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 1234] 유쾌한 치매관계를 위한 상상력 한 자밤

인디언
2023-06-02 13:29
386

피터 비엘락스미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Dementia Together)』

 

동은이 집에 와서 하빈이랑 잠시 놀아주었는데 낯선 사람인데도 두 시간 동안 둘이서 잘 놀았다. 신기한 일이다. 하빈이가 궁금하고 그래서 관심이 많은 동은이. 동은이가 저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하는 하빈이. 둘은 ‘연결’되고 그들 사이에 소통이 일어난 것 같다.

 

『치매가 인생의 끝은 아니니까(원제 : Dementia Together)』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이런 ‘연결’이다. 많은 치매인이 가장 고통스러운 요소로 꼽는 것이 ‘단절’인데, 패티 비엘락스미스는 ‘치매는 단절을 야기하지 않는다.’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치매 때문에 관계가 단절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 저자는 치매에 대한 일반적 통념과 대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요컨대 돌봄은 비치매인이 치매인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가 아니다. 돌봄은 상호적이다.

 

치매인과 비치매인의 관계를 ‘치매관계’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관계를 일방적인 ‘수혜’ 또는 ‘서비스’의 측면에서 바라볼 경우, 여느 관계들이 가지고 있는 상호성을 무시하기가 쉽다. 이 상호성에는 각자에게 필요한 것이 동등하게 고려되고 중시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말하자면, 이 ‘관계’는 보살핌을 매개로 각자를 성장시킨다. 따라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방향으로 흐르는 연결이 아니라 ‘상호적 연결’이라 할 수 있다.

 

판단 아니고 상상력

“내 통장 니가 갖고 있지?” “예? 무슨 통장이요?” “내 통장 니가 가져갔잖아.”

엄마는 통장, 미국 삼촌이 보낸 달러우편환, 카드 같은 것을 어딘가에 잘 두고 못 찾을 때마다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나름의 방법을 찾긴 했지만 아직도 이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안 좋다. 자신의 기억문제로 생겨난 모든 문제를 내 책임으로 돌리려고 하고,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눈까지 흘기며 나를 의심한다. 심지어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가져갔으면 가져갔다고 해” 정말 미치고 팔짝 뛸 일이다. 나를 신뢰하지 않는 엄마에게 나는 분개했다. 의심과 불신은 치매에 걸린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고, 그들에게는 그것이 결코 사실무근이 아니라는 걸 알아도 화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뭔가 일이 벌어졌을 때, 가정도 잘못되었고, 사실도 아닌 주장을 계속 고집할 때는 상황을 해결하기가 불가능해 보인다. 막다른 골목에 갇힌 느낌이 든다. 그래도 나름대로 엄마가 왜 그럴까 짐작하면서 엄마에게 좋은 것이라는 확신으로, 나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뭔가를 한다. 일을 해결하는데 나의 일방향적 ‘판단’을 우선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판단은 관계를 망가뜨린다고 한다. ‘상대방 잘못이라고 책임을 돌리거나 자신을 탓하는 상대방을 비난할 때 우리는 서로에 대해 판단하게 되며, 이것이 서로 연결되는 것을 가로막는다.’(96쪽)

 

 

 

‘판단’이 우선이 아니라면, 무엇이 중요한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상상력’이다. 치매를 겪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세계를 본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이 치매에 걸린 사람을 ‘남들과 똑같이’ 다루려고 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남들과 똑같이 다룬다.’는 것은 모든 경우에 그날이 인생 최악의 날인 것처럼 다룬다는 뜻이다.‘(59쪽)

 

‘판단’이 일방적이라면, ‘상상력’은 상호적이다. 어떻게 하면 엄마의 세계 안에서 엄마를 만날 수 있을까? 상상하지 않고서는 그 세계의 입구도 찾을 수 없다. 아,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지? 저자는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라고 한다. 그러면 무언가에 막혀 있는 것을 고집이나 집착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내면에서 나와는 다르게 보고 인식하는 어떤 것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치매인이든 아니든 우리는 인정받고 배려 받고 싶어 한다. 엄마가 나를 불신한다는 판단을 넘어서, 사실은 엄마가 엄마의 문법으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라고 ’과감하게‘ 상상해 보면 어떨까? 게다가 엄마와 나는 성격상 닮은 부분이 많다. 특히 솔직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이 그렇다. 어쩌면 그런 점이 우리의 상상, 상호적 연결을 막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동정심 아닌 공감

‘치매를 겪는 사람은 우리가 어떤 시각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을 건강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고 비참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111쪽)

 

보통 치매에 걸린 사람을 보면 안됐다고 느낀다. 동정심이다. 치매관계에서 동정을 느끼면 치매를 겪는 사람은 불쌍하고 허약하고 어느 정도 모자란 존재의 범주에 넣고, 돌보는 사람은 유능하고 우월한 존재의 범주로 분류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힘의 불균형으로 인해 관계를 해치게 된다. 한쪽은 의존감이 점점 커지고, 다른 쪽은 모든 책임을 자신이 다 짊어진 것처럼 느껴 부담감이 점점 더 커진다. 이 압박감이 돌보는 이로 하여금 미리 판단하게 만든다.

 

반면, 공감은 연대하는 마음이다. 함께 하기 위해 그 자리에 가는 것과 관심을 쏟는 것. 문탁 사람들이 전장연 시위 현장이나 팽목항에 가는 마음. 그 마음은 일방적인 동정심이 아니다. 지하철 집회장소와 팽목항에서 자리를 지키는 것에는 (감정을 기울이는) 비용이 따른다. 그리고 그 비용은 내가 치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방적으로 장애인과 세월호 유족들을 ‘동정’의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 치매환자라고 다를 게 있을까? 엄마와 어떻게 관계 맺을까 하는 것은 이런 ‘태도’를 취하고 난 다음의 문제다. 요컨대 중요한 것은 공감이다. 공감은 우리가 같은 인간임을 인식할 때 진실한 것이 된다. 엄마가 ‘힘없고 인생을 즐길 수 없는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지 말자.

 

마곡동 집 문제로 엄마가 수차례 위층 사람에게 전화를 한 일이 있었다. 내가 연락을 해서 문제없음을 확인했지만 엄마는 가봐야 한다고 고집하셨다. 이건 엄마가 치매환자여서 일어난 일이지만 동시에 집주인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기도 하다. 엄마는 집주인으로 인정받고, 그에 대해 기여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잊고 있었던 것도 그것이었다. 치매만 보이고 치매 뒤의 엄마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공감적 상상

‘인생을 안다는 것은 지금 자신이 어떻게 느끼는지를 익숙하게 아는 것이다.’(120쪽)

 

저자는 타인과 공감하며 소통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최상의 방법으로 ‘비폭력대화’를 가져온다.(비폭력 대화의 소통방법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중립적으로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느낌, 욕구, 부탁의 과정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치매관계에서는 ‘중립적 관찰’ 보다는 ‘공감적 상상’을 시도하라고 한다. 중립적 관찰이 오히려 문제 행동을 유발하는 자극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치매인과의 ‘비폭력 대화’에서 핵심은 앞서 말한 것처럼 ‘공감적 상상력’이다. 그것은 그가 살아가는 ‘실재 세계’를 나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하여 알아가는 것이다. 나아가 그의 경험에 진정한 관심을 표하는 것이다. 저자는 ‘실재 세계’에 대한 ‘공감적 상상’이 원활하게 일어난다면, 이 과정들 자체가 ‘서로의 마음이 가장 깊이 연결되는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상대방에게 이해받는 것을 거부할 사람은 없으니까. 만약 내가 이런 태도로 엄마를 대한다면 엄마는 내가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을 마음으로 감지할 수 있을까? 치매에서는 느낌이 현실에 더 충실하다는데......

 

(1년 전인데 까마득하게 느껴지네요 ㅠ)

 

감정적 위생 결핍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보는 이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을 지키는 일, ‘자기 공감’의 능력을 키우고 유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기 공감 연습은 이를 닦고 자기 몸을 청결히 유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과에 포함하여 일상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활동이다.’(151쪽)

 

스스로 나는 감정적이지 않은 사람이라거나 감정 같은 것은 잘 다루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그저 내 ‘생각’ 안에 나를 가두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자기 내면에 대한 호기심을 품고 가장 내밀한 감각과 감정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편안하지 않은 감정은 단절의 조짐을 보여주는 신호라고 한다. 자기 몸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고, 가슴에 압박감이 느껴지거나 근육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질 수 있단다. 앗! 요즘 가끔 느닷없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귀에서 잉~~하고 이명이 들리곤 했는데. 내가 바로 ‘감정적 위생 결핍’이었던 것일까.

 

감정적 위생 결핍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공감훈련은 자신의 단정적 사고 경향을 확인한 뒤 그 사고 회로를 더는 따르지 않고 주의를 자기 몸으로 돌리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한다. 지금 상태가 어떤가? 지금 느껴지는 것이 차가운가 아니면 뜨거운가? 느낌은 통증과 마찬가지로 정보를 주는데, 그 정보가 가리키는 것은 욕구이다. 느낌은 아이처럼 나의 관심을 갈구하고, 마음이 내게 말을 거는데 그 느낌을 무시하면 통증을 무시하여 병을 키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엄마랑 지내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러니까 엄마의 인지장애가 시작되었을 무렵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적 혼란을 겪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감정이 갑자기 폭발하는데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노인지 슬픔인지 우울인지 죄책감인지 온갖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데 그동안 별로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라 무척 당황했고 스스로에게 실망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런 감정적 격발은 건강한 반응이라고 한다. 내 몸이 자신을 보살펴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니까 나는 ‘엄마, 나도 힘들어요.’라고 말하고 싶다.

 

유쾌한 치매관계

스스로에게 물어보자. 나는 왜 엄마를 돌보고 있는 거지? 그래야 하니까. 왜 그래야 하지? 엄마니까 마음이 쓰여서. 어쨌거나 내가 엄마를 돌보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한 것인데, 그런데 왜 이렇게 힘들어하는 거야? 엄마와의 일방적인 관계를 설정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관계는 늘 상호적인 것인데 엄마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저자가 말한 것처럼 돌봄에 대해 잘못된 통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엄마를 돌본다는 일방적 관계로.

 

엄마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독립적인 엄마는 우리집에 오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왔는데 난 당시의 엄마 마음에 대해서도 세심하게 배려하지 못했다. ‘엄마에게 좋은 거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엄마를 모셔왔으면 그의 갈증을 달래줘야 하는데, 엄마의 갈증을 달래주겠다면서 물은 내가 마시는 격이랄까. 나는 엄마를 수동적인 위치에 두고서 늘 ‘걱정하지 마, 엄마!’라고 말해 왔다. 말하자면 그것은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손발을 물리적으로 묶는 것과 수동의 자리에 가둬두고 ‘명령’하는 것 모두 폭력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엄마와의 관계에서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조금은 알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점점 더 자기 의사를 표현하기가 힘들어지고 특히나 감정이나 느낌을 드러내는 것은 나만큼 못한다. 엄마와 이야기하려면 전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나는 점점 더 힘들다고 느낀다. 엄마 말에 귀기울여주는 것을 느낄 수 있게, 그래서 불안, 걱정이 좀 덜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마음이 너무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질까봐 불안해서 조금은 거리를 두고 싶은 그런 마음도 있다. 상상력을 조금 발휘하고 관습은 치워버리고 새로운 대화의 영역를 탐험하면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도 가슴 뛰는 순간을 경험할 수 있다는데, 난 언제나 그럴 수 있을까? 나도 유쾌한 치매관계를 만들고 싶은데......

 

‘유쾌한 치매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적절한 접촉, 상상력 한 자밤, 그리고 큰 마음이다. 마음이 충분히 크지 않은 것 같아 걱정된다면, 안심해도 된다. 마음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마음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229)

 

그렇다면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상상력 한 자밤이네!

 

 

 

댓글 6
  • 2023-06-02 23:02

    울컥.. 뭉클.. 하며 읽어 내려갔습니다.
    동정심 아닌 공감!
    공감적 상상력으로 새로운 대화로의 탐험 !
    마음 깊이 공감되는 부분입니다.
    저희 아빠도 감정표현을 좀처럼 하지 않으셔서 그 부분이 참 힘들었어요.

    요즘 아빠랑 함께 옛날 사진들을 보고 있어요.
    처음엔 아빠의 망각을 늦추고자 시작한 일인데
    이런 저런 질문을 하다보면 아빠의 속내를 투명하리만큼 진솔하게 술술 얘기하실 때가 있어요.
    제가 알지 못했던 아빠의 진심에 놀라기도 하고
    감동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한답니다.
    아빠의 감정을 읽어내려가면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사랑했던 감정만큼은 오래도록 기억에 사무쳐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늘 마음 한구석에 내가 잘 하고 있는걸까.. 회의감이 들때가 있는데
    '안심해도 된다. 마음은 얼마든지 키울 수 있다. 마음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거면 된다'

    인디언샘 글 읽으며 큰 위안과 힘을 얻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2023-06-03 00:07

    좋군요,샘~ 언제든 누구에게든 다가올 수 있는 일을 먼저 경험하고 계신 선배님들로부터 배우는 건 뭐든지 감사한 일이네요.
    감사합니다^^

  • 2023-06-03 07:01

    치매 부모님과 같이 잘살기, 나이듦연구소에서 서로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는 모임이라도 해볼까요?^^

    • 2023-06-04 09:22

      한달에 한번이라도 정기적으로 만남이 이루어지면
      참 좋겠어요!

  • 2023-06-04 07:50

    유쾌한 치매관계......
    내가 상상력이 부족한가? ? ?

  • 2023-06-07 01:38

    치매관계라는 단어를 배우고 갑니다^^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자동화 사회I』, 『고용은 끝났다, 일이여 오라!』 - 정군 독이면서 약이고, 약이면서 독인 것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참된 수사의 기술’에 관해 논한다. 더위를 피해 일리소스라는 강변에 이른 소크라테스에게 파이드로스는 그곳이 아테네의 오레이튀이아가 보레아스에게 납치된 곳이 아닌지 묻는다1).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뜬금없이 오레이튀이아가 납치될 때, ‘파르마케이아’라는 친구와 함께 있었다고 답한다. ‘파르마케이아’는 누구일까? 전설에 따르면 그것은 ‘여자 마법사’를 일컫는 그리스어 일반명사다. 이 외에 ‘제약술’이라는 뜻도 함께 전해진다. 그리스어에는 비슷한 의미를 가진, ‘파르마-’ 어미를 가진 몇몇 어휘들이 전해지는데, 가령 ‘주술사’를 뜻하는 ‘파르마키우스’, 희생제물을 뜻하는 ‘파르마코스’와 같은 말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크라테스를 죽게 만든 것, 그리고 동시에 소크라테스를 불멸로 만든 것, 바로 약藥이면서 독毒인 것, ‘파르마콘’도 그렇다.     데리다의 제자로, 스승과 함께 쓴 『에코그라피』(1996, 한국어판2006)로도 잘 알려진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는 ‘디지털 기술’을 현대에 등장한 ‘파르마콘’으로 사유한다.   “쓰여진 기록은 이미 소크라테스로 하여금 지식의 모든 외부화에 내포된 프롤레타리아화의 위험을 간파할 수 있도록 해준 바 있다. 그와 마찬가지로 디지털, 아날로그 그리고 기계에 의한 기록은 제3차 파지이다. 여기서 지식은 오직 외부화를 통해서만 구성될 수 있다는 명백한 역설이 나타난다."2)   소크라테스, 후설, 데리다로 이어지는 말/글에 관한 복잡한 사유의 층위들이 한꺼번에 녹아있는 구절이기는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내용 자체는 간단하다. ‘디지털화’는 의식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각적 포착으로서 ‘1차 파지’와 반성적 포착으로서 ‘2차 파지’ 너머의, 의식 외부에서 일어나는 ‘3차 파지’의 궁극적 형태라는 것이다....
정군 2023.11.26 |
조회 333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행복 꼭 필요할까요 『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나는 ‘나는 솔로(solo)’를 즐겨본다. 이번 기수 ‘영수’는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어필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 ‘영수’는 이제껏 그런 느낌을 주었던 다른 출연자들처럼 큰 이변이 없는 한 틀림없이 매력적으로 어필 될 터였다.  ‘정숙’역시 “평소에 긍정적이세요?”라는 ‘광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당연히 좋은 것아니냐?”고 화답했다. 행복을 위해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이런 이야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를 읽고 나면 무심히 들어오던 ‘행복’과 ‘긍정’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릴지 모른다.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의 감정의 위상에 주목하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2007)』와 『사랑은 왜 아픈가』(2011) 등을 통해 감정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호 침투 양상을 날카롭게 분석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 『해피크라시』(2018)에서는 신자유주의 소비 사회 속의 거대한 ‘행복 추구의 물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말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좋음, good)’을 최고선이라 규정하며 지난하게 우리를 설득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happiness)’은 그저 복된 운수, 즐겁고 기쁜 상태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관적인 만족과 안녕감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하여 객관적으로 명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전 세계가 문화적, 도덕적, 인류학적 편견이나 전제 없이 해맑게(?) 사용하는 ‘무해한’ 언어 중의 하나임에...
행복 꼭 필요할까요 『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 · 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나는 ‘나는 솔로(solo)’를 즐겨본다. 이번 기수 ‘영수’는 자기소개에서 자신의 가치관에서 ‘행복’이 얼마나 중요한 개념인지를 어필했다. 꾸준히 운동을 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자기계발을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준 ‘영수’는 이제껏 그런 느낌을 주었던 다른 출연자들처럼 큰 이변이 없는 한 틀림없이 매력적으로 어필 될 터였다.  ‘정숙’역시 “평소에 긍정적이세요?”라는 ‘광수’의 질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당연히 좋은 것아니냐?”고 화답했다. 행복을 위해 긍정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우리 시대의 이런 이야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다. 그러나 에바 일루즈와 에드가르 카바나스의 『해피크라시』를 읽고 나면 무심히 들어오던 ‘행복’과 ‘긍정’이라는 평범한 단어에 갑자기 버퍼링이 걸릴지 모른다. 후기 자본주의 소비사회 특히 미국 사회에서의 감정의 위상에 주목하는 일루즈는 『감정 자본주의(2007)』와 『사랑은 왜 아픈가』(2011) 등을 통해 감정의 영역과 경제 영역의 상호 침투 양상을 날카롭게 분석해온 것으로 유명한데, 이 책 『해피크라시』(2018)에서는 신자유주의 소비 사회 속의 거대한 ‘행복 추구의 물결’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기에 말이다. 실은 ‘행복’이라는 단어는 딱히 특별할 것이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좋음, good)’을 최고선이라 규정하며 지난하게 우리를 설득한 것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행복(happiness)’은 그저 복된 운수, 즐겁고 기쁜 상태로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주관적인 만족과 안녕감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하여 객관적으로 명확히 파악되기 어려운 개념임에도 불구하고, ‘행복’은 전 세계가 문화적, 도덕적, 인류학적 편견이나 전제 없이 해맑게(?) 사용하는 ‘무해한’ 언어 중의 하나임에...
스르륵 2023.11.21 |
조회 30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진화의 결과는 우연일까, 필연일까?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닐 슈빈     닐 슈빈은 2004년, 진화의 잃어버린 고리를 찾아낸 과학자로 온 세계의 신문 1면을 장식한 주인공이다. 그가 발견한 것은 물고기와 양서류의 중간 형태를 보여주는 화석 ‘틱타알릭’이다. 3억 7,500만년 전에 살았던, 지느러미 안에 두 팔을 가진 물고기 ‘틱타알릭’은 수생동물의 육지 전이의 명백한 증거가 되었다. 닐 슈빈은 1990년대부터 화석탐사에 나섰는데, 이 시기는 인간게놈 프로젝트가 시작되는 등 분자생물학이 눈부시게 발전하던 때였다. 화석이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존재를 보여준다면, 생명체의 배아와 유전자 연구는 화석만으로는 알기 힘든 생명의 역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낸다. 닐 슈빈은 화석과 유전자, 두 영역을 자유롭게 오가며 진화의 비밀을 밝히는 진화생물학자이면서 『내 안의 물고기』와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 등의 대중적 과학서를 쓴 이야기꾼이기도 하다.   『자연은 어떻게 발명하는가』는 다윈(1809~1882)의 시대로부터 유전자 편집기술로 실험이 이루어지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생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발견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준다.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증명하기 위해 실험과 연구에 뛰어든 과학자들이 이야기는 마치 소설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그러나 그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진화론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진화가 일어나는가’는 언제나 뜨거운 이슈였다. 이 이야기는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1859)에서 단 한 단어만을 바꾼 『종의 기원에 대하여 On the genesis of species』(1871)로 다윈을 비판한 마이바트(1827~1900)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한다.   다윈은 한 종의 진화는 수많은 중간단계를 거친다고 생각했다. 마이바트는 자신이 찾을 수 있는...
요요 2023.11.20 |
조회 212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 광고를 듣고 웃음이 났다. 광고의 주인공은 ‘현해환경’이라는 기업이었다. 대개 ‘00환경’은 고물상의 고급진 표현인 경우가 많다. 현해환경은 고물상은 아니지만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그 업체가 장자에 나오는 현해(懸解)라는 한자를 쓰는지 안쓰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웃었던 이유는 그 광고를 듣고 과연 ‘현해’라는 뜻과 기업의 일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막힌 배관을 뚫어 물길을 해방시키듯, 장자의 현해(懸解)는 스스로의 마음을 옭아맸던 상황에서 풀려나는 ‘자기해방’의 경지이다. 세 번째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에서 나는 물화를, 자기동일성의 해방이며 현해(懸解)로 가는 지름길을 연 것이라고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읽고쓰기1234에서 나는 현해를 비롯한 장자의 개념을 꼼꼼하게 읽고,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찰해보려 한다.   식은 재 같은 마음과 마른 나무 같은 몸 유소감은 장자철학의 주요 내용이 안명론(安命論)과 소요론(逍遙論)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각각 운명론과 자유론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운명론에서 출발해서 자유론으로 결론지어지는 구조로 장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장자의 철학체계도 여러 사상적 측면이 내부에서 대립하고 또 융합하면서 유기적으로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특히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비판, 그 현실의 초탈과 이상적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자철학 안에는 현실세계와 이상적 세계로서의 정신세계가 늘 대립하고 있다. 장자철학 안에서 끝없이 모순적 국면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립과 모순은 장자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는...
운전을 하고 가다가 라디오 광고를 듣고 웃음이 났다. 광고의 주인공은 ‘현해환경’이라는 기업이었다. 대개 ‘00환경’은 고물상의 고급진 표현인 경우가 많다. 현해환경은 고물상은 아니지만 배관청소를 전문으로 하는 업체였다. 그 업체가 장자에 나오는 현해(懸解)라는 한자를 쓰는지 안쓰는지는 알 바가 아니었다. 내가 웃었던 이유는 그 광고를 듣고 과연 ‘현해’라는 뜻과 기업의 일이 절묘하게 잘 들어맞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꽉 막힌 배관을 뚫어 물길을 해방시키듯, 장자의 현해(懸解)는 스스로의 마음을 옭아맸던 상황에서 풀려나는 ‘자기해방’의 경지이다. 세 번째 ‘읽고쓰기1234’의 마지막에서 나는 물화를, 자기동일성의 해방이며 현해(懸解)로 가는 지름길을 연 것이라고 썼다. 올해의 마지막 읽고쓰기1234에서 나는 현해를 비롯한 장자의 개념을 꼼꼼하게 읽고,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관찰해보려 한다.   식은 재 같은 마음과 마른 나무 같은 몸 유소감은 장자철학의 주요 내용이 안명론(安命論)과 소요론(逍遙論)이라고 말하고, 이것을 각각 운명론과 자유론이라 이름지었다. 그리고 운명론에서 출발해서 자유론으로 결론지어지는 구조로 장자철학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철학자들이 그러하듯이 장자의 철학체계도 여러 사상적 측면이 내부에서 대립하고 또 융합하면서 유기적으로 하나의 사상체계를 이루고 있다고 인정한다. 특히 장자는 현실에 대한 깊은 관찰과 비판, 그 현실의 초탈과 이상적 세계가 극단적으로 대립되어 있다. 그러므로 장자철학 안에는 현실세계와 이상적 세계로서의 정신세계가 늘 대립하고 있다. 장자철학 안에서 끝없이 모순적 국면이 발생하는 것은 바로 이같은 대립에 기인하는 것이다. 이 대립과 모순은 장자가 살았던 당대의 사회적 맥락과 떼어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가 살았던 전국시대 중기는...
봄날 2023.11.20 |
조회 21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자작나무 2023.11.13 |
조회 24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유교,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 - 『문명들의 대화』 뚜웨이밍   뚜웨이밍(杜維明), 어디서 들었더라   학이당에서 한참 공부할 당시 유학의 흐름을 따라 주자를 거쳐 어찌어찌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게 되었다. 그 때 문탁샘은 양명의 전기문으로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이라는 책을 뽑으셨지만 아쉽게도 그 책이 절판인 고로 최재묵 교수님이 쓴 『내 마음이 등불이다』로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종종 왕양명이 등장하는 순간마다 문탁샘은 우리가 뚜웨이밍의 책을 읽었다고 기억하고 계신 듯하다.   “왜, 우리도 읽었잖아. 그 책 왕양명의 전기인데… 그 책 쓴 사람이잖아.” “……?”   그렇게 이름만 익숙한 뚜웨이밍, 아마도 그가 궁금은 한데, 그의 다른 책이 딱히 없어서 이 책, 『문명들의 대화』를 사지 않았나 싶다. 1940년생인 뚜웨이밍은 현대 신유가로 대표되는 지식인이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시(昆明市)에서 태어나 타이완의 뚱하이(東海) 대학을 졸업하고 1968년 하버드에서 동아시아 역사 ·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중국 베이징대학교 고등인문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문명들의 대화』는 2000년 대 초 발행된 책으로 뚜웨이밍의 인터뷰, 강의록, 저널의 기고문 등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지은이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글들은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다소 산만하게 구성된 점도 없지 않다. 또 2000년 대 초에 쓰인 책이라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이제는 철지난 것이 되어버린 면도 좀 있다. 더 최근 자료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학,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2015년)라는 제목의 강연 영상을 볼...
유교,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 - 『문명들의 대화』 뚜웨이밍   뚜웨이밍(杜維明), 어디서 들었더라   학이당에서 한참 공부할 당시 유학의 흐름을 따라 주자를 거쳐 어찌어찌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게 되었다. 그 때 문탁샘은 양명의 전기문으로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이라는 책을 뽑으셨지만 아쉽게도 그 책이 절판인 고로 최재묵 교수님이 쓴 『내 마음이 등불이다』로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종종 왕양명이 등장하는 순간마다 문탁샘은 우리가 뚜웨이밍의 책을 읽었다고 기억하고 계신 듯하다.   “왜, 우리도 읽었잖아. 그 책 왕양명의 전기인데… 그 책 쓴 사람이잖아.” “……?”   그렇게 이름만 익숙한 뚜웨이밍, 아마도 그가 궁금은 한데, 그의 다른 책이 딱히 없어서 이 책, 『문명들의 대화』를 사지 않았나 싶다. 1940년생인 뚜웨이밍은 현대 신유가로 대표되는 지식인이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시(昆明市)에서 태어나 타이완의 뚱하이(東海) 대학을 졸업하고 1968년 하버드에서 동아시아 역사 ·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중국 베이징대학교 고등인문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문명들의 대화』는 2000년 대 초 발행된 책으로 뚜웨이밍의 인터뷰, 강의록, 저널의 기고문 등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지은이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글들은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다소 산만하게 구성된 점도 없지 않다. 또 2000년 대 초에 쓰인 책이라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이제는 철지난 것이 되어버린 면도 좀 있다. 더 최근 자료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학,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2015년)라는 제목의 강연 영상을 볼...
진달래 2023.11.13 |
조회 241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