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가 양생이다> 7회 무진장, 우리들의 '돈' 이야기

기린
2021-03-22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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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돈’ 이야기

 

중학교 2학년 봄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어머니는 여행가서 쓸 용돈으로 만 원을 주셨다. 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몇 천 원 정도 생각했던 예상을 훨씬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아무짝에 쓸모없는 기념품 같은 거 선물이랍시고 사오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으셨다. 속으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꼭 사와야지 생각했다. 또래들과 가는 첫 여행,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용돈도 두둑 하겠다 맛있는 군것질거리들에 자꾸만 손이 갔다. 야금야금 쓰다 보니 이틀도 되기 전에 바닥이 보였다. 받을 때 이렇게 많이 라는 놀라움이 애걔 이렇게 쓸게 없다니 로 바뀌었다. 기념품 사오겠다고 큰소리 안 쳤던 게 다행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써보니 순식간이더라는 내 말에 어머니는 기가 차다는 표정이셨다. 그 때 알았다. 돈 쓰기 참 쉬웠다.

 

 

 

스무 살에 서울로 상경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전봇대에 붙은 판촉직을 구한다는 문어발 광고를 보고 전화를 해서 취직을 했다. 의료보험과 국민연금에 퇴직금도 받을 수 있었던, 지금처럼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구분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2년 쯤 일했는데, 매달 월급을 받는 재미 빼면 낙이 없었다. 회사에 판촉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서 그만 두겠다고 했다. 경리 언니가 퇴직금을 정산해주면서 이제 뭘 먹고 살거냐 한 걱정을 했다. 그 후 가족들에게 빌붙어서 그럭저럭 살았다. 대부분 쪼들렸고 직장인일 때 만들었던 신용카드로 돌려막기 결제를 하면서 이십대를 보냈다. 삼십대 이후 학원 강사로 일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만족도가 낮은 일이었다. 수업 시간만큼 월급을 받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수업이 줄어 받는 돈도 줄었다. 그래도 돈 쓰기는 여전히 쉬웠으니 경제사정으로 보자면 내 인생은 늘 ‘마이너스’ 였다.

 

공동체에서 마을 경제라는 주제로 공부를 계속했던 친구들이 ‘무진장’을 만들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에서 밝힌 자본주의체제를 심화시키는 사적 소유를 흔들어보자는 실험이라고 했다. 몇몇 친구들은 포럼을 열고 자료를 뒤지면서 회칙과 강령을 만들었고, 뭐든 같이 해야지 라는 친구들까지 그렇게 모인 인원이 총 24명이었다. 각자 50만원을 추렴해서 종자돈을 만들었는데, 나는 다른 친구가 내 몫까지 부담해줘서 합류했다. 정식 출범 전에 시범적으로 무진장을 운영하면서 매달 회의가 열렸다. 무진장에서 돈을 꺼내 쓰는 행위를 대출-상환으로 명명할 것이냐 입금-출금으로 할 것이냐 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했다. 회의를 거듭한 끝에 무진장을 “단순한 구휼자금이 아니라 비자본주의적 공동생활기금”이라고 규정하면서 입금-출금으로 결정했다. 그렇다면 내 통장은 마이너스인데 무진장의 통장에는 돈이 두둑한 현실, 나는 그 돈을 ‘내 돈’처럼 출금해서 쓸 수 있을까. 시범 기간을 끝내고 무진장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던 2017년 4월 나는 새로운 실험을 하겠다고 나섰다.

 

 

   2. 입금과 출금, 그 속사정

 

공동체에서 이런 저런 활동으로 매달 버는 수입은 대부분 백만 원에 못 미쳤다. 그렇다고 살림살이가 쪼들리지도 않았지만 마이너스 통장을 없앨 수도 없는 딱 그만한 수준이었다. 나는 활동 수입 전체를 무진장으로 입금하고 매달 백만 원씩 출금해서 써 보겠다고 했다. 당시 오십 만 원정도 벌었으니 배를 출금하는 규모였다. 이 차액을 빚이라는 부담감 없이 쓸 수 있을까. 당장의 부담은 확실히 줄었다. 그 자리에 매달 내 통장 잔고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안정감이 채워졌다. 또박또박 들어오는 월급의 효과였다. 몇 달이 지났을 때 강사료가 제법 되는 도서관 강의를 할 신청자를 찾는다는 운영회원 톡이 올라왔다. 예전 같으면 선뜻 나설 엄두를 못 냈을 텐데 보자마자 번쩍 손을 들었다. 돈을 벌겠다는 의지가 이렇게 강렬하게 발동하다니 내심 좀 놀랐다. 그 해 말 도서관 강의로 번 강사료를 무진장에 넣었고 입금과 출금 사이 차액이 거의 없는 것을 확인하고 후련하기까지 했다.

 

나카자와 신이치의 『대칭성 인류학』에 의하면 고대 사회에서는 사람들 사이에서 물질이 교환될 때 물질에 담겨있는 ‘영혼’까지 이동한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영혼의 이동으로 서로간의 신뢰나 명예, 우정 등의 인격적인 유대가 발생하는 증여적인 사회였다고 한다. 반면 우리가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등가 교환하는 자본주의체제에서는 어떤 유대도 발생하지 않는다. 신이치는 증여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는 ‘사랑’의 관계가 맺어질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무진장을 통해 출금하는 행위는 분명 등가교환은 아니었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사이 우정에 수반된 증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내게는 한편으로 여전히 ‘빚’이기도 했다. 돈으로 진 빚은 돈으로 갚아야 한다는 등가교환 감각 또한 지극히 생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차액을 갚고 나서야 체면이 선 것 같았고 마음까지 후련했던 것이다. 돈이 교환가치로써 발휘하는 위력은 그만큼 착각을 일으키기 쉬웠다. 매달 백만 원을 출금하던 실험은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다.

 

 

 

해를 넘겨도 대부분의 친구들은 입금도 출금도 하지 않는 회원에 머물렀다. 운영회의를 거쳐 새로운 실험들이 제안되었다. 그 결과 각자 1년 프로그램의 학비를 출금하기도 했고, 공동체 안에서 쓰는 돈을 무진장에서 출금하는 ‘조아’를 실험했다. 자누리 비누를 사고 공동밥상에서 먹는 밥값을 내기 위한 소소한 출금들이 발생했다. 하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부담도 느껴졌다. 입금에도 출금에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친구들은 무진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실제로 몇몇 친구들은 무진장의 활동에서 한계를 느낀다며 탈퇴하기도 했다.

 

  3. 우리의 ‘돈’ 이야기

 

한 달에 두 번씩 운영회의를 할 때마다 회원들의 관심을 집중시킬 활동을 기획했다. 그 중 하나로 무진장에 대한 친구들의 생각을 들어보는 인터뷰도 있었다. 인터뷰를 해보니 무진장과 가족 경제의 접점을 찾기가 어렵다는 고충을 밝히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나처럼 공동체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모두 해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집집마다 돈을 쓰는 용법이 다른 가족 경제 상황을 밝히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적 소유를 흔들어 보자거나 비자본주의라는 말들이 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자의 형편은 다른데 단일한 척도로 그 형편을 재단해야 한다면 스스로도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형편이 다르기 때문에 무진장 실험을 함께 할 수 없을까.

 

공동체에서 먹고 사는 나의 형편은 여전했고 무진장에서 출금을 해야 하는 상황도 계속되었다. 매달 백만 원을 출금했을 때는 생활비라는 명목으로 퉁 쳤는데, 필요할 때 마다 출금하자니 그 명목을 시시콜콜 밝혀야 했다. 게시판에 출금을 요청하면서 단도직입적으로 돈 얘기를 꺼내기 멋쩍어 봄 날씨 운운하며 연서를 쓰는 흉내를 내기도 했다.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관절수술 차 우리 집에서 두 달 간 요양을 했을 때였다. 늘어난 생활비를 출금신청하면서 봉양 스트레스에 대해 주절댔다. 내가 살고 있는 임대 아파트 계약을 연장하는데 필요한 보증금 인상분을 신청하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구질구질하게 내 형편을 밝히지 않아도 되는 현금 서비스를 이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느라 마음까지 구질구질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나의 출금은 내가 살고 있는 ‘이야기’가 되었다. 여전히 돈도 없고 하는 일은 술술 풀리지 않아도 무진장도 있고 해서 견딜 만하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무진장을 통과할 때 서로 다른 형편 때문에 부담스러운 우리들의 마음도 함께 흘러갈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친구의 형편도 무진장을 통해 알려졌다. 남편이 사업에 실패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중인데 그 사이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했다. 친구의 형편이 언제 회복될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매달 오십 만원씩 일 년 동안 출금하기로 했다. 친구의 형편이 나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하수를 끌어올리는 물 한 모금이라는 뜻으로 ‘마중물’이라 이름도 정했다. 친구들은 나에게도 먹고 사는 걱정에서 벗어나 좀 더 안정된 상황에서 공부하라며 마중물을 받으라고 권했다. 필요할 때 신청하는 출금 절차 없이 무조건으로 매달 오십 만원이 입금되었다. 나의 형편은 확실히 여유가 있어졌다. 그 여유는 무진장의 돈을 내 돈이다 아니다 라는 분별을 버리는 데도 한 몫을 했다. 언젠가 나의 형편이 나아져서 무진장에 입금하는 날이 오면 좋겠다. 하지만 그마저도 반드시 갚아야한다는 부담보다는 바람에 가깝다. 그 바람에 우리의 무진장 실험도 흔들흔들 흔들리며 굴러가기를 바라면서.

 

 

 

  4. 무진장은 계속 된다

 

해가 바뀌고 또 다른 친구들의 형편이 무진장에 전해지고 마중물을 받는 친구들이 바뀌기도 했다. 매달 마중물로 출금되고 비정기적으로 학비 등을 출금하는 경우도 있고 물품을 구매하는 출금도 된다. 이렇게 매달 출금만 있으면 무진장의 잔고는 금방 바닥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해로 오년 째인 무진장의 잔고는 아직까지 바닥을 보인 적이 없다. 무진장은 회원이면 누구나 잔고를 확인할 수 있는 통장을 쓰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매달 누가 출금을 했고 누가 입금을 했는지 알 수 있다. 가끔 들어가 보면 매달 출금이 되는 돈 못지않게 입금되는 돈도 꾸준하다. 출금하는 친구들보다 형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매달 정기적으로 입금한다. 어느 날 실수로 무진장 단체 톡방을 나갔던 친구가 재가입하고 싶다고 다시 오십 만원을 입금해서 우리를 웃겼다. 한 달 동안 금연을 실천하면서 모은 담배 값을 입금한 친구도 있었다. 이렇게 출금만큼이나 입금을 챙기는 친구들의 마음이 무진장을 마르지 않는 창고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년 말 무진장 총회가 열렸다. 한 해 무진장의 여러 실험결과를 점검 평가하고 다음 해의 활동도 기획하는 자리였다. 무진장의 출금과 입금과 관련해서 각자가 생각하는 바를 밝히는 토의 시간도 있었다. 각자의 생각의 차이를 확인했지만 그것이 지금 무진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직접적인 원인일 수는 없다는 의견에는 대부분 동의했다. 내년에도 이런 차이에 대해 지속해서 논의하자는 정도에서 토의가 마무리되었다. 그래도 우리 모두 애면글면 살아냈다는 이야기들이 줌 화면으로나마 흘러 다니면서 마음들이 조금씩 말랑말랑해졌다. 총회가 끝나고 선뜻 나가지 못하는 친구들을 보다가 나는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싶어졌다. 작년 한 곡 마스터하기 도전으로 6개월 내내 연습했던 신해철의 ‘민물장어의 꿈’을 부르겠다고 했다. 줌 화면을 향해 쌩목을 내지르며 노래를 부르는 나를 보면서 친구들은 박장대소에 야유에 어떤 친구는 식구들까지 불러다 같이 들었다고 했다. 노래가 끝났을 때 진짜 웃기는 코미디였다는 평이 가장 많았다. 친구들이 한바탕 웃어 줘서 좋았고, 이런 순간이 또 언제 올지 몰라 소중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스무 명의 친구와 찐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쫌 행복했다.

 

 

 

 올해 새롭게 마중물을 신청한 친구들이 생겼다. 남편이 퇴직을 하면서 가정 경제에 변화가 생겼으니 마중물로 생활비를 보충하고 싶다고 했다. 다른 친구는 마중물에 의지해 다른 약국에서 하던 알바를 접고, 공동체와 연결된 ‘일리치약국’에서 자립하는 실험에 집중해보겠다고 했다. 주로 입금을 했던 친구가 마중물을 받게 되면서 어떤 경험을 할지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이럴 때 나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삶의 우여곡절을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감당하고 있음을 느낀다. 돈이 없으면 불행한 세상이라고 한다. 맞다. 공동체에 오기 전에 나 역시 쓰기는 너무 쉽고 벌기는 너무 어려운 돈 때문에 때때로 불행하기도 했다. 또 받은 만큼 돌려주는 등가교환의 질서에 대해 별로 의심하지 않으며 살았다. 하지만 무진장을 실험하며 그 교환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증여로 나아갈 수 있음도 알게 되었다. 돈이 없어도 불행하지만 돈만 있어도 불행하기는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현실의 문턱은 여전히 강고해서 우리는 때때로 흔들리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구질구질한’ 돈 이야기를 계속 할 것이다. 그러면서 돈도 섞고 마음도 섞으면서 함께 의지하며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할 것이다. 그게 사적인 소유를 흔드는 일이고 비자본주의적으로 살아보기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으면서.

 

댓글 5
  • 2021-03-22 08:41

    오홋! 무진장!

    작년 겨울 총회는 대단했죠!

    이제는 숨길 것 없이, 그렇다고 내세우지도 않고,  자기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된 것 같았어요.

    겨울 화톳불 앞에 앉아 조근조근 얘기하듯, 그 분위기에 취해 아무도 줌 나가기를 누를 생각이 없었지요.

    거기까지 가는 동안 기린, 참 애 많이 썼어요 ㅎㅎ

    공동체를 이렇게 절실하게 대하는 친구가 있어서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 2021-03-22 09:42

      저도 일정금액을 입금하는 무진장 회원이 될 수 있나요?

      • 2021-03-22 13:59

        와~~ 연락드릴께요

  • 2021-03-22 17:25

    작년이었던가용 올해였던가요

    제가 벌이에대해 고민을 할때

    흔쾌히 빌려주겠다고 하셨던 기린샘이 떠오르네용

    ㅎㅅㅎ 멋집니다 기린샘

  • 2021-03-23 01:13

    올해도 노래연습해야할듯ㅋㅋ

    나 숨넘어갈 뻔~~

    기대할게요^^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 양생에 대한 오해       양생이라는 낱말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병에 걸리지 않도록 건강관리를 잘 하여 오래 살기를 꾀함”이라는 뜻이 첫 번째로 실려 있다. 즉 양생은 오래 살기 위한 방편이라는 것이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양생과 관련한 공부를 하자고 했더니, 건강 챙기는 것도 공부해야 하느냐고 반문한 친구도 있었다. 하지만 양생(養生)의 출전으로 알려진 「양생주」에서는 병이라거나 건강, 장수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다. 다만 첫 장에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님을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는 내용이 있다. 이 또한 오래 사는 것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양생이 장수를 뜻하게 된 데는 진시황의 일화가 한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진시황본기」에는 불로장생에 꽂힌 진시황의 이야기가 나온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이룬 후 천하를 순행하기 시작했는데, 제나라에 들렀을 때 서불 등의 방사들을 만나 신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후로 진시황은 방사들을 가까이 하며 죽지 않는 신선이 될 수 있는 약을 구하려고 막대한 비용을 댔다. 그 중의 노생이라는 방사는 진인(眞人)을 소개하며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으며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천지와 더불어 영원합니다.” 라고 했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진인을 가리키는 내용과 같다. 하지만 진시황은 불사약을 얻지 못했고 순행 도중에 병을 얻어 객사하고 말았다. 이후에도 한무제 역시 말년에 불로장생에 몰두하였다는 등 진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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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3.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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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칠원의 관리, 장자   들꿩은 열 걸음을 걸어야 모이 한 번 쪼고 백 걸음 걸어야 물 한 모금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새장에서 길러지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먹이를 찾는 수고로움이야 없겠지만 자유롭게 살려는 본성에는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澤雉十步一啄,百步一飮,不蘄畜乎樊中. 神雖王,不善也.) 「양생주」 『낭송장자』 100쪽     『사기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몽(蒙)땅 칠원(漆園)의 관리(吏)였다고 전해진다. 현재 몽 땅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칠원이 옻나무를 심어 놓은 동산이라는 것에서는 이견이 없다. 장자가 살았던 시기에는 종이와 먹이 발명되기 전이라 대부분 죽간에 써서 기록을 남겼다. 옻나무에서 채취한 옻액을 대나무로 만든 펜으로 찍어 죽간에 썼다고 한다. 그런데 옻나무는 아무데서나 흔히 자라는 수종이 아닌데다, 씨앗의 발아율도 낮고 잔뿌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는 데도 3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상황이니 옻액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라도 옻나무 동산을 관리해야 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칠원의 관리는 중요한 직책은 아니어서 하급말단직이었을 것이라는 데도 이견은 없다.        「양생주」 3장에는 들꿩의 살이가 나온다. 꿩은 땅 위를 걷는 새로 몸이 길고 날씬하며, 발과 발가락이 발달되었으나 날개는 둥글고 짧아 멀리 날지 못한다. 먹이는 나무 열매나 풀씨 등의 식물성 먹이를 주로 섭취하는데, 작은 곤충도 먹는 잡식성이라고 한다. 먹이 대부분이 땅바닥에서 쪼아 먹을 수 있는 것들이다 보니, 사냥감으로 노출되기 쉬워 식용으로도 널리 애용된 조류이기도 하다. 옛 문헌에 의하면 늦봄 풀숲에 숨어서 피리로 장끼소리를 내면 꿩이 그 소리를 듣고 날아오르기도 하는데 그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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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3.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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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기린 2023.08.17 |
조회 282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춤추다 배운 연독이위경   기린     연독이위경, 중도를 지키는 삶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_낭송장자 78쪽)     위 문장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좇는 위험을 밝힌 「양생주」 1장의 후반부 내용이다. 내편에서 선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인데, 장자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삶에서 양생의 가능성을 본다. 좋은 일이 드러나서 명성을 얻게 되면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쁜 일로 형벌을 받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된다. 온전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양생에서 선도 악도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도의 삶을 통해 시비선악을 넘을 수 있을 때, 자신과 주변까지 보살피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중도의 삶은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다. 직역하면 살피는 선으로써 날실로 삼는다 는 의미인데, 이때 날실은 아래 위로 지난다. 위진시대 곽상은 연독이위경을 “순중이위상(順中以爲常)”으로 주석하였다. 중심을 따름으로써 법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핀다는 의미의 독(督)을 가운데(中)로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주석은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사람에게는 여덟 개의 맥(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독맥(督脈)은 중앙(中)을 흐르는 맥이라는 설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독맥은 꼬리뼈 부근에서 등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정수리를 지나 인중에 이르는...
춤추다 배운 연독이위경   기린     연독이위경, 중도를 지키는 삶   좋은 일을 해서 명성이 나는 것도, 나쁜 일을 해서 형벌을 받는 것도, 좋지 않습니다. 시비선악을 넘어 중도의 도를 지키면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고, 삶을 온전히 할 수 있고, 부모를 잘 모실 수 있고, 천수를 누릴 수 있습니다. (爲善無近名,爲惡無近刑. 緣督以爲經,可以保身,可以全生,可以養親,可以盡年._낭송장자 78쪽)     위 문장은 지식을 위한 지식을 좇는 위험을 밝힌 「양생주」 1장의 후반부 내용이다. 내편에서 선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첫 문장인데, 장자는 선과 악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삶에서 양생의 가능성을 본다. 좋은 일이 드러나서 명성을 얻게 되면 그만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나쁜 일로 형벌을 받게 되면 몸을 상하게 된다. 온전한 몸을 유지해야 하는 양생에서 선도 악도 해로울 뿐이라는 것이 장자의 입장이다. 그래서 중도의 삶을 통해 시비선악을 넘을 수 있을 때, 자신과 주변까지 보살피면서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     원문을 살펴보면 중도의 삶은 연독이위경(緣督以爲經)이다. 직역하면 살피는 선으로써 날실로 삼는다 는 의미인데, 이때 날실은 아래 위로 지난다. 위진시대 곽상은 연독이위경을 “순중이위상(順中以爲常)”으로 주석하였다. 중심을 따름으로써 법도로 삼는다는 것이다. 살핀다는 의미의 독(督)을 가운데(中)로 주석을 달았다. 이러한 주석은 『황제내경』 「영추」편에서 사람에게는 여덟 개의 맥(脈)이 있는데, 그 중에서 독맥(督脈)은 중앙(中)을 흐르는 맥이라는 설명에 따른 영향이라고 한다. 독맥은 꼬리뼈 부근에서 등줄기를 따라 위로 올라가 정수리를 지나 인중에 이르는...
기린 2023.06.13 |
조회 367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기린 2023.04.11 |
조회 416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공동체 밥상을 책임지겠어!    2017년 말 워크샵에서 다음 해의 공동체 주방을 운영하는 매니저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같이 할 파트너를 찾던 어느 날, 공부방에서 당시 공동체 주방이었던 주술밥상 매니저와 마주쳤다. 회계 등등의 인수인계 잡무와 내년 운영 계획 등이 오가는데 분위기가 점점 예민해졌다. 결국은 언성이 높아졌다.   친구: 그럼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그동안 여섯이나 했다는 거야?! 나: 같이 하겠다는 사람이 없잖아! 그럼 혼자서라도 해야지!   우리 둘은 씩씩거리며 제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친구가 다시 말을 걸었고 함께 차를 마시면서 서로의 입장에 대해 이야기 했다. 친구는 기존의 매니저 여섯 중에 할 수 있는 사람을 좀 더 물색해보자고 했다. 이미 그들의 의사를 타진해 보았던 나는 다들 부담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그날 나와 함께 공동체 밥상을 맡을만한 마땅한 사람이 없는 상황, 그것을 어떻게 봐야할지 적절한 말도 찾지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헤어졌다.    2016년 공동체 밥상이 파지사유로 내려오면서 ‘주술밥상’ 시대가 열렸다. 주술밥상은 공동체의 밥상과 단품요리를 만드는 찬방을 함께 운영해 보겠다고 했다. 음식을 잘 하는 친구들과 기획력 있는 친구까지 합심해서 예술작품 같은 요리로 대박을 내보자는 야심찬 밥상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2018년 봄 나는 그 주방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겠다고 나섰다. 그 과정에서 저런 사단이 났다. 하루 이틀 본 사이도 아니고 잘 해보자는 마음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 날 우리는 제각각 마음이 좀 상했다. 나는 그 친구와 헤어져...
기린 2021.04.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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