도인과 우리의 사고방식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을까? 우리 역시 나를 나이게 하는 자아나 주체가 실재하는 것처럼 상정하곤 한다.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아트만의 개념과 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아트만도 주체도 자아도 실체적인 것이다. 실체는 타자에 의존하지 않는다. 실체는 독립적이고 자율적이고 능동적이다, 실체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DNA든, 영혼이든, 타고난 성격이든, 마음이든 뭐든 변치 않는 실체를 찾으려 할 때 우리 역시 아트만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무아이므로 자기변형이 가능하다

이제 붓다의 인간관을 살펴보자. 붓다는 인간을 다섯 가지 요소들의 집합체[오온]라고 보았다. 오온(五蘊)은 물질의 집합[色蘊], 느낌의 집합[受蘊], 표상의 집합[想蘊], 의지의 집합[行蘊], 의식의 집합[識蘊]을 말한다. 인간을 물질과 정신, 혹은 연장과 사유의 결합으로 이해하거나 정신을 감성, 지성, 이성과 같은 인식능력으로 구분해서 이해하는 근대적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붓다의 특별함은 자기 시대의 사람들이나 오늘날 우리가 당연시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는 것에 있다. 붓다는 신체와 정신을 연결하고, 이러저러한 정신의 기능을 통합하는 자아의 존재를 당연시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을 오온의 집합체라고 말한 뒤, 만일 자아라는 것이 있다면 오온에서 아트만을 찾을 수 있는지 물었다.

 

만약 물질이 자아라면 물질은 자신 이외의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자아인 몸은 병들지 않아야 한다. 물질만 그런 것이 아니다. 느낌이 아트만이라면 불만족한 느낌은 있을 수 없다. 표상이 아트만이라면 잘못된 개념은 있을 수 없고, 의지가 아트만이라면 자신을 해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의식이 아트만이라면 의식불가능한 영역이란 있을 수 없다. 오온 각각을 ‘나’라고 할 수 없다면, 오온을 합해 보아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자아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정신의 구상물일 뿐이다.

 

뿐만 아니라 몸도 정신도 무상하게 변한다. 몸이 무상하기 때문에 몸은 변화로 인한 괴로움을 겪는다. 정신도 무상하다. 그래서 정신 역시 변화로 인한 괴로움을 겪는다. 우리는 무상하지 않은 것을 원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그렇게 집착하는 한, 무상한 변화는 괴로움일 수밖에 없다. 붓다는 다시 묻는다.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는 것에 대해 ‘나’라고, ‘나의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은가? 거꾸로 만일 무상하고 변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통찰할 수 있다면, 우리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기를 바라지도 않을 것이고 집착으로 인해 생겨나는 괴로움을 겪지 않게 될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화하는 것을 ‘이것은 나의 것이고 이것은 나이며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하는 것은 옳은가? 세존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쌍윳따니까야』, 22:59, 『무아의 특징경』)

 

오온이 무아라는 주장이 오온의 집합체인 현실의 나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전적으로 오해다. 오히려 자아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 현실의 나를 부정하는 견해가 될 수도 있다. 만일 자아의 존재가 확실하다면 우리의 정체성을 담보하는 것은 바로 그 자아이다. 그럴 경우 현실의 나는 그저 그 자아의 그림자일 뿐이다. 우리 삶에는 진짜 자아라는 정답을 찾아 성공하거나 거짓 자아라는 오답으로 실패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무아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음을 던질 수 있고, 실험할 수 있고, 정답도 오답도, 성공도 실패도 없는 삶을 기꺼이 살아낼 수 있다. 무아는 지금 여기의 내가 변화를 향해 열려있는 존재라는 말과 같다.

 

무아를 살아내기 위하여

무아가 갖는 실천적·윤리적 함의는 무엇일까? 무아가 변화를 향한 열림이라고 논리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로 무아로 사는 것은 다르다. 무아에 대한 지식을 갖는다고 하여 곧바로 우리가 무아적인 삶을 살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일상의 삶에서 무아를 살아낼 수 있을까?

 

 

케마까라는 수행자가 있었다. 이 사람은 무아를 통찰하고 많은 집착을 제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는 “아직 ‘나는 있다’라는 교만, ‘나는 있다’라는 욕망, ‘나는 있다’라는 경향이 미세하게 남아있다고 말한다.(사실 이 정도면 굉장한 경지다!^^) 동료 수행자들과의 대화에서 그는 ‘자아가 있다’는 경향을 없애는 수행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친다. 그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벗들이여, 예를 들어 더러워져 때가 묻은 옷이 있는데, 주인은 그것을 세탁업자에게 맡겼고, 세탁업자는 그것을 소금물이나 잿물이나 쇠똥에 고루 뒤섞어, 맑은 물에 세탁했다고 합시다. 아무리 그 옷이 청정하고 깨끗하더라도 아직 거기에는 남아있는 소금물 냄새나 잿물 냄새나 쇠똥 냄새가 가신 것은 아닙니다. 세탁업자가 그것을 주인에게 주면 주인은 그것을 향기가 밴 상자에 넣어 보관해서, 거기에 배어 있는 소금물 냄새나 잿물 냄새나 쇠똥 냄새를 없애 버립니다.(『쌍윳따니까야』 22:89 『케마까의 경』)

 

비록 오염이 제거되었지만 남아있는 쇠똥냄새는, 무아를 이해한다 해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자만과 갈애의 습기를 비유한다. 좋은 향기가 밴 상자에 세탁물을 보관하여 그 향으로 쇠똥 냄새를 지워내듯이 케마까는 자아의식의 남은 여습을 지워내기 위해 일상에서 무아의 향기를 입히는 수행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뒤이어 케마까가 말하는 수행은 무상과 무아에 대한 관찰 명상에 다름 아니었다. 왜 명상수행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일까. 특별한 능력자가 아닌 이상 지적인 이해만으로는 무아의 지혜를 통찰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십여년 전 명상수행 입문은 아주 멋진 경험이었다. 명상을 통해 내가 만든 잣대를 들이대며 분별과 집착을 강화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살필 수 있었다. 덕분에 남편에 대해서도 아이에 대해서도 자신에 대해서도 한결 편해졌다. 그렇게 무아에 대한 체험적 이해가 조금씩 깊어지자 불교공부에도 제법 힘이 붙는 것 같았다. 그러던 중 몇 년 전에 『니까야』를 읽으며 발심하여 명상의 루틴을 이어 오고 있다.

 

명상을 하다 보면 종종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그것은 내가 호흡하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조직된 몸과 오랜 진화의 역사가 만들어 낸 지구의 대기가 한데 어울려 나의 호흡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생각이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내가 걷는 것이 아니라 오늘 먹은 음식과 대지와 중력이 나를 걷게 한다. 변하지 않는 주체인 ‘나’가 단독자로서 의지적으로 호흡하거나 걷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인연들과 함께 호흡하고 걸으며 변화에 열려 있는 그것이 바로 지금 여기의 ‘나’다. 아직 몸이 사라지는 것 같은 신비체험도 해본 적 없고, 혜가처럼 단박에 존재를 변형하는 회심을 경험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앞으로 나아가는 듯하다가 멈추기도 하고 또 뒤로 물러나기도 하는 지지부진한 나의 명상도 삶에 서서히 무아의 향기를 입히는 수행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댓글 7
  • 2022-09-13 10:27

    멋진 글이네요.

     

    그런데...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요즘 제 화두? 고민? 중의 하나가 호흡이에요.

    제가 자꾸 입으로 숨을 쉬고 (이건 코로나와 마스크 때문일가요?)  날숨이 너무 짧더라구요.

    한마디로 숨을 잘 못 쉬는것 같아요.

    요요님한테 명상-호흡법좀 배워야 할 듯^^

  • 2022-09-13 10:30

    요요 샘.. 잘 읽었습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어요. ^^ 보통의 불교 관련 글들은 어려워서 읽기 힘들었는데…  

  • 2022-09-13 18:23

    제가 일산에 와서 하타요가를 배우고 있어요~
    명상의 즐거움을 조금씩 터득하고있지만 몸이 기분 나쁘게 아파서 매일 아침 게으름을 ㅠ

    근데요~
    어떤 동작을 10분정도 유지하면 죽을 것 처럼 아픈데 천천히 돌아와 몸을 살피면 이게 너무 시원하고 좋아요^^ 무아!! 이런 느낌이예요^^ ㅋㅋ

  • 2022-09-13 23:41

    명상이 무아의 향기를 입히는 수행이라니! 

    삼천포로 빠지더라도 해 볼만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 2022-09-26 21:31

      샘 삼천포로 빠지라고 명상을 하는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 삼천포로 빠지는 걸 지켜 볼 수 있게 되면 딱 고만큼 경지에 이른건 아닐지…

  • 2022-09-16 21:38

    무아라는 너무 어려운 개념이 너무 이해가 잘 되었어요.

    호흡과 걷기가 '진화의 역사' 함께 진동하고 있다는 말씀이 너무 감동적이네요. 

    저도 명상을 통해 자연과 우주와 연결되어 있는 무아를 경험해보고 싶네요.

  • 2022-09-17 11:33

    쌤의 글을 읽고 있자니 왠지 글을 읽는 것 만으로도 천천히 숨쉬며 나무가 아주 많이 우거진 숲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상상이 들어요. 천천히 천천히 걷자..하며 말이죠.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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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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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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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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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요요 2023.07.20 |
조회 449
요요와 불교산책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요요 2023.06.11 |
조회 354
요요와 불교산책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요요 2023.03.20 |
조회 415
요요와 불교산책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쌍윳따니까야』 15장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쌍윳따』)   수많은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2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 먹고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을 끌어안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뺨에 얼굴을 비벼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진 입관식에서도, 어머니의 몸을 담은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도, 한 줌으로 수습된 유골을 땅에 묻을 때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었다는 회한과 자책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의 경』을 떠올렸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수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대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비탄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쌍윳따니까야』 15장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쌍윳따』)   수많은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2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 먹고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을 끌어안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뺨에 얼굴을 비벼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진 입관식에서도, 어머니의 몸을 담은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도, 한 줌으로 수습된 유골을 땅에 묻을 때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었다는 회한과 자책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의 경』을 떠올렸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수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대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비탄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요요 2023.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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