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다-남은 이야기> Hasta la vista, <길드다>! (김고은)

문탁
2022-03-25 12:01
302

고은

 

 

  지금으로부터 약 4개월 전, <아젠다>에 <길드다의 흥? 망? 성? 쇠?>라는 글을 썼다. 현재의 <길드다>가 위기에 처했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젠다>에는 <길드다>에 변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공지가 올라갔다. 그 사이에 <길드다>에서 명확하게 입장을 밝힌 사람은 나였다. 친구들에게 “이렇게는 더 이상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딱히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한 회의에서 확인했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을 깨달았다. 

 

 

1.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이렇게는 못하겠다”는 말은 무척 애매해보인다. ‘이렇게’가 뭔데? 마지노선이나 조건이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건 뭔데? 지금 글로 풀어보려 해도 ‘이렇게’가 무엇인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길드다의 사장님과 친구들은 모두 내 말을 알아들었다. 그 말을 하는 타이밍이 하필 지금이냐고 물어본 사람은 있었어도, 그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나의 입장은 ‘이렇게는’ 계속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므로, <길드다>엔 변화해야 할 명분이 생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리들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문탁쌤이 헤드의 역할을 내려놓자 우리가 가진 생각의 차이는 더 분명하게 드러났다. 지원과 명식은 <길드다>를 이대로 유지하고 싶어했고, 자신들 개인의 일도 계속 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길드다>에 더 자주 나오거나 운영 일을 더 할 수는 없다고 했다. 그 말은 나와 우현이 앞으로도 계속 <길드다> 운영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길드다> 의의에 적합한 역할 분담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까지의 의의에 따르면 <길드다>는 각자가 각자의 영역에서 목소리를 키우고, 동시에 함께 일하며 서로의 역량을 키워주는 곳이었다. 그것이 우리가 돈을 많이 못 벌고 그럴싸한 증명장을 받지 못해도 <길드다>를 계속하는 유일한 이유였다.

 

  우리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원체 성격이나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일리가 있다. 합의에 이를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서로의 생각을 살피고 들으려는 능력이 부족해서? 꽤나 타당하다. 10년을 함께 공부하고 5년을 함께 일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었으니까? 그런 면도 있다. 다양한 이유가 쌓이고 쌓여서 우리는 각자의 입장을 내려놓지 못했다. 혹은 각자의 입장 때문에 다른 사람의 입장을 살피지 못했다.

 

  결국 <길드다>는 ‘이렇게’ 계속 하지 않기로 했고, 다른 방식의 ‘저렇게’를 찾지도 못했다. 그래서 ‘요렇게’ 하고자 하는 누구누구와 ‘조렇게’ 하고자 하는 누구누구로 나뉘게 되었다.

 

 
 

2. 어쩌면 마지막 다투기

 

  나의 입장 표명은 속 시원하기 위해서라거나 홀가분하기 위해서 한 행동이 아니었다. 실제로도 일은 만만하게 풀리지 않았다. 아마 모두가 어떤 말들을 끊임없이 삼켰을 것이고, 혼자서 눈물을 쏟기도 했을 것이며, 여러 감정의 오르내림을 느꼈을 것이다. 내겐 조금 괴로우면서도 동시에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렇게 다투는 마지막 시간일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원, 명식과는 내가 20살이었을 때부터 10년을 그렇게 보내왔다. 우리는 소리 지르며 싸우다가도(“난 너랑 친구라고 생각 안 해!”,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 “내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거야?”), 뒤돌아 포옹하며 화해했다. 나는 그런 지원과 명식을 꽤 미워한다. 하지만 그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사랑하기도 한다. 

 

  <길드다>를 하면서 문탁쌤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피드백은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몸은 그렇게 유연하면서 사람이 어찌 그리 유연하지 못하냐고 말이다. 다른 친구들도 나의 뻣뻣함에 몸서리쳤을지도 모른다. <길드다>에 대한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난 뒤 나에게 가장 빠르게 찾아온 변화는 장난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생각이 났다. 그동안 나 역시도 스스로 학창시절부터 모범생이었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사실 학창시절엔 선생님들이나 나를 모범생으로 여겼고 친구들은 나를 장난꾸러기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을 보면 항상 장난칠 궁리만 했고,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복도를 뛰어다녔었다. 다시 장난칠 궁리만 하고 있는 요즘, 내게 꽤 잘 맞는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수영을 시작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다. 중학생 이후로 수영장에 처음 갔기에 모든 것이 서툴렀지만, 서툴러서 오히려 좋았다. 수영강습을 받는 나를 본 동생이 왜 그렇게 계속 웃냐고, 못하겠다고 말하면서 뭐가 그렇게 행복하냐고 물었다. 무언가를 챙기고 살피고 여며야 한다는 강박감이 옅어지니 작은 일에도 못 하겠다고 찡얼거릴 수 있게 되었다. 내가 이것을 조금 더 일찍 할 수 있었다면 <길드다>의 앞길이 조금 달라졌을까, 라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지만 흘려보냈다. 대신 이것을 <길드다>의 친구들에게 받은 선물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혈기왕성했던 나를 20살부터 받아준, <길드다>를 시작하고 언젠가부터 경직되었던 나로 인해 고생한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올해 29살, 기존의 <길드다>를 정리하며 내게 무엇이 있고 무엇이 없는지 생각해본다. 일단 나를 증빙할 서류가 거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20대까지 사회적으로 무언가를 쌓고 30대부터 일을 하는 시기라고 본다면, 내가 앞으로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내게 없는 것이 확실하듯, 내게 있는 것도 확실하다. 무슨 일을 해도 잘할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고, 같은 일이 비슷한 언어를 쓰면서 분노할 줄 아는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으며, <길드다>를 통해 만난 멋진 친구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다. 

 

  우선 나는 올 한 해 동안 내 곁에 있는 친구 중 한 명인 동은과 <한문이 예술> 수업을 하고, 또 다른 친구들을 인터뷰하는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문탁 네트워크>에서 우현·동은과 공부방 회원으로 공부하려고 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다가, 또 언젠가 만나게 될 <길드다> 친구들에게 그리고 <아젠다>의 구독자들에게 인사를 건낸다. Hasta la vista!*

 

* Hasta la vista: ‘adios’가 ‘못 만날지도 모르지만’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면, 다시 만날 사람과 헤어질 땐 ‘hasta la vista’라고 써야 한단다. 스페인에서 친구와 헤어질 때 친구가 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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