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5회] 호랑이 꼬리를 밟다, 리호미

봄날
2022-04-03 21:49
568

 

대학 졸업반때 처음으로 이력서를 썼던 기억이 난다. ‘00고 졸업’ ‘00대 졸업예정’이 내 이력의 전부였다. 이후 내 이력서에는 다양한 경험들이 한 줄씩 추가됐다. 줄과 줄 사이, 수많은 관계 속에서 부대끼며 울고 웃던 내력을 이력서에 표현할 길은 없지만, 어쨌든 이력서를 쓰는 것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효과는 있다. 이력서의 끝에는 ‘위의 내용은 사실과 틀림없음을 증명하며, 사실과 다를 경우 그에 따른 피해를 감수한다’는 서약까지 붙어있다. 주역 천택리(天澤履)괘의 이(履)라는 글자는, 바로 자신의 살아온 내력을 거짓없이 써야 하는 이력서의 이(履)자이다. 이 글자는 ‘밟는다’ ‘신발’의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천택리괘는 나 또는 누군가가 만들어낸 ‘길’에 대한 이야기이다.

 

천택리괘는 위는 하늘, 아래는 연못의 형상을 하고 있다. 또 상괘는 굳세고 하괘는 기뻐함이라는 각각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상체가 가진 곧은 품새를 하체가 기뻐하며 따르는 것이 천택리괘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 ‘하늘의 올곧음을 기뻐하면서 기꺼이 따르는 모습’을 주역은 리호미(履虎尾),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이미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때 상체인 건괘는 호랑이를, 하체인 택괘는 사람을 상징한다. 사람이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뜻인데,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내가 천택리괘를 흥미롭게 느낀 건, 괘사와 효사에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똑같은 구절이 세 번이나 등장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구절은 세 번 모두 각각 다르게 해석되고 각각 다른 강도로 다가온다는 것이었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은 예()의 실천이다

천택리괘의 괘사는 ‘리호미(履虎尾) 부질인(不咥人) 형(亨)’이다. “호랑이 꼬리를 밟는데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고 풀이한다. 이때의 리호미(履虎尾)는 실제로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니까 ‘호랑이’와 ‘꼬리’, 그리고 ‘밟는다’의 의미를 각각 읽어내야 한다. 우선 호랑이는 앞에서 말한 대로 하늘, 하늘의 법칙이다. 꼬리가 뜻하는 것은 뒤, 즉 앞서지 않고 따라가는 것, 앞선 이의 뒤통수를 보는 것이다. ‘밟는다’가 의미하는 것은 실천이다. 상전에서는 이 실천을 예(禮)라고 설명한다. 예란 어떤 것일까? “하늘이 위에 있고 못이 아래에 있는 것이 리괘(履卦)이니, 군자가 그것을 본받아 위아래를 분별하고, 백성의 뜻을 안정시키는 것”이 바로 예이다.

 

위아래를 분별한다고 하면 즉각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작동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예(禮)는 청년의 희망을 찍어누르는 ‘수저드립’같은 것이 아니다. 예란 천도가 드러난 대로 치밀하게 사는 것이다. 그리고 예를 다한다는 것은 사람마다 (자신의 지위나 상황과 상관없이)어떤 일에 대한 ‘A to Z’의 과정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같은 실천에는 ‘기꺼이 따라함’이라는 단서도 붙는다. 그러니까 이때의 예는 법이나 제도로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내재한 자율성을 기반으로 한 실천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 실천의 방향은 ‘하늘이 제시하는 길’ 즉, 천도(天道)이다. 그런데 하늘의 길은 대로처럼 우리 눈앞에 분명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는 것이 천도를 따르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천택리괘는 그 어려운 천도를 따르는 핵심이 실천이라고 말한다. 실천없이 천도는 실현되지 않는다. 비록 어떻게 하는 것이 천도를 따르는 것인지 분명하지 않지만,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끊임없이 책임지며 돌아보는 일에 내가 직접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괘사는 일()이고 효사는 때()이다

그런데 이런 ‘천도를 따르는 일’을 왜 ‘호랑이 꼬리를 밟는다’는 위험천만한 이미지로 표현했을까? 혹시 정말로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처럼 극적인 순간, 혹은 장면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 아닐까? 이 리호미는 주역의 텍스트가 가지는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괘사의 리호미가 사회적인 약속을 실천하는 일(事) 전체를 가리킨다면, 효사의 리호미는 그 실천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위반’, 즉 일상에서 돌발적으로 발생하는 실수, 어긋남의 순간(時)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때의 리호미는 길(吉)하고, 어떤 때의 리호미는 흉(凶)하다. 길한 것은 그 실수를 잘 다루어 일상을 회복한 것이고, 흉한 것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결국 리호미는 잠시도 쉬지 않는 인간의 행위과정, 즉 일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변용에 대한 스토리이다. 천택리괘의 효사에서 다루는 리호미를 자세히 살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누구나 직면할 수 있는 위반의 순간에 나는 과연 어떻게 해야 길할 수 있을까.

 

호랑이꼬리를 밟으니 흉하다

천택리괘에 등장하는 세 번의 리호미 중에, 두 번째 리호미는 육삼효에 등장한다. 육삼의 효사는 “애꾸눈이 남들처럼 보고, 절름발이가 남들처럼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호랑이 꼬리를 밟아서 사람을 무니 흉하고, 무인이 대군이 된다(육삼 묘능시 파능리 리호미 질인 흉 무인 위우대군, 六三 眇能視 跛能履 履虎尾 咥人 凶 武人 爲于大君).”이다. 이때 묘(眇)는 애꾸눈, 파(跛)는 절름발이이다. 삼효는 하괘의 맨 윗자리이고 원래 양이 있어야 할 자리인데 천택리괘에서는 음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을 바로 애꾸눈과 절름발이로 표현한 것이다. 애꾸눈과 절름발이로 표현한 것은 자리에 맞지 않는 사람이나 시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요즘 이런 식의 표현은 곧장 장애인 비하로 취급되어 지탄을 받는다. 그러나 주역은 애꾸눈과 절름발이를 ‘정상에 미치지 못하는 모자람’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신체적인 결함이 장애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지나친 ‘오만’이나 ‘자기과시’가 장애라는 것이다. 오만과 자기과시의 결과, 자기자신만 위기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주위 사람들까지 어렵게 만든다. 주역이 리호미로서 경계하는 것은 현재의 위치나 상황을 자세히 돌아보지 않을 때 생길 수 있는 이같은 위기의 가능성이다.

 

호랑이꼬리를 밟았는데도 길하다

구사에 마지막 리호미가 나온다. 구사의 효사는 “호랑이 꼬리를 밟으니, 두려워하고 조심하면 마침내 길할 것이다(구사 리호미 색색 종길 九四 履虎尾 愬愬 終吉).”라고 해석한다. 육삼과 마찬가지로 호랑이 꼬리를 밟았는데 이번에는 길하다고 한다. 색색(愬愬)(혹은 ‘삭삭’으로도 읽는다)은 ‘두려워하다’는 뜻의 색(愬)이라는 글자를 거듭해서 그 모습을 강조한다. 그러니까 호랑이 꼬리를 밟았는데도 극도로 조심하면 길하다는 것이다. 극도로 조심하는 것은 위태로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는 뜻일까. 그렇지 않다. 구사는 상체의 첫 자리이자, 건괘의 아랫자리이다. 하체에서 상체로 국면이 바뀌었다는 뜻이니, 실천의 방법도 달라진다. 원래 음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양이 자리잡았으니까 그 기운이 이미 강하다. 그러므로 여기서 ‘색색’은 강한 힘을 컨트롤하라는 주문이다. 즉 속도를 내는 힘이 아니라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조절하는 힘이 중요하다. 구사는 다행히 그런 능력이 있으니(속도나 힘을 조절함으로써) 길한 결과를 얻게 된다.

 

리호미에는 고정불변의 형식이 없다

 

리호미는 예의 실천이고, 예는 ‘천도(天道)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 예를 따르며 사회를 이루고 살아간다. 물론 이것은 시대적으로 각기 다른 형식으로 드러난다. 귀하고 천한 신분이 나뉘어 있던 조상들의 사회에서 예는 바로 그 신분에 맞는 규범을 따르는 것이 곧 천도였다. 신분질서가 사라진 오늘날에는 예를 찾는 것도, 그 예를 실천하는 것도 어렵다. 고정불변한 법칙으로 주어지면 차라리 편하게 따르면 될텐데, 알다시피 일상에는 늘 변수가 따른다. 그래서 인간의 실천은 호랑이 꼬리를 밟는 것처럼 진땀 빼게 만드는 긴장의 연속이다. 길흉은 그 변수의 등장에 따라 변용되는 인간실천의 결과이다. 어제는 길이었지만 오늘은 흉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삶의 변용이 요구되는 지점에서 우리는 그 방향타가 되어줄만한 존재를 찾는다. 책을 읽거나 스승을 만나 그 가르침을 뒤따라 가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그것도 그렇게 쉽지 않다. 이전에는 분명한 길이었을지 몰라도, 늘 다른 변수를 가진 리호미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인간의 삶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나는 최근 불가피하게 한 조직의 대표를 맡게 됐다. 능력도 열정도 선임대표에 미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가 다져놓은 길을 충실히 따라가리라 다짐하지만,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나는 매번 뭔가를 결정해야 하고 매번 뭔가 새로운 선택을 요구받는다. 이때 내가 혹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내맘대로 보인다고 믿고, 해낼 수 없는 것을 내맘대로 서둘러 앞서가려다 육삼의 리호미가 되는 것은 아닌지, 육삼의 리호미는 나를 흔들어 깨운다.

 

또 하나 명심할 것은 이렇게 내가 밟아가는 길은 나혼자 밟고 지나가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나의 뒤를 따라 그 길을 밟을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한 걸음, 한 걸음 함부로 내디딜 수 있겠는가. 천택리괘의 리호미처럼 조심하고 또 조심할 일이다.

 

“눈덮인 들판을 걸어갈때는(踏雪野中去)

어지러이 걷지 말라(不須胡亂行)

오늘 나의 발자국은(今日我行跡)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라(遂作後人程)”

- 서산대사의 시에서

 

 

댓글 3
  • 2022-04-04 17:53

    처음 주역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처음 댓글을 달아봅니다.

    늘 처음은 참 어렵습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삶의 역동.

    주역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네요.

     

  • 2022-04-05 17:24

    어려운 건 제가 글을 잘 못쓰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역이야기가 재미있다고 하시니 감사합니다~

    좀더 분발할께요.

  • 2022-04-11 08:39

    무엇인가의 뒤를 따르는데, 그 뒤를 또 따르는게 있을거라는 마무리가 인상적이네요

    미처 생각못했던 부분인데, 봄날쌤의 현장에서 나오는 생생한 배움이군요

    호랑이 꼬리는 밟지도, 밟지 않지도 말아야겠군요 ㅎㅎ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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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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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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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1.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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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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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11.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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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봄날 2023.07.04 |
조회 285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조회 369
봄날의 주역이야기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짓고 사는 친구가, 자기가 직접 심어 싹을 틔웠다며 작은 아보카도 화분을 하나 주었다. 단단한 아보카도 씨앗 한가운데가 쩍 벌어져 있었고 그 틈으로 싹이 나고 줄기가 한 뼘만 한 길이로 자라나 있었다. 친구의 말로는 아보카도는 싹을 틔우기가 어렵지, 한번 싹이 나오면 쑥쑥 잘 자랄 것이니 어렵지 않게 키울 수 있다고 한다. 씨앗에서 싹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까지 이 식물은 얼마나 힘든 고난을 견뎌냈을까.   만물의 시작, 수뢰둔괘 주역 64괘의 세 번째인 수뢰둔(水雷屯)괘는 주역에서 시간과 공간이 열린 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지점을 가리킨다. 하늘을 뜻하는 건괘(乾卦)와 땅을 뜻하는 곤괘(坤卦)의 다음에 나오는 괘가 바로 둔괘이다. 서괘전에서 “천지가 있은 뒤에 만물이 있다”고 했으니 둔괘는 하늘과 땅이 열리고 난 후 바야흐로 사물들이 생겨나기 이전, 혼돈(chaos)의 세상에서 무언가가 생겨나는, 우주생성의 드라마 현장이다. 원시지구의 대기상황처럼 둔괘의 상괘는 물이고, 하괘는 우레이다. 천지가 검은 먹구름으로 꽉 차있고 순간순간 그 속에서 ‘번쩍’하며 천둥과 번개가 친다.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 둔괘는 크건 작건 모든 시작에서 만나는 고난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할 때 우선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는 것이 어렵다. 또 언제 닥칠지 예감하는 것이 어렵고, 실천하는 것이 또 어렵다. 주역의 대표적인 난괘인 둔괘는 그 어려움이 바로 ‘시작’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다른 난괘와 비교된다. 주역이 말하는 시작의 어려움은 과연 무엇이고, 그 어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는지 살펴보자.   판단하기 어려우면...
봄날 2023.02.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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