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하, 스우파 덕질 중! (아젠다 16호 / 20210920)

문탁
2021-09-20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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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앗, 저....저... 저 춤! 저 춤 뭐야? 뭔데 저렇게 멋있어? 왁킹(Waacking)? 아, 팔을 저렇게 흔들어대면서 추는 걸 왁킹이라고 하는구나. 음, 나도 원숭이처럼 팔이 긴데, 나도 저거 한번 배워보면 어떨까? 혹시 알아?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해결될 수도 있잖아. 헐, 저건 비걸(B-girl)? 맞아, 비보이가 있는데 비걸이 왜 없겠어? 와우, 저 언니 뭐지? 모니카? 전형적인 쎈언니 캐릭터네…. 근데 나이도 꽤 들어 보이는데 춤을 겁나 잘 추네. 그리고 저 보이쉬하고 유쾌하고 재치 있는 저 친구는 뭐야? 아이키? 크루(crew)이름이 훅? 큭!! 핑크 가발 쓰고 포미닛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는데,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잘한다. 왜 이렇게 귀엽고 멋진 거야?.... 그렇다, 난 요즘 ‘스우파(스트릿 우먼 파이터)’ 덕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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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보니 바람은 늘, 내 친구 요요 같은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의 나는, 온갖 잡기(雜技)에 빠져 허우적대는 지극히 세속적인 인간이다. 무엇보다 영화! 몇 년 전,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헐리우드>를 보러 강남의 인디플러스까지 가는 나를 보고 요요는 “너도, 참, 병이다”라며 혀를 끌끌 찼다. 그래도 영화는 여전히 나의 최애 장르이다. 뿐만 아니다. 나는 ‘쇼미’를 본방사수하고, ‘슈퍼밴드’를 애정하며, ‘굿걸’을 사랑했다. 심지어 ‘굿걸’ 방영 때는 매주 문화평론가인 양, 페미니스트 래퍼 슬릭과 소녀시대의 효연의 콜라보에 대해, 래퍼 퀸 와사비의 트월킹Twerking1)에 대해, 페미니즘 정치학 운운하며 매주 친구들에게 입에 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다. 

 

  돌이켜보니 어릴 때부터 가무(歌舞)를 좋아했다. 어머니의 전언에 따르면 내가 아주 꼬마였을 때 이웃 블록에 무용학원이 들어서서 구경 갔는데 거기서 내가 “반바지만 입은 채” 춤을 따라 췄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런 나를 무용학원에 보냈다. 세월이 흘러 고등학교 무용시간. 안무숙제를 받은 나는 여성=발레의 통념을 깨고 피노키오 스토리에 맞춘 ‘독창적’인 안무를 짜갔다. 선생과 친구들의 환호 속에서 ‘춤 부심’이 수직 상승했던 순간! 심지어 아줌마가 된 이후에도 집 근처 문화센터에 춤을 추러 간 적이 있다. 스포츠 댄스였나, 댄스 스포츠였나, 어쨌든 거금을 들여 댄스 슈즈까지 장만했었는데 당시 춤 선생이 아줌마들에게 ‘교태’를 요구해서 바로 그만둬버렸다. 그 미련이 수유너머 시절, 후배들과 함께 춤을 추게 했을까? 난 그때 원더걸스의 ‘노바디’를 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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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나이는 더 먹었고 춤을 출 기회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물론 내 친구 중 일부는 여전히 춤을 춘다. 한 애는 자기가 원장인 시민교육단체에서 전통무용코스를 만들고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더니 이곳저곳에서 공연까지 한다. 또 다른 친구는 운동을 빌미 삼아 차차차, 룸바, 자이브 등을 배운다. 가끔 친구 모임에서 상체를 고정하고 하체만 흔드는 신기에 가까운 묘기를 선보이는데 급기야 춤에 관한 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에서 주로 읽고 쓰고 잔소리를 하느라 에너지를 다 쓰고 있는 나는, 춤과 접속하긴 거의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스우파를 만난 것이다. 스트릿에서 갈고 닦은 내공을 가진, 진짜 춤 잘 추는 다채로운 캐릭터의 언니들을.

 

  언젠가 문탁에 강의를 왔던 모 음악평론가는 한국의 아이돌이 남미에서 강세를 띠는 이유 중의 하나로 한국 아이돌 음악이 ‘안전하다’라는 것을 들었다. 남미의 부모들에게 케이팝은 욕을 하지도 않고 침을 뱉지도 않는 음악, 마약과 섹스에 노출되지 않고도 즐기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문화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걸그룹은 ‘피규어’처럼 받아들여진다고도 했다. 케이팝이나 아이돌을 폄하할 생각이 전혀 없지만 (그러기에는 아는 게 거의 없다) 그때 나는 왠지 동의가 되었었다. 그것에 비한다면 스우파의 댄서들은 좀 다른 느낌이다. 이들의 춤에서 느껴지는 것은 강한 신체적 정동성이었다. 그들은 몸을 가지고 있고, 거리(스트릿)에서 몸을 단련했고, 그 단련을 ‘떼’(크루)로 했으며, 이제 고수들이 강호에서 실전으로 무술을 겨루듯이 춤-배틀을 통해 교섭한다. 그것은 대결이자 곧 우정! 홀로 싸우면서 확장해가는 네트워크! 바로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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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리시아 로즈에 의하면 그래피티와 랩, 그리고 브레이크 댄스에는 어떤 형식적인 일관성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모두 ‘흐름’folw, ‘층화’layering, ‘단절’rupture로 구성된다. ‘흐름으로 리듬적인 움직임과 계속성, 회귀성을 만들고, 층화를 통해 이러한 계속성을 반복적으로 강화시키고 윤색하지만, 단절을 통해 때때로 이러한 계속성에 대해 도전하고 위협함으로써 오히려 계속성을 두드러지게 한다’ 이러한 흐름과 단절이야말로 문화영역에서 사회적 탈각과 단절에 대항할 수 있는 긍정적인 행위를 하도록 하는 전환점의 맹아가 된다. 바로 그 형식 속에 심어진 힙합의 저항성이었다.” (이와사보로 코소, 『뉴욕열전』, p462)

 

 

  난 간병인 아주머니 휴무인 화요일에 어머니가 빨리 잠들기를 바라며 어머니 옆에 가만히 누워 티비를 보다가 스우파에 접속했다. 그런데 4주 정도가 지난 지금, 스우파는 장안의 화제라고 한다. 내가 느끼는 걸 모든 사람이 느끼기 때문일 거다. 누군가는 긴 팔다리와 멋진 몸매로 유연한 춤을 춰서 멋지고, 누군가는 팔다리가 짧고 몸매가 오동통한데도 말할 수 없이 강렬한 에너지와 개성을 뿜어내서 멋지다. 감히 나한테 도전을 해? 라는 싸늘한 표정도 멋지고, 오구오구 내 새끼, 하면서 크루멤버를 챙기는 모습도 멋지다. 오로지 몸과 춤으로 자신을 살아내는, 스타일리쉬하고 힙하고 멋진 언니들이 거기엔 그득하다.

 

  살짝 소망이 생겼다. 현민과 조은, 초희. 양생프로젝트 세미나의 우리 조원들. 이 20대 여자 친구들과 한시적인 크루를 만들어 춤 한번 춰? 몇 달이라도 빡세게 노력하면 왁킹의 원 포인트, 혹은 락킹의 원 포인트 정도는 비슷하게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팍팍 솟는데, 줌바 댄스 하는 현민아, 어떠니? 콜? 빨리 답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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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주:

 1) 트월킹 (Twerking)  1980년대 후반 뉴올리언스에서 생겨난 바운스 음악에 맞춰 추는 엉덩이춤의 일종이다. 쪼그리고 앉는 자세로 엉덩이를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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