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9회] 시작은 어려우니 제후(諸侯)를 세워라

봄날
2023-02-27 13:28
387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제후를 세워라

일의 시작에서 생겨나는 어려움은 우선 ‘판단의 어려움’이다. 자연에서 먹구름 속의 번개와 우레는 (우리는 알 수 없지만)정해진 길을 따라나서서 한순간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인간은 눈앞의 뽀얀 안개 속에서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 이럴 때 둔괘의 괘사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로 제후를 세우라는 것이다.

 

“둔은 크게 형통하고 바름이 이로우니, 가는 바를 쓰지 말고 제후를 세움이 이롭다

(屯 元亨 利貞 勿用有攸往 利建侯)”

 

어려운 괘라면서 둔괘의 괘사 앞부분은 오히려 ‘크게 형통하다’고 한다. 혼돈의 시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지만 기운만큼은 기어이 어떤 일이 벌어질 정도로 센 상태를 표현하는 구절이다. 그런데 시작 단계에서는 센 기운이 오히려 일을 그르치기 쉽다. 그래서 괘사의 뒷부분은 ‘가는 바를 쓰지 말라’고 하고 ‘제후를 세우는 것이 이롭다’고 한다. ‘가는 바를 쓰지 말라’는 것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다. 그럼 ‘제후를 세운다’는 것은? 제후는 고난을 헤쳐 나가게 해주는 존재이다. 이때의 제후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어떤 물건일 수도 있다. 망망대해에서 새롭게 뱃길을 잡을 때는 한줄기 바람이나 갈매기의 날갯짓이 제후가 되기도 한다. 인디언 사회에서 사냥을 떠나는 전사가 떼지어 추는 춤도 제후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그것이 혼란스런 시작의 단계에서 첫걸음을 떼는데 의지처가 될만한 무엇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것에 의지해서 첫걸음을 떼고 두 번째 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실행에 신중하라

두 번째, 모든 시작은 판단의 어려움 못지않게 실행의 어려움을 동반한다. 둔괘의 효사 중 육이, 육사, 상육에 잇달아 등장하는 ‘승마반여(乘馬班如)’라는 구절이 그것을 대변한다. ‘말에 올랐다 다시 내린다’는 뜻의 승마반여는 자의든 타의든 원래 정했던 것을 못하게 되는 상황을 가리킨다. 육이의 효사는 “어려워하고 머뭇거리며 말을 탔다가 말에서 내려오니, 도적이 아니면 혼인할 자이다. 여자가 정도를 지켜 생육하지 않다가 십년이 되어서야 생육한다.(屯如邅如 乘馬班如 匪寇 婚媾 女子貞 不字 十年 乃字)”이다. 이때의 육이는 자신을 도와줄 구오가 실제로 득이 될지, 독이 될지 모르므로 갈팡질팡한다. 그러니 육이는 판단이 설 때까지 함부로 움직이지 않고 긴 시간 버텨야 한다.

 

육사의 승마반여는 갈길을 정하고 결단하여 말에서 내린 상황이니, 말에서 내려 원하는 바(구혼자)를 얻는다. 반면 상육의 승마반여는 그에게 주어진 여건이 도저히 말을 타고 나아갈 수 없게 억제된 모습이다. 이처럼 같은 승마반여라고 해도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 따라, 혹은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결과는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승마반여’ 자체가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효사의 승마반여는 이미 주어진 값이다. 그러니까 “탔다가 내리느니 아예 안타면 되지”라던가 “내친김에 말을 타고 가지”라던가 하는 의지를 반영할 수 없다. 그러니 던져진 상황에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훨씬 더 잘 살펴서 ‘시작’의 고난을 조금씩 풀어나가 보라는 것이 ‘승마반여’가 던지는 메시지일 것이다.

 

십년은 기다려야 어려움이 풀린다

시작의 ‘고난 3종세트’의 마지막은 ‘기다림의 어려움’이다. 앞서 인용했던 육이의 효사에 “여자가 정도를 지켜 생육하지 않다가 십년이 되어서야 생육한다.(女子貞 不字 十年 乃字)”는 구절이 있다. 정(貞)은 ‘바르다’와 ‘오래 한다’는 이중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10년은 ‘기약 없는 기다림’의 메타포이다. 기약이 없다는 것은 일정한 시간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정이천은 이 10을 “수(數)의 끝”, 다시 말해서 헤아림의 끝이라고 말한다. 즉 10이라는 숫자는 정량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저 어떤 일이 일어나기까지 충분히 무르익을 시간을 가리킨다. 고난의 상징을 결혼한 여자에게 10년 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것으로 설정한 것은, 주역이 생겨난 당시의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옛날에는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는 것이 당연한데, 여자의 불임이 오래 가니 그 어려움이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임신은 물론이고 결혼도 당연한 것이 아닌 현대에, 이것을 곧이곧대로 여자의 임신에 한정해서 생각하면 넌센스이다. 요컨대 10년은 아보카도의 씨가 벌어져 싹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고,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 병증과 싸워 이겨내기까지의 시간이다. 이 시간을 견뎌내는 것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이르지 못하는 한 순간을 위해 그 힘을 써야 한다고 둔괘는 말한다.

 

시작은 모든 생명의 필수조건이다

둔괘 전체는 알의 상태와 같다. 알은 언젠가는 깨어져 그 무엇이 될 것이지만, 깨져 나오기 전에는 그 알이 뭐가 될지 모르는 상태이며, 한편으로 깨져 나올 수밖에 없는 시작의 상태를 안고 있다. 뚜렷한 사물로 드러나는 순간과, 그 무엇으로도 될 수 있는 잠재성을 한꺼번에 안고 있는 알의 상태. 세상은 늘 이런 변화의 조짐을 안고 있으며, (깨지는)변화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날마다 변화한다. 나라는 개체도 어제의 나와는 다른 존재이며, 늘 새로운 개체로의 분화가 계속되는 존재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날마다 새로운 시작에 있는 셈이다. 갓난 아기, 첫 입학, 신입사원, 신혼부부, 새내기 엄마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 아니 모든 생명은 늘 시작 앞에 놓인다. 시작은 선택이 아니다. 시작이 어렵다고 ‘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싫어, 그냥 이대로 변하지 않고 있을거야’라고 할 수 없다. 시작하지 않는다면,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싹을 내지 못하는 아보카도 씨앗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보면 시작은 생명의 필수조건이다.

 

나에게 제후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생명을 유지하는 한 우리는 매번 시작의 어려움에 맞닥뜨리는 셈이다. 이럴 때 앞서 말한 것처럼 제후를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만약 제후를 세우는 일이 쉽다면 둔괘를 난괘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에게 의지가 될만 하다고 해서 아무거나 제후로 삼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제후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둔괘의 말들은 모두 제후를 세우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제후를 세우기 위해, 제후를 발견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상전에 그 숙제가 주어져 있다.

 

“상전에서 말했다. 구름과 우레가 둔괘이니, 군자가 이것을 보고 천하의 일을 다스려 어려움을 구제한다(象曰 雲雷屯 君子以 經綸)”

 

평범한 이들이 먹구름만을 보고 답답해할 때 군자는 그 속에 우레가 숨어있고, 막힘이 뚫리는 때가 올 것임을 알고 준비한다는 것이다. 경(經)은 씨실, 즉 천을 짤 때 기준이 되는 세로의 실이고, 륜(綸)은 낚싯줄 혹은 현악기의 줄이다. 군자는 씨실에 날실을 넣어 옷감을 짜고, 낚시를 하거나 연주를 한다는 것이니, 막막한 마음으로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밝아질 날을 대비해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친구의 말처럼 싹을 틔운 아보카도는 쑥쑥 커서 이제 내 팔길이만큼 자랐고, 손바닥만 한 잎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다. 딱딱한 씨앗을 뚫는 고난을 견디지 못했다면 시작할 수 없는 새로운 삶이다. 비록 아보카도 이파리의 맛에 눈을 뜬 고양이의 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고 해도, 아보카도는 아보카도대로 늘 새로운 삶을 준비할 것이다.

 

올해는 나에게 새로운 갑자(甲子)가 시작되는 해이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두달이 훌쩍 지나버렸다. 곧 봄이 시작될 것이고, 나의 새로운 공부도 시작될 것이다. 공부의 시작 앞에서 나는 공부의 어려움을 어떻게 뚫을 것인가. 나와 함께 기꺼이 고난을 함께 할 제후는 무엇일까? “공부에 적합한 루틴 만들기”가 그것일 것이다.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는 늘 번다한 일에 치여 ‘남는 시간에 책을 펼치곤 하는’ 태도를 버리기가 어려웠다. 시작단계에서 유난히 미적거리는  습관도 문제다. 이래가지고는 공부의 어려움을 넘지 못한다. 아니 공부를 시작조차 할 수도 없을 것이다. 하여 나는 ‘공부에 적합한  매일매일의 루틴’을 나의 제후로 삼고, 한해의 공부의 시작을 밀어부치려 한다.  그래야 첫걸음을 뗄 수 있을 것 같다.

댓글 8
  • 2023-02-27 14:04

    밀어줄께요~~ ㅎㅎ

    • 2023-03-03 14:51

      감사감사!!ㅎㅎ

  • 2023-03-01 08:34

    시작단계에서 유난히 미적거리는거였구나, 봄날의 여유가...전 좋던대요~ 그게 봄날의 제후일수도 있지않을까요?

    • 2023-03-03 14:53

      그렇게도 보이나요?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 2023-03-02 17:11

    예전에 주역비누에서 '수뢰둔'쾌를 뽑았어요. 뭔지 몰라서 물어봤더니, 어려운 때라는 의미라 하더군요. 어쩜 이리 잘 맞을까 싶었는데, 어느덧 그때로부터 몇 년이 지났네요. 수뢰둔 힘든 괘이지만 나쁜 괘는 아니군요^^

    • 2023-03-03 14:54

      세상에 나쁜 괘는 없다, 조금 힘든 괘가 있을지는 몰라도...입니다. 겸목샘, 시간이 지나면서 둔의 어려움은 이미 풀리고 있겠지요?

  • 2023-03-03 07:39

    제후를 세우라는 말이 좀 궁금했는데 이런 의미였군요. 참고로 저도 아보카도 알깨우기를 좋아하는 1인으로서 울집 아보카도 이름은 이제 수뢰둔의 두니로 해알듯ᆢ

    • 2023-03-03 14:56

      ㅋㅎㅎㅎㅎ 두니....예쁜 이름을 얻으셨군요.

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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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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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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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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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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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07.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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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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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봄날 2023.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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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이제는 전세계적인 놀이가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이 문장을 말하고 뒤돌아보는 순간, 사람들은 전력질주 하다가 즉시 멈춰야 한다. 이때 앞으로 나가는 관성을 막지 못하고 움직이면 지게 된다. 움직임과 멈춤 사이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이 놀이의 관건이다. 난괘 중의 난괘로 꼽히는 수산건(水山蹇)괘의 상황이 꼭 이렇다. 마구 앞으로 달려 나가도 안되지만, 그저 멈춰 있기만 해도 패한다. 만약 사업을 하거나, 이성을 만나거나, 어떤 큰 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점을 쳐서 수산건괘를 얻었다면, 당장 그 일을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그만큼 수산건괘는 어떤 일을 강행하는 것이 어려운 때임을 강조한다. 이 어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수산건(水山蹇), 앞으로 가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라 주역에서 ‘물’은 험함, 고난의 상징이다. 그래서 주역의 괘 중에 ‘안좋은 괘’ ‘어려운 괘’라고 불리는 괘에는 항상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들어있다. 수산건괘도 상괘가 감괘이다. 위는 물, 아래는 산이 놓여 있는 형상의 수산건괘는 높은 산을 간신히 넘었는데, 다시 물을 만나는 고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앞은 험한 강이고, 뒤는 내가 넘어온 산이 있으니,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   괘의 순서로 볼 때 수산건(水山蹇)괘는 화택규(火澤睽)괘의 다음에 나온다. 주역 64괘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서 해석하는 서괘전은 “규(睽)는 어긋남이니 어긋나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수산건괘(蹇卦)로 받았다”고 말한다. 규는 ‘사팔눈’처럼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반목하는 형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을 통해 이제는 전세계적인 놀이가 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술래가 이 문장을 말하고 뒤돌아보는 순간, 사람들은 전력질주 하다가 즉시 멈춰야 한다. 이때 앞으로 나가는 관성을 막지 못하고 움직이면 지게 된다. 움직임과 멈춤 사이를 절묘하게 조절하는 능력이 이 놀이의 관건이다. 난괘 중의 난괘로 꼽히는 수산건(水山蹇)괘의 상황이 꼭 이렇다. 마구 앞으로 달려 나가도 안되지만, 그저 멈춰 있기만 해도 패한다. 만약 사업을 하거나, 이성을 만나거나, 어떤 큰 일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시점에 점을 쳐서 수산건괘를 얻었다면, 당장 그 일을 멈추고 돌아봐야 한다. 그만큼 수산건괘는 어떤 일을 강행하는 것이 어려운 때임을 강조한다. 이 어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가. 수산건(水山蹇), 앞으로 가지도 말고, 절망하지도 말라 주역에서 ‘물’은 험함, 고난의 상징이다. 그래서 주역의 괘 중에 ‘안좋은 괘’ ‘어려운 괘’라고 불리는 괘에는 항상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들어있다. 수산건괘도 상괘가 감괘이다. 위는 물, 아래는 산이 놓여 있는 형상의 수산건괘는 높은 산을 간신히 넘었는데, 다시 물을 만나는 고난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앞은 험한 강이고, 뒤는 내가 넘어온 산이 있으니,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진퇴양난.   괘의 순서로 볼 때 수산건(水山蹇)괘는 화택규(火澤睽)괘의 다음에 나온다. 주역 64괘를 하나의 스토리로 엮어서 해석하는 서괘전은 “규(睽)는 어긋남이니 어긋나면 반드시 어려움이 있다. 이 때문에 수산건괘(蹇卦)로 받았다”고 말한다. 규는 ‘사팔눈’처럼 서로 눈을 맞추지 못하고 반목하는 형상으로, 소통의 어려움을 보여주는...
봄날 2022.1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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