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알.모. 1회] 청출어람 구출작전

여울아
2022-03-06 17:44
557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똑같은 책인데 새로울 게 무어냐고 묻는다. 그렇다. 고전은 어디 가서 아는 척 하기도 어렵다. 웬만하면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읽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 글은 내가 아직 덜 소화시켰더라도 그 낯설음이 내게 주었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다.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자의 이야기이다.

 

청출어람 구출작전

 

  1. 순자의 청출어람을 아십니까?

작년 제자백가 세미나에서 『순자』를 읽었다. 토용과 함께 진행하려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전학교가 신청이 저조해서 폐강한 직후였다. 세미나를 열고도 전전긍긍했다. 얼마나 사람이 모일까. 아무래도 동양고전은 내리막길인 모양이라고 푸념을 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신청자가 늘어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세미나를 이어가던 어느 여름 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순자의 청출어람을 발견했다. 어라, 청출어람이 순자의 말이었나? 나는 순자를 다시 읽은 지 8년 만에 “왜 사람들은 청출어람을 스승보다 나은 제자라고 풀이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밀(李謐)이라는 제자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스승 공번(孔磻)을 모시고 글을 배웠다. 어느 날 스승 공번은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른 제자에게 “나는 더 이상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이제부터 네가 나의 스승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뒤바뀐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일컬어, 순자의 권학편 문장(靑取之於藍, 而靑於藍)을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북사(北史)』「이밀」

 

일반적으로 청출어람은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라고 풀이한다. 그 유래를 찾아보니 당나라 때 『북사』의 「이밀」전이라고 한다. 이 일화에는 스승을 뛰어넘은 제자의 이야기도 있지만, 그 제자의 능력을 알아보고 기꺼이 자기 제자에게 배움을 청한 스승의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청출어람을 스승보다 뛰어난 제자의 이야기라고 한마디로 퉁쳐버리면 그 뜻의 절반밖에 모르는 것 아닐까.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순자의 청출어람을 들여다보자.

 

  1. 쪽풀의 자기변형 이야기

군자가 말하기를 ‘학문이란 도중에 그만둘 수 없다. 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얻지만 쪽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되지만 물보다 더 차다’고 한다. (君子曰, 學不可以己, 靑取之於藍, 而靑於藍, 氷水爲之, 而寒於水) 『순자』「권학」

 

먼저 여기서 말하는 “쪽”은 마디풀과의 한해살이풀로 자연에서 파란색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식물로 알려져 있다. 『순자』 첫머리는 왜 느닷없이 이 “쪽”을 이용한 염색으로 시작되는 걸까? 생쪽 염색은 쪽잎만을 따서 곱게 갈아서 천에 물을 들이면 초록색이 더 푸른색으로 바뀌는 원리이다. 초록 물은 저절로 푸른색으로 바뀌지 않는다. 반드시 명주와 같은 천에 물을 들여야 푸른색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단번에 푸른색을 얻을 수도 없다. 초록 물에 푹 담가 충분히 주물러 물들이고, 다시 햇빛에 말리는 산화과정을 수없이 거친 후에야 푸른색을 얻을 수 있다. 이 쪽 염색 과정을 반복할수록 색은 더 짙어진다.

 

 

그러나 생쪽 염색을 모르는 사람에게 초록 풀잎에서 푸른색이 나온다고 말해준들 얼마나 믿을까. 왜냐하면 쪽풀일 때는 푸른색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별다른 매염제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생쪽 염색은 명주에 물을 들여야 푸른색이 더 선명해지고 오래간다. 눈 깜짝할 새 일어난 변화 같지만 지난한 염색과정을 거친 후에야 초록 잎이 푸른색으로 바뀐다. 순자의 청출어람은 이러한 자기변형의 과정이다. 물이 얼음이 되는 것도 자기변형이다. 물과 얼음은 전혀 다른 물질처럼 보이지만 둘 다 같은 H2O이다. 얼음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흘러가는 시냇물이 단단한 얼음으로 바뀌었다고 말해준들 얼마나 믿을까. 무턱대고 춥다고 물이 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설명하기는 더욱 어려울 수밖에. 물은 영하의 날씨라는 조건에 맞아야 얼음으로 변형된다.

 

자기변형은 자기 파괴나 해체를 동반한다. 초록 잎을 짓이겨 즙을 내고, 액체인 물에서 고체로 변해야 얼음이 된다. 이러한 상태 변화 때문에 기존의 모습은 파괴되거나 해체된다. 그래서 이들은 전혀 다른 물질처럼 보이지만, 다만 상태 변화를 겪었을 뿐이다. 여전히 쪽풀의 푸른색이고 물이 얼어서 된 얼음이다. 청출어람은 자신을 갈고 닦아서 더 푸른빛을 내는 쪽풀의 이야기이자 더 단단해진 얼음이 된 물의 이야기이다.

 

순자의 청출어람에서는 경쟁의식을 부추기지 않는다. “누구보다(於) 나은 사람이 되라”가 아니라 “자기에서(於) 출발하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자기변형은 쪽풀에서 푸른색이 나오고, 물에서 얼음이 되는 것이다. 자연 앞에서 초록색보다 푸른색이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마찬가지 이유로 액체보다 고체가 더 낫다고 말하지 않는다. 청출어람은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말이 아니기에 여기에는 어떠한 엘리트 의식도 없다. 오직 자기 파괴와 해체의 과정에서 이룬 자기변형이 있을 뿐이다.

 

  1. 스승은 자기변형의 파트너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 쇠붙이는 숫돌에 닿으면 날카로운 칼이 되는 것이다. 「권학

 

먹줄은 구부러진 나무를 반듯한 목재로 재단하기 위한 도구이다. 숫돌은 뭉툭한 쇠붙이를 날카로운 칼로 갈아낸다. 나무와 쇠붙이의 자기변형을 위해서는 먹줄과 숫돌이 필요하다. 아무리 구부러진 나무라도 먹줄로 재면 반듯한 재목으로 다듬어질 수 있고, 아무리 뭉툭한 칼날이라도 숫돌에 갈면 날을 세울 수 있다. 공자를 계승한 순자는 전국시대 말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특히 예법을 강조한 유학자였다. 그는 독특하게도 예법을 책으로만 배울 수 없다고 대놓고 말한다. 왜냐하면 책은 원칙을 따르게는 할 수 있으나 상세한 설명이 부족하기 때문이란다. 따라서 스승으로부터 그 언행을 본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한다. 제자가 스승을 잘 따르면 스승의 경지에 오를 수 있고, 더 나아가 성인(聖人)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스승은 제자의 자기변형을 돕는 파트너인 셈이다.

 

 

파별천리(跛鼈千里), “절름발이 자라도 천리를 갈 수 있다.「수신」” 이 문장에서 나는 순자의 제자 사랑을 느낀다. 그에게 배움이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라도 결국 누구나 함께 이를 수 있는 상태이다. 가령 절름발이 자라와 천리마가 경주를 한다고 치자. 절름발이 자라일지라도 도중에 그만두지 않는다면 완주할 수 있다. 설혹 천리마일지라도 중간에 길을 잃고 헤매다보면 그 빠름도 아무 소용없다. 스승에게는 잘났든 못났든 다 같은 제자일 뿐이다. 누구는 기다려주고 누구는 고삐를 잡아주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다. 그는 제나라 학술 아카데미(직하학궁)에서 3차례 연속 교장(좨주)을 지냈다. 좨주는 직하학궁에서 가장 존경받는 스승에게 주어지는 역할이었지만 그 어떤 정치적 권한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무려 20여 년간 좨주를 역임하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오늘날 순자의 제자로 알려진 이사와 한비는 스승과는 전혀 다른 정치적 선택을 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당시 대세였던 법가를 따랐다. 한비는 상앙의 변법을 계승하여 <한비자>라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인물이고, 이사는 진나라의 통일을 기획하고 추진하여 승상의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치사적으로 성과를 남긴 제자 둘 다 순자가 강력히 비판했던 법가의 기치를 드높인 셈이다. 이렇듯 이들 제자들의 행적이 스승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나는 이들이 자기변형의 과정에서 스승과는 다른 길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상상해본다. 당시 직하학궁에서는 유가, 도가, 묵가, 법가, 음양가, 종횡가 등의 학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을 초빙하여 각자의 이론을 자유롭게 펼쳤다고 한다. 이들에게 배우고자 수백 수천의 제자들이 모여 들었다. 제자백가의 백가쟁명은 이러한 과정에서 기존의 학설이 계승되기도 하고 부정되기도 하면서 새로운 학설로 세워지고 자신들의 길을 만들어 나아갈 수 있었으리라. 학문의 과정을 쪽 염색과 물과 얼음의 상태 변화로 비유한 순자라면 자기변형의 과정에서 영원한 스승도 없고 영원한 제자도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1. 나의 청출어람 이야기

나를 그르다고 하면서도 상대해주는 자는 내 스승이다. 나를 옳다고 하여 상대해주는 자는 내 벗이다. 「수신」

 

“넌 순자를 해봐. 왠지 맞을 거 같은데.” 매년 에세이를 쓸 무렵이면 문탁샘은 회원들 각자에게 맞을 만한 공부를 추천해주곤 했다. 당시 동양고전팀 학이당은 대학원 수준의 빡센 공부를 표방했고, 『논어』, 『맹자』를 비롯한 유가부터 『한비자』, 『노자』, 『장자』, 『사기』 등 관련 2차 텍스트를 종횡무진으로 읽어냈다. 전공이고 뭐고 늘지 않는 공부를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던 내게는 와 닿지 않는 조언이었다. 게다가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순자라니... 아무래도 내가 순자에 대한 <성악설의 오해>라는 에세이를 썼기 때문인 것 같다. 당시로서는 내가 훗날 순자를 공부할 거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마치 쪽풀을 보고 푸른색을 상상할 수 없듯이 말이다.

 

 

“2년에 걸쳐 『순자』와 『한비자』, 『노자』와 『장자』를 묶어서 공부해보면 어떨까?” 몇 년 전 논어 세미나를 마치고 났을 때 토용이 내게 제안했다. 말끝마다 “예를 부르짖는” 토용과 순자공부라니... ㅎㅎ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그리고 지난 일 년 간 제자백가 세미나에서 토용은 마치 2천 년 전 순자가 살아 돌아온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덕분에 우리 공부의 밀도는 높았다. 올해는 토용과 함께 노자 세미나를 준비 중인데, 벌써 토용은 노자처럼 말하기 시작했다. ㅎㅎ “다음엔 『묵가』도 좋고, 『손자병법』은 어떨까?”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이런 말들이 튀어나왔다. 쪽풀이던 내가 토용이라는 파트너를 만나 조금씩 파래지고 있다. 동양고전 공부가 재미있다. 이렇게 매년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이어간다면 한 번도 공부해 본적 없는 『묵가』와 『손자병법』인들 어떠하리. 더 이상 주자의 해석에 매달리지 않고 제자백가를 두루 섭렵해보고 싶어졌다. 맨 처음 논어를 읽으며 주자(월드)에 빠졌을 땐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나의 자기변형은 이제 시작이다. 동양고전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는 데만도 10년이 걸렸다. 내가 그렇게 지지부진할 때 내 곁에는 항상 문탁의 친구들이 있었다. 그들이 기다려준 덕분에 나는 제자백가 세미나에서 늦된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자기변형은 자기와의 싸움이지만 결코 혼자 싸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쪽풀에는 명주가, 물에는 영하의 날씨가 자기변형의 파트너이다. 쪽풀이 명주를 만나면 더 푸르러지고, 물이 영하의 날씨를 만나면 더 차가워지듯이 말이다. 그동안 내게 스승이자 벗이 되어준 문탁의 친구들이 있었기에 공부를 도중에 그만두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순자의 청출어람은 내가 공부를 그만두지 않았기에 찾아온 선물이 아닐는지. 그래서 순자는 “학문이란 도중에 그만둘 수가 없다.”고 했나보다.

 

댓글 14
  • 2022-03-06 19:13

    짝짝짝! 

    드뎌 여울아샘의 글을 읽게 되네요. 더군다나 같이 공부한 책으로 쓰신 글이라 더 감격스러워요^^

    저야말로 여울아샘이 함께 공부해주지 않았다면 지지부진 놀고 있었을거예요. 절 구원해주셨네요^^

    파별천리의 자세로 청출어람까지 용맹정진 해봅시다! ㅎㅎ

    • 2022-03-06 21:05

  • 2022-03-06 21:35

    매염제를 사용하지 않는 쪽염색이 궁금하신 분은 아래 동영상 주소를 복사해서 따라가 보세요.

     

  • 2022-03-07 07:30

    여울아님의 글을 보게 되어 기쁜 동학 여기 한 명 더!

    근데~~~ 순자와 이사 한비의 스승제자 관계는 다른 데서 한 번 더 써야하쥐 않겠쑤?

    청출어람 안에 다 집어 넣을 수 없는 여울아님만의 썰이 또 있을 것 같은데 ㅋㅋㅋ

    여튼 앞으로도 기대 하겠습니다~~~

    • 2022-03-08 09:05

      네~ 한비자는 법술세 중심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그 때 뭔가 둘 사이에 쓸거리가 있지 않을까...

    • 2022-03-08 09:06

      나도 여기에 한표

      순자 스승에 이사 한비 제자는 그냥 넘어가기는 쫌 그런것 같네요 ㅎㅎ

  • 2022-03-07 09:27

    학문이란 도중에 그만둘 수 없다...순자님 말씀으로 기억하지요^^여울아의 글도 꼬박꼬박 읽을게요~

    • 2022-03-08 09:16

      공자는 중도이폐 금여획 이라고, 중도에 그만두더라도 자신의 한계를 한정짓지 말라 고 했는데, 순자는 한 술 더 뜨는 경향이 있어요^^

  • 2022-03-07 09:30

    와!! 여울아닷!

    재밌고 기대됩니다. 

     

    그런데... 음.... 시비를 걸고 싶은 부분도 있네요. 버뜨 이건 나중에^^ 

    • 2022-03-08 09:18

      쌤~ 허니문은 하루로 충분합니다~ 이제 시비를~

  • 2022-03-07 09:57

    토용과 여울아의 찐친우정 아름답네요

    • 2022-03-08 09:28

      제가 얼마전 파지사유에서 몇년 전 쪽염색했던 천을 가져간 거 기억해요? 그 쪽염색을 보면서 이 글을 썼어요. 쪽색이 이쁘다, 왜 이 천은 파란 색이 묻어날까 등등 

  • 2022-03-07 15:28

    글 재밌고 생각거리도 많네요.

    자기변용의 과정 중 만나는 자기해체가 쉽지 않겠지만 변용하려면, 푸른빛이 되려면 관계맺음을 피할 수 없을듯요.

    우리는 끝없이 관계맺음을 통해 변용되어갈테니 흥미롭네요. 다음 글 기대되요~

    • 2022-03-08 09:29

      잎사귀님 응원 감사해요~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세 번째 순자 이야기     성악설이 아니라 욕망론이다     1. 욕망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갖는다. (人生而有欲) 『순자』「예론」   유학자 최초로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 사람은 순자이다. 그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추우면 따뜻하길 바라고 배고프면 배부르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욕망이야말로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산 사람은 욕망할 수밖에 없지만 죽은 사람은 욕망할 수조차 없다. 그는 욕망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늘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겼다.   전국시대는 전쟁으로 점철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제자백가의 학자들은 저마다의 사상을 펼쳤다. 이 가운데 송견(宋銒)은 “사람의 욕망은 적다(欲寡)”고 주장했다. 그의 과욕(寡欲)론은 사람이 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욕망을 부추기는 세태 때문에 세상이 혼탁해진다는 것이다. 순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욕망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눈으로 좋은 것을 보고, 귀로 좋은 소리를 듣고, 코로 좋은 향내를 맡으며, 입으로 맛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것은 누구나 갖는 욕망이다. 송견은 사람이 이 정도를 욕망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순자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기만이 아닌지를 묻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순자에게 욕망은 생존욕구부터 인정욕망까지...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세 번째 순자 이야기     성악설이 아니라 욕망론이다     1. 욕망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욕망을 갖는다. (人生而有欲) 『순자』「예론」   유학자 최초로 인간의 욕망을 긍정한 사람은 순자이다. 그에게 욕망이란 모든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추우면 따뜻하길 바라고 배고프면 배부르기를 바란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이득이 될 만한 일을 좋아하고 조금이라도 불이익이 될 만한 일은 싫어한다. 이렇듯 사람들이 반응하는 이유는 욕망이야말로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욕망은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산 사람은 욕망할 수밖에 없지만 죽은 사람은 욕망할 수조차 없다. 그는 욕망을 없애려는 시도를 하늘을 부정하는 것으로 여겼다.   전국시대는 전쟁으로 점철된 혼란의 시기였다. 이런 혼란을 타개하기 위해 제자백가의 학자들은 저마다의 사상을 펼쳤다. 이 가운데 송견(宋銒)은 “사람의 욕망은 적다(欲寡)”고 주장했다. 그의 과욕(寡欲)론은 사람이 살기 위해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입장이다. 다만 욕망을 부추기는 세태 때문에 세상이 혼탁해진다는 것이다. 순자와 마찬가지로 그도 욕망 그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다. 눈으로 좋은 것을 보고, 귀로 좋은 소리를 듣고, 코로 좋은 향내를 맡으며, 입으로 맛 좋은 음식을 먹으려는 것은 누구나 갖는 욕망이다. 송견은 사람이 이 정도를 욕망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순자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자기기만이 아닌지를 묻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욕망을 가지고 태어난다. 순자에게 욕망은 생존욕구부터 인정욕망까지...
여울아 2022.1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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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두 번째 순자 이야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법     누구를 위한 의례인가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북새통이었다. 내가 만삭의 몸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막냇동생분의 아들이 해남 어디선가 개척교회 목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한참을 통성기도 하신 후에야 주위는 조용해졌다. 어느 틈에 도착하셨는지 집안의 먼 친척 비구니 스님이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망자의 한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 아빠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할 기세였다. 그렇게 장지로 떠나기 전 할머니의 천도재(薦度齋)가 결정되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죽어서라도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뼛가루는 산에 들에 뿌리고, 장례도 간소하게 치루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뇌졸중으로 몇 번을 쓰러지시고, 또 그때마다 재활에 성공하셨지만 할머니는 늘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나는 부모님께 왜 할머니의 평소 소원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까지 보태어 부모님을 비난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새벽 할머니가 사라진 후 부모님은 생업을 전폐하고 매주 전국각지 보호소를 찾아 헤맸다. 당시 서울 살던 내게는 주말마다 바쁘다고만 하시고 할머니의 부재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리셨다. 그 몇 달 사이 아버지는 이가 몽땅 빠지고 엄마는 앞머리가 듬성듬성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무원의 실수로 할머니를 행불자로 이미 가매장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공무원을 고발하지 않기로 서약서를 쓴 후에야 할머니는 주검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런...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 여.알.모. 두 번째 순자 이야기     죽은 이를 기억하는 방법     누구를 위한 의례인가 할머니의 장례식장은 북새통이었다. 내가 만삭의 몸으로 장례식장에 들어섰을 때 찬송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할머니의 막냇동생분의 아들이 해남 어디선가 개척교회 목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천국에 갈 수 있도록 한참을 통성기도 하신 후에야 주위는 조용해졌다. 어느 틈에 도착하셨는지 집안의 먼 친척 비구니 스님이 엄마의 손을 꼭 붙들고 망자의 한을 달래야 한다고 하셨다. 우리 엄마 아빠는 돌아가신 할머니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다할 기세였다. 그렇게 장지로 떠나기 전 할머니의 천도재(薦度齋)가 결정되었다.     할머니는 생전에 죽어서라도 훨훨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하셨다. 뼛가루는 산에 들에 뿌리고, 장례도 간소하게 치루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뇌졸중으로 몇 번을 쓰러지시고, 또 그때마다 재활에 성공하셨지만 할머니는 늘 당신의 마지막을 준비하셨다. 나는 부모님께 왜 할머니의 평소 소원대로 장례를 치르지 않느냐고 따져 묻고 싶었지만, 나까지 보태어 부모님을 비난할 수 없었다. 몇 달 전 새벽 할머니가 사라진 후 부모님은 생업을 전폐하고 매주 전국각지 보호소를 찾아 헤맸다. 당시 서울 살던 내게는 주말마다 바쁘다고만 하시고 할머니의 부재를 한참이나 지나서야 알리셨다. 그 몇 달 사이 아버지는 이가 몽땅 빠지고 엄마는 앞머리가 듬성듬성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공무원의 실수로 할머니를 행불자로 이미 가매장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그 공무원을 고발하지 않기로 서약서를 쓴 후에야 할머니는 주검으로 우리에게 돌아왔다. 이런...
여울아 2022.05.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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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똑같은 책인데 새로울 게 무어냐고 묻는다. 그렇다. 고전은 어디 가서 아는 척 하기도 어렵다. 웬만하면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읽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 글은 내가 아직 덜 소화시켰더라도 그 낯설음이 내게 주었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다.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자의 이야기이다.   청출어람 구출작전   순자의 청출어람을 아십니까? 작년 제자백가 세미나에서 『순자』를 읽었다. 토용과 함께 진행하려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전학교가 신청이 저조해서 폐강한 직후였다. 세미나를 열고도 전전긍긍했다. 얼마나 사람이 모일까. 아무래도 동양고전은 내리막길인 모양이라고 푸념을 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신청자가 늘어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세미나를 이어가던 어느 여름 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순자의 청출어람을 발견했다. 어라, 청출어람이 순자의 말이었나? 나는 순자를 다시 읽은 지 8년 만에 “왜 사람들은 청출어람을 스승보다 나은 제자라고 풀이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밀(李謐)이라는 제자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스승 공번(孔磻)을 모시고 글을 배웠다. 어느 날 스승 공번은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른 제자에게 “나는 더 이상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이제부터 네가 나의 스승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뒤바뀐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일컬어, 순자의 권학편 문장(靑取之於藍, 而靑於藍)을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고전은 읽을 때마다 새롭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수천 년 동안 똑같은 책인데 새로울 게 무어냐고 묻는다. 그렇다. 고전은 어디 가서 아는 척 하기도 어렵다. 웬만하면 나만큼, 아니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읽는 횟수가 늘어갈수록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몰랐던 이야기'를 하나둘 알아가는 재미가 있다. 이 글은 내가 아직 덜 소화시켰더라도 그 낯설음이 내게 주었던 소소한 즐거움을 나누기 위함이다. <여울아의 알지만 모르는> 오늘은 그 첫 번째, 순자의 이야기이다.   청출어람 구출작전   순자의 청출어람을 아십니까? 작년 제자백가 세미나에서 『순자』를 읽었다. 토용과 함께 진행하려고 야심차게 준비했던 고전학교가 신청이 저조해서 폐강한 직후였다. 세미나를 열고도 전전긍긍했다. 얼마나 사람이 모일까. 아무래도 동양고전은 내리막길인 모양이라고 푸념을 하면서도 한 사람 한 사람 신청자가 늘어날 때마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세미나를 이어가던 어느 여름 날,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순자의 청출어람을 발견했다. 어라, 청출어람이 순자의 말이었나? 나는 순자를 다시 읽은 지 8년 만에 “왜 사람들은 청출어람을 스승보다 나은 제자라고 풀이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위진남북조 시대 이밀(李謐)이라는 제자가 어릴 적부터 자신의 스승 공번(孔磻)을 모시고 글을 배웠다. 어느 날 스승 공번은 자신을 능가하는 수준에 이른 제자에게 “나는 더 이상 너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이제부터 네가 나의 스승이 되어라.”라고 말했다. 당시 사람들은 뒤바뀐 스승과 제자의 관계를 일컬어, 순자의 권학편 문장(靑取之於藍, 而靑於藍)을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울아 2022.03.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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