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 불교산책 6회]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요요
2022-05-08 22:55
373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세상이 나와 싸운다. 진리를 설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싸우지 않는다.(『쌍윳따니까야』 22:94)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깊은 산에 있는 사찰은 본당에 이르기까지 여러 개의 문을 거쳐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 문들 중 첫 번째 문이 일주문(一柱門)이다. 기둥 하나로 지붕을 받치고 있기 때문에 일주문이라고 한다. 일주문의 현판에는 보통 산 이름과 절 이름이 쓰여 있다. 그런데 역사가 오랜 절에 가보면 일주문에 앞서 사찰의 존재를 알리는 돌기둥이 있다. 바로 당간지주(幢竿支柱)다. 본래는 두 개의 돌기둥 사이에 높이 솟은 당간이 세워져 있었다. 당간이란 당(幢)이라고도 하고 번(幡)이라고도 하는 깃발을 거는 기둥이다. 당간지주의 용도는 당간을 양옆에서 지지하는 것이다. 절에 행사가 있을 때 그 당간에 깃발을 걸어 행사를 알렸다고 한다.

 

소스 이미지 보기

일주문

 

소스 이미지 보기

당간지주

 

선(禪) 수행자들을 위해 화두 48개를 모아 놓은 『무문관』 29칙에 이 깃발과 관련된 유명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중국 선종의 여섯 번째 조사인 혜능이 주인공이다. 당간지주에 매달린 깃발이 흔들리는 보고 두 스님이 다투고 있었다. 한 스님은 ‘바람이 움직인다’고 했고 다른 스님은 ‘깃발이 움직인다’고 주장했다. 모든 시비가 그렇듯이 두 스님은 꽤 열을 올리며 서로 네가 옳다, 내가 옳다 요란하게 다투었던 모양이다. 그 절에 왔던 혜능이 한 마디 던졌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 소리에 다툼이 멈추었다.

 

움직이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니다

 

아무리 천오백년 전 일이라지만 두 스님의 논쟁을 그저 덤앤더머 두 땡중의 어리석고 무익한 말싸움이라고 볼 수는 없다. 정말 그렇다면 아무리 멋진 말을 했다 한들 혜능의 개입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어디에도 그런 기록은 없지만 내 생각에 아마도 두 사람은 깃발이 흔들리는 것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다 바람과 깃발 중 무엇이 더 근본적인지 따졌던 것 같다. 바람이 움직인다고 한 스님은 바람이 일차적이고 깃발은 부차적이라고 보았다. 바람이 능동이고 깃발은 수동인 셈이다. 다른 스님은 만일 당간에 깃발이 걸려 있지 않았더라면 바람이 불더라도 거기에는 흔들리는 것이 없었을 터이니 이 상황에서는 깃발이 더 근본적이라고 본 것 같다.

 

바람이냐 깃발이냐를 따져 묻는 것은, 물질이 근본적인가 정신이 근본적인가, 유신론인가 무신론인가, 자아는 실체인가 아닌가, 세계는 유한한가 무한한가와 같은 형이상학적 논쟁들만큼 두 스님에게는 공부로 쌓은 도력과 내공을 다투는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두 스님은 자신들이 아는 온갖 지식을 인용하고 근거를 대며 논쟁하고 있지 않았을까. 주위 사람들 역시 그들의 논쟁을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깃발을 걸었던 당간

 

그런 상황에 혜능이 개입한다.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움직이는 것은 그대들의 마음입니다.” 혜능은 자신의 견해를 옹호하기 바쁜 두 스님에게 그 한마디를 던졌다. 『무문관』은 혜능의 개입이 그들의 다툼을 한순간에 그치게 했다고 한다. 과연 그랬을까, 솔직히 말해 나는 그것이 좀 의심스럽다. 자신의 견해를 증명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바보야, 지금 문제는 깃발도 바람도 아니고, 집착 때문에 동요하는 네 마음”이라고 말한들 귀에나 들어오겠는가. 만일 ‘논쟁에서 이기고 지는 것에 연연해서 지금 흔들리고 있는 네 마음을 보라’는 그 한마디 말로 다툼이 그쳤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람은 주인공인 혜능대사가 아니다. 오히려 논쟁의 장을 떠나 성찰의 장으로 즉시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그 이름 없는 스님들이야말로 우리의 귀감이 되어야 할 것이다.

 

견해에 대한 집착은 위험하다

 

나 역시 하루하루 ‘바람이냐, 깃발이냐’와 같은 문제 앞에서 흔들리는 삶을 살고 있다. 일상에서 내 생각과 다른 견해들과 마주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지혜가 자라나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데 더욱 유능해지거나 도통할 만도 한데 희한하게도 그게 그렇지가 않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소통의 능력이 커지는 것이 아니라 고집불통이 되는 사람도 많으니 말이다. 게다가 우리 사회는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도를 넘고 있다. 최근 나는 포털 사이트의 뉴스를 검색하다 댓글의 혐오와 조롱의 수준에 기함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표현에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서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다투고,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남을 이겨 먹으려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기원전 5~6세기, 붓다의 시대는 수많은 자유사상가들의 시대이기도 했다. 붓다 역시 새롭게 등장한 자유사상가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초기 경전인 『범망경』에서 붓다는 당시 그와 어깨를 겨눈 자유사상가들의 견해가 62가지라고 자세히 알려준다. 그렇게 다양한 생각들이 서로 자신이 옳다며 논쟁을 벌이던 시대의 한복판에서 붓다는 무엇을 주장했을까?

 

『니까야』의 곳곳에는 많은 도전자들이 찾아와 ‘당신이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 말을 해 봐라. 어디 한 번 진검승부를 가려 보자’는 식으로 붓다에게 싸움을 거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그때마다 붓다는 자신의 견해를 주장하기보다 자신은 특정 견해에 이끌리지 않는다고 답한다. 그것은 논쟁을 피하는 것과는 다른 입장이었다. 붓다는 모름지기 논쟁이 벌어지면 어떻게든 이겨서 세상의 명예와 칭찬을 얻고자 하는, 도전자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전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보고 말하는 수행자들은 그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보고 말하는 수행자들과 이견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들과 이견을 갖게 되면 논쟁이 있게 되고 논쟁이 있으면 싸움이 있게 되고, 싸움이 있게 되면 해침이 있게 됩니다. 올바른 수행자는 이견, 논쟁, 싸움, 해침을 자신 안에서 올바로 알아차려서 그러한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해서 올바른 수행자는 견해를 버리고 견해를 떠납니다.(『맛지마니까야』 74 『디가나카의 경』)

 

이 말을 수행자는 어떤 견해도 가져서는 안 된다고 말한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살아있는 한 우리가 만나는 대상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느낌과 견해와 의도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견해 역시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살아온 경험과 사회적 배경, 맥락과 조건에 의지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런 것들과 무관하게 생겨난 견해는 없다. 그러니 견해는 조건적이고 변화하는 것이며 고정되고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것이다. 견해도 우리의 몸이나 자아와 마찬가지로 물거품이나 아지랑이처럼 무상한 것이다. 그것을 통찰하지 못하고 자신의 견해에 탐착하고 다른 견해를 가진 상대방에 대해 어리석고 현명하지 못하다고 비난한다면 그는 스스로 만든 견해의 그물-아집과 독단에 사로잡힌 것이다.

 

견해에 대한 집착은 참으로 뛰어넘기 어려우니, 생각을 깊이 하더라도 독단을 고집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이러한 집착 안에서 독단을 취하기도 하고 또한 버리기도 한다.(『숫타니파타』785)

 

자신의 견해로 완결되어 있는 사람은 나만 옳다는 교만으로 미쳐있고 자만이 넘친다. 붓다는 견해에 대한 집착 때문에 일어나는 번뇌-집착, 승부욕, 분노, 원한, 억울함, 복수심, 후회-를 올바르게 알아차리라고 요청한다. 알아차림 없이 분별 망상들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그런 망상들에 붙들려서 산다면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게 된다.

 

나는 세상과 싸우지 않는다

 

붓다는 우리를 괴로움으로 이끄는 것이 갈애와 집착이라고 말한다. 집착에는 네 가지 종류가 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집착인 욕취(欲取), 계율과 금기에 대한 집착인 계금취(戒禁取), 견해에 대한 집착인 견취(見取), 자아에 대한 집착인 아어취(我語取)가 그것이다. 그런데 견해에 대한 집착은 다른 세 가지 집착에 밀접하게 의지하고 있다.

 

소스 이미지 보기

 

내가 어떤 견해를 갖는가는 우리의 경험과 느낌에 강하게 의존한다. 나의 경험과 느낌이야말로 욕망의 장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던가. 내가 집착하는 욕망은 내 견해를 좌우하는 힘을 행사한다. 견해에 대한 시비 판단은 욕망만이 아니라 도덕적 판단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계율과 금기에 대한 집착이란 우리가 은연중에 당연히 지켜야 한다고 내면화한 도덕적인 잣대에 대한 집착이다. 그 또한 견해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또 우리는 자신의 견해나 생각을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다. 내 생각이 곧 나의 정체성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내 생각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으면 마치 그가 나의 존재를 부정이나 한 듯이 쉽게 모욕감을 느끼고 분노한다.

 

네 가지 집착 중 견해에 대한 집착은 나머지 세 가지 즉 욕망에 대한 집착, 도덕적 판단에 대한 집착, 자아에 대한 집착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수행자는 이런 집착들을 알아차리고 그것들을 약화시키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이고, 붓다는 이런 집착들로부터 완전히 해방된 사람이다. 그런 까닭에 붓다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된 수행승은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누구와도 싸우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에서 쓰는 말에 집착하지 않고 세상에서 쓰는 말을 사용합니다.(『맛지마니까야』 74 『디가나카의 경』)

 

붓다는 싸우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은 붓다가 세상으로부터 초월해 있는 존재라거나 세상일에 무관심하거나 홀로 자신의 평화를 즐기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역사상 실존한 고따마 붓다 역시 깨달은 이후 45년의 생을 길 위에서 풍찬노숙하며 대중을 만나는데 헌신했다. 그의 삶은 곧 그가 남긴 말이기도 했다. 그는 세상의 말을 사용하되, 그 말에 집착하지 않았다. 누구와 말하느냐에 따라 붓다의 말은 천변만화한다. 모든 말이 방편이고 각 사람의 근기에 맞는 대기설법이었다.

 

무릇 모든 개념과 견해는 무상하게 변화하는 자연과 욕망과 사유의 흐름을 언어의 틀 안에 고정시키고 가둔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에 갇히지 않고 그것이 설해진 배경과 맥락, 말 너머의 현실까지 폭넓게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 한다. 들리지 않는 말도 들을 수 있는 귀를 열어야 한다. 말로 표현되는 개념과 견해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같은 것이다. 지혜의 눈으로 손가락이 아니라 달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끝내 견해에 대한 집착으로 끝없는 논쟁의 세계에 갇히고 말 것이다.

 

논쟁의 능력이 찬탄의 대상이 되고 스펙이 되는 세상에서 견해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견해를 떠나라는 붓다의 생각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른다. 붓다는 견해의 유혹과 위험을 지적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 그 철저함으로 그는 마침내 자신이 설한 가르침조차 뗏목처럼 여기라고 한다.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듯이 가르침에도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데에 이르렀던 것이다. 우리 역시 말과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쌓아간다. 설령 대부분의 시간을 ‘바람이냐 깃발이냐’를 따지는 논쟁의 세계에서 좌충우돌 헤매더라도 오늘 하루만이라도 견해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의 동요를 잘 알아차리고 지혜롭게 대처하는 사람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오늘은 세상과 싸우지 않는 사람, 부처님께서 오신 날이다.

 

 

 

댓글 7
  • 2022-05-09 08:19

    부처님 오신날, 요요님의 법문이네요.

    이 글은, 자체로 아름다와요.

    다만, 당파성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분별심을 동시에 버리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현실에서는 여전히 잘 모르겠어요. 

    또 자신의 수행의 영역(마음의 동요를 알아차리고 집착과 갈애, 분별심에서 벗어나는 것)과 사회적 공론장에서의 합의(민주주의)의 문제가 또 어떻게 같고 다른지도 요요님과 이야기해보고 싶네요.

     

    그래도 요요님 글 기다렸는데, 고맙습니다.

  • 2022-05-09 08:41

    어제 ,그러니까 5월 8일 밤 티비에 법륜스님이 나오셔서 탐진치를 버린 사람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설법을 듣고 잤는데, 아침에 요요샘의 글을 읽네요^^ 

    탐진치에서 벗어나 세상과 싸우지 않는 사람... 되고 싶어요^^ 어떻게?  그게 문제네요.

     

     

     

  • 2022-05-09 09:03

    하루만이라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루만이라도....

  • 2022-05-09 11:09

    저한테 쓰신 글 같네요 ㅠㅠ

     스스로하고도 세상하고도 싸움을 그만하고 싶습니다..

  • 2022-05-09 16:56

    무문관의 화두 40여개 중 몇 개를 읽어 봤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개가 풀 뜯어 먹는 소리를 왜 했을까? 그러다가 요요샘 말씀처럼 말 이전의 사유, 언어화/개념화 이전의 무언가를 이야기 하는 것 같다는 생각만 품은 채 다음을 기약했습니다. 더 읽어 본들... 더 깊이 내 안으로 들어가 본들, 개똥철학이나 정신 승리 밖에 못했을 나이였으니 어쩌면 잘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넓고 읽을 건 많았으니까요... 얼마전 화두라는 말이 공안이란 말과 같은 의미라는 것도 새로이 알았습니다.  이제 그때와는 다르게 혈기도 결기도 잃어가는 걸 보면...늦되긴 했어도 읽을 만한 연배가 되어 가는걸까요? 잘 읽었습니다.

  • 2022-05-10 12:47

    예리한 동시에 부드럽고

    단호하지만 공격적이지 않은,

    무엇보다 자극적이지 않은 글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견해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낮은 고백의 말에 더불어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저도 오늘 하루 그런 마음 가져 볼래요.

    글 감사합니다.

    -지나가는 사람-

     

  • 2022-05-16 11:22

    그는 세상의 말을 사용하되, 그 말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 세상을 떠나지도 않고 관심을 버리지도 않고 그러면서도 싸우지 않을 수 있는 방법...  아!!!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요요
2023.09.20 | 조회 434
요요와 불교산책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요요
2023.08.17 | 조회 291
요요와 불교산책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요요
2023.07.20 | 조회 463
요요와 불교산책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요요
2023.06.11 | 조회 371
요요와 불교산책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요요
2023.03.20 | 조회 447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