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 불교산책 5회] 나는 멈추었다

요요
2022-03-18 17:16
416

나는 멈추었다

 

나는 언제나 일체의 뭇 삶에 폭력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에 자제함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맛지마니까야』 86, 『앙굴리말라의 경』)

 

앙굴리말라 이야기

초기 경전 『앙굴리말라의 경』에는 연쇄살인마 앙굴리말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앙굴리말라의 어릴 적 이름은 비폭력이라는 뜻의 아힘사카(Ahimsaka)였다. 앙굴리말라라는 이름은 손가락 목걸이라는 뜻이다. 사람을 죽인 후 손가락을 꿰어서 목걸이를 만들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앙굴리말라라고 불렀다.

 

어느 날 아침, 붓다는 탁발에서 돌아와 식사를 하고 자리를 정리한 후 앙굴리말라가 출몰하는 방향으로 길을 나섰다. 도중에 만난 사람들마다 그 길은 위험하다고 붓다를 만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묵묵히 그저 길을 갈 뿐이었다. 멀리서 붓다가 오는 것을 본 앙굴리말라는 칼과 방패, 활과 화살을 갖추고 붓다에게 다가갔다.

 

나는 붓다가 어떤 방법으로 사나운 앙굴리말라를 상대할지 궁금했다. 내가 기대한 시나리오는 앙굴리말라가 붓다를 잡으려 해도 잡지 못하다 결국 지쳐 떨어져 항복하거나, 활을 쏘고 날카로운 무기를 던져도 붓다를 맞히지 못하는 중국 무협영화의 한 장면 같은 것이었다. 초인적인 신통력이 아니고서는 앙굴리말라를 꼼짝 못하게 할 방법이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후 전개를 보면 내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경전에 묘사된 바에 의하면 무장한 장정들 수십 명이 몰려가도 속절없이 앙굴리말라에게 당하던 형국이었다. 그런데 혈혈단신 홀로 앙굴리말라를 향해 걸어오는 수행자 한 사람. 그는 앙굴리말라의 이름만 들어도 두려움에 벌벌 떨던 수많은 사람들과 달리 태연자약했다. 그 수행자에게서 풍겨 나오는 어떤 공포심도 없는 고요와 평화는 앙굴리말라에게는 참으로 낯선 것이었다.

 

 

 

앙굴리말라는 아무리 애를 써도 붓다에게 가까이 갈 수 없었다. ‘묻지마 살인’을 저질러 온 흉적이 뒤에서 쫓아가는데 붓다는 다만 고요히 걸어갈 뿐이었다. 죽고 죽이는, 쫓고 쫓기는 상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 앙굴리말라는 당황했다. 이미 앙굴리말라의 마음속에는 ‘이게 뭐지?’라는 강한 의혹이 생겨나고 있었다. 뒤쫓기를 단념하고 ‘멈추라’고 외치는 앙굴리말라에게 붓다는 마침내 입을 열어 조용히 한 마디를 던졌다.

 

“앙굴리말라여, 나는 멈추었다. 너도 멈추어라.”

 

살인자에서 수행자로 거듭나다

붓다의 답은 사리에 맞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가고 있는 것은 앙굴리말라가 아니라 붓다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하여 앙굴리말라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수행자여, 그대는 가고 있으면서 ‘나는 멈추었다’고 말하고, 멈추어 있는 나에게 ‘너도 멈추어라’고 말한다. 수행자여, 나는 그대에게 그 의미를 묻는다. 어찌하여 그대는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는가?”

 

나는 앙굴리말라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던 낯선 상황에서 그의 내면에서 생겨난 의심과, 그로 인해 촉발된 하심(下心)으로의 전환이 『앙굴리말라의 경』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면 아닐까 생각한다. 앙굴리말라는 사람목숨을 파리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던 살인자에서 붓다에게 질문하고 간절히 답을 구하는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신의 목소리를 듣고, 예수의 제자들을 탄압하던 불신자에서 열렬한 전도자가 된 바울의 회심에 비견할만한 극적인 사건이다. 기독교인이라면 아마 ‘회심’이라고 하고, 대승경전에서는 ‘초발심’이라고 하고, 선승이라면 ‘화두’를 드는 것 같은 최초의 전환이 여기에서 일어났다.

 

이 사건 이후 앙굴리말라는 살인행각을 멈추고 붓다에게 귀의했다. 그는 머리를 깎고 걸식하며 유행하는 수행자가 되었다. 꼬살라의 국왕 빠세나디는 백성들의 거듭되는 청원에 군대를 이끌고 앙굴리말라를 처단하러 가던 길에 앙굴리말라의 회심 소식을 들었다. 국왕은 붓다와 함께 있는 앙굴리말라를 만났을 때 앙굴리말라를 살인자로서가 아니라 수행자로서 공경하고 공양하였다. 그 장면은 앙굴리말라의 존재 전환을 사회적으로 승인받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사회적 인정이라는 상징적 절차가 끝났다 해도 그가 한때 살인자였다는 사실이 지워질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른 살인으로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은 사람들로부터 쏟아지는 비난과 공격을 감수해야 했다. 탁발을 나갈 때마다 흙덩이와 몽둥이가 날아왔고, 다치고 발우가 부서지고 옷이 찢어졌다. 붓다는 인과응보는 피할 수 없다고 설하고 분노를 품지 말고 인내하라고 가르쳤다. 살인자에서 수행승으로 거듭난 앙굴리말라는 다음과 같은 시로서 화답했다.

 

관개하는 사람은 물꼬를 트고, 활 만드는 사람은 화살촉을 바로잡고, 목수는 나무를 바로잡고, 현자는 자신을 다스립니다.(『앙굴리말라의 경』, 『법구경』 145)

 

나는 멈추었다

어떻게 해야 우리는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왜 그대는 멈추었고 나는 멈추지 않았는가, 그 숨은 의미를 말해 달라’는 앙굴리말라의 질문에 대한 붓다의 대답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자.

 

앙굴리말라여, 나는 언제나 일체의 뭇 삶에 폭력을 멈추고 있다. 그러나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에 자제함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멈추었고 그대는 멈추지 않았다.

 

뭇 삶은 중생이다. 중생은 단지 인간만이 아니다. 동물, 식물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 있는 존재를 포함한다. 나에게 내가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존재는 자기 자신을 사랑스럽게 여기고 소중하게 여긴다. 내가 죽음과 폭력을 두려워하는 것만큼 다른 모든 존재들 역시 죽음과 폭력을 두려워한다. 붓다는 무릇 생명 있는 것이라면 어느 것이든 자신을 사랑하고 폭력을 두려워하는 것을 알고 뭇 삶에 대한 폭력을 멈춘 사람이었다. 자신을 다스리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해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신 이외의 다른 존재들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 자이다. 그는 살아있는 생명을 해치는 것을 자제하는 자이다.

 

                                           바르샤바 버스터미널. 피난가방 위에 앉아 있는 우크라이나 아이들(한겨레 신문에서 퍼옴)

 

하늘에서 내려다본 건물 양쪽에 '어린이'라고 쓴 흰색 글씨가 선명히 보입니다. 우크라이나 남부 해안 도시 마리우폴의 한 극장에 공습을 피해 어린이들이 모여 있다는 표식입니다. 하지만 러시아군은 아랑곳하지 않고 이 건물을 폭격했습니다. 어린이와 여성들이 대피해 있던 시립 수영장도 폭격에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이번 폭격으로 최소 수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러시아가 병원과 학교, 주택은 물론, 대피 중인 시민들까지 공격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쉴 새 없이 병원으로 밀려드는 환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어린입니다. 넘쳐나는 시신들을 보관할 곳이 없어 바닥에 방치되는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3월 17일, SBS뉴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6679868&plink=COPYPASTE&c

 

‘그대는 살아있는 생명에 자제함이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우리가 사는 시대가 폭력의 시대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도 피부에 와 닿는 지금, 붓다의 말의 울림은 크다. 전쟁이야말로 국가의 힘에 기댄 조직적이고 집단적인 살인과 파괴행위이다. 그런데 전쟁만이 아니다. 우리를 고통으로 몰아넣는 경제적 불평등도 혐오도 차별도 모두 뭇 삶에 대한 폭력이다. 당장의 편리한 일상을 포기하지 못하여 우리가 손 놓고 있는 기후위기도, 매일매일 내 밥상과 무관하지 않는 공장식 축산도, 수십만년 썩지 않는 방사능 폐기물을 쏟아내고 있는 핵발전도 뭇 삶에 대한 폭력이다. 아마존 우림이 초원이 될 지경에 처하고, 빙하가 녹고, 플라스틱 쓰레기 천지의 세상이 되면서 우리 인간만이 아니라 동물의 삶도 식물의 삶도 위협받고 있다.

 

너도 멈추어라

어쩌면 우리는 모두 앙굴리말라의 후예인지도 모르겠다. 손가락으로 만든 목걸이를 걸지 않았을 뿐, 살아있는 생명에 자제함이 없는 것은 앙굴리말라에 비해 결코 덜하지 않다. 붓다는 우리 앙굴리말라들에게 모든 폭력의 멈춤을, 아힘사(ahimsa)를 설한다(아힘사는 앙굴리말라의 어릴 때 이름이기도 하다). 폭력의 관성을 멈추려면 그 힘보다 더 강한 힘을 우리의 내면에서 끌어내야 한다. 아힘사는 능동적 멈춤이다.

 

                                                      (전쟁 저항자 인터내셔널 로고)

 

폭력을 멈춘다는 것은 모든 불평등과 혐오와 갈라치기와 전쟁에 반대하는 것이며, 원한을 원한으로 분노를 분노로 갚지 않는 것이며, 폭력의 피해자들과 연대하고 비폭력의 삶을 살려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것이다. 폭력을 멈추려면 폭력 앞에 침묵하거나,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는 것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절제와 용기가 필요하다. 탐욕과 분노 대신에 자제와 자비로, 어리석음 대신에 통찰과 지혜로 나아가는 것이 멈추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거대한 폭력 앞에서, 일상의 불평등과 차별 앞에서, 우리는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멈출 수 있을까? 붓다는 말한다. “나는 멈추었다. 너도 멈추어라.” 이 말은 2500년 전의 앙굴리말라만이 아니라 지금 여기의 우리를 향해 던져진 말이다. 앙굴리말라가 멈추었듯이 우리도 멈추자. 멈추지 못하면 제대로 볼 수가 없고, 제대로 보지 못하면 멈출 수 없다. 그러니 멈추는 것과 제대로 보는 것은 둘이 아닌 듯하다. 멈추는 힘[止]과 제대로 보는 힘[觀]을 같이 닦아야 하는 이유이다.

 

 

 

 

 

 

댓글 7
  • 2022-03-19 08:12

    나무아미타불

    • 2022-09-05 18:13

      진짜? 드디어?

  • 2022-03-19 13:23

    노자에도 멈출줄 알아야 위태롭지않다는 말이 몇 번 나옵니다. 무엇으로 앞으로만 내달리기 쉬운 인간의 욕망을 멈추게 할 수 있을까요. 우크라이나에 하루 빨리 평화가 오기를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2-03-19 16:31

    잘 읽었습니다

     

  • 2022-03-21 09:35

    샘^^ 잘 읽었습니다

  • 2022-03-21 11:43

    폭력 앞에서 침묵도 아니고 되갚음도 아닌, "차원이 다른 절제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게 멈춤이다..어렵네요

  • 2022-03-21 12:25

    지금 당장 내가 멈춰야할 것들이 생각났습니다. 작은 습 하나도 멈추기 힘든 게 나의 상태구나… 싶네요… 잘 읽었습니다.

요요와 불교산책
  수행은 고행이 아니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원한 품은 자들 속에 원한 없이, 원한을 품은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원한을 여읜 자로 살아간다. 아, 우리는 아주 안락하게 산다. 우리의 것이라고는 결코 없어도, 광음천 세계의 천신들처럼, 기쁨을 음식으로 삼아 지내리라.(『법구경』 197, 200)     고행을 멈추다   보리수 아래에서 위대한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는 어떻게 수행했을까? 붓다의 수행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가 엄청난 고통스런 수행의 결과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고 피가 마르고 살이 마르는 고행을 해야지만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중생에게 깨달음이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미 말했듯이 이것은 오해다.   간다라 미술품 중에 유명한 고행상이 있다. 피골이 상접하여 갈비뼈가 그대로 드러난 붓다상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고행상을 사랑하고, 인간의 한계 끝까지 정진한 붓다에게 경의를 표한다. 깨닫기 전의 붓다가 한 고행은 그야말로 상상 초월의 것이었다. 하루에 곡식 한 톨로 연명하는 곡기를 끊는 수행의 결과 문제의 고행상처럼 등뼈과 창자가 들러붙었다. 영양실조 상태에서 손으로 문지르기만 해도 사지의 털이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몇 개월이고 잠을 자지 않아 피부와 눈은 그 빛을 잃었고 대소변을 보려고 하면 머리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오랫동안 호흡을 멈추는 수행을 하다 보니 힘센 사람이 머리를 가죽끈으로 조이는 듯한 극심한 두통과 이명에 시달렸다.   일반적으로 붓다의 생애의 주요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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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9.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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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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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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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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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7.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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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부처님의 죽음, 완전한 열반     “아난다여, 그대는 나를 위해 쌀라 쌍수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한 침상을 만들어라, 아난다여, 나는 피곤하니 누워야겠다.”(『디가니까야』 「대반열반경」)   아난다는 두 그루 나무 사이에 머리를 북쪽으로 침상을 마련했다. 부처님은 오른쪽 옆구리를 밑으로 하여 사자의 형상을 취한 채,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른 알아차림을 갖추며 누웠다. 꾸시나라의 말라족을 불러 작별인사를 나누고, 제자들과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끝으로,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상태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부처님의 열반상이 옆으로 누운 모습을 하고 있는 까닭이다.       프롤로그: 부처님 없는 승가에 대한 암시   기원전 6~5세기, 부처님이 활동한 북인도 지역은 중앙집중적 왕권국가들이 벌이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폭력의 시대이기도 했다. 이런 시대에 부처님은 자신을 따르는 수행자들의 조직을 사라져가는 부족 공화국들의 운영원리를 간직한 이름, 상가라고 불렀다. 승가란 상가(saṅgha)를 음차한 말로, 구성원들의 토론과 합의에 의해 운영되는 모임을 의미했다. 승가는 중앙집중적인 복종과 명령, 통제가 아니라 수행자들의 화합과 자율로 운영되는 조직이었다. 부처님은 승가의 조직자이자 지도자였지만, 자신이 승가를 이끈다거나 승가가 자신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처님에게는 승가의 열쇠를 건넬 후계구도도 의발의 전수도 없었다. 부처님의 마지막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이 제자들게 무엇을 남기고 싶어했는지 그 정수를 투명하게 보여준다.   『대반열반경』은 부처님에게 마가다국의 재상이 찾아와서 왕이 밧지족과의 전쟁을 계획하고 있는데 이길 수 있겠는지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평화와...
요요 2023.06.11 |
조회 369
요요와 불교산책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견해의 결박에서 벗어나려면     사변적 견해는 견해의 정글이고 견해의 광야이고 견해의 왜곡이고 견해의 동요이고 견해의 결박입니다. 그것은 고통을 수반하고 파멸을 수반하고 번뇌를 수반하고 고뇌를 수반합니다.(『맛지마니까야』 「불의 비유와 밧차곳따의 경」)   설법 중에 붓다가 꽃 한 송이를 들어 올렸다. 대중들이 모두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오직 마하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띠었다. 꽃을 든 붓다의 뜻이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것이다. 염화시중(拈花示衆),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의 사자성어를 낳은 에피소드다. ‘염화미소(拈花微笑)’라고도 한다. 동아시아 선불교 전통은 이런 방식으로 마음에서 마음으로 법이 전해지는 것을 강조했다. 선불교가 말과 글자에 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불립문자(不立文字)를 강조할 때 근거로 삼는 중요한 에피소드다.   그러나 2,500년 전 붓다의 육성을 느낄 수 있는 『니까야』나 『아함경』에는 이 장면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초기경전에서 만나는 붓다는 선사들처럼 맥락을 짐작하기 힘든 함축적인 말 한마디를 툭 던진다거나 무언가를 암시하는 어떤 행동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리정연한 말로 설득하고, 무릎을 칠 수밖에 없는 적절한 비유로 마음을 움직이고, 의표를 찌르는 반문으로 질문자 스스로 자신의 허점을 시인하게 하는 변재의 달인, 수사학의 달인에 가깝다. 그러나 그렇게 논리와 비유, 반문 등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 없는 자유자재한 변재의 능력을 가진 붓다가 묵묵부답, 침묵으로 응답한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을 십무기(十無記)라 한다.         붓다의 침묵   무기(無記)란 질문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질문이 열 가지였기 때문에 십무기라 한다. 대관절 어떤...
요요 2023.03.20 |
조회 444
요요와 불교산책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쌍윳따니까야』 15장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쌍윳따』)   수많은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2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 먹고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을 끌어안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뺨에 얼굴을 비벼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진 입관식에서도, 어머니의 몸을 담은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도, 한 줌으로 수습된 유골을 땅에 묻을 때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었다는 회한과 자책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의 경』을 떠올렸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수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대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비탄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윤회는 있지만 윤회하는 자는 없다   수행승들이여, 이 윤회는 시작을 알 수 없다. 무명에 덮인 뭇삶들은 갈애에 속박되어 유전하고 윤회하므로 그 최초의 시작을 알 수 없다. 『(쌍윳따니까야』 15장 『시작을 알 수 없는 것의 쌍윳따』)   수많은 어머니의 죽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00일이 다 되어 간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이 생생하다. 마치 잠을 자는 것처럼 편안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모르게 깊은 안도의 한숨이 흘러 나왔다. 2년이 넘도록 어머니의 심신을 갉아 먹고 있었던 그 모든 고통이 끝난 것에 대한 안도였다. 그러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동시에 스스로도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야윈 몸을 끌어안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뺨에 얼굴을 비벼대며 마치 어린아이처럼 목놓아 울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어루만진 입관식에서도, 어머니의 몸을 담은 관이 뜨거운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갈 때도, 한 줌으로 수습된 유골을 땅에 묻을 때도,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것이 터져 나왔다. 장례 절차가 끝나고 이제 더 이상 흘릴 눈물이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의 옷장을 정리하면서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었다는 회한과 자책감에 다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렇게 울면서 『눈물의 경』을 떠올렸다.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은 오랜 세월 동안 (유전하고 윤회하면서) 수없는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대들이 어머니의 죽음을 경험하면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과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때문에, 비탄에 빠지고 울부짖으며 흘린 눈물의 양은 사대양의 물에 비할 바가...
요요 2023.01.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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